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NEW 아스트로 스타즈(2)
원작에서 잿빛 망토단 본부의 위치는 등장한 적이 없었다. 잿빛 망토단은 내가 「Heroicest」를 보는 걸 그만둘 때까지 멸망하지 않았다.
아스트로 스타즈는 잿빛 망토단의 단장, 클록 헤드(cloak head)를 몇 번이나 쓰러트렸지만, 클록 헤드가 쓰러졌다고 해서 잿빛 망토단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초능력이라는 파워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우월주의는 당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원래 살던 세계가 평등할 수 있었던 건, 어느 특정한 개인이 죽일 수 있는, 휘두를 수 있는 폭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인 이상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누군가에게 행하는 폭력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세상은 아니다.
이 세계에서 큰 힘을 가진 슈페리어 한 명이 마음만 먹는다면, 어쩌면 도시 하나쯤 지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렇게 큰 힘을 가진 슈페리어들이 서로 힘을 합친다면? 그렇다면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슈페리어 우월주의는 그래서 생겨나는 거고, 그 슈페리어 우월주의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클록 헤드가 무너져도 또 다른 클록 헤드가 생겨나게 될 뿐, 절대 잿빛 망토단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진 않는 것이다.
지직….
스피커가 연결되는 소리가 잠시 들리더니, 이번 일에 참여하기로 한 히어로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아. 다들 잘 들리시나?”>
<“아아. 잘 들린다, 오버.”>
<“아주 잘 들립니다. 여러분처럼 기라성 같은 히어로들이 모여 있는 임무에 함께하게 되어, 저 다크 스코프 너무 영광입니다.”>
<“이 인이어 통신기… 정말 괜찮은데? 이런 좋은 장비들은 어떻게 구한 거야?”>
<“지난번에 물어보니까 친구한테 비용을 내고 만들었다고 하던데… 좋은 기술자를 알고 계시는 거 같아요.”>
<“그런 좋은 기술자가 있으면 공유 좀 합시다. 서로서로 돕고 살아가면 좋잖아.”>
제인, 통신 볼륨 조금만 줄여줄래?
[“네. 마스터.”]
항상 혼자 일하다가 여러 명이서 일하려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네.
내가 제인을 통해 만들어낸 통신기가 꽤 성능이 좋아서인지, 다들 신이 나서 사용해 보느라 아까부터 너무 정신이 없다.
하긴… 내가 제인이랑 함께 일하는 게 익숙해져서 그렇지, 꽤 괜찮은 물건이긴 하다.
귀에 있는지 없는지 모를 착용감은 물론이고, 귀 안쪽으로 장착해 겉으로 표시가 나지도 않는다. 몸에 부착되어 있는 리모컨의 조작법 또한 간단한 편인데다, 선명하게 전달되는 목소리까지….
천재 능력자들이 많은 세계관이지만, 정신계열 능력자들… 그중 기술자형 능력자들은 죄다 괴팍한 경우가 많아, 좋은 물건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편이다.
그리고 내가 일행에게 전해준 물건이 또 하나는 아니니까.
<“…담배불 켜는 게 여기서도 보이는데, 담배는 끄는 게 어떻겠나, 슈팅 노바.”>
<“괜찮아. 쟤네한텐 안 들켜. 하루 이틀 불붙여 본 거 아니니까 걱정 마.”>
<“밀키 언니. 대체 저 사람은 어떻게 데려온 거야? 저 사람 돈 안 주면 일 안 하는 거 아니었어?”>
<“뭐, 은퇴했던 페이퍼 백도 돌아왔는데 나라고 꼭 돈 받고 일해야 한다는 법 있나? 내가 꼭 해야 할 일은 돈 안 받고도 할 수 있어.”>
<“어머. 돈 받아가 놓구선….”>
<“페이퍼 백이 아니라 래피드 스타다.”>
<“히어로들의 담소를 듣고 있다니… 너무 감동입니다. 제가 히꿈사라는 카페를 하나 운영하고 있는데… 혹시 가입해 주실 분 안 계십니까?”>
아직도 시끌시끌하네… 다들 긴장도 안 하나… 난 긴장돼 죽겠는데….
