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NEW 아스트로 스타즈(1)
“쟈기야… 이번엔 음습하게 종이백을 뒤집어쓴 머저리 때문에 잡혀가는 거야?”
“쟤가 음습한 시커먼 머저리의 친구인가 봐, 쟈기야….”
“꼭 지처럼 촌스러운 옷 입은 애들만 친구인가 봐….”
“이 음습한 변태 히어로 놈들… 두고 보자.”
“다음번엔 절대 안 잡힐 거야. 알겠냐, 음습한 변태 히어로 놈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나는 경찰차에 타고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주얼리 커플 빌런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마스터! 정신이 좀 드세요? 다행이에요, 마스터.”]
“다크 카이저. 정신이 좀 드나? 몸은 어떤가?”
내 눈앞에 보이는, 종이봉투를 뒤집어쓴 남자. 엉성하게 구멍 두 개 뚫린 종이봉투를 뒤집어쓰고 있는 익숙한 마스크. 급하게 뛰어온 건지 옷은 타이즈가 아닌 일상복이었지만, 내 눈앞에 보이는 이 사람은 분명 원작 히어로 페이퍼 백이었다.
“페이퍼 백?”
“페이퍼 백이 아니라, 래피드 스타다. 아까 네가 기절하기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만든 이름을 존중해줬으면 좋겠군. 다크 카이저.”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페이퍼 백을 구했으니까, 페이퍼 백이 다시 히어로를 할 일은 없었을 텐데….
내가 몸을 일으키는 것도 까먹은 채 멍하니 페이퍼 백을 바라보고 있자,
“아직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모양이군. 저기 응급차가 있는데, 진찰이라도 받아볼 텐가?”
“아니오. 이 정도는 괜찮소. 래피드 스타.”
내가 몸을 일으키기 위해 바닥을 짚자, 내게 손을 뻗어오는 페이퍼 백.
나는 내 우상 중 하나이던 히어로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짝….
짝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짝
갑작스레 주변에서 쏟아지는 박수갈채.
“고마워요! 다크 카이저! 덕분에 살았어요!”
“고마워요! 페이퍼 백!!”
“다. 크. 카. 이. 저! 멋있다!!”
“페이퍼 백, 가면 좀 바꿔요!!! 가면 너무 못생겼어요!!!”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마워요, 페이퍼 백!!!”
“페이퍼 백이 아니다, 소년!! 래피드 스타다!!!”
“아하하하하!”
페이퍼 백이라는 소리에 버럭 소리를 지르자, 주변에서 깔깔 터지는 웃음소리.
“얼굴에 쓴 가면 모양 보면 페이퍼 백이 아니라 래피드 스타 맞잖아요!”
“래피드 스타가 아니라 페이퍼 백이라니까?”
“저거 봐! 본인도 인정했다!”
“으아악! 나를 속이다니!!”
다시 한번 터지는 웃음소리.
그렇게 시민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화를 내고 있는 페이퍼 백의 가면 너머의 눈은, 분명 웃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히어로라는 건….
내 머리를 때리는 듯한 깨달음에 잠시 멍하니 시민들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다시 한번 페이퍼 백의 손이 뻗어왔다.
“거, 돌아오니까 좋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다크 카이저.”
저야말로. 래피드 스타.
나는 뻗어진 그 손을 잡았다.
* * *
/다시 이틀이 지난 뒤 tattoo Daphne./
제인? 방금 뭐 한 거야? 화면이 간질간질 했는데?
[“네?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착각했나?
나는 지금 히어로 밀키웨이의 가게 다프네의 문 앞에 서 있다.
얼마 전, 잿빛 망토단의 전초기지 중 하나로 쓰이던 건물에서 발견한 아이들….
이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나는 히어로 밀키웨이에게 부탁해 함께 다른 아이들을 구출할 히어로를 모아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그리고 약속한 날짜인 오늘… 나는 다프네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고 있는데….
[“마스터. 왜 혼자 애니메이션 이전 이야기 같은 소리를 중얼중얼거리고 계시는 거예요?”]
아니, 그냥 히어로 활동 도중 버릇 같은 거야.
