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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3화 (23/236)

제23화

떠오르는 신인! 루키 히어로! 다크 카이저!

“왜!!! 왜 죽이지 않은 거야!!!! 왜!!!”

지하 주차장에서 녹화된 CCTV를 들여다보고 있던 정대수가 신경질적으로 내리친 책상이 무너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pi-yoooong….

무너진 책상에서 떨어진 모니터가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꺼졌다.

저때 다크 카이저가 저 토끼 가면을 죽여 버렸다면, 지금 당장 함께 몰락하게 만들 수 있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힘을 얻은 자경단들이 대체로 그렇듯, 스스로의 힘에 취해 파멸의 길을 걷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어디서 냄새라도 맡은 건지, 자극적인 영상 소스를 만들기도 전에 테러를 진압하고 사라져 버렸다.

거기에 수많은 증인들까지 만들어 버린 채….

이런, X발!

정대수는 열에 받쳐 손에 잡히는 물건을 던져 버리려다가 내려놓았다.

안 돼… 너무 흥분했다가는 일이 틀어질 수 있다.

본인이 오래 봐왔던 사대희 회장은 입 밖에 내놓은 말은 절대 번복하지 않는다. 비록 자신이 옆에서 오랫동안 보필했다고 해도,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는 단 세 번뿐이리라.

그동안 어떻게 해서든 다크 카이저의 약점이 될 만한 정보를 파악하려고 했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정체를 파악하는 일마저 쉽지 않았다.

놈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놈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곳은 꼭 주변에 정전이 일어나거나, CCTV가 먹통이 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우리가 파악한 놈의 능력은 어떻게 해도 신체계열에, 화염 속성 자연계열이다.

신체계열 능력인 건 확실하니 이능계열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고, 흑염을 사용하는 자연계열인 게 확실하니 정신계열일 리도 없다.

정신계열이나 이능계열이 아닌 이상 손도 안 대고 정전을 일으키거나, CCTV를 먹통 시키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체 무슨 방법을 쓰는 거지?

뒤를 봐주는 그룹이라도 있는 건가?

“이래선… 어쩔 수 없지.”

풋내기 히어로 하나 처리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온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정대수는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냈다.

“어, 그래요. 한강운 원장. 어. 어. 그때, 가지고 있다던 그거.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거 나한테 넘깁시다.”

*    *    *

내 이름은 나강림.

원래 나이 스물셋. 현재 나이 열일곱.

천산 고등학교 1학년 4반에 재학 중.

롤 티어는 다이아를 바라보고 있는 플래티넘.

만화 「Heroicest」에 들어온 지는 약 한 달 반 정도 되었고, 나와 만화로 함께 들어온 이모와 내 친구와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내가 들어오면서 사라진 만화의 주인공을 대신해 매일 밤 히어로 [다크 카이저]로서 활동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밤이 너무 두렵다.

“으아아악! 도와주세요!”

“꺄아아! 살려주세요!”

골목을 울리는 비명!

비명을 듣자마자 내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별일 아니길….

제인! 브리핑!

[“빌라에서 화재가 일어났네요. 아직 못 빠져나온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에요.”]

아… 어… 어떻게 하지?

제인. 주변에 나 대신 출동할 수 있는 히어로 있어?

[“제가 파악하기론 없는 거 같은데요.”]

덜덜덜덜덜….

히어로 일에 대한 무게를 깨달은 이후부터, 사람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올 때마다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몸이 조금 떨려오지만… 지금 내가 아니면 많은 사람이 다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는 수밖에.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나는 비명이 들린 곳으로 활공해 가기 시작했다.

불이 난 화재 현장이 보이고, 그 주변을 둘러싸고 불을 끄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시민들과 소방관들이 보였다.

“저기…! 저기 하늘을 봐요!”

“다크 카이저? 다크 카이저다!!”

“여보!! 저길 봐요!! 다크 카이저가 왔어!!”

내가 날아오는 모습을 목격한 시민들이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환호하기 시작했다.

나는 저런 환호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난 그 환호를 애써 무시하고, 그대로 활공해서 불이 난 빌라 앞에 랜딩했다.

그리고….

[“마스터! 지금이에요! 하셔야 해요!”]

내 랜딩을 보며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시민들….

원래도 하고 싶지 않은 대사였지만, 이젠 정말 하고 싶지 않은데….

