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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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는 은결과 할아버지가 차와 과자를 들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미래는 드물게도 자기 방으로 들어가 내일 시험에 대비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이때 차이를 벌여놔야지!” 라고 씩씩하게 호언했다.) 은결의 눈이 슬쩍 아버지 방 쪽으로 향한다. 굳게 닫힌 목조의 문은 그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내보내지 않겠다는 듯이 단단한 인상을 풍긴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방은 쿠로사카가 들어가자마자 결계로 보호되었고, 내부의 일을 외부에서 아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은결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사실, 아버지가 그녀와 단 둘이서 대면하고자 하는 것도 이상한 노릇이었다. 그것이 그노시스트에 대한 이야기라면 할아버지도, 그리고 자신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역시 신경 쓰이느냐?”
은결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돌린다. 할아버지가 웃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은결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야. 왜 저는 놓아두고 유리에만 보자고 하신 것인지도 그렇고요.”
‘유리에’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마음속으로 ‘마음에 드는군.’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소녀의 이름이 담는 울림이 즐겁다. 물이 출렁이는 유리잔을 때린 듯한 음소의 여운을 즐기며 그는 다음 말을 잇는다.
“음, 아마 사적인 이야기도 조금 할 모양이더구나.”
“사적인 이야기라면?”
“글쎄다. 자세한 것까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저 아이는 네가 이 일을 하게 된 이후로, 처음으로 알게 된 같은 세계의 또래지 않느냐. 그러니 몇 가지 부탁이라도 하고 싶은 거겠지.”
어딘가 의미심장하게, 그리고 쓰게 웃으며 할아버지는 말했다.
“음.”
몇 가지 부탁이라. 하지만 그 말을 들어도 은결에게는 퍼뜩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방안에서 두 사람이 나누고 있을 이야기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늙은 시간의 애수를 담아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은결아, 네 어미는 이 세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 아이는 죽을 때 까지 나와 제 남편이 진정으로 하는 일을 몰랐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은결은 어머니를 모른다. 은결의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은결이 그녀를 기억할 기회를 주지 않고 숨을 거두었다. 은결이 알기에 그녀는 몸이 약했고, 그래서 태어난 이후로 자신은 어머니의 품에 안길 기회를 거의 가지지 못했다고 한다. 때문에 기억하고 있는 것은 언제나 아버지의 모습이고 체취였으며, 어머니는 다음해 미래를 낳고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품과 숨결, 목소리, 모습, 이런 것들을 은결은 거의 알지 못한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던 것 같다. 네 아버지는 네 어머니를 사랑했고, 네 어머니 또한 아버지를 사랑했으니까. 그래서 두 사람은 행복했다. 아마, 그것이면 충분하겠지. 필요한 다른 것들은 거기서 딸려 나오면 그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언제나 쓸쓸하게 여겼단다. 사랑에도 불구하고 네 어미는 네 아비의 상처를 감싸 안을 수 없었고, 네 아비는 네 어미에게 상처를 말할 수 없었지. 사랑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은결은 소아마비의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랑, 을 상상한다. 쩔뚝, 그리고 쩔뚝. 길고 짧은 양 다리는 어느 쪽이 어느 쪽의 방해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럼도 타고난 차이가 협력을 방해해 발랄한 생명력으로 몸을 뛰게 만들지 못한다. 힘이 힘을 받아주지 못해 힘은 헛돌고, 헛돈 힘은 자신에게 돌아와 힘낸 자를 쓰러뜨린다. 그러니까 쩔뚝, 그리고 쩔뚝.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어긋난 걸음. 충만한 사랑이 투명한 소통을 갈구하지만 사랑은 아무 것도 갈구하지 못하고 타자를 욕망하는 욕망의 다른 모습일 뿐이니까. 그러니까, 사랑은, 대답이, 아니다. 고 은결은 달아오른 자신의 결론을 향해 확신을 내려친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에 대한 대답을 자신의 마음에 보여주듯.
그는 묻는다.
