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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167화 (167/300)

#   168-희망을 위한 찬가 - 은결 되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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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이빨은 베게에 머리를 누인다. 침대에 눕는다는 편안하고 생경한 감각이 전신을 감싼다. 세연의 몸에 있을 때는 그녀의 몸을 장악한 일이 거의 없었기에 이렇게 누운 감촉을 느낄 일은 없었다. 푸른 이빨은 눈을 깜빡인다. 방은 이미 어둡지만 그의 시야를 방해하지는 못한다. 천정을 바라보며 푸른 이빨은 사물을 확인한다. 형광등과 천정과 천정의 무늬와 책과, 책장을 본다. 그것들에 대한 관념을 인식한다. 관념이 시야로 들어와 형성되는 것을 확인한다.

‘흠...’

이제 사태는 모두 정상이다. 사념체를 공격했을 때처럼 이해하기 힘들지만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의 엄습 따위는 없다. ‘무언가’의 정체는 꼬맹이의 판단에 따르자면 세계와의 절대적인 합일 같은 것이라고 한다. 한 가지 절대적인 원리로 해석된 세계의 모습 같은 것. ‘도’는 아니지만 ‘덕’ 같은 것, 혹은 ‘도’와 ‘덕’ 사이에 걸쳐있는 교량 같은 것.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 사태 자체는 아니다. 단지 그 사태에 대한 기억이다. 사태의 그림자다.

“칫!”

푸른 이빨은 이를 문다. 그림자에 불과한데도, 관념의 압력을 견딜 수 없었다. 치욕적이었다. 꼬맹이는 어렵게나마 그것을 감내하고 있었는데, 신인 자신은 정작 이겨내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아무리 자신의 본질이 육신이 없는 관념체이기에 그런 ‘관념의 해체’에 취약하다고 하지만 인간인 꼬마가 견디는 것을 견디지 못하다니. 다음에는 이런 수치를 겪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겠다고 싶었다.

“......”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꼬맹이는 신조차 견디기 힘든 것을 견디고 있었다는 말이다. 평이한 안색으로, 마음이 능욕되는 것을 버티며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눈 돌리지 않음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는데. 그저 고통스러웠을 뿐인데.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사랑일까? 희망일까? 오기일까? 어느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푸른 이빨은 자신이 이 꼬마를 잡아먹을 당시를 기억한다. 꼬맹이는 그저 담담히 체념하고 있었다. 죽음과 실패를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푸른 이빨은 혀를 내밀어 손끝으로 만져본다. 상처는 없다. 끊어질 뻔 했던 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꼬맹이는 혀를 물었다. 그래서 죽음을 꾀하거나, 죽음을 통해 기회를 꾀했다. 그러나 꼬맹이는 성공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실패했을 때도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푸른 이빨은 이 꼬맹이를 새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꿈꾸지 않는다. 자신의 이상을 자신의 논리로 가소롭게 짓밟고 능욕한다.

“심하게 맛이 갔다는 것은 전부터 알았지만, 몸을 차지하고도 모를 꼬맹이란 말야.”

그렇게 중얼거리고 푸른 이빨은 눈을 감는다. 어둠이 마음을 감싸 안는다. 육신의 혼곤이 정신을 끌어당기며 의식의 선을 끊는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도천시의 번화가는 느긋한 인파로 구멍이 난 것처럼 듬성듬성하다. 번화가라 해도 빛이 넓게 대지로 쏟아지는 평일의 오전시간 부터 사람으로 충만하기는 아무래도 힘든 일이다. 버스가 한 대 정류장에 섰고, 사람들이 내렸다. 그 인파 가운데 은결- 푸른 이빨이 있었다. 그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난 뒤 인도를 걸었다. 곧 큰 나무가 심어진 주변에 둥그렇게 벤치가 세워져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몇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들 가운데 새하얗게 옷을 입은 소녀가 한 명 있었다. 새하얀 옷이 여름과 조화하며 도심과 불화했고, 챙이 넓은 모자가 여름과 조화하며 도심과 불화했다. 하지만 결국 그 소녀가 입은 옷이나 모자가 주변과 어울린다던가 어울리지 않는다던가 하는 문제는 모두 사소했는데, 이는 소녀의 아름다움이 무척 특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게 소녀의 앉은 모습을 놀란 눈길로 바라보다 떠나곤 하는 것이 이 점을 증명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푸른 이빨은 차분한 목소리로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소녀는 자신을 향하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정의 기복을 설명하듯, 그녀의 하얀 치마가 넓게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이어서 그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조밀한 나뭇잎의 그늘 아래서 그녀의 목덜미는 엷게 붉었다.

“아, 아니요.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오셨는걸요.”

그렇게 말하며 세연은 다시 얼굴로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들뜬 모습을 제 입으로 고하는 것 같아서 창피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역시 레이디를 기다리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겠지요.”

푸른 이빨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가볍게 농을 섞은 그의 태도는 차분하고 고요해서 은결 본인과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은결의 가족 가운데서도 그에 대해 ‘이상함’을 느낀 이가 없었으니, 타인인 그녀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푸른 이빨이 제안했다.

“영화 시간 까지는 시간도 있고, 우선 간단히 요기라고 할까요.”

“예.”

세연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두 사람 모두 약간의 어색함이 묻어나는 모양으로 서로에게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화제가 끊어지지 않은 것은 두 사람 억지로라도 말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노리는바가 뻔한 이 만남에서, 푸른 이빨은 핵심의 주변부를 뱅글뱅글 도는 이 대화가 지루하다고 생각했지만, 명백히 이쪽이 좆병신 꼬맹이다운 것이기에 다른 방식을 취하지는 않았다.

