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헬스폰(4)
도유진 일행에게서 아이들을 지켜낸 나는, 어떤 책임감까지 느끼면서 아이들을 안전한 큰 길가로 데리고 나왔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이 된 아이들이란다. 이런 어린아이들 돈을 뜯으려고 하다니. 일진 놀이하는 양아치 새끼들, 진짜 버릇을 한번 고쳐줘야겠네.
“저런 골목길에서 누가 부른다고 따라가거나 그러는 거 아니다. 앞으로 저런 어두운 골목 같은 곳엔 다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감사합니다! 다크 카이저!”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무서웠어요.”
“아저씨, 진짜 멋있어요.”
“지금 여기, 나 강림! 할 때 진짜 멋있었어요.”
어? 이거 기분 묘하네.
지금까진 이런 반응 해주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내가 중학교 때 만든 설정이라 같은 감수성을 가진 중학생들에게 오히려 먹히는 건가?
“내 이름은 더 다크 카이저. 죄지은 자들을 벌하고, 외면당하는 자를 지키기 위해 이 세계에 강림했다.”
“와아아!”
아, 이거 기분 째지네.
* * *
“뭔가 이상한데.”
[“뭐가요, 마스터?”]
아이들을 안전하게 데리고 나오는 것까진 좋았는데, 막상 일 끝나고 나니 이거 영 찝찝한 상황이다.
“도유진이 나한테 쫄아서 죄송하다고 물러나는 게 말이 안 돼.”
[“물론 나강림이 그랬다면 무시했겠지만, 지금은 나강림이 아니라 더 다크 카이저 님이니까요.”]
나는 또 날 놀려먹으려고 드는 제인을 무시한 채 생각에 빠졌다.
내 모습을 본 도유진은 나에게 반항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내가 요구하는 대로 자신들이 괴롭히고 있던 중학생들에게 사과하고 돈을 돌려줬으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해주었다.
[“그거야, 드디어 더 다크 카이저의 위용이 고등학생까지도 미쳤다는 증거겠지요. 오늘 아침에 마스터의 영상을 보여준 마스터의 팬도 있었잖아요.”]
“아니… 걔는 그냥 좀 부류가 다른 친구잖아.”
본인 친구들 앞이라 더 기세등등했을 도유진이, 오히려 수상한 인물이 비웃음을 받는 상황에서 먼저 꼬리 내린 건, 보통 수상한 일이 아니다.
거기에 그 수상한 인물이 괴상한 취향의 코스튬까지 입고 나타난 거면 더욱더.
…이거 어째 말할수록 현타가 오네.
앞서 말했지만, 이 세상엔 대부분의 사람이 뮤턴트 인자를 몸에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중 많은 수가 약간의 초능력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런 수많은 사람 중에 몇 명이 히어로를 동경해, 불나방처럼 거리로 나서다가 목숨을 잃는 사연은 이젠 기삿거리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초능력을 이용한 범죄 활동이 많은 만큼 히어로나 자경단 활동도 적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메이저 팀에 속하지 않은 초보 히어로에 대한 시선은, 또 이상한 옷 입고 싸움질이나 하러 다니는 이상한 족속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참나, 이게 다 공공기물 파손을 예삿일처럼 다루는 매체 때문이라니까.
아무튼 히어로 활동을 한답시고 나대던 초능력자가 빌런으로 돌아서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에, 히어로를 대하는 대중의 시선은 항상 양극으로 나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 인지도를 쌓은 히어로가 아닌 이상, 히어로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그리고 아까 골목길에 있던 다섯 명의 아이 중 세 명은 이미 어느 정도 자신의 능력을 깨달은 친구들이다. 그런 친구들이 나한테 이렇게 쉽게 항복해 준다고?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 * *
슈우우웅!
이 소리는…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인데?
[“마스터! 피해요!”]
나는 제인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곧바로 뒤로 몸을 튕겼다.
콰콰쾅!
몸을 뒤로 돌려 피했음에도 느껴지는 진동의 강도가 보통이 아니다.
습격? 혹시 스카 페이스?
나는 뒤로 훌쩍 물러나며, 동시에 오른손에 감겨 있는 체인을 펼쳐 잡았다.