[“그건 그렇다 치고. 문 앞에서 안 들어가고 뭐 하시는데요?”]
아니… 막상 문 열고 들어가려니까 또 어색해서. 역시 창문으로 들어갈까?
[“컨셉을 지키기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현재 풍속이 4.3m/s, 딱 망토가 나부끼기 좋은 풍속이거든요. 지금 창문 벌컥 열고 들어가면 망토 휘날리는 연출이 아주 제대로일걸요?”]
그래? 역시… 창문으로 가는 편이….
그때, 벌컥 문을 열고 나타나는 황서현.
“거기 서서 안 들어오고 뭐 해요?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거기 서 있으면 다 보여요. 오늘은 손님이 많아서 커튼치고 창문 닫아놨으니까, 그냥 문으로 와요.”
“…….”
밀키웨이… 이제 너무 나를 잘 아시는 거 같은데….
나는 당황을 숨기고 문 안으로 들어섰다.
흐읍.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인물들을 보고, 나는 환호성을 지를 뻔한 것을 겨우 참아냈다.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크 카이저 님!!”
“오랜만이네, 다크 카이저. 이번에 꽤 큰 건 있다고 해서 왔어.”
밀키웨이와 친한 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올 거라고 생각했던 퀘이사.
“다크 카이저, 그렇게 느려서야 히어로 활동하겠어? 아니, 나 래피드 스타가 너무 빠른 건가?”
얼마 전, 닥터 보기맨 사건 이후로 다시 활동을 시작한 히어로, 래피드 스타.
아니, 페이퍼 백.
“뭐야? 다들 아는 사이야? 나만 처음 보는 거야?”
그리고,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결국 오늘 만나게 된 아스트로 스타즈의 마지막 멤버, 슈팅 노바!
“다크 카이저 님? 왜 저는 반가워하지 않으시는 거 같은지… 역시 제가 오신 게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겁니까? 역시 저, 다크 스코프는 이런 데 끼기엔 너무 나이 들었다, 이겁니까?”
사실 끼워주고 싶진 않지만, 오지 말라니까 너무 심하게 삐쳐서 어쩔 수 없이 불러온 다크 스코프 아저씨까지.
“모두들 와주셔서 고맙소. 이렇게 많은 분이 와주실 줄은 몰랐군.”
결국, 아스트로 스타즈의 멤버 모두가 모이고야 말았다.
* * *
전번에도 말한 적 있지만, 아스트로 스타즈의 멤버는 총 5명.
STAR LIGHT
QUASAR
MILKY WAY
RAPID STAR
SHOOTING NOVA
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나와 같은 반 친구로 자주 본 적 있는 강수아, 퀘이사나 내가 치료를 받기 위해 자주 들르는 tatto Daphne의 주인 밀키웨이, 그리고 얼마 전에 함께 빌런을 쓰러트린 적 있는 래피드 스타의 경우는 모두 잘 알고 있을 거다.
모두 진짜 히어로로서 자신의 길을 알고 있는, 완성된 히어로들이다. 사명감과 영웅심도 가지고 있고, 자신만의 정의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 정의를 관철할 힘 또한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인물, 슈팅 노바는 조금 다르다.
슈팅 노바는 스타라이트와 엮이기 전까진 의뢰를 받아 일하는 히어로. 바꿔 말하자면 돈 받고 일하는 히어로였다.
그런 히어로가 히어로 집단인 아스트로 스타즈에 가입해서 진짜 히어로가 될 때까진, 꽤 아픈 이야기가 있다.
돈을 받고 일하는 히어로 슈팅 노바, 본명 설지원은 사실 아픈 동생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일을 해야만 했고,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힘을 범죄에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힘을 나쁜 사람들을 향해 쓰지 말고, 누군가를 돕는 데 써줬으면 좋겠다고 하던 동생 설지나의 설득에, 설지원은 자신의 힘을 범죄에 사용하는 대신, 돈을 받고 일하는 히어로로서 활동하기로 마음 먹는다.
여기서 끝난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설지나의 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는 데에 실패하고 말았고. 그 후, 설지원은 동생이 원하던 대로 자신의 힘을 사람들을 구하는 데에 쓰기 위해 진짜 히어로로서 활동하게 된다… 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불행을 딛고 일어난 히어로였다.
