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45화 (45/236)

제45화 페이퍼 백(1)

끼익!

내 눈앞으로 날아오는 바이크.

“꺄아아악! 살려주세요!”

그 옆에 함께 날아오는 사람!

나는 곧바로 몸을 날려 날아가는 사람을 받아 안고 바닥에 내렸다.

“가, 감사합니다. 혹시 다크…?”

내가 받아든 사람이 하는 감사의 인사도 채 받지 못한 채 나는 곧바로 허공에 몸을 띄웠다.

지금은 내 소개를 할 시간도 없으니까 제대로 된 소개는 다음에 또 하도록 하자.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탈옥해 버린 빌런들의 뒤를 쫓고 있다.

*    *    *

이거 봐. 내 이럴 줄 알았다.

탈옥 전문 빌런 주얼리 커플, 골드 재킷과 다이아몬드 진저.

내가 그렇게 주의해야 할 점들을 많이 알려줬건만, 결국 두 빌런이 탈옥하고 만 것이다.

그것도 단 일주일 만에!!

원작에서도 수없이 탈옥한 녀석들이라 그리 놀랍지는 않고… 도망을 잘 쳐 골치가 아프긴 해도, 강한 놈들은 아니라서 잡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 건 또 아니다.

[“그런데 이번엔 좀 골치 아픈 사고를 치긴 했네요.”]

그러게 말이다.

주얼리 커플은 혼자 탈옥한 게 아니라, 교도소에서 가장 덩치 큰 재소자와 함께 도망치고 있었다.

닥터 보기맨(Dr. Bogeyman).

강화 약물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빌런으로, 박사 학위를 딸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자기 몸을 대상으로 한 약물 실험의 실패로, 지능이 떨어지고 덩치와 힘만 강해진 비운의 빌런이다.

원작에서도 몇 번 나온 적 있는 전개다. 쥬얼리 커플이 아이를 다루는 것처럼 닥터 보기맨을 어르고 달래 자기들과 함께 행동하게 만든 거다.

“캬하하하하! 음습한 시커먼 머저리야! 이번엔 우리가 이겼다!”

“우리 애기랑 잘 놀아줘~ 나중에 데리러 올게. 허니~~.”

지난번처럼 자동차를 타고 멀리 도망치기 시작하는 주얼리 커플.

[“차가 향하는 방향으로 보아 또 지난번에 습격한 보석상으로 향하는 거 같아요, 마스터.”]

그 말과 동시에 나를 향해 휘둘러져 오는 신호등.

나는 스피드 모드를 켜고 휘둘러지는 신호등을 가까스로 피했다.

힘이 워낙 세서인지 휘둘러지는 신호등도 꽤나 빠르다.

“넌 나 닥터 보기맨이 상대한다.”

한 손으로 신호등을 휘두르고, 나머지 한 손으론 건물의 입간판을 집어 들어, 내게 던진다.

다시 휘둘러져 오는 신호등을 허리를 숙여 가까스로 피하고, 날아오는 입간판은 받아서 들어 내려놓았다.

뒤쪽에 아직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싸우다간 민간인들의 피해가 꽤 커질 거다.

제인, 일단 경찰에 사건 신고하고 시민 대피 요청해.

[“일단 사건 신고하고 시민 대피 요청하긴 했는데요. 이 주변이 너무 번화가라 당장 눈에 띄는 변화는 힘들 거 같아요, 마스터.”]

이 주변 시민들한테 비상 문자는?

[“네! 바로 방금 경찰에서 비상 문자 발송한 거 확인했어요”]

일단 이 주변 거리에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얜 손에 잡히는 거라면 사람도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집어 던져 버리는 놈이거든.

운명의 장막을 쓰기에는 아직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사용하는 운명의 장막은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의 피해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

다시 한번 내 머리를 노리고 휘둘러지는 신호등을 피해 고개를 숙이며 나는 놈을 파훼할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실 닥터 보기맨을 상대하는 데에는 스피드가 최고긴 한데….

