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희망을 위한 찬가 - 시선 아래 승리자는 없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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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인간만이 자유롭단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앙 물린 이 사이로 신음이 흐른다. 은결은 움직인다. 평소보다 빠르고, 평소보다 강력한 움직임. 하지만 그 빠르고 신속한 움직임은 이질적이고 불안하다. 간질환자의 발작 같은 격렬함. 그는 자신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감정의 홍수에 떠밀려 사념체를 공격한다.
-쿠앙!
충격이 세계로 퍼진다. 사념이 영혼으로 퍼진다.
-그 녀석이 발터 벤야민을 이야기 했다. 나도 아는 이름이다. 학원에서 선생님께 들었다. 유명한 철학자인 모양이다. 그는 예술작품과 기술복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베블런은 누구지? 은결은 베블런과 벤야민을 연결했다. 나는 베블런을 모르는데. 그는 알고 있다. 괜찮아. 나 역시 그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 테지.
벤야민, 그리고 베블런. 나는 벤야민을 믿지 않아. 기술복제가 예술의 민주화를 가져오리란 그의 예측을 믿지 않아. 예술품이 가지고 있던 아우라의 진정한 이름은 그러니까 ‘과시’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을까.
-베블런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는 유명한 경제학자인 모양이다. 유한계급론이라는 책을 썼다고 한다. 과시소비라는 개념도 만들었다. 그는 벤야민과 연결되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우라’가 ‘과시소비’와 연결될 수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은결은 이상한 소리는 많이 해도 헛소리는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 나는 순결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과시도 패배도 없이 순결한 소통을 원했다. 기호의 세미오시스는 어쩔 수 없을지라도, 그 세미오시스에 넘어설 수 없는 게임은 들어서지 않기를 원했다. 하지만 세미오시스가 어쩔 수 없는 그 순간, 그 게임 역시 어쩔 수 없었다. 행동하는 주체가 과시를 하고 싶거나, 과시를 하고 싶지 않거나는 무의하다. 과시의 결정권은 주체에게 있지 않다. 아우라를 구성하는 주체는 주체가 아니다.
-은결은...
-은결은...
-은결은...
여우의 생각들이 은결의 머릿속을 휘돈다. 그의 감정이 어떤 깊이와 폭을 가지고 그의 사고를 잠식해 행동으로 전환되어 은결 자신을 바라보게 했던 지를 선명하게 느낀다. 뉴런의 마지막 하나까지도 태워버릴 것 같은 고통. 지각되는 세계는 이미 원형을 잃었다. 그래도 은결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발을 차올린다. 사념체는 그의 정강이에 축구공처럼 얻어맞는다. 육중한 탱크조차 종이처럼 우그러뜨리며 날려 보낼 힘이 사념체를 공격하며 그것을 이지러뜨린다. 멈추었던 폭포가 다시 쏟아져 내리는 것 처럼, 은결의 사고 가운데 생각들이 쏟아져 내린다. ‘은결은, 은결은, 은결이, 은결과’ 은결은 다시 이를 악문다. 맞물린 이가 비칠거린다. 턱뼈가 비명같은 소리를 내지른다. 송곳 같은 한 결단이 은결을 찌른다.
-은결은 대단하다.
여우는 순결하게 인정했다. 그것을 은결은 견디지 못한다. 발이 엇갈린다. 그는 쓰러져 땅바닥을 구른다. 땅바닥에 긴 선을 남기며, 그는 건물 벽에 처박힌다. 돌가루가 머리 위로 우수수 흘러내린다. 도무지 어쩔 수 없는 무한의 세미오시스. 그 무한의 세미오시스에 당연히 참여하는 게임의 이름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내가 대단해? 나는 대단하지 않아.
“후우, 후우, 후우...”
은결은 쌕쌕거리며 숨을 쉰다. 그는 어렵게 몸을 바로잡는다. -어디에도 없는, 을 찾아라. 속삭임이 마침내 혼을 침범한다. 흐, 하고 은결은 자조적으로 웃는다. 그리고 발을 박찬다. 그는 다시 사념체를 친다. 폭파 같은 사념이 그를 기꺼이 맞이한다.
-은결은, 왜 이런 곳에 머물고 있는 거지? 이 녀석은 정말로 대단한데! 너는 이런 곳에 있어선 안 되는데. 그래서 이상한 생각이라는 건 알지만, 은결에게서 배신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는 마치 나와 어깨를 마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은 주제에. 그런 건 기만이 아닐까?
그렇지 않아. 나는 나조차도 건사하지 못하는 바보다. 나를 그렇게 바라보지 마.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마. 나는 아무 것도 아냐. 나는 너의 그러한 시선에 응답할 수 없어. 나는 그러한 시선을 피하기 위해 이런 곳에 있었던 거야. 나는 주인이 되고 싶지 않았어. 나는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았어. 그저, 나는 따스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어. 너는 내 이야기를 따스하게 들어주었다. 나는 따스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왜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거지?
-인정받고 싶다. 누구에게? 은결에게. 그가 나를 향해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을 원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를 ‘대단하다’고 인정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그 녀석이 이런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를 ‘대단하다’고 인정하고 있으니까. 그 녀석이 하찮다면 나는 한결 하찮아 지니까.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옥상에서 쿠로사카와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그녀는 여우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했다. 그렇구나. 이게 쿠로사카가 이야기 해 주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거절했는데. 그녀의 이야기가 그저 싫었는데. 하지만 변명하게 해 줘. 이럴려고 했던 건 아니야. 기뻤는걸. 그걸 거절하고 싶지 않았는걸. 그건, 나쁜 게 아니잖아. 나는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서 그런 따스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새로움과 달콤함에 머무르고 싶은 건 나쁜 게 아니잖아. 은결은 사념체를 공격한다. 쏟아져 들어오는 감정의 톤이 높아진다.
