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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47화 (247/300)

#   248-희망을 위한 찬가 - 시선 아래 승리자는 없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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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세와 거리를 두고 푸른 이빨은 혀로 입안을 핥으며 우물거린다. 짙은 피내음이 역한 향수처럼 코를 막는다. 그는 퉤- 하고 입안의 내용물은 모두 버린다. 붉은 피와 타액에 진득하게 젖은 이가 몇 개나 그 속에 뒤섞여 날아갔다.

“씨발...”

몸을 움직여 날아오는 역장을 피하면서 푸른 이빨은 얼굴을 찌푸린다. 방금 얻어맞은 아래턱은 아직도 얼얼하다. 지극히 신속한 재생으로 모든 종류의 상처는 금세 회복되고 있지만, 이리세의 공격력은 푸른 이빨의 방어력과 재생능력을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계집이 강하리란건 예감했지만 이건 예상을 넘어서는 힘이다. 이질적인 존재감과 함께, 이질적으로 강한 힘이다. 이리세는 열세에 몰린 푸른 이빨의 처지를 파악하고 웃는다.

“처음의 자신감은 어디로 갔지?”

“크, 싸질러 논 피똥 같은 게 한 두 방울 튕겼다고 지랄은.”

푸른 이빨은 그녀를 도발한다. 이리세의 표정이 차갑게 굳는다. 푸른이빨은 민감한 기감으로 그녀의 힘이 일대를 지배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는 위기감을 느낀다. 어처구니없지만 지금 힘으로는 저 년을 상대하기 힘들다. 이 계집은 정말로 강하다. 최초에 한국이라는 땅에 와서 싸웠던 놈들 전부 보다 이 한명이 더 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한 명? 아니야. ‘명’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푸른 이빨의 뇌리로 스친다.

“---”

“아냐? 크크, 병신새끼 하나 꼬실 자신이 없어 이 씹지랄을 떨어야 하는 년에게 다른 말이 더 필요한가?”

그렇지만 푸른 이빨은 폭언을 멈추지 않는다. 정면에 위험이 닥쳤을 때마다 꺾을 수 있는 것이 자존심이라면, 그건 자존심이 아니다. 뭐, 요행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만, 좀 멍청한 년이라면 덕분에 허점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거고.

“-로고스(언어)란 당신 같은 자를 위해 있는 게 아냐.”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냉정함으로 이리세는 손뼉을 친다. 광범위한 공간이 일어서며 한 곳을 향해 집중된다. 그 중심점에는 푸른 이빨이 있다.

“칫!”

사방에서 달려드는 에너지의 용틀임을 보며 푸른 이빨은 혀를 찬다. 그는 힘을 집중한다. 에너지가 그를 집어삼킨다. 그는 전신으로 힘을 활성화 시키며 들이닥치는 힘을 맞이한다. 힘과 힘이 충돌한다.

은결은 입술의 감촉에 놀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환상이었을까? 환상에 가까운 것 같다. 어떤 종류의 리얼리티도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스스로가 그런 리얼리티를 거절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쿠로사카가 지금 자신의 앞에 서서 굳건하고 자상하게 웃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건 거절할 수 없는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리세가 그러했던 것 처럼 손을 내밀며 은결에게 말했다.

“(자, 가자.)”

은결은 떨리는 손을 내뻗는다. 손을 뻗으며 자신을 향해 자신이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받아들인 것일까?’라고 물어왔다. 냉정하고 차갑게, 모든 논리와 정보의 구축 위에서, 그래도 그녀의 손을 긍정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어디에도 없는 곳에 대한 갈망은 혼을 지배하고, 갈 곳이 없다는 아득함은 육신을 옥죄는데? 채워질 수 없는 혼의 거대한 공동이 심연의 아가리를 벌린 채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잡아먹기 위해 숨 쉬고 있는데?

몰라. 그런 건 모르겠다. 어쨌거나 눈앞의 쿠로사카는 도무지 부정할 수 없게 아름다웠고, 쓸쓸한 해변에서 자신은 아무리 불모하더라도 책을 읽겠다고 이야기 했다. 궁극적인 리얼리티는 이곳에 있다고 설득하는 것처럼. 지금 그녀의 손을 잡는 것은, 그런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은결은 그렇게 생각했고, 마지막 망설임을 떨치고 쿠로사카의 손을 잡는다.

