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희망을 위한 찬가 - 시선 아래 승리자는 없다.(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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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손을 휘두른다. 힘이 형성되어 공간을 난다. 쿠로사카는 키리야미를 들어 그것을 가르며 옆으로 도약해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 사이로 조밀하게 힘이 들이닥치고, 쿠로사카는 정지하지 않는 신속함으로 그 모든 것을 피해낸다. 한 발 차이로 거대한 힘의 덩어리들은 모두 목표를 놓친다.
“흥!”
소녀는 코웃음을 치며 양 손을 뻗는다. 달리던 쿠로사카는 역장에 자신이 갇혔음을 느낀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달리던 기세 그대로 검을 휘두른다. 역장이 베이며 소멸한다. 그녀는 아무런 장애 없이 역장을 돌파한다. 이런 종류의 즉흥적인 역장은 그녀를 가두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역장을 시전한 본인도 알고 있던 것이다. 쿠로사카가 역장을 빠져 나가자 말자, 소녀는 박수를 친다. 짝- 하고, 박수 소리가 나자마자, 그녀의 발밑으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쿠앙!
쿠로사카는 피하지 못한다. 그것은 발밑에서 곧장 따라오듯이 일어난 폭발이다. 폭발에 휘말려 날아가면서, 그녀는 깨닫는다. 방금 전 역장의 목적은 이것이었다. 그 역장은 그녀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어디 한 곳이라도 그녀와 접촉시킴으로서 술법의 목표를 직접적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쿠로사카는 고통과 피로, 그리고 안타까움과 싸우면서 공중에서 자세를 잡는다. 넓어진 시야로 은결이 보이고, 사념체가 보이고, 소녀가 보인다.
-탁.
그녀는 안정된 자세로 대지에 내려선다. 이제 어깨가 거칠게 떨리고, 이마로는 피가 흘러내리고, 머리카락은 헤졌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키리야미를 잡는 악력은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소녀는 천천히 걸으면서 쿠로사카에게 이야기한다.
“당신은 그를 구할 수 없어요. 아니, 그를 구하려는 것이 실은 구하는 것이 아니겠죠. 그러니 이만 물러가는 것이 어떤가요? 다시 이야기 하지만, 특별히 당신과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쿠로사카는 힐끗, 은결을 본다. 그는, 비칠거리며, 엉망진창으로, 울면서, 싸운다. 그녀는 그런 은결의 모습을 잘 안다. 그렇기에, 저 이야기에는 응할 생각이 없다. 쿠로사카는 도약한다. 그녀의 도약은 시각으로 포착되지 않는 여전한 신속함을 보인다. 그러나 소녀의 시선 가운데, 그녀의 움직임은 뚜렷하고, 여전한 속도이지만, 처음과 같은 안정감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손을 휘두른다. 후웅! 광범위로 대지가 찢어진다. 그녀의 팔을 중심으로 형성된 거대한 역장의 막대가 엄청난 궤적을 그리며 쿠로사카를 노린다. 쿠로사카는 위기를 눈치 챈다.
“큿!”
그녀는 순식간에 몸을 돌려 키리야미를 들어 그것을 막는다. 하지만 거대한 충격이 그녀를 엄습한다. 키리야미를 잡은 오른 손과 칼 면을 받치고 있는 왼손의 관절부근이 부서질 것 같은 지끈거림은 깊게 호소했다. 그리고 그녀는 배트에 얻어맞은 야구공처럼 멀리까지 날아가 처박힌다. 지면과 박치기 하는 충격을 생생히 느끼면서 그녀는 지금 상대가 정말 터무니없이 강하다고 느낀다. 솔직히 이런 건 좀 반칙이 아닐까?
“그만 포기하는 것이 어떤가요? 정말 죽을지도 몰라요.”
어느새 다가온 소녀가 이야기 한다. 쿠로사카는 동의한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이길 수 없는 상대에 대해 이렇게 싸우려 하는 것이 의미 있을 짓일까, 하는 그런 생각도 결국에는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일어선다. 손아귀의 힘도 이제는 희미해지고, 시야도 흐리지만, 그녀는 일어섰다. 아아, 정말이지 모르겠군. 나는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하려는 거지? 그녀는 자문한다.
