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37화 (37/236)

제37화

다크 스코프의 탄생(4)

다크 스코프가 손등의 버튼을 조작하자,

PANG! PANG! PANG!

건물 안에 있는 수많은 조명이 이쪽을 포커스로 켜지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다크 카이저. 제 능력을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또다시 갑작스러운 눈부심 덕분에 눈을 가냘프게 뜨고 시선을 응시하자, 다크 스코프가 재차 입을 열었다.

“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슈우우웅-!

그와 동시에 무언가를 던지는 소리가 내 귓가로 들렸다.

소리만을 듣고, 내 쪽으로 날아오는 것을 피하려다 영상에서 봤던 것이 기억나 완전히 쳐내기 위해 체인을 휘둘렀다.

소리를 듣고 가늠해서 휘두른 체인에, 날아오던 물체 두 개가 얻어맞고 바닥에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전에 봤던 나이프구나.

[“죄송해요. 마스터! 마스크의 눈 부분 빛 투과율을 낮췄어요! 없던 기능을 만들어내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요.”]

내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제인이 눈부심이 덜하도록 내 눈 위에 선글라스를 씌운 것처럼 만들어주었다.

내 쪽을 향해 있는 조명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직도 눈이 아팠지만, 그래도 이전보단 훨씬 나았다.

하지만, 다크 스코프는 이미 내 눈앞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뒤? 옆인가?

SWISH!

별안간 머리 위에서 무언가 내게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와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올렸지만,

쿵!

내 팔 위로 느껴진 충격에 나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야만 했다. 생각보다 충격이 커 하마터면 뒤로 넘어갈 뻔했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내려오며 랜딩 자세를 취하는 다크 스코프.

허공에서 와이어를 타고 내려오며 내게 발차기를 먹인 모양이다. 슈트 자체의 중량이 크다 보니, 내 생각보다 위력이 강했다.

씨이잉-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다크 스코프의 허리의 툴 벨트로 갈고리가 달린 와이어가 순식간에 말려 들어간다.

뭐야? 저거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는데?

매번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려고 할 때나, 옥상에서 다른 건물로 뛰어다니려고 할 때마다 가끔 거리상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런 게 있다면 아무래도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주변을 돌아다닐 수 있을 거 같았다.

“다크 카이저 님. 벌써 제 브라이트 플래시를 파훼하셨군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 와중에 기술 이름도 만들었네.

그러는 본인도 알 수 없는 장치가 잔뜩 달린 특이한 고글을 얼굴에 쓰고 있는 걸로 보아, 이미 나와의 싸움을 각오했었던 모양이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다크 카이저 님!”

이거 진짜 나하고 싸우자는 거야?

철커덕-철컥-터엉!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게 달려오기 시작하는 다크 스코프를 보며, 나는 조금 긴장했다.

일단은, 저 무거운 슈트를 입고 있는 사람을 잘못 공격하면 그 무게 때문에 다치지 않을까 싶은 게 가장 컸고. 아까부터 별별 이상한 상황을 이용해서 나를 정신없게 만드는데, 나는 아직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싸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내 눈앞에 휘둘러지는 다크 스코프의 주먹.

원래 상대하는 빌런들의 공격에 비해 지나치게 느렸다.

나는 일단 휘둘러 오는 주먹을 잡아 슬쩍 넘어트려 제압할 요량으로 다크 스코프의 팔을 손으로 잡으려고 했다.

BAM!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소리와 함께, 내가 잡으려던 주먹에서 매운 냄새가 나는 가루가 터져 나왔다.

“크악! 켁켁.”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가루인지라 대비도 못 하고 들이마시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다크 카이저 님! 조금 매운 거 빼면 몸에 큰 이상은 없을 겁니다!”

너무… 너무 맵다.

무슨 이런 악랄한 공격을….

[“마스터! 다크-방독면 모드를 작동시켰어요! 이젠 숨 쉬셔도 괜찮아요!”]

흐으읍….

염병. 전역하고 나서 최루탄 실습을 할 줄은 몰랐다.

이미 들이켜 버린 가루 때문에 매운 건 어쩔 수 없지만, 다음에 뻗어 나올 공격을 막아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정신을 부여잡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사이 다크 스코프는 또다시 시야에서 사라진 후였다.