“그것은, 비극이었습니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저 쓸쓸함이었지. 네 아버지는 녹록한 사람이 아니다. 네 어미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네 아비의 처리는 완벽했다. 그러니까, 쓸쓸함조차 사실은 네 어미와 아비의 것이 아니라 그저 나 혼자만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게 필요하다는 것이 나는 언제나 아쉬웠지. 그러니까 나는 쿠로사카와 같은 아이와 네가 알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긴단다.”
“...저도, 그녀와 알게 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말을 받으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은결은 겨우 그렇게 답한다.
그는 'この世界'라고 말했다. ‘이 세계’. 같은 곳에 있음. 쿠로사카는 침을 꼴깍 삼킨다. 집중되어 민감하게 달라붙은 신경에 피부를 스치는 옷의 감촉마저도 짜증스럽게 여겨졌다. 후- 하고 들이키고 내쉬는 숨결의 흐름이 어디서 비롯되어 어떻게 종결되는 것인지 손에 잡힐 것처럼 명확하다. 틈 없이 들어찬 시간감각. 시간이 끈적끈적하다면, 이런 시간을 말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느낀다.
쿠로사카는 입을 연다.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나는-)”
하기 어려운 말을 하는 것처럼 수행은 말을 끊는다. 그는 “음-” 하는 긴 침음을 내다가 겨우 마음의 결론을 내리고서 끊어졌던 말의 꼬리를 이어 붙인다.
“(-은결이를 가능한 일찍 이 일에서 은퇴시키고 싶다고, 희망하고 있네.)”
완성된 말에 쿠로사카는 ‘어?’ 하고 경악한다. 겨우 쌓아올려 수행의 말에 대비하던 말의 탑들이 확장된 ‘어?’에 우르릉 쾅! 하고 무너진다. ‘어?’하는 큰 의문과 경악을 견디고 남은 말의 조각들은 말할 수 없는 종류의 말들일 뿐이었다. 수행은 쿠로사카의 표정에서 그녀의 감정을 읽으며 말을 이어간다.
“(은결이는 이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잃어야 했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어째서 그를 이 세계에 끌어들이셨습니까?)”
말하면서 쿠로사카는 자신의 말에 ‘증오’ 비슷한 것이 섞여 있음에 놀란다. 하지만 그녀는 은결이 이 일을 하면서 어떤 것을 잃어야 했던지 알고 있다. 그는 고민하지 않아도 좋을 걸 고민하면서, 외면해도 좋을 것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마주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들로 스스로 상처 입는다. 그렇게 될 것을 뻔히 알면서 이 일을 하도록 했다면, 그것은 역시, 긍정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다. 수행은 쿠로사카의 말에 섞여든 감정을 읽어내면서 쇠 맛이 연상되는 쓴 웃음으로 입을 연다.
“(쉽게, 답하긴 어렵군. 가장 우선적으로는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을 꽤 좋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지. 이 일은 확실히 ‘할만’한 것들이었지. 나는 내 일을 좋아했네. 은결이도 그러리라 믿었네. 그렇지만, 오산이었지. 이 일은, 신을 믿지 않는 이가 할 만한 일이 아니야.)”
의아한 표정을 쿠로사카는 수행에게 보여준다. 당연한 일이다. 수행은 사상최초로 신앙 없이 이 일을 하게 된 사람이다. 그의 압도적인 성취는 어느 정도 그가 짊어져야할 아무런 전통도 없었다는 것에 기대고 있다. 그는 원하는 대로 공부하고, 원하는 대로 조립했다. 그 앞에서는 어떤 것도 ‘성’스럽지 못했다. 수행은 그녀의 의아함에 대해 설명한다.
“(나는 신에 대해서 불가지론자였지만, 사실은 신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지. 그 신 비슷한 것의 이름은 ‘역사’였네. 거기다 ‘진보’라거나 ‘변증법’이라는 개념을 집어넣어도 아마 큰 상관은 없을 거네. 오해는 하지 말게. 그것들이 비논리적이라거나 신비적인 개념이라는 뜻은 결단코 아니니까. 단지, 나는 그것들의 가치를 신실한 종교인이 신을 믿듯이 확고하게 믿었던 것이지. 학생시절 나는 저런 단어에 대한 가장 치열한 비판자의 한 명이었지만, 그건 성 프란체스코가 당대 기독교 권력을 비판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지. 하지만 은결은...)”