곧 두 사람은 근처의 패스트푸드점으로 들어갔다. 사실 패스트푸드점에 여성을 안내하는 것이 꼬맹이다운 것이냐 하면 좀 미묘했지만, 과거에 갔었던 적도 있고, 중요한 것은 은결인 첫 하면서 세연을 앞으로도 곁에 두고 언제든 써먹을 수 있는 보험으로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두 사람은 창가의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푸른 이빨이 세트 두 개를 주문해 받아서는 자리로 돌아왔다. 이어 푸른 이빨은 여전히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이는 세연에게 물었다.

“그런데, 요즘도 제가 가르쳐 드렸던 호흡법은 반복하고 계시나요?”

세연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자기 전에 간단히 하곤 해요. 하고 나면 머리도 맑아지는 것 같고, 무척 좋아요.”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지속해 나가시면 여러모로 몸에 좋을 겁니다.”

푸른 이빨은 환히 웃으며 세연을 격려했다. 세연의 몸은 평범한 인간 치고는 믿기 힘들만큼 청결하지만 얼마 전부터 조금씩 탁기가 쌓이고 있었다. 꼬맹이와 거래해서 그것을 씻어낼 수 있는 호흡법을 세연이 배우도록 했고, 이후로 그 쌓였던 탁기도 다시 처리되고 있었다. 그러니 호흡법을 계속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 언제든 갈아탈 수 있는 보험으로서 가치가 있다. 물론 호흡법을 지속하면 세연 본인에게도 확실히 이득이 있다. 건강한 돼지가 병든 돼지보다 맛있기에 돼지를 건강하게 키우려는 축산업자의 논리 같은 것이긴 하지만. 문득 세연이 말했다.

“그러고 보면 여기는 의자도 그렇게 불편하지 않고, 식기도 일회용이 아니네요. 이런 곳에서는 손님의 회전율을 빠르게 하기 위해 일부러 자리를 불편하게 한다던가 하는 그런 방식을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조심스럽게 세연이 말했다. 푸른 이빨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혀를 찼다. 확실히 이 곳은 자리도 편하고 식기도 일회용 품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연은 정말 그런 데 관심이 있어 화제를 이쪽으로 돌린 게 아니다. 그녀는 틀림없이 은결에 맞추어 화제를 꺼낸 것이다. 푸른 이빨은 조금 미묘한 마음이 됐다. 그는 금세 그 마음을 떨치고, 은결처럼 답했다.

“파코 언더힐의 ‘쇼핑의 과학’이후로 그러한 종류의 상술이 널리 퍼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상술이 널리 퍼지면서 동시에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되었으니까요. 이제와서는 상식 비슷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너무 속 보이는 상술은 오히려 좋지 않다는 판단인지도 모르지요. 그렇지 않아도 패스트푸드는 정크 푸드라고 욕을 먹고 있기도 하니.”

“그렇군요.”

세연은 고개를 끄덕인다. 푸른 이빨은 은결다움을 강조하고자 약간의 씁쓰름함을 섞어 간단하게 말을 더했다.

“생각해보면 역설적인 일입니다. ‘쇼핑의 과학’은 사실 도시 인류학자 윌리엄 화이트의 연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책입니다. 윌리엄 화이트는 공공시설은 이용자의 편의에 맞춰줘야 한다는 것을 실증적인 공원 연구를 통해 주장한 학자였지요. 그러나 그 연구가 확장되어 이루어진 ‘쇼핑의 과학’은 자본의 편의를 위해 적혀진 글입니다. 같은 방법론이 도달한 지점은 서로 상반됩니다.”

세연은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짤막하게 말했다.

“음, 본래무일물이라고 하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거 아닐까요.”

순간적으로 충격이 푸른 이빨을 덮친다. 언어가 그를 집어삼킨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한 물건도 없거늘, 어디 먼지가 앉을 것인가. 사리자여, 본디 없고, 없고, 없고, 다시 없으메- 마침내 반야(지혜) 조차도 없구나. 나가르쥬나. 중론(中論)의 지혜여. 그러니 실체의 속성은 무한이거나 공(空)일지니. 양자는 다르지 않다. 그러니 이해를 넘어선 실체의 앞에서 ‘해석’은 모든 존재의 운명.

푸른 이빨은 혼곤을 느낀다. 속에서 거대한 것이 스물스물 기어 올라오며 지금의 현상에 대한 해석을 부정하고 믿을 수 없는 열락의 세계를 속삭이려 한다. 푸른 이빨은 이를 악문다. 잇몸이 움푹 함몰되며 즙을 짜내는 것처럼 입 안 가득 피 맛이 퍼진다. 그는 그것을 꿀꺽 삼키고 부드러운 미소를 만들어 입을 연다. 순식간에 무너진 잇몸과 뼈는 회복된다.

“예.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역시,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맥락이라는 타자의 얽히고설킴으로 통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렇지만 세연양이 아름다운 것은 그런 것과 상관없는 어떤 절대성이 기초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전혀 기대도 하지 못했던 말에 세연은 한 순간 경직된다. 이어서 그렇지 않아도 엶게 붉던 얼굴을 완전히 물들이고 고개를 숙인다. 당황과 기쁨이 뒤섞인 가운데 세연은 다른 말을 꺼내지 못했다. 푸른 이빨이 노렸던 바였다. 그는 이 틈을 타 정신을 침범하는 힘과 결사적으로 싸운다. 찢어지려던 개념과 사태가 다시 접합했고, 현상은 원래대로 돌아온다. 푸른 이빨은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각종 성원을 주삼!

*지석님, 선거 날은 투표하러 가야겠지요! 설령 쓰레기만 있는 것 같아도 분리수거를 해야 문화시민! ㅋㅋ

*지난화는 미성년자 분들에게 쓸데없는 호기심을 유발한 듯 하여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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