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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0화 (10/236)

제10화

헬스폰(1)

“놓쳤습니다. 죄송합니다.”

퍼억!

쨍그랑!

정대수의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사대희가 던진 재떨이가 정대수의 이마를 강타했다.

아픈 소리를 낼 법도 했지만, 정대수는 입을 꾹 닫은 채 바닥만을 응시했다.

“배신자? 네 부하 중에 배신자가 있었다고? 대체 사람 보는 눈이 어떻게 된 거야? 어?”

“죄송합니다. 나름대로 믿고 있던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불찰입니다.”

“불찰? 불차알?”

쨍그랑!

책상 위에서 굴러다니던 술병이 이번엔 정대수를 맞추지 못하고 벽에 부딪혀, 남은 술이 피와 함께 정대수의 발치를 잔뜩 적셨다.

“불찰이라는 말이 나와? 내가 이렇게 하라고 너 같은 새끼 데려다가 써먹는 줄 알아? 어?”

분을 못 이긴 듯 씩씩거리던 사대희가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았다. 손에 묻어 있던 피가 손수건을 흠뻑 적셔 붉게 물들었다.

이 피는 사대희의 피가 아니다. 앞쪽에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나안점의 지점장이 있었다. 정대수는 공포에 벌벌 떨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정대수가 아주 오래전부터 함께 일하던 놈이라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멍청한 놈이라 눈치 못 챌 줄 알았지만, 그게 중요한 물건이라는 사실은 기가 막히게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상처투성이 잡종견 같은 걸 데려와 살려놨더니, 날 물어?

내가 분에 넘치는 짓은 하지 말라고 그렇게 누누이 말했건만. 오래전에 잃어버린 가족을 찾겠다고 나대고 다녔을 때, 정리를 해버렸어야 했는데.

무언가를 찾아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은 가끔, 자기 주제를 넘는 짓을 할 수도 있다. 정대수는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그 사실을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

“그 새끼. 그 상처투성이 새끼 말하는 거 맞지? 내가 그 새끼 처음부터 느낌이 안 좋다고 했잖아.”

그렇게 말하고도 사대희는 분이 풀리지 않아 방 안을 씩씩대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론 그 새끼가 자기 잃어버린 가족을 찾고 있었던 거 같은데. 그 새끼가 찾고 있는 가족이 누군지, 어디 있는지 더 빨리 알아내.”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물건 가져간 새끼도 누군지 알아내서, 물건 꼭 회수해 오고.”

“예. 알겠습니다.”

“잠깐. 물건 가져간 새끼는 광대 새끼라고 했나?”

“예. 맞습니다.”

“광대 새끼면 우리 손 안 더럽히고 처리하는 방법 찾을 수 있잖아. 나중에 뒷말 안 나오게 처리할 방법 생각해 봐.”

“예. 알겠습니다.”

사대희의 고갯짓에 정대수는 몸을 돌렸다.

“너 이 새끼, 봐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야.”

사대희의 낮은 목소리에 정대수는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예. 알겠습니다.”

*    *    *

끄으으….

나는 온몸을 쿡쿡 찌르는 통증 때문에 무거운 눈을 떴다.

아, 진짜 근육이 비명을 질러대는구나….

헉, 잠깐만.

온몸이 안 쑤시는 데가 없었지만, 반사적으로 얼굴을 더듬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크 카이저. 제가 보고 있는 동안 아무도 가면엔 손대지 않았어요.”]

귓가에 들려오는 제인의 목소리에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긴 어디지? 병원은 아닌 거 같은데?

[“나강림 씨? 어제 일… 기억 안 나요…?”]

제인이 느끼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거 귓속에 바로 직빵으로 때려 박는 것 같으니까, 그런 오해 살 만한 농담은 좀 하지 말아줄래?

나는 제인이 낄낄거리는 것을 내버려 두고, 내가 있는 방을 둘러보았다.

작은 방 안에 1인용 침대 하나, 침대 옆에 의자와 탁자가 있었고, 탁자 위엔 수술용 도구들과 함께 예전에 인터넷에서나 몇 번 본 적 있는 도구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문신. 타투를 새길 때 쓰던 도구들이었던 거 같았다.

“깼어요? 걱정하지 마요. 상처를 치료하는 것 외엔 다른 짓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처음 듣는 여자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으아아악!”