“(응, 유, 유리에-)”

억지로 꺼끌한 말을 만들어내며 부드러운 그녀의 손은 뜨거웠다. 그 따스함이 분리된 자신과 자신을 부드럽게 이어줬고, 귓가에서 울리는 여전한 찰칵, 소리를 사포로 다듬는다. 쿠로사카는 자신을 향한 그의 호칭에 한결 자상한 미소를 보여준다. 그 침착한 미소에 은결은 창피했다. 그녀는 그 손을 당긴다. 은결의 몸이 앞으로 당겨진다. 그는 자연스럽게 역장을 형성에 몸을 공중에 띄웠고, 두 사람은 동시에 출발한다.

“쓰읍-”

고통을 견디는 쓴 숨을 쉬며 푸른 이빨은 팔을 펼친다. 옷은 넝마가 되었고 피부는 전신에 상처를 입었다. 어찌나 타격이 컸던지 푸른 이빨의 강력한 힘에도 복구가 무척이나 늦다. 그 와중에서 푸른 이빨은 전투에 불리할 것 보다 이 계집애의 몸에 흠집이 나면 안 될 텐데, 라고 걱정한다. 푸른 이빨은 손을 든다. 그의 힘이 엮이며 형성된 거대한 힘의 집적이 날아오는 에너지의 집적과 마주하며 충격을 상쇄한다. 쿠앙! 주변이 새하얗게 밝아진다.

“크-”

빛이 저물고, 푸른 이빨은 신음을 흘리며 손을 당긴다. 손등이 시퍼렇게 부어올랐다. 조금만 공격이 더 강했다면 손뼈는 모두 박살이 났을 것이다. 이리세는 한층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푸른 이빨은 내려다본다. 푸른 이빨은 사납게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나 이리세는 그 표정에 위축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완전한 우위를 확신한다.

“흥.”

이리세는 손을 뻗는다. 뻗는 손을 따라 현상이 구성된다. 원리의 기초까지 파고 들어가 마침내 현실 그 자체를 지배하는 힘이다. 무수한 가닥 같은 힘의 물질적 덩어리들이 푸른 이빨을 향해 난다. 에너지의 수준, 에너지를 다루는 기술의 수준. 양 핵심에서 이리세가 지금의 푸른 이빨의 위에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치잇!”

푸른 이빨은 에너지를 손에 모아 오른 손으로 뿌리듯이 펼친다. 손톱을 따라 거의 물질적인 수준까지 변환된 플라즈마가 난다. 광범한 공간으로 그물 같은 전격의 막이 형성되어 이리세의 공세를 막아간다. 꾸르릉! 어떤 에너지는 소멸되고, 어떤 에너지는 돌파한다. 이리세는 주먹을 쥔다. 분열되어 푸른 이빨의 방어를 돌파했던 역장의 조각들이 한 조리에 모이며 창 같은 형상을 이룬다. 물론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푸른 이빨은 보지 않아도 그 형상과 힘을 직감한다.

‘위험하다!’

본능의 외침이 경고한다. 양팔에 까까득 에너지를 모아 펼친다. 우르르르릉! 너무나 밝은 빛과, 너무나 시끄러운 소리가 본다는 것과 듣는다는 것을 동시에 무의미하게 만든다. 좁은 공간에 집중된 에너지의 막이 날아오는 힘을 향해 굳건함을 내세운다. “멋지군.” 이리세는 차갑게 바라보며 웃는다. “하지만 부족해.” 예리하게 날 세워진 에너지의 집점이 굳건한 에너지의 방벽을 돌파하고, 빛이 세계를 잠식한다. 그리고 한 그림자가 그 사이로 끼어든다. 푸른 이빨과 이리세의 얼굴이 굳는다.

“은결?!”

그녀는 외친다. 그리고 몸을 돌린다. 쿠로사카다. 왼손의 에너지가 날아오는 검격을 조소하듯 막아낸다. 두 소녀의 눈이 마주친다. “당신이-” 이리세는 무언가 말하지만, 이어지는 흉험한 공수의 교환에 쿠로사카는 그것을 모두 듣지 못한다. 그저 키리야미를 바쁘게 움직이는 것에만 그녀의 집중력은 소모된다. 그리고 반대쪽에서는 폭음과 빛이 사그라들며 푸른 이빨의 앞을 지키고 있는 은결의 모습이 드러난다.