줄어드는 말이 영화의 페이드아웃처럼 사고를 전환시킨다. 쿠로사카는 언젠가 은결과 함께 영화를 보고난 뒤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그 영화는 슈퍼맨이었다. 왜 그렇게 강대한 힘을 가진 슈퍼맨은 진정으로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은결은 그렇게 물었다. 이어서 답했다. ‘모르’기 때문이라고. 가장 성결한 선의로 추진한 일이 가장 끔찍한 지옥으로 바뀔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이제 도무지 행위에 대한 확신을 얻는 일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쿠로사카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딘가 자신을 향하는 말 같기도 했고, 자신이 가지 못한 곳으로 가,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다. 그것은 지금 생각하면 ‘질투’에 닮은 감정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그를 짖밟아 나를 올리고 싶었던 것일까. 쿠로사카는 은결에게 시니컬하게 이야기했다. 슈퍼맨은 핑계야. 행동하지 않는 것은 너일 뿐이야. 그러니까, 역사의 끝에 있는 것은 슈퍼맨이 아니라 너일 뿐이야. 라고. 그리고 멀어지는 버스 안에서 쿠로사카는 아득하고 슬픈 은결의 표정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봤다.
“(여기에서 그쳤다면 고민은 했으되 은퇴까지는 생각하지 않았겠지. 비록 그 때문에 잃은 것이 많다고 해도, 은결이는 타고난 성품으로 인하여 사람을 구하고, 사람을 돕는 것을 무척 소중하게 여기니까. 그렇지만 사정이 변했지. 은결이는 짧은 순간이나마 인신이 되었고, 그때 체험한 만물일여의 의식은, 언어화 불가능한 종류의 것이라 표면에 나타나긴 어려울지라도 무의식 깊은 곳에 침잠해 있을 거네. 그러니 사념체를 처리하고, 그것들이 담은 고통과 욕망을 직시해야 하는 한, 은결이의 현실은 언제나 그 가장 근저되는 부분에서부터 위태롭겠지. 그때의 세계가 언제나 지금의 세계를 천박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그것은, 신을 믿지 않는 은결이가 견디긴 가혹한 세계겠지...)”
쿠로사카는 말이 없다. 수행의 말이 옳다는 것은, 어쩌면 그녀가 더 잘 알고 있다. 여름방학 이후 확실히 은결은 위태로운 모습들을 자주 보여 왔다. 그는 때때로 무너졌고, 횡설수설 했으며, 토악질을 했다. 그러고도, 그는, 쉬려고 하지 않았다. ‘쉬어!’ 화를 내면서 쉬라고 명령할 때만, 그는 겨우 쉬었다. 틀림없다. 이대로 간다면 그는 언젠가 자신을 자신의 손으로 부술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는 몇 번이고 그렇게 하려고 했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기꺼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하신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어째서, 제가 은결과 떨어져야만 하는 이유일 수 있습니까?)”
수행은 곤혹스럽게 웃는다.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자네는, 내 생각에 은결이가 사귄 친구라 말할 수 있는 최초의 사람이리라고 생각하네. 자네처럼 어린 나이에 이 일을 시작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기도 하고 말이네. 아마, 어설프게나마 그 아이의 상처를 핥아줄 수도 있겠지. 실제로 그렇게 했으리라 생각하네.)”
“(그렇습니다.)”
쿠로사카는 당당하게 답한다. 수행은 여전히 곤혹스레 웃으며 이마를 한층 짙게 찌푸린다.
“(그래서 자네가 은결 옆에 있는 것은 곤란하네. 이 일이 은결이에게 ‘견딜만한’ 것이 되지 않길 바라니까. 나는 그저 은결이가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네. 그 뿐이지. 특별히 자네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야.)”
쿠로사카는 손을 꽉 쥔다. 흥건한 땀의 감촉이 분명하다. 뭐라고 답하면 좋을까.
*쓰다가 날려서 다시 쓴 글임. 환장하겠음ㅠㅠ
*세연 응원군은 강력하군요. 역시 본인이 약하면 응원군이라도 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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