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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144화 (144/300)

#   145-희망을 위한 찬가 - 이 곳에는 타자가 없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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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한 사람의 청년이 서 있었다. 금발의 서양인이었다. 훤칠한 키에, 오관이 뚜렷한 미남이었다. 흠이라면 눈 밑에 일그러진 화상자국이 있다는 정도였지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샘에서 물이 솟아나는 것 처럼 빛을 흘리고 있는 푸른 눈동자가 야릇했다. 그는 현실과 비현실의 중간에 걸터서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

은결과 쿠로사카는 이런 분위기를 가진 자와 싸운 적이 있다. 고요한 달이 노래하는 불멸의 축복을 받아, 야생의 광기로 알량한 이성을 비웃던 파괴적인 괴물. 그래. 이 남자는, 라이칸 슬로프를 생각나게 하는 분위기를, 그런 압도적인 이질자로서의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일전에, 친구가 신세를 졌지.”

청년은 그렇게 말했다. 단어는 명확하지만 어조는 뒤틀어진, 어색한 한국어였다. 두 사람은 기다리지 않았다. 쿠로사카는 허리춤에서 찰캉, 하고 검을 꺼낼 준비를 했다. 은결은 뒤따라서 심호흡을 했고, 역장을 발생시켜 몸을 앞으로 날렸다. 그의 전신이 정체를 알 수 없어 광막한 세계를 관통하며 날았다. 쿠로사카가 뒤를 따랐다.

-꾸웅-!

은결과 청년이 부닥쳤다. 세상을 울리는 충격음이 났다. 하지만 청년은 은결의 공격에서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은결의 눈이 커졌다. 그도 역장을 사용했다. 더구나 극히 완성도가 높은 역장이었다. 역장을 사용한다니! 역장은 그 응용에 있어 지극히 자유롭다. 역장을 통한 힘의 사역. 그것은 근본적으로 구속되지 않는 자유의 실천적 형식이다. 은결이 아는 한, 그것은---

쿠로사카의 검이 이어졌다. 소리도 없이, 한 줄기 빛 만이 청년을 가르기 위해 날았다. 그제서야 그는 발을 놀려 뒤로 멀어졌다. 공간이 검격에 휘말리며 흩어졌다가 다시 합쳐지는 광경의 뒤로, 처음처럼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으며 대지, 혹은 대지라 인식되는 것 위로 내려서는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 성급하군. 좀 더 이야기를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말했다. 여유가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은결은 답하지 않았다. 그는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평화로운 대화가 목적이라면, 이런 결계를 펼치며 접근했을 리가 없다. 은결은 다시금 날았다. 그의 몸은 거대한 포탄처럼 압도적인 에너지를 담고 공간을 질주했다. 그 질주의 아득함은 소리를 짓찢고 돌파해서, 정적만이 그 앞에 아른거리도록 했다.

“큿!”

청년은 기묘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웃어 보이더니 손을 들어올렸다. 역장이 발생하며 은결과 충돌했다. 쿠앙! 그제서야 쫒아온 소리가 주변을 뒤흔들었다. 쿠로사카도 이미 뒤따라와 있었다. 그녀는 지금껏 달린 기세를 그대로 살린 참격을 날렸다. 어둠을 잡아 찢는 키리야미가, 섬전의 쾌속으로 적을 향해 치달렸다. 그 검세의 부드러움은 물과 같았고, 그 검세의 힘은 천둥과도 같았다.

-키이잉잉!!

기이한 충돌음이 이어졌고, 공간이 시각적으로 흔들렸다. 잔잔한 호수의 파문처럼, 허공의 빛이 일그러졌다. 은결이 입을 열었다. 그의 주먹이 빛을 발했다. 공간 가운데 복잡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그의 주먹이 막대한 힘을 팔꿈치 쪽으로 뿜어내며 그대로 역장을 관통했다. 청년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처음으로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손이 재빠르게 은결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으적, 소리가 나며 청년의 손바닥이 형편없이 박살났다. 팔 전체도 수수깡을 이리저리 부수어 만든 것처럼 기이한 각도로 여러 번 꺾였다.

“쉿!”