나는 내키지 않지만 입을 열어 등장 대사를 조용히 읊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

“지금!! 여기!! 나!! 강림!!!!”

그 옆에서 불을 끄고 있던 시민들이 내 랜딩 대사를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

“나… 강림….”

“와아아아아!!!!!”

“아가야! 다크 카이저가 왔어! 거기 조금만 참아!”

나 대신 내 등장 대사를 외쳐주는 시민들의 환호하는 얼굴을 보기가 두려워 고개를 돌리고 있던 내게, 불을 끄고 있던 소방관이 다가왔다.

“안쪽에 아이 한 명, 노인 한 명이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고요, 불길이 너무 세서 저희 대원 중 한 명도 갇혀서 못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굴에 시커멓게 재를 묻힌 소방관이 애써 절박함을 누른 채 다급히 상황을 전했다.

막상 불이 나고 있는 빌라 앞에 가까이 서서 소방관의 말을 듣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불길이 거세다.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구할 테니.”

“와아아아!”

“다! 크! 카! 이! 저!”

“꺄아아아!”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일단은 건물의 입구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내 말 한마디에도 환호를 보내는 시민들이 너무 부담스럽기도 했다.

제인. 슈트 모드 - 파이어 파이터 모드로 변경해 줘.

[“네. 슈트 모드-파이어 파이터 모드로 변경합니다.”]

SUIT MOD

The Dark Kiaser

지이익… 철컥….

내 슈트를 뒤덮는 방화방열 소재.

아직 모드의 레벨이 낮아 지속 시간이 그렇게 길진 않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내부의 사람들을 구해내야만 한다.

화르르륵!

나는 불타오르는 화염을 뚫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홀로그램에 떠오른 방화 방염복의 에너지가 꽤 빠르게 떨어지는 걸 보니, 내부 온도가 높긴 높은 모양이다.

이미 반쯤 무너진 내부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빨리 붕괴하고 있는지, 건장한 성인이 지나가기엔 너무 좁았다.

나는 방해가 되는 잔해들을 반쯤 부수며 앞으로 뛰어 들어가야만 했다.

[“마스터! 거긴 건들면 천장이 무너져요! 그 옆에 있는 잔해를 치우세요.”]

CRASH!

여기부턴 불길과 잔해 때문에 주변이 제대로 안 보일 정도다. 눈앞의 건물 잔해를 치우며 전진하다 보니, 앞쪽에 방화복을 입은 소방관이 잔해에 깔려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보시오! 헤이!”

뒤이어 몇 번이나 큰소리로 외쳐봤지만, 소방관은 미동도 없이 조용하다.

순간 머리가 핑 돈다.

제인. 이 모드, 소화기도 쓸 수 있는 거지?

[네. 괜히 파이어 파이터 모드가 아니니까요.]

화륵… 화르륵….

거센 불길을 잡기 위해, 툴 벨트에 있던 다크-소화기를 분사해 가며 쓰러져 있는 소방관에게 서둘러 가까이 다가갔다.

BOOM!

잔해를 치워 버리고 소방관의 가슴팍에 귀를 가져다 댄다.

아직 따뜻하다. 심장이 뛴다. 살아 있다.

[“아직 생명 반응 있습니다. 살아 있어요.”]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정신 차려! 괜찮나? 정신이 드나?”

다행스럽게도 가까이 온 내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 소방관이 실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 다크 카이저…?”

소방관의 눈에서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희망.

마음 한구석에 묵직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당신은 장난처럼 히어로 활동을 시작했던 나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니까,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지 말아요.

나는 툴 벨트에 있던 다크-산소호흡기를 소방관의 입에 가져다 댔다.

“정신 차리시오.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하니까.”

“다… 다크 카이저. 저… 저 문 뒤에 할머니와 아이가 있습니다. 저… 저 말고 일단 저 문 뒤의 사람들부터 구해주세요.”

나는 소방관이 가리키는 문을 바라보았다.

단단한 철로 된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서 구해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걱정 마시오. 내가 구해낼 테니.”

나는 건물의 벽에 구멍을 내기 위해 한번 심호흡을 한 뒤 후려쳤다.

BAM!

한 번 더!

BUMP!

거의 다 됐다!

BOOM!

쉬이이이잉-!

내가 낸 구멍으로 바람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그 구멍을 넓힌 뒤, 소방관을 로프에 묶었다.