너무 급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몸이 찢기듯 아파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마취제 없이 꿰매고 회복력을 강제로 올려놓은 상태라, 갑자기 움직이면 많이 아플 거예요. 앞으로 며칠 동안은 좀 푹 쉬어두는 편이 좋아요.”

여자가 벌써 아물어가는 내 배의 상처를 가리켰다. 거기에, 내가 정신을 차리자 슈트의 기능들이 복구되며 몸에 활력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슈트의 배 부분에 찢어진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이것도 며칠 있으면 자가 복구로 메꿔질 거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내가 가져온 가방. 가방은요?”

[“다크 카이저. 아직 가면을 쓴 상태라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컨셉을 유지해 주세요.”]

[동화율 -0.5%]

아니, 무슨 이 정도로 동화율을 그만큼이나 떨구고 그래?

나는 풀리려던 정신을 다잡았다.

“가방. 가방은 어딨지?”

“가방은 내가 가지고 있어.”

듣기만 해도 안도감이 밀려드는 청명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나는 목소리의 정체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파스스.

오래된 전등이 깜빡거리며 히어로 코스튬을 입은 그녀를 비췄다.

퀘이사.

원작 만화의 주인공으로, 이 만화 속에서 가장 강력하게 성장하게 되는 인물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이기도 했다.

나는 퀘이사가 좋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히어로다운 히어로를 뽑자면, 단언컨대 퀘이사가 첫 번째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보는 내내 퀘이사를 응원해 왔었다.

주인공인 최강훈이 나와 닮아서 좋았다면, 퀘이사는 내가 생각하는 히어로의 이상에 가장 걸맞은 멋지고 빛나는 히어로였다. 그래서 나는 그 오랜 시간을 그 망한 만화책에 매달려 있었으리라.

그런 퀘이사가 지금 내 눈앞에 서 있었다.

“퀘이사?”

“나를 아나 보네.”

슈트를 입은 모습은 만화책에서 수없이 많이 봤으니까. 실제 모습과 만화 속 모습에 약간의 괴리감이 있긴 했지만,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에 얼마 전에 강수아의 모습을 본 적이 있기도 하고.

그렇다면 옆에 있는 여자는…?

쪼르르르르.

여자가 옆에 있는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건넸다.

“피를 꽤 흘렸으니까 목이 좀 마르실 거예요. 물이라도 좀 드세요.”

온몸에 타투를 잔뜩 새겨놓은 여자였다.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이 방의 주인인 이능/정신계열 능력자인 타투이스트 밀키웨이 황서현일 것이다.

황서현은 치료 관련 능력 중에선 손에 꼽을 정도로 강력한 능력의 소유자이다.

제인은 알고 있는 건지 모르는 건지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주지 않았었는데, 이번 기회에 가게의 위치를 알게 된 건 불행 중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황서현이 건네는 물컵을 받아 꿀꺽꿀꺽 마시며 흘끗흘끗 얼굴을 살폈다. 만화 속에서 보았던 인물을 실제로 보는 것이 신기해서인지 실례인 걸 알면서도 눈길이 갔다.

후우.

이제 무슨 말을 한다?

남고, 공대, 군대 트리를 나와 말재주가 별로 없는 내게, 처음 보는 여자들과 있는 공간은 조금 어색했다.

[“나하고는 이야기 잘하시면서. 저랑 할 때처럼 해요.”]

너는 AI잖아.

“아까의 일이 기억은 나요? 피를 많이 흘려서 그런지 거의 실신했었는데… 벌써 깨어난 것도 거의 기적이에요.”

그러고 보니 지금 시각이 몇 시야?

[“새벽 3시가 넘었는데요.”]

내 생각을 대충 이해했는지, 제인이 자연스럽게 시계 화면을 띄워주었다.

어. 큰일 났다.

나강림은 아직 고등학생인 몸이고, 이모와 단둘이서만 살고 있다. 고등학생이 학교 나간 첫날부터 밤늦게까지 들어가지 않았다면, 보호자인 이모가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 제가 만들어놓은 홀로그램 때문에 눈치는 못 챘으니까.”]

잘했어, 제인. 너밖에 없다.

“당신, 그 상처. 스카 페이스하고 싸운 거 맞지? 스카 페이스의 미스릴 나이프가 아니면 그런 상처가 나지 않아. 여기 있는 황서현 정도 되는 치료사가 아니면 치료도 힘들었을 정도니까. 당분간 집에서 쉬는 편이 좋을 거야.”