“흐으-”

가쁜 숨이 목구멍에 걸려 메마른 진액과 함께 토해지는 것 같은 숨소리를 내고, 은결은 쿠로사카와 이리세의 전투를 바라본다. 이어서 그는 발을 박차고 이리세를 향해 날아간다. 그의 오른손에는 이미 에너지의 집적된 덩어리가 짙게 팔목까지 둘러싸고 있다. 아무 것도 파괴할 수 없고, 아무 것도 막을 수 없다는 듯 성결한 빛을 가진다. 푸른 이빨은 먼저 출발하는 은결을 본다. 그의 등은 마치 ‘따라와라!’ 하고 외치는 것 같다.

“시건방진 새끼가!”

푸른 이빨은 이를 갈며 화낸다. 그의 전신으로 다시 전격이 용틀임한다. 그는 이어서 은결을 따라잡기 위해 몸을 띄우고 난다. 우르릉! 세계가 진감한다. 이리세는 쿠로사카를 향하던 손길을 거두고 둘을 막는다. 쿠웅! 이리세는 손이 뒤로 튕겨나간다. 푸른 이빨과 은결은 몸 전체가 뒤로 밀린다. 이리세의 우세는 명백하다.

“하앗!”

그러나 3대 1이다. 여섯 손을 두 손이 상대하기는 비록 강하더라도 어려운 법이다. 둘을 상대하느라 쿠로사카를 막는 이리세의 역장의 에너지 배분이 흐트러졌고, 키리야미는 그것을 뚫고 이리세를 노린다. 하나 이리세는 그녀의 공격은 안중에 없다. 그녀는 검격을 위태롭게 피해낸다. 키리야미가 핥은 그녀의 피부로 핏줄기가 높게 일었다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녀는 상처에 안중도 없이 슬픈 표정으로 은결을 바라보며 묻는다.

“왜지? 꿈꾸지 않는 거야?”

그녀의 눈빛을 받으며 은결은 이를 문다. 맑고, 깨끗하고, 당당한 눈동자. 그녀는 내게 그토록 큰 것은 주겠다고 했는데. 심연이 흔들리며 다시 그 위에 겨우 서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만 같다. 네가 이야기한 세계를 꿈꾸지 않을 리가! 그래! 꿈꾸지 않을 리가! 그러나- 은결은 이를 문다. 이리세는 다시 그를 안타깝게 부른다.

“은결. 너는 영지의-”

퍼억! 그때, 섬뜩한 소리가 난다. 소리의 다음 시계가 명료해지고, 주변은 경악한다. 푸른 이빨의 날카로운 손이 이리세의 아랫배를 꿰뚫고 있다. “쌍년아. 싸울 땐 닥치는 게 좋아.” 푸른 이빨은 저열하게 웃는다. 배를 꿰뚫은 손의 감촉을 음미하며, 그는 이 짜증스러웠던 계집을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한다. 찢어죽일까? 자근자근 씹어 먹는 것도 좋겠다. 은결과 쿠로사카가 경악에 사고를 채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와중에도 그는 황홀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표정은 굳는다. 그는 자신의 팔을 잡는 이리세의 갸녀린 두 손을 본다. 소름이 등골을 스치고 그는 손을 빼낸다. 으드득! 억지로 팔을 빼내다가 손뼈와 팔뼈가 완전히 박살났다. 조금만 늦었다면 팔을 통째로 뜯겼을 것이다. 이리세는 사나운 눈길로 뒤로 물러서는 푸른 이빨을 노려봤고, 푸른 이빨은 아직 손에 묻은 이리세의 피를 핥으며 말한다.

“어딘가 이상한 계집이라 느끼긴 했지만, 역시 그랬군. 하기야 되먹잖은 관념으로 뒤덥은 얼굴을 볼 때보터 눈치챘어야 하나? 너는 인간이 아니지?”

이리세는 답 없이 웃는다. 은결은 무언가 불길한 느낌을 받으며 푸른 이빨에게 묻는다.

“인간이, 아니라니?”