“걱정하지 말고 먼저 내려가서 기다리고 있으시오.”

당신은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내가 당신의 몫까지 꼭 남은 사람들을 구하고 갈게요.

“쿨럭, 저… 고마워요. 다크 카이저!”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소방관을 먼저 밑으로 내려보낸 뒤, 열지 못한 문을 바라보았다.

BAM!

내 발차기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는 문고리!

나는 잘 열리지 않는 문을 강제로 열어젖혔다.

쉬이이이잉!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는 바람!

(※주의! 히어로 만화에서나 나오는 장면입니다. 절대 따라 하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으아아아앙.”

문 뒤에는 네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와 그 아이를 안고 기절해 있는 할머니가 있었다.

울고 있는 꼬마를 달래고 싶었지만….

화르르륵!

우르르륵….

그럴 시간이 없는 모양이다.

점점 거세지는 불길에 건물이 무너지려는 기미가 보여, 나는 할머니와 꼬마 아이를 안고 방금 만들어두었던 구멍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내가 뛰어내림과 동시에, 거짓말처럼 폭발하는 내 등 뒤의 건물.

내 쪽으로 불어오는 바람, 나부끼는 망토.

“와아아아아아!!”

“다크 카이저!!!”

“감사해요! 저희 어머니와 아이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크 카이저! 너무 멋져요. 팬이에요!”

그 밑에서 환호하며 눈물짓는 관중들.

나를 대단한 히어로처럼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너무 부담스러워, 나는 도망치듯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마스터! 마스터를 기다리고 있는 저 사람들 좀 보세요! 팬 서비스 하셔야죠!”]

대충 떠나려는 나를 제인이 제지했다.

[“마스터. 팬 서비스도 히어로 활동 중의 하나랍니다. 당신의 팬들에게 팬 서비스 하세요!”]

제발… 오늘만큼은 안 하면 안 돼?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리자, 내 입만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보였다.

알겠어요. 알겠다구요. 하면 되잖아요.

“내 이름은… 다크 카이저… 죄지은 자들을 벌하고….”

내 말을 이어받아 따라 외치기 시작하는 사람들!

“외면당하는 자들을 지키기 위해 이 세계에 강림했다!”

“와아아아!!”

“다크 카이저! 너무 멋져요!”

으아아아악! 제발 그만둬!

나는 창피함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    *    *

내가 왜 이렇게 유명해졌냐고?

경한 센트럴병원 테러 사건을 해결한 루키 히어로가 되었으니까.

내가 레드 레빗을 잡은 사건은 순식간에 부풀어져, 각종 매체에 퍼지기 시작했다.

「경한 센트럴병원의 테러를 막아낸 루키 히어로, 다크 카이저!」

「경한 은행, 은행 강도와 관련된 다크 카이저에 대한 현상수배는 오해로 밝혀져….」

「이달의 히어로 소개! 다크 카이저!」

내가 아니면 막지 못했을, 나 혼자서 막아낸 사건이라며 매스컴은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그런 게 아닌데….

그건 다 나 때문에 일어났던 일인데….

나는 그렇게 말하지 못한 채, 오늘도 다른 사람들을 속인 채, 가면을 쓰고 밤거리를 나섰다.

[“마스터. 오늘 정산 내용입니다.”]

[히어로 활동 성공. 동화율이 올라갑니다.]

[오늘 하루 획득한 동화율 : 0.30%]

[현재 동화율 : 32.15%]

[오늘 하루 획득한 경험치 : 15exp]

[현재 경험치 : 65exp]

지난번에 떨어졌던 동화율은, 레드 레빗을 쓰러트리자 다시 돌아왔다.

내가 경한 병원 테러 사건 땐 아무런 컨셉을 지키지 않았는데 동화율이 떨어지진 않냐고 제인에게 물었을 때, 제인은 그땐 그런 컨셉을 지키지 않아도 히어로였다는 아리송한 말만 돌려줄 뿐이었다.

삐빅- 삐빅-

드디어 오늘의 활동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우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나를 기다려주는 이모가 계시는 나의 집.

“제인… 난 언제까지 이 가면을 써야 하는 거야?”

[“최소한 동화율 100퍼센트는 채우셔야겠죠?”]

과연 그날이 언제쯤 오게 될까?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을 숨기고 언제나 그랬듯, 밤하늘을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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