원작에선 얘가 나올 즈음엔 래피드 스타가 같은 팀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를 가진 래피드 스타가 자신의 장비, 인피니티 로프를 이용해 꽁꽁 묶고, 묶여 있는 보기맨을 향해 스타라이트가 마무리 일격을 날리는 식으로 제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 세계에선 래피드 스타는 이미 은퇴한 히어로인 데다가, 나한텐 아직 이렇다 할 동료가 없다.

[“어머. 마스터의 사이드 킥 다크 스코프를 잊으신 건 아니겠죠?”]

나한테 사이드 킥은 무슨 사이드 킥. 나 자신도 감당하기 벅찬데… 그냥 나 따라 하는 아저씨 사고 칠까 봐 관리 감독하는 거지.

[“방금 그 말… 다크 스코프가 들으면 슬퍼할 거예요.”]

아저씨한텐 비밀로 해. 그 아저씨 삐치면 뒤끝 끔찍하니까….

얼마 전에 황서현에게 브루트 납치 사건에 함께 갈 히어로 목록에서 다크 스코프를 빼라고 했다가 걸리는 바람에, 지금까지 나에게 삐쳐서 말도 하지 않는 상태다.

오히려 잘됐다 싶어서 놔두고 활동 중이긴 하지만. 오늘 같은 날엔 데리고 다닐 걸 그랬다 싶긴 하네.

래피드 스타는 나와 함께 하지 않지만, 내 슈트에는 래피드 스타를 보고 만든 스피드 모드가 존재한다.

인피니티 로프를 내 오른손의 체인으로 대체하면 완전히 똑같진 않아도 흉내는 낼 수 있지 않을까?

안 될 거 같아도 시도해야지 뭐. 어쩌겠어?

“너! 검은 쫄쫄이! 겁쟁이! 정정당당하게 맞서 싸워!”

싫어, 인마.

나는 오른손의 체인을 던져 보기맨의 발목을 묶었다.

“너처럼 무식한 돼지가 이 어둠의 황제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닥터 보기맨!! 박사 학위 가지고 있다!! 무식하지 않다!! 검은 쫄쫄이 박사 학위 없다!! 나보다 멍청한 건 검은 쫄쫄이다!!”

멍청한 보기맨은 내 도발에 넘어가는 바람에 발목에 묶인 체인을 눈치채지 못했다.

[“네, 박사님. 실험 준비 완료됐습니다.”]

제인이 신난 목소리로 보기맨을 비꼬아대는 걸 들으며, 나는 체인을 손에 꽉 쥐었다.

제인! 체인의 연장을 위한 경험치 빼고 전부 스피드 모드에 투자해 줘!

[“네. 알겠습니다.”]

띠리리링 소리와 함께 내 눈 위로 경험치가 내려가는 창이 나타났지만, 채 숫자가 보이기도 전에 꺼버렸다.

경험치도, 동화율도 요즘은 얼마나 오르고 내리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경험치는 원래부터 히어로로서 활동하기 위해 만들어진 포인트. 사건 해결에 실패하는 리스크를 남기는 거보단 매 사건 최선을 다하는 게 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크 카이저 스피드 모드 온.”

SUIT MOD

The Dark Kiaser

철커덕 철컥

익숙한 소리와 함께 내 슈트가 변화하는 것이 느껴진다.

슈트가 변화하는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체인을 꽉 쥐고 보기맨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어? 검은 쫄쫄이 빨라졌다!”

당황한 듯한 보기맨의 목소리!

나는 점점 더 빠르게 보기맨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보기맨의 발목부터 체인이 빠르게 감아 올라가기 시작하는 것이 보인다.

이대로 발을 묶어 넘어뜨리기만 한다면 그다음은 쉽….

부웅-

갑자기 떠오르는 내 몸.

[“마스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할 틈도 없이 등허리로 충격이 전해진다.

쿠르르릉!

벽에 틀어박힌 내 머리 위로 벽에서 나온 먼지가 쏟아진다.

“검은 쫄쫄이! 약하다! 집어 던지면 그만이다! 으하하하하!”

[“마스터!! 마스터!! 정신 차려요!”]

나를 노려보며 웃어대는 보기맨의 얼굴이 점점 흐려진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 래피드 스타. 하늘을 가르는 혜성처럼 지금 등. 장.”

꿈인가?