분한 목소리를 외치며, 그는 발을 들어 은결을 걷어찼다. 역장으로 보호받는 은결의 아랫배가 그대로 뚫렸고, “커헉-!” 하며 은결은 피를 내뿜으며 뒤로 넘어갔다. “은결!” 쿠로사카가 외쳤다. 하지만 그녀는 은결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그를 ‘믿기’ 때문이다. 그녀의 검은 여전히 역장의 충돌을 상쇄하기 위해 잉잉거렸다. 지금 대결의 틈을 타고, 그녀의 검이 청년의 역장을 베어넘겼다. 청년은 몸을 뒤로 뺐다. 키리야미의 날이 그의 살을 엷게 베었다. 검끝으로 붉은 피가 희미한 실처럼 이어지다가 점점히 흩어졌다.

“흐응. 역시 상당하군.”

뒤로 물러선 그는 멀쩡한 팔로 키리야미에 베인 상처를 쓸어 흘러나오는 피를 맛보며 중얼거렸다. 완전히 박살나 덜렁거리는 그의 오른 팔은 기괴했지만, 그의 태도는 겉모습에 걸맞지 않게 여유로웠다. 그는 도리어 키리야미에 베인 상처를 더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쿠로사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의 검은 완벽한 파사의 검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예측을 증명하는 것처럼, 부러졌던 팔이 釜?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그는 표정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흠... 역시 전설의 아들이란 건가. 저 검이야 그렇다 쳐도, 팔을 수복하는데 시간이 너무 걸렸는데?”

그리고 그는 수복된 팔을 움직이며 동작을 확인했다. 쿠로사카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자세를 정리했다. 은결과 함께 움직이지 않는 한, 이 괴물과는 싸워 이기기 힘들었다. 그는 적어도 지난번 싸웠던 라이칸 슬로프만큼은 강한 듯싶었다. 키리야미를 해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때는 그녀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를 노릇이다. 최대한 조심하면서 싸우는 게 좋았다. 그녀의 시선은 청년에게 고정되어 떨어지지 않았다. 어차피 시각이 도움이 되지 않는 수준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곧 은결이 그녀의 옆에 섰다. 쿠로사카는 속삭이듯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

은결은 답은 서늘했고, 간단했다. 쿠로사카는 다른 것을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급한 것은 그런 물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싸워서 이기는 것이 중요했다. “간다.” 쿠로사카는 짧게 말하고, 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뛰쳐나갔다. 은결이 뒤따랐다. 그는 역장을 힘껏 밟았다. 먼저 출발한 것은 쿠로사카였지만, 도착은 두 사람이 거의 동시였다. 그들은 전신으로 막대한 힘을 두르고, 그 힘을 이 적에게 내쏟기 위해 움직였다. 휘황하고 아름다운 동작이었다.

“흥!”

사내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양 손을 펼쳤다. 쿠쾅!! 갑자기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달려오던 두 사람은 턱을 위로 치켜들며 뒤로 튕겨나갔다. “크윽!” 비명을 견뎌 입가로 흘러내리는 두 사람의 신음이 따갑다. 그들은 겨우 자세를 잡고 앞을 바라봤다. 그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과연 상당하군. 보람이 있겠어. 이런 정도의 여흥은 마스터도 허락하시겠지.”

은결과 쿠로사카는 긴장에 침을 삼켰다. 방금 그가 보여준 능력은 굉장했다. 역장을 시전해 그대로 자신들의 공격을 튕겨 내다니! 두 사람도 못할 것은 없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기의 막대한 소비를 각오해야 한다. 더구나 기술적으로도 극히 짧은 순간을 잡아 시전해야 하기 때문에 고난이도다. 은결은 팔찌를 사용했다. 지원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은결이 이곳에 온 것은 어느 정도 팔찌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소용없어.”

은결이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 채고 청년이 말했다. 은결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가 착용하는 팔찌는 수행이 만든 것이다. 기술적으로 준아티팩트에 속하는 물건이다. 은결은 카미의 진입은 결계로 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으로 소통이 불가능한 차단 결계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는 이 결계가 유사 이차원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이차원을 구현한 공간이란 말이다. 터무니없는 수준의 기술이다.

“마스터의 진정한 목적은 네 아버지인 것 같더군. 당연히, 이 진 역시 네 아버지의 능력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거야. 고생했다구.”

“......”