-은결은 왕따다. 그리고 성적도 나보다 좋지 않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은결을 대단하다고 느끼고 열등감을 느낄 이유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건 기만이겠지. 은결은 대단하잖아.
파고드는 사고의 파편마다, 무너지는 것 처럼 세계가 휘청인다. 은결은 견디고 싸운다.
-내 앞에서 알짱거리지 마. 마치 내가 너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 처럼, 그렇게 나타나지 마. 사실은 그렇지 않으면서. 만일 네가 그 곳에 계속 머문다면...
인정받을 수 없는 주인은 노예에게 권좌를 빼앗겨야 한다. 그것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품고 있는 숙명. 그래서 천국은 지옥이 되고, 지옥은 천국이 된다. 하지만, 나는, 나는 그 게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런 길을 택한 건데. 그것조차 아니라면! 그것조차 아니라면! 은결은 자신을 향한 자신의 결단을 되먹이며 사념체를 공격한다. 사념이 응답한다.
-은결은 대단하지 않아.
주인 되기를 위한 결단. ‘기호는해석이고해석은권력이고권력은폭력이고때문에소통은불모하다.’ 알고 있었는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쿠로사카와 이야기 했던 한 순간이 떠오른다.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하지만 상상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겠지?’ 그녀는 그렇게 물었다. 나는 ‘그야 물론이지.’라고 답했다. 그렇게 답한 나는 고통을 상상했던가? 상상하지 않았다. 미안 쿠로사카. 나는 상상하지 않았어. 미안, 여우. 나는, 나는 그저 너와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이고 싶었다. 은결은 찰칵, 하고 무언가 맞물리는 소리를 희미하게 듣는다.
“(못 봐주겠군.)”
은결이 전투를 벌이는 곳에서 멀지 않은 지점에 서서 쿠로사카는 곤혹스런 얼굴을 한다. 지금 은결의 전투는 그만큼 위태롭고 볼품없었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사념체는 아마도 은결의 정신을 공격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녀는 그 사념을 느낄 수 없었지만, 은결에게는 아주 직접적으로 파고드는 듯 하다. 그렇다고 하면, 그렇지 않아도 아담의 언어와 접촉한 이후로 사소한 것에서도 혼란을 겪던 은결에게 굉장한 공격이 될 수 있으리라.
“(그 놈들도 치사하군.)”
쿠로사카는 분한 듯 이를 간다. 저 사념체의 출처는 명확하다. 전에도 비슷한 것들이 있지 않았던가. 가령 그녀 자신이 맞아야 했던 사념체 역시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 품고 있는 약한 부분, 그리고 어둠을 거대하게 확장시켜 외면하고 있던 것을 마주하게 한다. 그 어둠이 피하고 싶었던 종류의 것일수록, 은밀했던 것일수록, 그 공격의 위력은 강대해진다. 실제로 쿠로사카는 그 일로 인해 자아를 잃어버릴 뻔 했다.
“(하- 후.)”
숨을 깊게 흘리고 그녀는 자세를 잡는다. 한 순간을 위한 정련된 발검의 자체는 숨쉬는 것 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녀는 사념체를 벨 생각이다. 저 바보는 사념체를 베지 말라고, 자신이 상대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모양이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아픔을 직시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은결은 지금 정상적인 상태도 아니지 않은가! 보통 때라면 그런 시도는 실패하겠지만, 지금 은결의 상태를 볼 때 그가 자신의 공세를 적절하게 방비해낼 가능성은 없었다. 더해서 그녀는 저 사념체를 상대하기 위해 키리야미의 봉인을 최대한까지 풀 생각이다. 저 불쾌한 사념체를 처리하는데 일격이면 충분하다.
그녀가 움직이기 바로 직전이었다. 갑작스런 목소리가 그녀를 제지한다.
“곤란한걸요.”
쿠로사카는 경악하며 고개를 돌린다. 소녀가 한 명 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지극히 아름다운 소녀였다.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옷을 입은, 소녀였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쿠로사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그 놈들과 한패군.)”
쿠로사카는 말한다. 소녀는 한결 예쁘게 웃는다. 같은 여자라도 반해버릴 것 같이 아름다운 미소다. 하지만 왜 아름다운가를 설명하자면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아름다움이다. 미소 자체는, 다른 무수한 미소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어떤 미소보다 아름답다. 마치, 미소가 담는 아름다움의 원형 같은 것이 그곳에 머물러 있는 듯 한 느낌이다. 그리고 소녀는 노래하듯 선언한다.
“그를 방해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다면.)”
쿠로사카는 그녀의 선언을 거악의 굳건함으로 일소에 붙이고 돌진한다. 타협하지 않는다. 꺾이지 않는다. 휘지 않는다. 해방된 키리야미가 절대적인 강(强)이 되어 적을 섬멸하기 위해 움직인다. 저 선량한 바보에게는 시간이 없다.
*데굴데굴 굴러라 은결.
*세연이 사념체를 아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녀는 기억이 조작되거나 소거당한 적이 없고 두 사람의 만남은 사념체 때문이었죠. 더해서 세연은 기억에 관여하기 힘든 체질이기도 합니다.
*각종성원은 언제해도 늦은게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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