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흑염의 사용법(1)
“죽어!! 이 새끼야!!”
DU-DA-DA-DA!!
나는 스킬이 부족하다.
내게 날아오는 총탄을 가까스로 피해내며 나는 생각했다.
[“네? 마스터의 다크 카이저 설정 노트의 두께를 생각해 보면, 스킬이 적으신 건 아닌 거 같은데요?”]
아니, 그런 스킬 말고, 이 AI야. 이게 게임이냐? 경험이나 기술적인 부분 말이야. 나는 그런 게 압도적으로 약해.
내가 압도적으로 이긴 사람들은 전부 조무래기거나, 갓 능력을 각성한 초짜들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면 요행으로 방심시켜 운이 좋아 이겼던지.
스카 페이스.
근접 전투와 나이프술에 압도적인 스킬을 가지고 있는 스카 페이스와의 전투에서, 나는 사실상 거의 죽을 뻔했다. 분명 뼈를 으스러트렸다고 생각했지만, 스카 페이스가 도망칠 때의 움직임은 크게 다친 사람의 움직임은 아니었다. 아마 퀘이사가 날 구하러 오지 않았으면, 그대로 벨제뷔트가 있는 지옥으로 떨어졌겠지.
“놈!! 여기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으아아아!”
나는 주변을 휙휙 둘러보며 나를 찾는 빌런의 모습을 보았다. 어두워서 나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모양이다.
등과 허리, 허벅지에 잔뜩 달려 있는 무기들, 전신의 근육을 드러낸 복장, 뒤로 가지런히 묶은 갈색 머리칼. 그리고 지나치게 분노해 있는 태도.
미즈 컴뱃(Ms. Combat).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압도적인 전투 기술을 가진 기술형 신체 능력자이다. 수많은 무기를 등에 짊어진 미즈 컴뱃은 그 무기 전부를 활용해 압도적인 화력으로 전투를 주도한다.
미즈 컴뱃만으로 골치 아픈데, 여기 안엔 미즈 컴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거슬리는 조무래기들부터 처리하기 위해 나는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부스럭.
기둥 뒤에 숨어 있던 진열대 안에 비닐로 쌓여 있는 옷가지가 있었다. 총알을 피하는 데에 정신이 팔린 통에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손으로 짚어버리고 말아, 비닐 만지는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놈!! 거기냐?!”
띵… 띵… 띠디딩….
나는 내 옆으로 떨어진 물체를 보며 숨어 있던 벽 뒤에서 몸을 날렸다.
미친 새끼 아냐, 이거?
떨어진 수류탄이 폭발하며 파편을 뿌려대는 것을 보며 나는 허공에 흑염을 뿌렸다.
“으아아아아아!!”
삐융-
미즈 컴뱃의 분노한 목소리와 함께 쏘아진 광선이 흑염과 부딪혀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내가 피하길 기다려 저걸 쏴 재낄 거라 예상하고 미리 흑염을 뿌리길 잘했다.
미리 벨제뷔트와 하루 단위의 흑염 사용에 대한 계약을 맺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버티기도 쉽지 않았을 거다.
비록 놈한테 오늘 번 동화율의 60퍼센트나 떼어줬어야 했지만.
요즘 말수도 없어지고 흑염의 사용에 대한 값도 비싸게 받는 느낌이다. 혹시 무슨 일을 꾸미는 건 아닌지 의심되긴 하지만, 제인이 제대로 감시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긴 할 거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부족하면, 압도적인 속도로 누르는 수밖에.
제인. 스피드 모드 온.
SUIT MOD
The Dark Kiaser
슈트의 두께가 얇아져 방호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필요할 때 외에는 잘 쓰지 않긴 하지만, 지금은 써야 할 때다.
나는 허공에 뿌려진 흑염에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옆으로 달려 나갔다.
“으아아아아! 얘들아!! 죽여 버려!!”
미즈 컴뱃과 조무래기들이 튀어나온 나를 향해 총알을 뿌려댔다. 나는 달려 나가며 집어온 의류 거치대를 거의 던지듯 휘둘러, 내 앞에 있는 조무래기 한 놈을 쓰러트림과 동시에 놈이 들고 있던 총을 집어 들어 반대편 기둥 쪽에 있는 놈을 향해 겨눴다.
“히이익!”
물론 총을 쏠 생각은 없었다. 깜짝 놀라 기둥 뒤로 숨어버리는 놈을 무시하고, 내게 달려드는 조무래기 놈을 향해 개머리판을 냅다 휘둘렀다.
