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다크 스코프의 탄생(3)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다닌다는 특색 때문인지, 나이트 스코프의 목격담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활동하기 시작한 시간은 3일 정도.
3일간 목격담이 들려온 장소들을 지도에 찍어봤을 때, 천산시 복동을 중심으로 2킬로 반경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까.
복동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의미고, 그게 아니라면 복동 근처에 차량을 숨겨놨다는 의미다.
제인, 여기서 나이트 스코프의 거주지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물을 찾아줄래?
[“네, 마스터.”]
제인의 계산으로 인해 가능성이 있는 건물의 개수가 추려져, 총 3개까지 줄어들었다.
[“이 중 두 개는 거주지일 가능성이 큰 곳을 찾은 곳이고, 나머지 하나는 차량을 숨기기 용이한 곳을 찾아두었습니다.”]
아주 아마추어적인 실수다.
지금까진 송사리들만 상대해서 별다른 해코지를 당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머리가 돌아가는 슈퍼 빌런을 상대했다면, 나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위치를 특정 당했을 거다.
활동 시간은 밤 11시부터, 새벽 3시 정도까지.
지금 시간이 새벽 2시 반 정도 되었으니, 슬슬 복동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돌아다닐 때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스코프 슈트의 특성상, 이 세 건물 사이에 숨어 있으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을 거다.
나는 복동으로 향했다.
* * *
주거지로 생각되던 두 개의 건물에 먼저 가봤지만, 건물 둘의 주거인 모두 정학근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첫 번째 건물은 20대 신혼부부가 사는 집이었고, 두 번째 건물은 너무 나이 든 노부부가 사는 건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건물은… 여기 하나뿐인데….
아주 오래전에 공사가 중단돼 방치되어, 만들다 만 창고 같은 곳이었다.
제인이 말하길, 공사 현장에서 슈퍼 빌런과 히어로의 싸움이 있었고, 그로 인해 만들던 건물이 반파되어 버렸단다. 그리고 무너진 건물을 다시 올릴 돈이 부족해 지금까지 방치되고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그럼 이 주변에서 활동하다, 여기에 숨겨둔 차량을 타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어두컴컴한 건물 안쪽으로 들어섰다.
끼릭… 끼릭… 딱….
조용한 건물 안에서 나사 돌아가는 소리만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긴장되는 분위기에 나는 천천히 건물 안으로 한 발짝, 한 발짝 서서히 들어섰다.
click….
무언가 버튼 같은 걸 밟는 느낌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던 바로 그때,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조명들이 켜지고, 그 조명들의 빛이 내 눈을 향해 쏟아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철커덕- 철컥- 터엉!
철커덕- 철컥- 터엉!
“누가 또 나를 찾아왔구나. 그렇게 당하고도 내게 복수할 마음이 들더냐? 어디 내 셰이드와 셰도우의 맛을 한번… 다크 카이저 님? 다크 카이저 님 맞습니까?”
내 모습을 확인한 누군가의 감격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눈이 너무 부셔서 누구인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다.
나는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다크 쉴드를 활성화해 몸과 얼굴을 가렸다.
“불부터 좀 끄시오. 불.”
“아. 예. 죄송합니다.”
켜져 있던 조명들이 꺼지고 잔잔하게 보이는 주황색 등만이 건물을 채우고 나서야, 나는 망토를 치우고 내 앞에 보이는 사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기본적인 슈트의 느낌은 분명 촌스럽기 그지없는 내 복장에 가까웠는데, 그 위에 덧대어진 검은색 철판들과 장비들이 의외로 멋지게 어우러진 탓에 내 생각보다 훨씬… 히어로스러웠다.
제인! 나 저거 사줘! 나보다 쟤가 더 히어로 같잖아. 경험치 줄게. 저렇게 만들어줘.
[“마스터! 기다려봐요! 저도 지금 저 디자인에 대해 분석 중입니다!”]
내 슈트가 기반이 되었다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유려한 디자인이 되어버린 슈트 앞에서, 제인도 당황해하는 기색이 보였다.
내 슈트 위에 덧대어진 철판들이 꽤 시끄럽게 소리를 울려대고 있긴 했지만, 저건 분명 예술적 감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나와는 다른, 진짜의 디자인이었다.
“다… 다크 카이저… 진짜 다크 카이저 님 맞… 맞으십니까? 어… 오늘 아니면 내일쯤 오실 거 같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벌써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당신은 대체 왜 나를 따라 하고 다니느냐고 물으려던 나는, 들려온 말에 다른 질문을 해야만 했다.
내가 오는 걸 예상했다고?
“내가 여기 올 걸 알고 있었나?”
“예… 그럼요. 인터넷에 영상이 올라가기 시작한 걸 확인했으니까, 이쯤이면 절 찾아오셔서 이런 짓을 그만두라고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 말은 내가 여기 오도록 유도했다는 말인가?”
“정말…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예. 그렇습니다. 직접 찾아뵙고 싶었지만, 너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셔서… 이렇게 제가 여기 있다는 흔적을 만들어두면 언젠가 여기까지 와주시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마스터. 아마추어적인 실수라면서요?”]
들고 있는 장비들을 보고 이미 느꼈었지만, 이미 정신계열 슈페리어로서 어느 정도 각성을 해버린 모양이다.
“그럼… 당신이 그렇게까지 해서 날 불러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었나?”
흐으읍.
갑작스럽게 크게 한숨을 들이쉬는 나이트 스코프를 보며 나는 조금 긴장해, 다시 한번 망토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휘파람 같은 거 불면 다른 함정이 발동되는 거 아닐까?
터엉-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아저씨가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제 이름은 다크 스코프입니다. 평소 다크 카이저 님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절 다크 카이저 님의 사이드 킥으로 삼아주십시오. 제가 부족해 보여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엥? 뭐요?