그리고 난 얼마 전, 래피드 스타의 아내 이가영을 구하던 도중 히어로의 불행을 이용해선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었다. 그래서 제인을 통해 설지나의 병을 구할 방법을 알아내, 익명의 이메일을 보내 설지나의 병을 고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이건 순전히 내가 그 병의 치료제로 사용될 수 있는 미래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고, 나는 이 정보를 알게 된 슈팅 노바가 은퇴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납치해서 써먹는 쓰레기들을 처리한다? 좋지. 히어로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다만 내 말은 그거야. 그런 일을 할 거면 며칠 뒤에 애들 팔아먹으러 올 배를 습격하자, 이거야.”
“팔아먹을 위기에 처한 애들도 구하고, 거기에 애들 사러 왔으면 돈이든 비싼 물건이든 가지고 왔을 거 아냐. 그거까지 한 번에 노획해서 나눠 가지자, 이거야. 그래서 우리가 손해 볼 게 없다니까?”
말을 끝낸 슈팅 노바가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훅 빨아들였다 허공에 내뱉는다. 허공에 내뱉어진 연기는 맞은 편에 있던 퀘이사의 손짓에 바로 흩어진다.
도너츠 잘 만드네.
“그건 돈 벌 생각에 가득 찬 당신 생각이지. 그동안 어두운 곳에 갇혀서 고생할 애들은 생각 안 해? 그리고 여기, 병원으로도 쓰는 곳이야. 담배 꺼.”
퀘이사는 슈팅 노바의 입에 물려 있는 담배를 강제로 잡아채 신경질적으로 껐다.
실내 흡연은 선 넘긴 했지. 잘 모르겠지만 여기엔 나랑 강수아. 미성년자가 두 명이나 있다고.
아무래도 슈팅 노바는 동생의 병이 고쳐져도, 돈 받는 히어로 활동은 그만두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 애들 고생하는 건 마음 아프지. 그. 런. 데. 애들 고생하는 게 마음 아프다고 잿빛 망토단 놈들 기지를… 어디 보자. 우리 여섯 명으로 다 뒤져 구출할 순 없어. 현실적으로 보자고. 현실적으로.”
부스럭
그 말을 듣고 종이봉투를 쓴 페이퍼 백이 종이 비비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인명 손실이 일어날 상황을 방치할 순 없지 않겠나? 슈팅 노바. 일단은 알아낸 장소에 대해선 구출 활동을 시작하고, 팔려고 나가는 애들에 대해선 이차적으로 다시 구출 활동을 시작하는 게 맞지 않겠나?”
“아니죠. 괜히 먼저 들쑤셨다가 나머지 아이들을 데리고 잠수타 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그럼 그 나머지 아이들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합니까?”
음. 다크 스코프 아저씨의 말도 일리가 있군.
“그만, 그만! 그만 싸워요. 일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끼리 싸워서야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어요!”
이 싸움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 지켜보고 있던 밀키웨이가 싸움의 중재에 나섰다.
밀키웨이는 묘한 카리스마가 있기 때문인지, 꽤 흥분해 보이던 히어로들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좋아요. 이렇게 하도록 하죠.”
오. 역시 밀키웨이인가. 무슨 계획이 있는 모양이지?
“아직 이 사건을 가져온 다크 카이저의 의견을 들어보지 못했잖아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도 다크 카이저니까, 다크 카이저의 의견을 일단 먼저 들어보자구요.”
그 말과 동시에 장내의 시선이 내게 모두 몰린다.
“그렇죠. 다크 카이저의 사이드 킥인 저도 찬성입니다. 다크 카이저 님이라면 분명 무슨 의견이 있으실 겁니다.”
아예 아무 생각이 없이 모은 건 아니긴 했는데… 시선이 모이니까 조금 민망하네.
물론 당연히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을 모으자고 했던 건 아니다. 이 정도 네임드 히어로들이 모였다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어제, 잿빛 망토단의 머리 위치를 알아냈소. 머리부터 처리하도록 하지.”
“그런 건 일찍 말해주면 좋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