“크- 좆병신아. 아직도 모르겠냐? 이건 네 전공분야일텐데. 저 계집은 인간이 아냐.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원초의 존재. 호문클루스다.”

푸른 이빨은 쓰게 웃으며 말한다. 은결도, 쿠로사카도 그 말에 충격을 받는다. 호문클루스라니! 아담의 언어와 함께 연금의 비의가 궁극적으로 탐구하던 신의 권역, 호문클루스라니! 그녀의 얼토당토않은 강함은 이것으로 얼마든지 설명이 된다. 은결은 얼빠진 얼굴로 이리세를 바라본다. 아담의 언어에, 호문클루스. 그 둘을 겹쳐 추구하는 집단을 드물다.

“그렇다면 너는- 그노시스트...”

은결의 말에 이리세는 오연하게 웃는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둘러싸던 모든 초조함을 지우고, 완성된 존재로서의 기품을 드러낸다. 그녀는 아주 곱게 몸을 놀리며 은결에게 살짝 머리를 숙인다.

“다시 인사할게. 내 진짜 이름은 리리스. 영원한 영지의 권속이자 진정한 신의 종. 다음 세대의 대모(Great Mother)로 예정된 여자지.”

셋은 동시에 마른 침을 삼킨다.

*엑사일런님이 잘 아시는군요. 지난 화 싱싱하게 펄떡이는 여러분을 보고 행복...(쿨럭)

*연말입니다. 순서와 무관하게 인상 깊었던 책들. 열권 만.

1. 근대문학의 종말(고진) - 근대문학은 무엇인가? 영구혁명이다. 영구혁명이길 포기한 문학은 이제 근대문학이 아니다. 그런 것이 문학이라면 나에게 필요 없다!

2. 세계공화국으로(고진) - 근대문학이 뭔가효? 먹는 건가효? 우걱우걱. 그는 돌아보지 않는다. 교환양식으로 세계사 전체를 체크하고 어소시에시션의 부활로 근대국가 극복을 꾀한다. 불가능하다고? 상관없다. 그런 걸 ‘괄호’에 넣고 추친 하는 것이 ‘비평정신’이다.

3.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고진) - 근대 일본은 어떻게 탄생하였는가? 일본 근대 문학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근대문학은 어떻게 근대 일본을 만들었나? 가장 중요한 지점은, 일본 근대 문학은 마침내 일본에 근대적 주체인 ‘개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4. 굶주리는 세계. - 세계의 저 많은 굶주림이 저들이 게으르거나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 같지 않은 소리. 저들이 저렇게 굶주려야 하는 것은 그저 추악한 욕망 때문이다. 아마 나와 당신들도 무죄는 아니다.

5.국경없는 의사회 - 우리는 세계의 참혹에 대해 분투하는 이들. 그 과정에서 이들은 돕는 것은 돕는 것이 아니라 사실 도움 받는 것임을 깨닫는다.

6.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레오 스트라우스) - 정치는 의견을 지식으로 바꾸는 행위다. 의견을 지식으로 바꾸는 행위라고? 그것은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게 플라톤에 다 있는 거니 닥치고 읽어라. 읽기 전에 삼배할 것. 그는 너 같은 찌질이가 감히 비판적 독서 운운할 정도로 수준 낮은 존재가 아니다.

7.국가의 역할(장하준) - 뭐 신자유주의에 작은 국가 짱이라고? 하나하나 따져볼까?

8.교양, 모든 것의 시작 - 리버럴 아츠의 목적은 진정한 자유인을 만드는 것이다. 근대의 실패는 그래서 자유인을 만드는데 실패한 교양의 실패다. 여기서 다시 시작하자.

9.생각의 탄생 - 생각은 어떻게 확장되고 조립되는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은 마침내 이루어지는가. 창조적 개인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꼭 읽어둘만한 저술.

10. 거대한 변환(칼 폴리니) - 예전에 세상은 이렇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그러니까 이 자본주의라는 세계체제는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무엇이 이 거대한 변환을 만들었나? 바로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상품이 되면서이다.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되는 상품- 땅과 노동이다.

이 외에도 많음. 다음 화에는 소설을 조금 소개.

*세상에는 참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것들은,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들은, 제게 독자가 되는 것조차 허락해 주지 않습니다. 내년에는 좀 더 좋은 독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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