[“저 사람들은 나름 꽤 오랫동안 히어로 활동을 해온 사람들이니까요. 기록을 살펴보니까 서로 겹치는 활동을 한 경우도 꽤 많아요.”]
그렇긴 해. 지금 이렇게 시끄럽게 사담하는 게 오히려 긴장을 푸는 걸 수도 있고… 그래도 한 명 한 명 다들 강한 사람들이니까.
나는 지켜보고 있던 마트의 조명색이 바뀌는 것을 보고 한참 사담 중인 히어로들의 단체 통신에 연결했다.
<“준비하시오.”>
<“오케이.”>
대형마트의 불은 영업시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야간에 물류 정리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야간에 시작한 물류 정리는 때에 따라 날이 새서 영업시간이 시작될 때까지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곡중동에 있는 D-E마트 또한 마찬가지로 야간에 물류 정리를 하긴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곡중동 D-E마트의 불은 밤에도 꺼지지 않았다.
바로 이 대형마트가 현재 잿빛 망토단의 본부였으니까. 낮에는 일반적인 대형마트처럼 운영하고, 밤에는 빌런 집단의 기지가 된다. 나름대로 걸리지 않고 숨어 있기 위해 머리를 쓴 거다.
잿빛 망토단은 본부의 지시 사항을 건물의 조명 색깔이나, 켜진 조명과 꺼진 조명 등의 암호를 통해 전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잿빛 망토단의 지시 사항입니다. 상태 양호. 주변 세력과 마찰 및 충돌 없음. 납품일이 다가오므로 상품의 품질 관리에 주의할 것.”]
나는 제인이 해석해 준 암호의 해석본을 그대로 단체 통신에 알려주었다.
<“아이들을 물건 취급하다니… 아니, 담배 좀 끄라니까? 미션 시작 전까지 그럴 거야?”>
퀘이사의 분노에 찬 목소리.
<“안 보인다니까 그러네… 너나 감정에 치우쳐서 사고 치지… 습… 후… 말아.”>
<“으이이익… 말을 말자.”>
퀘이사와 슈팅 노바는 원작에서도 자주 싸우는 편이었는데, 그건 스타라이트가 없어진 이 세계도 별로 다르진 않은 모양이다.
[“퀘이사는 강수아일 때랑은 성격이 완전히 180도 다르네요.”]
원래 히어로들의 컨셉은 들키지 않기 위한 연기에 가까운 거잖아.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능력의 발동에 심리적인 영향이 크다는 것은, 능력의 발동에 필요한 트리거 컨셉이 히어로들의 심리적인 부분과 영향이 깊다는 거니까요. 일단 마스터의 컨셉도 사실 마스터가 어릴 때 만들었던 중2병 히어로잖아요?”]
아니, 나는 슈페리어도 아니고 니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건데, 갑자기 왜 패?
듣고 보니 시크하고 말수 없이 혼자 지내는 강수아보단 퀘이사 쪽이 훨씬 더 감정적이고 생기있는 느낌이다. 이건 강수아가 강수아로서의 인생보단, 퀘이사로서의 히어로 생활에 더 진심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10초 후에 돌입하도록 하지.”>
<“숫자는 제가 세겠습니다. 다크 카이저 님…! 하나… 둘….”>
저 안은 실질적으로 잿빛 망토단의 본부, 안쪽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터다. 옛날의 나였다면 겁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렸을 거고. 지금의 나라면 절대 저런 위험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진 않았을 테지만.
<“다섯… 여섯….”>
전초기지에서 맡았던 사료 썩는 냄새, 아이들의 목에 걸려 있던 쇠사슬, 철창 안에서 손을 뻗어 경례하던 작은 아이들이 떠오르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사람이라면, 정상적인 개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꼴을 보고 화를 참을 수 없을 거다.
퀘이사, 래피드 스타, 밀키웨이, 슈팅 노바… 라인업은 충분하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것이다.
<“여덟… 아홉… 열!”>
나는 건물의 옥상에서 뛰어올랐다.
