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201화 (201/300)

#   202-희망을 위한 찬가 - 타자는 주체의 의혹에 머무른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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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결은 쿠로사카와 함께 사념체의 뒤를 쫒는다. 물에 막 물어놓은 먹물처럼 부풀어 올랐다가는 수축하는 검은 덩어리는, 사념의 집결체다. 무수한 이들의 마음이 저런 괴물을 낳았다. 얼마나 많은 고통이 저 덩어리 안에는 모여 있는 것일까? 그 고통이 고통을 낳아, 고통을 낳은 주(主)를 향해 이빨을 들이 내밀게 한다. 그래서 은결은 사념체의 뒤를 쫒으며 상상한다.

지금의 이 기표가 아닌, 다른 기표를 상상한다. 고로,

지금의 이 기의가 아닌, 다른 기의를 상상한다. 고로,

지금의 이 기호가 아닌, 다른 기호를 상상한다. 고로,

지금의 이 해석이 아닌, 다른 해석을 상상한다. 고로,

지금의 이 자신이 아닌, 다른 자신을 상상한다. 고로,

지금의 이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을 상상한다. 고로,

지금의 이 결과가 아닌, 다른 결과를 상상한다. 고로,

지금의 이 상식이 아닌, 다른 상식을 상상한다. 고로,

지금의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상상한다.

상상한다.

은결은 상상하면서 하늘을 난다. 그의 발아래에는 무수한 광점이 모여 무더기를 이룬 혼탁한 욕망의 여울이 있다. 은결은 그 빛을 보며, 그 무수한 빛들의 하나하나가 각자의 틀로 각자의 세상을 만들고, 각자의 욕구와 각자의 욕망을 지닌, 배고파하고, 배불러하며, 고통스러워하고, 피곤해 하며, 슬퍼하거나 기뻐하며, 눈물 흘리거나 기쁘게 웃는, 동정하거나, 경멸하고, 질투하거나 존경하는, 아득하게 자존하는 실체라는 생각을 한다.

상상---은 석양의 먼 붉은빛처럼 아스라하다. 어둠에 드러난 수평선처럼, 이곳과 저곳을 구분할 수 없는 희끄무레한 덩어리처럼 보인다. 부풀어 오른 마음의 가운데, 선명한 상은 없고, 이슬처럼 다만 그 위를 흘러내릴 뿐이다. 실체는 아득해서 파악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이해할 수 없는 물자체인 것만 같았다. 은결은 상상력의 부족을 느낀다. 그래서 아버지의 글을, 폴 발레리를 기억하라는 그 글을 기억하고, 한숨을 쉰다.

“오늘은 멋졌어.”

교실에서 나오면서 이리세가 여우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논술 교실에서 여우는 눈에 띄는 활약을 했다. 어제에 이은 토론 수업을 했다. 역시 주제는 동성애였다. 어제 팽팽하게 맞선 채 이렇다할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우가 그 균형을 깼다. 그는 바로 이 수업 전에 공부했던 이기적 유전자를 생각해 보라면서, 동성애 역시 뛰어난 종의 번식 전략의 하나이고, 고로 그것을 종의 의무라는 차원에서 비판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결정적이었다. 동성애를 반대하던 측은 최대의 근거를 잃고 사실상 감정론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었고, 감정론은 주장의 방식으로는 최악이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측이 토론에서 승리한 것이다. 토론이 끝난 다음, 선생은 여우에게 이제까지 배운걸 잘 살려 토론의 맥을 훌륭하게 짚었다고 칭찬했다.

여우는 “으, 응.” 하고 쑥스럽게 그녀의 말을 받는다. 사실 그의 의견은 은결에게서 얻은 것이지만, 여우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걸 밝히는 건 창피했다. 그 의견을 자신의 의견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너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여우가 물었다. 이리세는 사실 어제부터 거의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다. 여우가 생각하기에 그녀가 참여했다면 처음부터 다들 셔터 마우스였을 것이다. 은결과 이런 걸로 이야기 하면 주변은 전부 셔터 마우스 하듯이.

“별로 흥미가 없었으니까.”

“흐응. 하기야.”

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이 토론에 흥미가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애들 싸움에 어른이 끼어든 꼴이 될 테니까. 그래서는 수업도 무의미해진다. 아무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얻을 수 없게 된다. 그저 듣고 고개나 끄덕였겠지. 여우 자신이 은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렇게 하듯이. 정보를 듣고, 논리를 이해하는 것 보다는, 도리어 거대함과 왜소함만이 뚜렷해진다.

“하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만은 않아. 토론에 이겼다고는 하지만, 그 덕에 나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 녀석들도 있을테니까.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어?”

“그건 그럴지도.”

“쩝,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니라고 하던데 말야.”

그렇게 말하며 여우는 수업 당시 자신을 향하던 반대 측 의견 개진자들의 눈빛을 회상해 본다. 과히 좋지는 않았다. 적의가 느껴지는 수준까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는 않으리라. 하기야. 자기도 자기주장이 그렇게 박살나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이리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후후, 아냐. 적어도 오늘 수업에서 다룬 주제는 ‘다른’으로 치부될 수 없는 거야. 그건 어느 한 쪽이 ‘틀려’야만 하는 거였지. 정의로움은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으니까.”

“정의로움이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다니? 다양한 것이 함께 하는 게 ‘정의(正義)’아냐?”

이리세의 의견은 너무 의아로운 것이어서, 여우는 얼른 반론했다. 이리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정의가 아냐. 진정한 정의는 어떠한 타자를 용납하지 않지. 그곳에는 타자가 없어. 정의는 오로지 하나일 뿐이야. 예외는 없어.”

“잘, 모르겠는걸.”

여우는 애매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 그녀의 말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은결이라면 무슨 말을 했을까? 이리세는 자상하게 설며을 시작했다.