아까 당했던 것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허공을 바라보았지만, 이번엔 허공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마스터! 뒤!”]

나는 반사적으로 망토를 잡아 다크 쉴드를 만든 채 뒤를 돌며 반격 자세를 취했다.

제인의 경고대로, 다크 스코프는 내 등 뒤에서 이번엔 주먹에 무슨 기계 장치를 쥐고 휘둘러 오는 중이었다.

근데 주먹이 나에게 닿기엔… 거리가 좀 먼 거 같은데?

BOOM!

주먹에서부터 일어나 순식간에 나를 덮쳐오는 작은 폭발!

다크 쉴드의 에너지가 많이 떨어지진 않았지만, 뒤로 꽤 밀려나고 말았다.

철커덕-철컥-텅!

손에 들고 있던 폭발을 일으키는 장치는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었던 모양인 듯, 들고 있던 장비를 손에서 놔버리고 내게 다시 한번 달려 들어오는 다크 스코프!

제인. 소리 차단시켜 줘.

혹시 몰라 이미 영상에서 한 번 본 적 있는 소리를 이용한 공격을 대비한 후, 달려 들어오는 다크 스코프를 제압하기 위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이럴 때마다 내가 원거리 공격에 약하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체감된다.

상대를 견제할 수 있는 원거리 기술에 대한 필요성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곤 벨제뷔트를 통한 지옥의 흑염 정도이지만, 흑염은 사용할 때마다 벨제뷔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하고, 거기에 리스크가 좀 있으니까.

내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다크 스코프도 자신의 등 뒤에 있는 망토를 앞으로 당겨 몸을 가렸다.

또 저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내가 알 수 있는 건 없다. 아저씨가 만들어낸 장비들 하나하나는 깜짝 놀라기엔 충분한 수준이었지만, 위력 자체는 그리 높지 않다. 몸으로 부딪쳐 파훼법을 알아내는 수밖에.

나는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오히려 한 발짝 앞으로 뻗어나가며, 오른손을 휘둘러 다크 스코프를 잡아챘다.

무거운 슈트 탓인지, 내 쪽으로 몸이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다크 스코프.

슈우우우웅-!

그와 동시에 내가 전투 시작 전에 쳐냈던 나이프가 다시 내게로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만약 내가 다시 날아올 가능성을 생각해 두지 않았더라면, 이 공격에 당해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공격이었다.

다시 한번 내 쪽으로 날아드는 나이프를 망토를 크게 휘둘러 쳐내며, 곧바로 쓰러지는 다크 스코프의 팔을 꺾어 제압했다.

“아. 그만. 그만. 제가 졌습니다. 졌어요. 그만합시다.”

이게 진짜일까?

혹시 이대로 풀어주면 2차전이 시작하지 않을까 싶어, 나는 내 팔에 있는 체인으로 다크 스코프의 팔을 묶었다.

“푸하. 역시 다크 카이저 님! 저는 그 타이밍에 무조건 흑염을 사용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예상하시고 오른손으로 페이크를 주시다니. 역시 진짜 히어로는 다르십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몸에 두르고 있던 망토의 재질을 살폈다. 방열복으로나 쓸 법한 재질. 이걸로 불을 막아낸 후, 다른 도구를 사용해 공격해 올 작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럼 지금까지의 공격이 모두 내 반응을 예상해서 한 거란 말인가?

“다크 카이저 님 활동 영상이 하나 올라오면 최소 10번 이상 보면서 분석했습니다. 처음엔 1배속 그다음엔 0.9배속 그다음엔 0.8배속…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다크 카이저 님의 판단과 센스는 정말 대단하십니….”

“됐소! 거기까지!”

히어로로서 활동하다 보면 내 팬이라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기 마련이지만, 이런 극성팬은 처음인지라 조금 부끄러웠다. 무슨 전투 센스고 판단이야? 모두 제인을 이용해서 알아낸 것들뿐인걸.

“그럼… 이거 풀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괜히 원작에서 이름 날리던 빌런 출신이 아니었다. 히어로로서 활동을 마음먹은 다크 스코프는, 원작만큼은 아니더라도 꽤나 거슬리는 상대였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 체인을 풀어주었다.