나도 쉴 수 있으면 오래 쉬고 싶은데, 내가 그렇게 오래 쉴 수 있는 입장이 아니란다. 동화율 유지하려면 빡세게 돌아야 해.

“상관없어. 능력이란 한계에 부딪혀야만 성장할 수 있으니까. 나는 내일 밤도 슈트를 입을 거다.”

[“잘했어요.”]

[잃었던 동화율이 회복됩니다.]

[+0.5]

혹시, 내가 원작의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지금 컨셉을 더 제대로 유지하길 바라는 건가?

“해봐야 활동한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은 초짜 히어로 주제에 자존심은 더럽게 쌔네.”

내가 어느 시점에 등장했는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걸 보니, 아마 내 정보도 퀘이사의 수집 범위 내에 있었던 모양이다.

퀘이사는 그렇게 말하더니, 들고 있던 가방을 흔들었다.

“그리고, 이 가방. 열어보려고 했는데 내가 열려고 하면 아무리 해도 열리지 않아서. 이게 뭐길래 그렇게 가지고 가려고 했는지 알고 있어?”

퀘이사는 그런데도 내게 가방을 주기 주저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 정체에 대해서 꽤 의심하는 모양이다.

나는 가방 안의 내용물을 퀘이사에게 알려줘도 괜찮을지 고민했다. 내가 세워둔 계획에 퀘이사가 들어와도 괜찮을까?

그래. 어차피 이 일을 초짜 히어로인 내가 다 해낼 수 있을 거 같진 않다. 그리고 지금 일어난 이 사건은 내 예상 범위를 이미 벗어나, 생각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고 말았다. 그렇다면 퀘이사와 함께 일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짧게 고민을 마친 나는 퀘이사에게 말했다.

“그 가방, 내게 건네준다면 보여주지.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이 뭔지.”

퀘이사는 그런 내 말에도 아직 의심이 가시지 않았는지, 내게 가방을 건네길 주저했다.

“그대는 지금 내가 입은 상처 다 보았던 거 아닌가? 퀘이사. 그대는 상처를 입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알겠어. 알겠어.”

퀘이사는 내 대사를 듣고 질색한 표정으로 가방을 건넸다. 그 질색하는 표정이 PTSD를 자극해 꽤 아팠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뭔데?”

“지금, 가방을 열었을 때 나온 물건을 보고 비명을 지르거나, 겁먹은 듯한 표정을 지어선 안 돼.”

“또. 이 안에서 보인 물건이 어떻게 보이든, 그 물건의 생김새에 관해 설명하려고 하지 말아.”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가 있더라도 입 밖에 내선 안 돼. 그리고 절대, 절대 이 물건에 손을 대선 안 돼. 내 말 이해했나?”

내가 짐짓 진지하게 말하자, 그 자리에서 나와 퀘이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황서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위험한 물건이라면, 차라리 저는 보지 않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요. 자리를 비켜드려도 될까요?”

나는 퀘이사를 힐끗 바라보았다.

“어. 그렇게 해, 언니.”

황서현은 방 안에 나와 퀘이사만을 남겨두고 빠져나갔다.

황서현이 자리를 비우자, 퀘이사는 내게 고갯짓했다.

그래. 난 경고했다.

이 가방을 열기 위해선 조금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지만, 원작 만화를 본 적 있는 나는 이 가방을 여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나는 가방을 열었다.

가방을 여는 소리와 함께 보이는 가방 안의 내용물.

[에피소드 - 지옥에서 온 알이 시작되었습니다.]

[에피소드 시작 보상으로 100 exp 획득하셨습니다.]

[에피소드 시작 보상으로 동화율을 5% 획득하셨습니다.]

그 저주받을 가방이 열렸다 닫히는 동안 다행스럽게도 퀘이사는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턱.

가방이 닫히는 소리에 정신이 든 듯 퀘이사가 질린 기색으로 내게 물었다.

“대체 이게 뭐지?”

“물건을 보고 느꼈겠지만, 물건을 본 지금 당장은 나도 그대에게 ‘이것’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없어. 다만, 이 물건을 처리할 방법을 찾지 않으면 이 세계에 재앙이 도래할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퀘이사는 내 말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물건을 처리하기 위해선, 그대의 도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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