CRASH!
가까이 붙어 오려고 했던 걸로 보아 신체 능력자였던지 휘두른 개머리판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꽤 묵직했지만, 개머리판에 정통으로 맞은 탓에 몸이 휘청였다.
만약 파워 모드였다면 기절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스피드 모드는 역시 힘이 조금 부족하다. 나는 휘청이는 놈의 턱에 다시 한번 개머리판을 올려붙이곤, 몸을 숙이며 슈트 모드를 바꿨다.
SUIT MOD
The Dark Kiaser
ZIE-YOU!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광선.
챙그랑!
내게 다가온 놈이 들고 있던 나이프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으하하하! 요놈 꽤 잘 싸우는구나! 마음에 들었다!”
나는 과장된 미즈 컴뱃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떨어진 나이프를 집어 듦과 동시에 곧바로 옷더미 속을 향해 찔렀다.
“끄아아악!”
제 친구가 당하는 동안 숨어 있다 나를 기습하려던 놈의 어깨에 칼날이 박혀 들어갔다. 재생 능력자인지, 근육이 칼날을 붙잡고 재생하려는 기미가 느껴져 나는 칼날을 비틀어 당기며 나이프를 뽑았다. 파워 모드가 아니었으면 뽑지 못했을 만큼 강한 인력이 느껴진다.
뚜둑
안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놈의 팔이 늘어진다. 늘어진 손에 길쭉하게 솟아 있는 손톱이 보인다. 육체의 상태도 그렇고, 내가 역으로 기습하지 않았다면 이 녀석한테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쓰러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놈의 얼굴을 걷어차 기절시켜 주고, 나이프를 들어 올려 기둥 뒤에 숨어 있는 놈을 겨눈다.
내 생각을 읽은 제인이 투척 경로를 보여준다. 나는 제인이 알려주는 루트를 향해 나이프를 집어 던졌다.
휙… 휙… 휙….
살짝 휘어져 날아간 나이프가 기둥 뒤에 숨어 있던 놈의 어깨에 맞는다.
“으악!”
자세가 무너진 놈과 내 사이에 있는 카트를 냅다 걷어찼다.
툭… 툭… 툭….
BOOM!
걷어차인 카트가 선반에 부딪혔고, 부딪힌 선반은 도미노처럼 무너져 놈의 몸 위를 덮쳤다.
그와 동시에 꺼졌던 불이 다시 들어온다. 항상 사람으로 가득 차 있던 대형마트 의류 코너에서 서 있는 사람은 나와 미즈 컴뱃, 둘 뿐이다. 땀에 젖어 있는 미즈 컴뱃의 번들거리는 근육이 곧 튀어나올 것처럼 꿈틀거린다.
“이놈. 꽤 잘 싸우는구나. 이름이 뭐냐?”
“어둠의 황제. 더 다크 카이저요.”
“으하하하하! 웃기는 이름이구나. 네놈을 찢어버릴 이 몸의 이름은 ‘미즈 컴뱃’이라고 한다.”
“빌런의 이름 따위 하나도 궁금하지 않으니 말하지 않아도 좋소.”
살기(殺氣).
마주 보고 있으니 느껴진다. 온몸이 긴장으로 떨린다. 몸에서 열이 나고, 땀이 흐른다.
뚝
내 턱에서 흘러내려 온 땀이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미즈 컴뱃이 양손에 들고 있는 기관총을 나를 향해 겨눈다.
DU-DA-DA-DA!!
조금 쉴 틈 없이 다시 내게 쏟아지는 총탄을 다크 쉴드로 막아내고, 스피드 모드로 변형하며 미즈 컴뱃을 향해 내달렸다. 근접전에서 이길 거란 보장이 없긴 하지만, 별다른 중장거리 견제기가 없는 지금 상황에선 근접전으로 끌어들이는 방법 외에는 상대할 만한 방법이 없었다.
이번에 경험치를 얻으면 새로운 능력에 대해서 고려해 봐야겠다… 무슨 능력이 좋을지 확인하려면 끔찍한 내 설정 노트를 제인을 통해 열어봐야겠지만.
Dark Sh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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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탄을 막아내며 다크 쉴드가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남은 에너지는 큰 거 몇 방 막고 나면 한계에 다다를 수준이다.
철컥….
다크 카이저 슈트의 스피드 모드는 래피드 스타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빠른 편이다. 미즈 컴뱃은 양손에 들고 있던 기관총을 놓아버리고 곧바로 등 뒤에서 샷건을 꺼내 손에 쥐었다.