내게 날붙이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은 이 체인뿐.
아. 다음에 경험치 쌓이면 도구부터 몇 가지 빨리 만들든가 해야지. 맨주먹만 믿고 싸우기엔 이 세상은 너무 험난하다.
나는 긴장한 상태로, 일어나는 먼지 너머의 인영을 바라보기 위해 살풋 인상을 찌푸렸다.
커다란 주먹에 온 체중을 싣고 바닥에 내리꽂은 듯한 랜딩 자세.
“헤이. 거기 너! 검은색 쫄쫄이를 입은 빌런. 네가 저지르는 악행을 막으러 바로 나, 파워 피스트가 등장했다.”
뭐…?
내가 빌런이라고?
* * *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 중의 하나는 돈, 그리고 노동이다.
태어난 지 겨우 1년쯤 지난 어린아이의 돌잔치에서도 미래에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이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무덤에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은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은 돈이 없이 살아갈 수 없다.
히어로들 또한 사람이므로, 히어로는 돈이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우습게도,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히어로들 또한 돈을 벌어야만 한다. 이 세계는 초능력이 판치는 세상이다 보니, 히어로도 돈을 벌 방법이 꽤 있다.
예를 들어 팀을 이뤄 프랜차이즈를 만들고, 그 프랜차이즈와 관련된 상품을 만들어내 돈을 벌어서 생활하는 히어로들이라든가.
혹은 누군가 건 의뢰를 받아 해결해 주며 현상금을 받는 히어로들도 있다. 그걸 히어로라고 불러야 할지는 의문이지만, 의뢰를 받는 나름의 기준이 있겠지.
또 어떤 경우엔 후원을 받아 생활하는 히어로들도 존재한다. 그것이 대중일 수도 있고, 나라일 수도 있고, 기업체일 수도 있다.
자신들의 힘을 좋은 방법으로 쓰게 해준다는 사탕발림에 넘어가 기업체의 후원을 받으며 활동하는 몇몇 순진한 히어로의 경우, 정의라는 이름 아래 자신들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내 앞에 있는 저 파워 피스트처럼.
자신의 등 뒤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스폰 광고를 자신 있게 보여주던 파워 피스트는, 다시 몸을 돌려 나를 향해 작은 몸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커 보이는 자신의 두 팔뚝을 들어 올렸다.
요즘 핫한 앞 광고란 이걸 말하는 건가….
[“파워 피스트. 히어로. 경한 그룹을 스폰서로 두고 있네요. 신체계열 슈페리어로, 자신의 두 주먹의 크기와 경도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나도 알아.
파워 피스트. 원작에서도 나온 적 있는 히어로다. 아마 빼앗긴 물건을 되찾기 위해 경한 그룹이 선택한 방법이 이놈이었나 보다.
“너지? 얼마 전에 경한 은행에서 물건 털어간 강도. 네가 가져간 물건을 돌려받으러 왔다, 이 악당. 당장 가져간 물건을 돌려줘.”
이거 봐. 이럴 줄 알았어.
나는 소용없을 걸 알면서도 파워 피스트를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지금 그 물건은 내 손안에 없다. 하지만 그 물건에 대해서….”
“그럴 줄 알았어. 일단 내 손에 먼저 혼나봐야 정신을 차리지?”
“잠깐 나랑 이야기를….”
파워 피스트가 다짜고짜 휘두른 주먹을 뒤로 크게 물러서며 피해냈다. 커다란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나는 소리에 조금 소름이 돋았다.
“더 말해 뭐해? 너도 슈트를 입었다면 덤벼. 깔끔하게 실력으로 이야기하자.”
뭐가 깔끔해, 깔끔하긴.
워낙 호전적이고 싸움을 좋아하는 놈이라, 싸워주지 않으면 이야기도 들어주지 않겠지.
진짜 히어로와 싸우는 건 처음이다.
진짜 슈퍼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스카 페이스와의 전투에서도 꽤 큰 피해를 입었었기 때문에, 긴장된 몸에서 땀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더 말하려고 하는 것을 포기하고, 앞에 있는 파워 피스트와 똑같이 주먹을 쥐었다.