* * *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나보다 30살은 많을 아저씨를 보니 기분이 착잡했지만, 일단은 이야기라도 들어볼 요량으로 그 앞에 앉았다.
일단 저 무릎부터 어떻게 해야지, 안 그랬다간 미안해서 죽어버릴 거 같다.
“그렇게 앉아 있지 말고, 편히 앉으시오.”
이런 말투를 써야 하는 것도 너무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셉 유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의 진심이 어느 정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괜히 깨트리고 싶지 않은 그 묘한 순수함.
“아, 예… 그럼….”
내 말에 편하게 자세를 바꾸는 아저씨.
“지금, 히어로가 아니라 하고 있는 생업이 있소?”
“아… 예… 그냥 회사 다니면서… 월급 받아먹고 생활하고 있죠… 예….”
생업 이야기가 나오자 지나치게 작아지는 아저씨 때문에 마음이 조금 아파왔지만, 이런 때일수록 냉정하게 말해야 오히려 아저씨에게 도움이 될 거다.
“근육의 상태로 보나, 체력적인 상태로 보나, 아무래도 히어로 일을 할 만한 나이는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은근슬쩍 나이 이야기를 꺼내 자존심을 깎아내 보려고도 했지만….
“사람을 구하고 범죄를 막아내는 일에 어찌 나이의 구분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의지가 중요하지.”
아무래도 먹히진 않는 모양이다.
이 아저씨… 지나치게 진심이다.
“다크 카이저 님 같은, 사활을 걸고 사람들을 구하시는 진짜 히어로가 보기엔 제가 하는 짓이 장난 같고 취미 같을 수 있겠지만, 이젠 사람을 구할 때 느껴지는 그 벅참과 범죄자들을 물리쳤을 때 느끼는 그 희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흡….
숨이 찰 정도로 미리 준비해 놓았다는 티가 나는, 외워 버린 대사를 읊는 배우처럼 내게 말하는 아저씨.
“저도 제가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주 잠시만, 조금만 가르쳐 주시면… 진짜 히어로의 세계가 무엇인지, 그 세계의 이면이라도 조금 볼 수 있게 해주신다면, 제가 여생을 후회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아저씨의 두 눈에는, 간절함과 진심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분명, 나도 히어로를 사랑했던 입장으로 그 마음이 이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미안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겠소.”
난 지금 당장 내 정체를 숨기기에도 급급한 상황이고, 거기에 아침엔 학교도 가야 한다. 또 이모에게 들키지 않게 밤마다 몰래 창문을 통해 빠져나와 활동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나는 진짜 히어로가 아니다.
나는 가짜다.
이모와 함께 살기 위해 떠안듯 히어로 활동을 시작해 버린, 그저 나 스스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하고 있는 가짜 히어로 활동.
그리고 심지어 나는, 가짜 히어로 활동을 한답시고 이미 두 사람이나 죽인 적 있는 살인자다. 나는 오히려 빌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지, 히어로가 아니다.
이런 히어로 활동에서 과연 저 아저씨가 뭘 배울 수 있단 말인가?
나에게서 무얼 배운다고?
나에겐 누군가를 가르칠 자격이 없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럼….”
다크 스코프는 몸을 일으키더니, 갑자기 손등에 있는 버튼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제가 제 쓸모를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다크 카이저!”
뭐라고?
또다시, 건물 전체에 환하게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가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 * *
<다크 카이저가 다크 스코프의 아지트를 찾아내기 한 시간 전….>
카앙!
카앙!
다크 스코프는 깡패들에게서 빼앗는 데 성공한 아지트에 만들어놓은 작업대 위에서, 언제나처럼 떠오른 아이디어대로 장비를 몇 개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쯤 오시지 않을까?
슬슬 대충 혼내주고 길거리에 풀어놓은 깡패 놈들이 독기를 품고 자기를 찾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낮에 유튜브에, 영상 ‘다크 카이저 전동(전투 동영상)’이라고 거짓말로 올린 자신의 활동 영상이 슬슬 SNS를 통해 퍼져나가고 있는 걸 확인 했으니,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일부러 이 근방에서만 움직였으니, 아마 자신이 분석한 다크 카이저의 능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자신을 찾아 여기까지 올 수 있을 거다.
이렇게까지 찾아오게 하려는 이유가 뭐냐고?
꼭 몇 가지 확인해야 할 사안이 있었으니까.
경한 병원의 CCTV 영상을 몇십 번이고 돌려보며 확인해 본 결과, 다크 스코프는 다크 카이저와 레드 레빗이 이미 알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 어떻게? 언제?
레빗즈가 활동을 처음 시작한 시기와 다크 카이저가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우연히도 거의 비슷하리만큼 겹친다.
그리고 레빗즈는 병원비를 구하기 위해 은행 ATM기를 털려는 범죄를 저지르려고 했고, 그것을 발견한 자경단과 실랑이하던 도중, 형제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 수 있을 만한 사건은 바로 여기, 이 지점뿐이다.
그리고 다크 카이저는, 과거에 경한 은행의 물건을 훔쳐 달아난 강도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 혐의는 다크 카이저가 레드 레빗의 경한 병원 테러 사건을 막아낸 이후로, 그저 오해였다, 해프닝이었다는 정정 보도와 함께 다시 언급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크 카이저는 경한 병원의 테러를 막아낸 이후부터 히어로로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흐름이 끊겨 있다.
기사와 보도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경한 그룹만의 사정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사정을 다크 카이저가 알고 있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자신을 히어로 활동으로 이끌어준 다크 카이저의 뒤를 캐는 것이 맘에 들진 않았지만, 확인해야만 했다.
보이는 것만을 믿기엔 정학근은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