생각해 보면 이런 무모한 짓을 불과 얼마 전에도 했었다. 저 바보를 구하기 위해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러니까 괜찮아. 한 번 했던 걸 다시 하고 있을 뿐이야. 어차피 저 바보에게는 목숨을 두 번 빚졌다. 갚는 셈 치지 뭐.
사실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그건 그냥 뒤에 따라서 만들어 낸 것일 뿐이다. ‘구하고 싶다’가 먼저 존재했다. 다른 건 다 장식이야. 그녀는 그것을 안다. 그래서 상쾌한 계산을 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상황과 무관하게 미소가 그려져 있다.
“당신도, 놀랍군요.”
소녀는 진중한 얼굴로 약간 불안한 듯 이야기 한다. 그리고 손을 든다. 그리고 쿠로사카는 허망하게 뒤로 튕기며 처박힌다.
“쿨럭, 쿨럭.”
처박힌 다음, 그녀는 기침을 한다. 피가 섞인 기침이다. 옆에 키리야미가 있는 것이 보이지만 그녀는 그것을 쥐지 못한다. 그럴 정도의 힘도 이제는 없다. 포기할 생각은 여전히 없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한에는 달리 어떤 수단도 없다. 소녀는 쿠로사카를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린다. 그녀가 보는 곳에는 은결과 사념체가 싸우고 있다. 쿠로사카도 그 싸움을 본다. 여전히 엉망이고, 그저 불쌍할 뿐인, 그런 불모한 싸움이다. 하지만 그 싸움도 끝났다. 막 은결이 사념체에 주먹을 꽂아 넣었고, 사념체는 사라진다. 은결이 이겼다. 그러나 그걸 이겼다고 할 수 있을까, 저 사념체는 할 일을 마치고 그저 사라진 것 처럼 보이는데, 그리고 승리한 은결은 엎드려 쓰러진 채, 계속해서 울고 있는데- 쿠로사카는 저렇게 처참한 승리자를 상상할 수 없다.
“그럼.”
소녀는 그 말을 남기고 이제 은결에게로 걸어간다. 쿠로사카는 이를 악물고 그녀를 제지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 한다. 하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단순히 부상을 당한 게 아니라 어떤 힘으로 동작을 제지당하고 있는 것 같다.
푸른 이빨은 건물 옥상에서 곤혹스런 얼굴로 아래를 바라본다. 평범한, 공간이다. 하지만 단지 평범할 뿐이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렇지만 푸른 이빨은 바로 이 곳에서 자신의 힘을, 그래서 은결의 이상을 느끼고 있다. 다른 곳에서 사념체와 싸우는 듯 한 좆병신 꼬맹이와 재수 없는 키리야미의 후계자를 느끼지만, 그곳에는 없다. 그건 허상이었다. 그 재수없는 키리야미의 후계자는 어쨌든, 좆병신 꼬맹이는 이 곳에 있다.
“그 새끼들인가.”
푸른 이빨은 중얼거린다. 이 교묘함을 보자면 아마 틀림없는 것 같다. 하기야 병신이긴 하지만 꽤 세서 어디 떨어뜨려놔도 잘 처먹고 잘 살 그 새끼를 궁지에 모는 것이 보통 힘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걸 다 찌질거리는데 소진하지만. 어쨌거나 자신의 힘을 절반이나 녹여내지 않았는가. 그걸 생각하고 얼굴이 찌푸려진다. 힘의 절반을 뜯겼다고 생각되니 그냥 뒈지라고 해 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지. 어쨌거나 절반은 건져야 하고, 또, 그러니까 또-
‘이 계집애가 우는 꼴은 보고 싶지 않군.’
모를 일이다. 푸른 이빨은 한 숨을 쉬고, 손아귀에 힘을 집중한다. 거대한 에너지가 일점에 집중되며 용틀임한다. 진의 내부에서 진을 파괴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법이지만, 진의 외부에서 그것을 일부 파괴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특히 은밀 결계 종류일 경우, 그 위치를 들킨다면 모든 면에서 다른 결계들에 비해 열등하기 마련이다.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 물론 그것도 평범한 술자에게는 무리한 일이지만 푸른 이빨은 평범한 술자 따위가 아니다. 그는 최강이다.
푸른 이빨은 허공에 손을 꽂아 넣는다.