루키 히어로니, 뭐니 하면서 경찰도 내게 협력해 줄 때가 종종 있긴 하지만, 실제로 나는 메이저팀도 없고 등록도 되어 있지 않은 자경단이니까. 나는 이 사람을 벌할 자격이 없다.

히어로가 경찰에 전화를 걸어, 나를 따라 해서 나를 공격한 사람이 있어요! 하고 신고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어떠셨습니까? 그래도 이 정도면 제 능력 꽤 쓸 만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시간과 정보만 있다면, 다크 카이저 님께서 이길 수 없는 슈퍼 빌런은 존재하지 않게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건 내가 당신이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다른 슈퍼 빌런들이 나처럼 사정 봐가며 상대해 줄 줄 아시오?”

이건 진심이었다.

나는 저 슈트 속 안에 든 내용물이 회사 다니는 평범한 대머리 아저씨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살살 상대했던 것뿐이지, 내가 진심을 다해서 상대했다면 진작 슈트 안의 뼈가 부러져 바닥에서 끙끙대고 있었을 테지.

“물론 그러시다는 거, 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진짜 진심이라는 것, 그거 하나만큼은 와닿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았다.

이 사람은 지금 히어로에 반쯤 미쳐 있다.

여기서 내가 이 아저씨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한들, 이 아저씨가 여기서 포기할 거 같진 않았다.

내 사이드 킥이 되고 싶다고 나를 공격해 올 정도면, 이다음엔 더 미친 짓으로 내 이목을 끌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럼 내가 붉은 눈으로 보았던 미래가 실현되는 일이 올지도 모른다.

아저씨는 내가 맨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히어로라는 것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다.

지루한 삶에 지쳐 환상을 쫓느라,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환상인지 알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 부질없는 환상의 이면을 바라보게 된다면, 아저씨는 돌아갈 가정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겠소. 하루 3시간, 밤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활동 도중 내가 한 명령에 의문이 들더라도 일단 내 명령에 복종할 것.”

*    *    *

다크 스코프는 다크 카이저가 떠나자,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작업대 책상 위로 집어 던지고 머리에 쓰고 있던 마스크와 헬멧을 벗었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머리를 닦으며 다크 스코프는 의자에 거의 쓰러지듯 앉았다.

역시… 일단 다크 카이저 님이 매체에서 보여준 모습들이 전부 가짜는 아니었어.

이 폐건물 안엔 자신과 다크 카이저, 단둘뿐이었고, 분명 귀찮게 하는 자신을 죽일 기회가 적어도 최소 3번 이상은 있었다.

그런데도 다크 카이저는 자신을 죽이지 않았다.

충분히 자신을 죽일 만한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신을 제압해 쓰러트리기만 했다는 것.

그것은 자신이 생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는 펼쳐지지 않을 것을 의미했다.

혹시 자신을 죽이려 들 때를 대비해 여러 가지 대비책을 준비해두긴 했지만, 진짜 히어로를 상대로 그런 것들이 다 먹히리라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다크 스코프는 머릿속에서 최악의 상황에 대한 목록 몇 가지를 지웠다.

다크 카이저가 경한 그룹의 스폰을 받고 있는 가짜 히어로라거나, 혹은 원래는 빌런이었다거나 하는 가능성은 이제 많이 줄어들었다. 아마 아예 가능성을 지워버려도 될 것이다.

그리고 머릿속에, 다크 카이저가 흑염을 사용하는 데에는 제한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 새로 기재했다.

그러면… 이젠 경한 그룹이 대체 무슨 꿍꿍이로 다크 카이저를 이용하려고 하는지 알아내야 할 차례군.

다크 스코프는 흘끗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미 새벽 3시 반이 훌쩍 넘은 시간.

원래 같았으면 이 시간쯤 돌아갔겠지만….

다크 스코프는 작업대 한쪽에 놔둔 PC의 전원을 켰다.

오늘 밤은 아직 해야 할 일이 좀 많이 남아 있다.

-띠리링 띠리링

“어,어어… 여보. 아니, 잠깐 야식 사러 갔다가… 알았어. 갈게.”

힘내라! 정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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