슈우우웅-
내 머리 위로 작은 빛이 날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신체 능력자인 퀘이사는 빛과 열을 흡수하는 머리카락을 가졌다. 그 머리카락은 많은 에너지를 흡수할수록 더 밝게 빛난다. 그렇게 모은 에너지는 퀘이사가 원한다면 신체를 통해 발산할 수 있다.
내가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 운명의 장막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퀘이사의 비행 속도는 내가 사용하는 활공 능력과는 차원이 다른 속력을 가지고 있다.
퀘이사가 꼭대기 층인 4층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몸을 틀어 그 밑, 3층으로 향했다.
제인. 불 꺼.
텅-
발전기가 내려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대형마트의 불이 전부 꺼졌다. 내가 유지할 수 있는 장막의 유지 시간은 약 3분. 예전에 비하면 범위도, 유지 시간도 발전했지만, 역시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다. 대형마트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많은 걸 해낼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은 아닌 것이다.
“어? 뭐야? 불이 왜 꺼져?”
쨍그랑!
CRASH!
* * *
창문이 깨짐과 동시에 옆에서 당황하고 있던 단원을 발로 냅다 차 기절시켰다.
자. 뉴 아스트로 스타즈. 임무 시작이다.
“뭐야? 침입자다!”
나는 내가 가까이 있는지도 모르고 마네킹 옆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놈의 턱에 주먹을 먹였다.
POW!
쯧. 소리를 지르기 전에 처리했어야 했는데, 하필 들어온 곳이 의류 코너라 마네킹이 너무 많아 착각했다. 사방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불이 켜지기 전에 최대한 많은 수를 줄여놓을 필요가 있다.
제인. 열 감지 모드 켜줘.
곧장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형태가 잡힌다.
진작 이렇게 할걸.
이 층에 보이는 사람의 숫자는 총 8명. 방금 쓰러트린 두 명을 제외하면 6명이 남는다. 한 층에 있는 사람 치곤 적은 편인가?
나는 곧바로 다음 상대를 향해 냅다 달렸다.
<“와. 진짜 불이 꺼지네. 다크 카이저의 능력으로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거야?”>
<“다크 카이저 님의 능력은 끝이 없군요… 저 또한 정진하겠습니다.”>
일행들에겐 어둠 속에서 앞을 볼 수 있는 적외선 장비를 만들어줬기 때문에, 내가 만든 어둠 속에서도 앞을 볼 수 있을 거다. 고작 3분 동안 쓸 수 있는 장비치곤 비싼 편이지만, 내가 가진 것을 아끼고 싶지 않았다.
삐융-
달려가는 나를 향해 날아오는 광선 빔. 아무래도 빌런 본부다 보니 괜찮은 장비를 가지고 있는 놈들도 있는 모양이다. 피하기엔 너무 빠르다. 나는 날아오는 광선을 향해 지옥의 화염을 뿌렸다.
화르륵!
BOOM!
검은색의 화염이 허공에서 광선과 마주치며 작은 폭발을 만들었다. 폭발로 만들어진 빛에 주변이 밝혀지며 내 모습이 드러났다.
DU-DA-DA-DA!
곧바로 나를 향해 날아드는 총탄. 머리, 목, 심장. 총탄이 노리는 위치가 정확히 내 급소만을 노린다. 실력자다. 피할 순 없다.
나는 망토를 끌어당겨 다크 쉴드를 만들어내 총탄을 막아냈다.
ti-tik-ti-tik-ti-
내가 막아내길 기다렸다는 듯 날아오는 광선 빔. 이번에도 피하긴 글렀다.
Dark Shield
■■■■■■□□
순식간에 줄어드는 다크 쉴드의 에너지. 예전보다 강해진 탓인지 광선 빔에 소모되는 에너지는 줄었지만, 그렇다고 많이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나는 곧장 몸을 굴려 기둥 뒤로 숨었다.
너무 정확하고 빨라. 보통내기가 아니야.
나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기둥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상대를 확인했다.
슈퍼 빌런, 미즈 컴뱃(Ms. Combat).
잿빛 망토단의 간부 한 명이 나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