은결은 혼돈에 빠져 있다. 하지만 그 모든 혼돈은 명확하다. 아무 것도 잡을 수 없지만, 사실 잡을 필요가 없는 것이기도 했다. 은결은 그 혼돈의 내용을 빠짐없이 안다. 그래서 그는 그 혼돈과 상대하며 명료한 아득함을 느낀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갈 곳이 어딘지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갈 곳이 없을 뿐이었다. 어디로?
‘그러니까 인간만이 자유롭단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자유’는 어디에서 만들어 질까. 자유를 행사하는 주체는, 어디서 만들어 질까. 아버지. 파블로프가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없다면, 우리에게 남은 길은 없는 것이 아닐까요. 파블로프가 우리의 희망이 아니라면, 헉헉 달려 우리가 도착하는 곳은, 기껏해야 달려왔던 바로 그 곳이 아닐까요. 달리고 달려 도착하는 곳이 출발했던 그 곳이기 위해서-
“하아... 하아...”
구토감은 치밀어 오르지만 이제는 아무 것도 토해낼 것이 없기에, 그 구토감은 그저 고통이고, 귓가에 맴도는 무수한 사념들은 여전한 공명으로 마음을 후벼 판다. ‘네가 나를 창조했다.’ 나는 몰랐어. 정말로 몰랐어.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었지. 마음은 하얗게 식었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식지 않았던 모양이다. 식지 않은 그 마음이, 당연히 연결되어야 할 현상들을 연결해 도달해야할 결론을 마주하는 것을 피하게 했다. 나는 몰랐다.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었다.
“우...”
세탁당하는 듯한 세계. 오른쪽으로 돌던 세계가 이제는 왼쪽으로 도는 것 같은 어지러움. 그렇게 언어가 거울이 아니라면, 언어가 해석을 피할 수 없다면, 그런 위험을 담을 수밖에 없다면- 그러나, 나는, 나는- ‘폴 발레리를 생각하렴’ 그래서 아버지, 저는 폴 발레리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의 말은 기껏해야 즉자적인 것들에게나 가능하지 않습니까.
피핑 톰의 질곡. 바라보는 나는 주인이지만, 바라보는 것을 들키는 순간 노예가 된다. 즉자는 대자가 되고, 대자는 즉자가 된다. 시선의 전도. 욕망은 어쩔 수 없는 타자의 욕망이고, 욕망이 타자의 욕망일 때, 타자는 지옥이 된다. 저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이, 저렇게 닿을 수 없는 이들이, 나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래서 시선 아래, 승리자는 없다. 은결은 다시 뜨거운 눈물이 눈두덩을 타는 것을 느낀다.
“안녕.”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상한 목소리다. 은결은 고개를 든다. 아름다운 옷을 입은 소녀를 본다. 그녀의 얼굴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틀림없이 아름다운 것 같다. 그녀는 누구일까, 그녀는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일까? 그녀는 또 다른 지옥을 위해 이 곳에 있는 것일까. 은결은 엉망인 얼굴로 얼빠진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소녀는 은결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한다.
*다라다라님의 감상문 보았습니다. 좋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글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해도 별로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막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학생에게 어려운 것은 당연한 내용이기도 하고, 서두르지 않아도 아마 머지않아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이 글은 충분히 엄밀하게는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지만(그러면 소설이 아니게 됨) 정직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논리들을 되도록 일상과 연결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아아.’ 하고 납득하게 되실 겁니다.
*그리고 철학에 관심이 생겨 학업을 등한시 하지 않을까 걱정하시던데, 그것도 괜찮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철학 저술은 교과서를 등한시 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히진 않습니다. 가령 저는 선생님의 권유로 화이트헤드 스터디에 꽤 오래 참여한 적이 있는데, 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박사학위를 가진 분들이셨지만 그분들도 헤메면서(고통스러워 하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도저히 고등학교 교과서를 내팽겨 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학은 아닙니다.(...) 그리고 만일 이것들이 재밌게 읽히면 교과서 정복은 간단하겠죠.
*화이트헤드는 러셀과 수학의 원리를 저술하던 그 화이트헤드입니다. 그의 과정철학은 20세기 최후의 대형이상학으로 분류되는데, 나름 재밌긴 했습니다. 반(anti)-실체철학의 일종으로, 과정과 합생, 창발성 등으로 현상을 설명해 내는 그의 철학은 매력적이죠. 불교철학 하시는 분들이 좋아합니다. 개같이 어렵지만.(...) 비트겐슈타인과도 사제관계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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