싸늘한 긴장이 전신을 휘감았다. 히죽히죽 웃는 청년에게 아무런 되돌릴 말이 없었다. 쿠로사카도 오싹함을 느끼며 키리야미를 쥐었다. 최악의 예감이 뭉클뭉클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막아내는 것만도 벅찼다. 청년은 이내 쿠로사카에게 손가락을 내뻗으며 말했다.

“그리고 너! 친구가 네게 빚을 많이 졌지.”

“......”

“물론 전설의 아들에게도 빚을 졌지만 그건 나중에 계산하기로 하고-”

그리고 청년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손에는 은빛의 사각금속 조각 같은 것이 쥐어져 있었다. 두 사람은 직감적으로 저것이 지난번 라이탄 슬로프와 싸웠을 때 얻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패임을 알았다. 그것이 빛을 발했다. 그리고 이 음습한 공간 사이로 희미한 실루엣이 떠오르더니 점차 명확해져 갔다. 두 사람은 눈을 부릅떠야 했다. 그것은 지난 싸움에서 푸른 이빨에게 완전히 해체 당했던 라이칸 슬로프였다. 하지만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마치 완전한 짐승인 것 처럼 혀를 내빼물고, 진득한 힘을 입 주변으로 흘리고 있었다. 문명의 색이 완전히 제거된, 진실한 야성의 형태. 청년이 외쳤다.

“가!”

라이칸 슬로프가 뛰었다. 쿠로사카는 이를 악물었다. 쾅! 그녀의 가냘픈 신영이 산사태에 휩쓸리는 나무처럼 라이칸 슬로프에 묻혀 뒤로 멀어졌다. 은결은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을 향하는 청년의 예리한 시선 때문이다. 섣불리 움직이면 당한다! 본능이 그렇게 경고했다. 다행히, 벌써 초조하게 여겨야 할 만큼, 쿠로사카는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틀림없이 그녀는 강했다.

“그럼, 이쪽도 정리해 볼까.”

그리고 그는 자신의 얼굴 밑에 있는 화상자국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의 눈은 증오로 번뜩이고 있었다. 은결은 그 푸른 눈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섬뜩함과 더불어 어떤 장면을 떠올렸다. 푸른 이빨에게 몸을 내어 주어 라이칸 슬로프와 싸웠고, 그가 라이칸 슬로프를 완전히 해체하고 난 다음, 검은 안개가 나타나 그 머리를 채어갔다. 은결은 딱 그때, 푸른 이빨에게서 다시 몸을 탈환할 시도를 했었다. 푸른 이빨은 은결에게 대항하기 위해 그 검은 안개를 전격으로 태우던 것을 중단해야 했다.

“너는-”

안개로 변하는 괴물, 은결이 아는 한, 그런 것이 가능한 인간형의 괴물은 하나 밖에 없다. 피는 생명을 담는 용기. 그 용기를 섭취함으로서 무한한 생명을 구가하는 괴물.

“-뱀파이어구나!”

“그래.”

청년은 답했다. 그리고 양 팔을 펼쳤다. 망토같은 어둠이 그의 팔 밑으로 펼쳐졌다. 청년은 흐느적거리며 본래 형체를 잃더니 그 어둠에 동화되었다. 푸른 눈빛이 점차 어둠 가운데로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그의 말은 희미하게 공간을 울리며 은결에게 찾아들었다.

-나는 귀족 중의 귀족, 진실한 푸른 피의 왕. 뱀파이어다.

*whomi님과 은파람님의 추천에 감사! 좋은 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상 남겨주신 종남검성님께도 물론.

*오랜만의 전투장면.

*은결이 찌질대는건 단지 책 때문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을 사념체와의 싸움을 통해 언제나 재확인 해 왔습니다. 그래서 작의 사념체에 대한 묘사에는 그것을 구성하는 관념이나 효과에 대한 것들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변신시대 같은 경우가 그걸 굉장히 명확히 드러내는 에피소드였죠. 늦어도 이틀에 하나씩 상대해 왔으니 결코 경험적인 측면으로도 적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념체랑 싸우는 게 많이 안 나와서 그런가 알아주시는 분들이 없네효.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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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드디어 ‘응원’도 나왔고... 이제 뭘로 대신 해야.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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