“왜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사이를 불화로 몰아넣는지 생각해봐. 그것은 결국, 나는 붉은 색이 좋다거나, 나는 노란 색이 좋다는, 취향의 문제로 환원될 수 결코 없는, 결국은 단일한 정의로움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하기 때문이야.”

“......”

“너는 살인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야.”

여우는 세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한국의 범죄자에 대한 처우가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쁜 짓을 한 놈들에게 그런 정도의 형벌이라니, 죽어도 싼 놈들도 금세 풀려나고 만다. 이리세는 웃으며 말을 추가했다.

“그런데 누군가 살인 하는 사람이 벌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건 상대할 가치도 없어. 그냥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겠지.”

여우의 답은 단호했다. 확고하게, 흔들림이 없었다.

“그렇겠지? 너는 결코 그런 문제에 대한 네 생각과 다른 의견을 단순히 ‘다른’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건 ‘틀린’ 것이라고 판단하겠지. 다른 사람들도 그럴거야. 대부분의 이들도 착한 이가 보상받고, 악당이 벌을 받는 것을 정의롭다고 이야기 하고, 거기에 대해 다른 생각을 허락하지 않을 거야. 정의로움이란 그런거야.”

그제서야 여우는 어째서 이리세가 다양성을 부정하는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그런 종류의 생각에 대해, ‘다름’이란 용납되지 않을 것 같았다. 모든 ‘다른’것은 ‘틀린’것에 불과한, 그래서 제거되어 마땅한 ‘악’과 같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여우는 여전히 이리세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기에는 마음 한 구석이 껄끄러웠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믿음에 기반한 자신의 상식이 반발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하지만, 그런 의견에 대해서도 의견 같은 건 조금씩 갈리고 하잖아. 다른 갈리는 의견에 대해서 다른 의견이라고 화해하지 않아?”

여우는 조금 주저하는 태도로 말했다. 이리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화해가 아냐. 그건 기껏해야 무지의 산물이지. 잘 모르기 때문에, 저 쪽의 의견이 옳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그 ‘틀림’을, ‘다른’으로 바꾸어 받아들이도록 하는 거야. 진정한 정의로움 앞에, 화해는 존재할 수 없어. 네가 말한 다양성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야. 우리는 무지하기 때문에 다양한 것들을 인정해야 하는 거야. 진정한 정의로움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모든 다양함을 일소에 붙이고 처단해야해.”

그리고 이리세는 한발 앞으로 성큼 내딛었다가 여우를 돌아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녀의 미소는 한점의 그늘도 없이 자신만만했다.

“그래서 정치에 대한 의견교환은 그토록 격렬한 싸움으로 번지기 쉬운 거야. 그건 정의로움에 대한 각자의 믿음이 싸우는 것이거든. 정의로움을 밀고 나가는데, 다른 의견을, 그것도 전혀 다른, 아마도 악이라고 믿어지는 것을 정의라고 내세우는 자가 있다면 분노하지 않겠어? 그건 나의 ‘정의’가 부정당하는 것임과 동시에, 세상에 악을 퍼뜨리는 행위지. 그래서 정치의 문제를 토론하면서 사람들은 그토록 쉽게 싸울 수 있는 거야. 정의롭고 싶다. 그래서 정의를 실천하고 싶다. 저 악을 처단하고 싶다. 그래서 정치에 대한 의견다툼으로 인한 사람들의 불화는 무엇보다 보편적인 고결한 인간성의 증거지.”

어제, 이리세가 했던 말이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불쾌한 토론을 ‘보기 좋다’고 이야기 했고, ‘정의로움이란 그런 것’이라고 아무런 흐림 없이 말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여우는 그녀가 마치 거대한 강철의 벽 같다고 느낀다. 은결은 깎이고 풍화된 산맥의 모습 같은 이미지인데 반해, 그녀는 인류가 만들어낸 거대한 건축물을 천만배로 확대해 놓은 것 같은, 인공적이지만 터무니없이 거대한 것에 대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여우는 어렵사리 말을 붙인다. 그는 자신의 어떤 말도 그녀를 당해낼 수 없을 거란걸 알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녀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후후, 그러니까 우리는 언젠가 모든 다양성을 처단해야해. 무지를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진정한 지(知)를 얻어, 그 지를 통해 세상을 바꾸어야지. 그렇지 않겠어?”

이리세는 그런 여우의 태도를 유쾌한 듯이 받아들이면서, 아이를 지도하는 선생과 같은 태도로 다독이듯 말했다. 그것은 마치, 여우의 자신에 대한 반발마저도, 그녀가 말한‘ 고결한 인간성’의 증거로 이해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여우는 혼란스러웠다.

*벌써 200번째 글이군요. 내년 초 까지는 아마 완결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지는 생각하고 있지만, 하더라도 완결이후 손 좀 보고나서 진행할 수 있겠죠. 하지만 몇 분이나 신청할지도 모르겠고, 신청자 수가 적당히 맞춰지더라도 책 제작부터 돈 입금이니, 환불, 배송까지 생각하면 그저 아득해지는군요. 후; 완결된 글 손보는 것만 해도 보통 작업이 아닌데.

*슈로대 식으로 나눠보는 캐릭터 성격!

은결-강기

쿠로사카-강기

푸른 이빨-초강기

세연-보통

진경-강기

할아버지-보통

수행-보통(학생시절 초강기)

미래-강기

민성-강기

고릴라-강기

늑대-강기

여우-보통

이리세-초강기

음, 자기주장이 강한 놈들이 판을 치는 글이군요. 좀 더 장난을 쳐 보면, 은결은 격투 lv9, 강운, 어택커, 한계기력돌파, 천재, 페로몬(...) 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원을 합시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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