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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4화 (24/236)

제24화

짝사랑, 그리고 착각(1)

번쩍.

창가에서 내 눈으로 쏟아지는 햇빛에 나는 눈을 떴다. 아침이다.

-♬

내가 눈을 뜨자마자 들려오는 알람 소리.

며칠 전부터 아침마다 쑤시던 근육통이 많이 사라졌다.

그전엔 아침에 식사를 마치면 항상 어기적어기적 욕실로 가서 따뜻한 물을 맞아야만 몸을 조금이나마 움직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굳이 따뜻한 샤워로 근육을 풀어주지 않아도 내 몸을 가누기 충분할 정도로 몸이 꽤 풀린 상태다.

하지만… 따뜻한 물로 하는 아침 샤워를 감히 빼먹을 순 없지.

힘든 이중생활을 하는 도중 느끼는, 내 인생의 낙 중 하나다.

나는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

“우리 강림이 일어났구나. 요즘 밤에 들어올 때마다 표정이 많이 안 좋던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 아니지?”

역시 이모의 눈은 피할 수 없다. 괜히 날 어릴 때부터 맡아 키워주신 게 아닌 모양이다.

“아니, 뭐. 그냥 밤에 들어오면 힘들잖아.”

“그렇지. 중학교랑 고등학교는 많이 다르니까. 그래도 빨리 적응해줘서 항상 이모가 고마워.”

“아니이~ 이게 뭐 별거라구… 별말을 다 하시네. 쑥스럽게….”

“알았어. 그래. 밥이나 먹어.”

이모가 빙긋 웃으며 내 투정을 받아주었다.

내 투정을 웃으며 받아주는 이모가 있어서 방금 따끔했던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네.”

괜히 이모 눈을 피한 나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기 위해 수저를 들고 양껏 입 안 가득 밥을 넣고 씹기 시작했다.

“아이고. 또 오버한다. 그렇게 먹다 체한다?”

“앙 체해.”

“입 안에 든 거 나오니까 삼키고 말해.”

그때, 티비에서 아침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젯밤, 이달의 루키 히어로 ‘다크 카이저’가 화재가 일어난 빌라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에 진입해, 시민들을 가까스로 구출해 내는 데 성공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취재의 오전희 기자입니다.”>

아. 제발. 나오지 마….

“와. 저 히어로도 참 대단하네. 지난번 병원 테러 막을 때도 저 사람 혼자 막지 않았나. 참, 강림이 너, 그거 봤니? CCTV 영상도 공개됐던데.”

“어? 응.”

깨작깨작.

그렇게 맛있던 밥이 갑자기 돌덩이처럼 느껴진다. 거실에서 티비를 치워 버리든가 해야지. 원.

“빌런을 앞에 두고 사람들부터 구하려고 하는 게 진짜 히어로 정신 같다고 해야 하나. 요즘은 그저 멋으로 히어로를 희망하는 10대 애들도 많잖니.”

그런 거 아닌데….

내가 저지른 일을 주워 담으려 했을 뿐인데….

<“빌라에서 일어난 화재 현장.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노력해 보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습니다. 건물의 내부엔 소방관 한 명과 할머니, 그리고 손자가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채 갇혀 있었습니다.”>

이윽고 화면에 나오는 화재 현장.

티비 화면으로 보아도 불타오르는 건물이 곧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내가 저런 델 들어갔다고?

내가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이윽고 나오는 나, 아니 다크 카이저.

다크 카이저는 불길에 뛰어 들어가 소방관을 구출해 내곤, 다시 안으로 들어가 할머니와 손자를 안고 뛰어내린다.

“이야. 되게 멋있네.”

마치 그림처럼 폭발하는 건물.

“강림아. 너 히어로 좋아하잖아. 다크 카이저는 좀 어떤 거 같아?”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티비를 돌려 버렸다.

“이모. 나 씻고 갈게. 잘 먹었습니다.”

“어? 그래. 얼른 씻고 와.”

내 싸늘한 반응에 놀란 표정을 짓는 이모.

쾅!

후다닥 도망치듯 들어가느라 나도 모르게 힘을 줘 욕실 문을 닫고 말았다.

나도 그러고 싶진 않았는데, 괜히 이모에게 짜증 낸 기분이라 샤워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모, 미안해요. 괜히 짜증 내서.”

“응? 언제 짜증을 냈는데? 이모는 몰랐네.”

모르는 척해주는 이모가 오늘은 정말 고마웠다.

“응, 아무것도 아니야. 저 이제 갈 준비할게요.”