“몸놀림이 빨라졌군! 이놈!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PTANG! PTANG!
꽤나 가까워진 상태에서의 샷건 연사라 피할 각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크 쉴드를 들어 올려 샷건의 탄환을 막아냈다.
Dark Shield
■□□□□□□□
다크 쉴드가 한 칸 남았을 때쯤, 놈이 내 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샷건 탄환을 더 막아냈다간 쉴드를 뚫고 내 몸에 총탄이 박힐 거다. 나는 더 이상 방아쇠를 당길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놈이 들고 있는 샷건의 머리 부분을 발로 걷어찼다.
“끄라아아아아아아!”
샷건의 탄환이 허공을 때림과 동시에, 샷건을 놓아버린 미즈 컴뱃의 주먹이 나를 향해 휘둘러진다. 미즈 컴뱃은 대부분 총기를 이용하여 싸우지만, 그렇다고 근접전이 무시할 수준은 절대 아니다. 미즈 컴뱃의 주먹 또한 스피드 모드가 아니었다면 피하기조차 힘들었을 만큼 빨랐다.
시험 삼아 뻗어 오는 주먹을 팔을 들어 받아내 보았다. 꽤 묵직하게 들어오는 타격. 받아내지 못할 수준은 아니지만, 받아내서 좋을 것은 없다.
미즈 컴뱃의 템포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나 또한 반대편 손을 뻗어 미즈 컴뱃의 명치를 노렸다. 내가 뻗어낸 주먹 또한 미즈 컴뱃의 팔에 의해 튕겨져 나간다. 주먹에서 느껴지는 반탄력이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르다. 육체의 강도 또한 강화되어 있는 듯하다. 만화책으로 봐서는 알 수 없던 부분이다.
그 이후로 탐색하듯 이어진 몇 번의 공방에서, 나는 미즈 컴뱃의 전투 능력 수준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슈트로 보호되어 있는 내 몸보다 단단한 몸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능력자를 상회할 만큼은 튼튼하다. 스피드 모드로 변형되어 있는 나보다 느리지만, 스피드 또한 어지간한 능력자들을 상회할 만큼은 빠르다. 힘은, 스피드 모드로 변형되어 있는 나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 차이를 뚫을 만큼 압도적인 전투 기술과 경험의 차이가 존재했다.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공격 방식, 내가 당해본 적 없는 여러 가지 기술적인 공격들이 내 몸에 타격을 누적시키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백 프로 내가 패배한다.
상상하지도 못한 각도에서 뻗어 나오는 공격을 피하며, 나는 몸을 움츠리며 흑염을 뿌렸다.
“으랴아아아!”
내가 뿌린 흑염을 미즈 컴뱃이 기합을 외치며 가볍게 피해냈다.
그리고 위협은 미즈 컴뱃뿐만이 아니다. 내가 열 감지 모드로 파악했던 사람의 숫자는 총 8명. 내가 지금까지 쓰러트린 조무래기의 숫자는 6명. 나와 싸우고 있는 미즈 컴뱃까지 7명. 그렇다면 아직도 한 명이 이 안에 숨어 나를 노리고 있을 거다.
불이 꺼져 있었을 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불이 켜진 지금은 알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열 감지 모드를 켜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을 정도로 은밀한 녀석이었다.
투명화 능력자다. 투명화 능력자가 내 옆구리를 노리고 있었다. 미즈 컴뱃을 상대하며 저놈까지 상대하기엔 벅차다. 저놈이 무얼 하든 나는 당할 수밖에 없을 거다.
“으라아아아아! 하지 마!!! 내가 이길 수 있다! 오래간만에 재밌는 놈을 만났으니 나서지 마라!! 이놈은 내 상대가 못 된다!”
미즈 컴뱃의 일갈에 내게 다가오던 투명화 능력자가 멀어지는 것이 열 감지 센서로 보였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내가 미즈 컴뱃을 쓰러트릴 기미가 보이면 요놈은 나를 바로 공격해 들어오겠지.
이 상황을 타개할 새로운 능력이 필요했지만… 지난번 닥터 보기맨과의 전투에서 경험치를 모두 소모하고, 히어로들에게 임무를 위한 장비를 만들어주느라 경험치가 부족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참 감 없는 소년이로군. 어둠의 황제라는 이름이 아깝다. 내가 흑염을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지.”】
여태까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벨제뷔트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