“좋아. 나도 싸울 마음이 없는 놈이랑 싸우는 건 싫거든. 간다!”
BOOM!
대답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나를 향해 휘둘려 오는 주먹. 축구공만큼 커다란 주먹이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게 꽤 위협적이다. 맞받아치는 대신 살짝 뒤로 물러나 흘려냈다.
BOOM!
주먹은 날 때리는 대신 내 뒤에 있는 벽을 두들겼다. 금이 가 있는 벽에 커다란 주먹 자국이 하나 새겨진다.
아직 반격하진 않고 공격을 두 눈으로 보기만 했다. 빠르진 않다. 눈으로 보고 피할 만하다.
BOOM!
쉬지 않고 이어지는 다음 주먹질. 빠르진 않지만, 한 방이라도 맞으면 위협적인 공격이다 보니 틈을 노리기가 쉽지 않다.
BOM!
아니다. 점점 빨라지고 있잖아?!
대체 얼마나 빠르면 저 커다란 주먹에서 저런 소리가 나는 거야?
그래도 틈은 있다. 무거운 주먹을 연속으로 휘두르기 전에 나오는 아주 약간의 틈. 그 틈을 노려야 한다. 다크 카이저의 파워 모드로는 스피드가 아주 약간 모자란다.
SUIT MOD
The Dark Kiaser
철컥… 철커덕….
몸이 점점 가벼워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완전히 변형되기 전, 파워 모드와 스피드 모드의 중간, 그 타이밍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지금!
주먹이 다시 한번 내게 휘둘러지는 틈을 타 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쉭!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파공음.
내가 안쪽으로 파고드는 것을 보고 반대편 손이 서둘러 뻗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 사이를 파고 들어가 내뻗는 카운터펀치.
POW!
제대로 들어갔다.
카운터가 먹혔을 때가 기회다.
나는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놈의 얼굴에 틀어박힌 주먹을 회수하며 연달아 주먹을 내뻗었다.
BA! BA! BAM!
시원하게 들어간 카운터펀치 이후 원투 훅.
자신의 얼굴에 틀어박힌 주먹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의 파워 피스트.
몰아치기 시작했을 때, 마지막 결정타를 먹이는 편이 낫다.
BAM-!!
놈의 턱에 마지막 한 방을 더 꽂아 넣었지만, 놈의 눈은 감기지 않았다.
“으라아아!”
놈의 사정거리 안쪽으로 파고들어 공격한 탓에 너무 가까웠다. 놈은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커다란 팔 사이에 나를 집어넣고 조이기 시작했다.
손이 크기 때문에 안쪽으로 파고들면 공격하기 곤란할 거라는 계산이 있어서 했던 행동인데, 오히려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분명 제대로 들어갔다고 생각했지만, 파워 피스트의 얼굴은 꽤 멀쩡해 보였다. 스피드 모드로 완전히 변형되어 버린 탓에 힘이 부족했나.
찌이이익
지난밤에 얻은 상처가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 했던 무리한 움직임들과 이번 공격으로 인해, 황서연이 강제로 치료해 놓은 상처가 다시 찢어진 모양이다. 쿡쿡 쑤시는 상처의 아픔을 참고 이를 악물었다.
“말해! 물건은 어디에 있나!”
두꺼운 팔 사이에서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점점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열이 나고 더워지는 것도 같다.
“으으으.”
“말해! 물건 어딨냐고!”
이 또라이야. 말하려면 풀어줘야 말할 거 아니야. 숨 막혀 뒤지겠어.
“말해!!!”
으으… 으으으아…….
너무… 더워…….
“으아아아악!”
“흐억… 흐억….”
갑자기 숨통이 확 트였다.
놈이 자신의 팔을 잡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인지 파악이 잘 되진 않았지만,
일단 놈의 얼굴에 돌려차기를 집어넣었다.
CRASH!
뼈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며 놈이 나가떨어졌다.
치이이익….
내 온몸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뭐지?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각성?
[“슈트를 강제로 과부하 시켜서 온도를 올렸어요. 살아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마스터.”]
어쩐지, 계속 더워지더라니….
[“저는 마스터를 위해서라면 CPU 손실도 각오할 수 있어요.”]
그래…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