대충 후다닥 등교할 채비를 마치고 나왔다.

요즘은 학교에 가는 게 더 쉬는 기분이니까, 기분 좋게 가는 게 낫지.

“다녀오겠습니다.”

“강림아. 오늘은 학원 쉬고, 일찍 들어와. 알겠지? 오늘은 간만에 이모랑 외식 나가자. 우리 강림이 옷도 좀 사고.”

내가 힘들어하는 게 너무 티 났던 모양이다.

제인.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아?

[“네. 이모님이 그러자고 하신 거니까요. 히어로는 원래 가족을 걱정시켜선 안 되는 법이랍니다.”]

그래? 그럼 오늘은 쉰다?

[“네. 그렇게 하세요.”]

너가 쉬라고 했다?

[“하시라니까요.”]

이거, 녹음도 되지?

[“인공지능인 제 말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군요.”]

“네. 이모. 오늘은 학원 안 가고 일찍 들어올게요. 같이 나가요.”

*    *    *

그럼 오늘 저녁은 좀 쉬어도 되겠네.

오늘 저녁에는 오랜만에 쉬면서 이모와 함께 외식도 하고 옷도 산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저녁에 이모랑 같이 보내는 게 얼마 만이야?

[“마스터. 그럼 오늘 저녁엔 사건 알람 끌까요?”]

미쳤어? 그러다가 주변에 히어로도 없는데 큰 사건이 나면 어쩌려고. 알람은 계속 유지해 줘.

[“네. 마스터.”]

기분 좋다는 듯 대답하는 제인.

왜인지 모르겠지만, 최근엔 제인이 꽤 고분고분해졌다. 예전엔 내가 하는 말마다 꼬투리를 잡으려고 기를 쓰고 덤비더니.

…나를 다루는 법을 터득한 건가?

어라.

저 앞에, 매일 만나던 곳에 강수아가 나를 등지고 서 있는 게 보인다. 왜 저기 저러고 서 있대?

강수아와는 어김없이 여기서 만나네.

“안녕! 수아야, 왜 여기에 서 있어?”

“…너구나? 그냥. 잠깐 다른 생각 하느라.”

“아~ 그렇구나.”

언제나처럼 강수아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길을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내 코에서 절로 콧소리가 나는 점 정도?

“흥… 흐흥흥….”

그러자 수아가 점점 나와 거리를 벌리며 보폭을 좁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뭐지… 기분 탓인가?

기민하게 알아챈 나도 그에 맞춰 같이 걸음을 의식하며 천천히 보폭을 맞춘다.

그걸 눈치챈 건지, 수아가 이번엔 우월한 기럭지로 성큼성큼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알았어! 조용히 할게! ”

“…생각보다 눈치가 있네. 이젠 조용히 갈 거지? ”

“…응. 내가 창피했구나….”

“창피하진 않았는데. 옆에 같이 걷고 싶진 않은 정도?”

“그게 그거 아닐까….”

처음에는 강수아의 저런 툭 쏘는 어투에 꽤 많이 당황했었지만, 지금은 원작을 보고 온 상황이라 저렇게 툭툭 쏘아내는 말들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상처받진 않았다.

강수아도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처지인데다, 여기저기 구호단체의 지원금을 통해 겨우겨우 연명하고 있는 처지인지라 사람을 대하는 데 많이 서투르다.

그나마 가족 중에 브루트가 없었기 때문에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비교적 안전한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에 퀘이사가 히어로가 될 수 있었던 거지, 가족 구성원 중에 브루트가 존재했다면 아마 히어로가 아니라 빌런을 하고 있었을 거다.

저런 차디찬 동급생이 저녁에는 히어로 슈트를 입고

<“모두들 안녕! 여러분의 하루를 지키는 히어로. 퀘이사가 여기 등장.”>

이라고 말하며 범죄와 사투를 한다고 생각하면 꽤 우습기도 하다.

[“마스터. 그건 마스터도 마찬가지잖아요. 지금 여기, 나 강림. 내 이름은 다크 카이저. 죄지은 자를 벌하고 외면당하는 자들을 지키기 위해 이 세계에 강림했다. 음하하하!”]

아까 고분고분해졌다고 말한 건 취소다.

아무튼 저렇게 힘든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보다 타인의 인생을 구하기 위해 매일 밤 슈트를 입고 있는 강수아의 모습은, 그 어린 나에게도 감동이었다.

“뭐… 좋은 일이 생기긴 했나 보네.”