“페이퍼 백?”

나는 어린 시절, 내가 좋아하던 히어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잃었다.

*    *    *

공다혁, 히어로 네임은 래피드 스타, 팬네임은 페이퍼 백! 나름 유명 히어로였던 그는 지금 은퇴한 상태이다.

공다혁이 은퇴를 결심하게 된 건 그리 특별한 이유가 아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 이가영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이다.

그날 갑자기 몸에 좋다는 걸 다 먹일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한 첩의 보약, 저녁 식사로 먹은 장어, 함께 마신 야관문주 대가로 공다혁은 아이의 아빠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들은 그날 이후로, 공다혁은 단 한 번도 가면을 쓰지 않았다.

물론 공다혁이 히어로를 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또한 가벼운 마음가짐은 아니었다.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유일한 혈육이던 여동생이 빌런이 일으킨 사고에 휘말려 죽었을 때, 공다혁은 마치 신의 계시처럼 능력을 각성했기 때문이다.

빌런에게서 도망치던 차에 여동생이 치이던 그때, 공다혁은 늘어진 시간 속을 영원처럼 달렸다.

체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느려진 세상에서 공다혁은 온 힘을 짜내어 여동생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곧, 그 늘어진 시간 속에서도 공다혁은 여동생에게 닿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공다혁은 결국 자신의 능력을 거둬들이고 말았다.

그리고 여동생이 차에 치이는 그 순간을 목도하고 나서야, 공다혁은 자신이 포기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해낼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내가 쓰러질 때까지는 계속해서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하지만 공다혁은 포기하고야 말았다.

공다혁은 유일한 혈육을 포기해 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얼굴에 가면을 썼다.

아니, 가면도 사치라고 생각해 공다혁은 얼굴에, 종이가방에 눈구멍만 뚫고 썼다. 구멍 뚫린 종이가방을 얼굴에 쓰고 자기 자신을 숨겨야만 공다혁은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 래피드 스타라고 이름 짓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을 구했다.

하지만 그것도 옛날이야기지.

자신의 아내, 이가영이 아이를 가진 순간 공다혁은 히어로 활동을 포기했었다.

…얼마 전, 이가영이 빌런이 일으킨 사태에 휘말려 교통사고로 죽을 뻔하기 전까진.

다행히 그 사건을 막아준 히어로가 있어 자신의 아내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점, 그 점이 공다혁의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슈퍼 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자신의 아내를 구했다.

자신의 아내를 치려는 차 앞을 가로막고, 그 차를 양손으로 받아내며 자신의 아내를 구했다.

그 팔이, 아니 몸이 부서져 버릴지도 모르는 위협 앞에서도 그 히어로는 차를 가로막아 자신의 아내를 구했다.

그가 그런 능력을 가지고도 그런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이가영은 죽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능력을 가지고도 누군가를 구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죽는 사람은 대체 몇 명이나 되는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 그런 이름을 내세우고 활동했던 주제에 이렇게 숨어서 행복을 누려도 괜찮은 것일까?

그런 생각에 괴로워하던 어느 날, 또다시 운명처럼 그의 눈앞에 자신의 아내를 구한 검은 슈트를 입은 히어로가 나타났다.

*    *    *

이가영은 공다혁과 장을 보러 가는 것을 좋아했다.

혼자 가는 것보다야 둘이 가는 게 낫고, 같이 먹고 싶은 걸 사러 다니는 걸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공다혁이 직장에 다니고, 또 히어로 활동까지 하던 시절에는 아내가 그걸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도 해줄 시간이 없었지만, 히어로 활동을 은퇴하기로 마음먹은 이후로는 항상 이가영과 장을 보러 함께 가곤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장을 보고 돌아오던 길에, 빵을 먹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빵집에 들러 빵을 조금 사 나오던 길이었다.

-이이이이잉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사이렌 소리.

“꺄아아악!”

“도망치세요! 슈퍼 빌런이야!”

슈우우우욱

이가영이 서 있는 방향으로 입간판 하나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속도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얼굴에 가면이 씌워져 있지 않으면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그 입간판을 바라만 보고 있던 그때, 또다시 다크 카이저가 나타나 입간판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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