저건 강수아식 질문이다. 저렇게 했는데 대답 안 해주면 토라진다. 강수아는 한번 토라지면 풀렸는지 안 풀렸는지 알기가 힘들기 때문에, 토라질 일이 없게 하는 게 가장 낫다.

“아니. 별건 아니고. 그냥 오랜만에 이모랑 같이 데이트할 거거든.”

“야아아! 한 입만 처먹는다며!!”

“한 입 맞잖아!”

“너 진짜 뒤진다. 이리 안 와?”

마침 교문을 지나는 중에,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이 우리 옆을 지나갔다.

얼씨구. 발차기 자세 봐라. 히어로 하겠네.

우리 학교 애들은 아침부터 기운도 좋구나.

“이모랑 친하게 지내나 보네.”

“아. 난 부모님이 안 계셔서 이모랑 둘이 살거든.”

사실 반에선 물어보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라서 말을 하진 않았지만, 강수아에겐 말해도 될 거 같았다.

창피할 일도 아니고, 거기에 같은 처지니까 공감대가 생겨 더 친해질 수도 있는 거고. 일석이조 아니겠어?

“…그거. 나한테 말해도 되는 거야?”

“응? 왜? 나는 너랑 꽤 친해졌다고 생각해서. 거기에 너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주변에 얘기하니까, 나도 그 영향을 받았나 봐. 솔직히 아무렇지 않아 하는 네가 좀 멋있었거든.”

그러자 처음 인사할 때 빼곤 묵묵하게 앞만 보고 있던 수아가 처음으로 내 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마침 보이는 학교 정문.

왠지 모르게 그 눈빛을 의식하고 있던 나는, 묘한 기대감을 안고 조심스럽게 수아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다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수아.

“수아야, 방금 나 쳐다보지 않았어?”

“아까 눈치 있다는 말 취소야.”

*    *    *

사각사각

한소연은 강수아가 나강림을 기다리기 위해 서 있는 바로 그곳, 옆의 골목길 가로등과 종량제 봉투 뒤에 숨어 있었다.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그때, 한소연의 눈에 저~ 멀리서 걸어오는 강림이가 단박에 보였다.

08:06 강림이가… 등교함….

그렇다. 소연은 매일 아침, 강림이와 수아가 만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수아처럼 똑같이 강림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릴 거면 강림이 집 앞에서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거기서부터 기다리면 내가 너무 스토커 같잖아.

“나는 강림이를 좋아하는 거지, 스토킹 같은 거 하는 건 아니니까. 그치, 얘들아?”

“컹!”

“야옹!”

한소연이 그렇게 묻자 한소연을 따라다니는 고양이와 강아지가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한 번씩 울었다.

사람보단 동물들과 함께 있는 걸 더 편하게 생각한 탓일까?

한소연에겐 동물들이 꽤 따르는 편이었다.

지금처럼 자기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대답하는 건 기본이고, 처음 보는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묘기를 시킬 수 있을 정도로, 동물들은 한소연의 말을 잘 따랐다.

소연은 다시 걸어가기 시작한 강수아와 나강림의 뒤를 몰래 숨어 따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자신도 강수아랑 나강림이 친하게 지내는 것에 끼어들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걸.

보이지 않게. 들리지 않게.

소연은 그저 들키지 않게 움직인다고 생각했지만, 강림에게 집착하며 점점 자신이 가진 능력을 각성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흥흐흐흥.

오늘… 강림이는… 기분이 꽤 좋아 보임….

매일 같이 들고 다니는 나강림 상태 보고서에 메모를 집어넣으며, 한소연은 둘이 하는 대화에 귀 기울였다.

“자, 잠깐만! 알았어! 조용히 할게!”

“…생각보다 눈치가 있네. 이젠 조용히 갈 거지?”

강수아는… 강림이가… 눈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

“뭐… 좋은 일이 생기긴 했나 보네.”

“아니… 별 건 아니고….”

강림이에게 좋은 일이….

“야아아! 한 입만 처먹는다며!!”

갑자기 나타난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하나 가지고 시끄럽게 한 탓에 중요한 부분의 이야기를 제대로 못 들었다.

아… 이야기 다 들었어야 했는데….

분명… 데이트… 데이트라고 그랬는데….

혹시 수아랑?

곰곰이 생각해 보던 소연은 앞뒤 문맥상 수아랑 데이트하는 건 아닐 거라고 결론 지었다.

좋은 일이 있는데 무슨 일 있냐고 물었으니까.

둘이 사귀는 거면 그런 질문을 할 리가 없지.

그렇다면 나올 수 있는 결론은 하나….

나강림… 여자친구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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