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흑염의 사용법(2)
【“내가 힘을 나눠주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되었던 거 같은데. 어둠의 황제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주제에 적응력이 너무 미숙하군.”】
난 원래 세계에선 히어로물이나 덕질 하는 히어로물 오타쿠였단 말야….
만화책 내용을 알고 들어온 덕에 슈트를 가지게 된 것뿐이지. 스타라이트는 이미 능력을 가지고 있던 슈페리어였던 것에 반해, 나는 들어와서도 내추럴 판정을 받았다. 애초에 이능력을 사용하는데 익숙한 몸이 아닌 거다. 슈트빨로 히어로를 하고 있었을 뿐이지. 그나마 각성한 능력도 한쪽 눈에만 집중되고 있을 뿐이고.
【“자기 객관화가 제대로 되어 있군. 어둠의 황제.”】
POW!
내 몸에 정타로 틀어박힌 미즈 컴뱃의 주먹질에 휘청거리려는 몸을 이를 악물어 버텼다.
“으하하하하!! 요놈!! 깡다구가 좋구나! 마음에 들어!”
벨제뷔트!! 알겠으니까 가르쳐 준다는 거나 빨리 알려줘!
【“미안하군. 내가 말해야 할 것들을 온전히 말할 수 없게 막는 존재가 있어서 말이야. 말해도 되는 수준을 확인받느라 조금 늦었다.”】
“으랴아아아! 이건 어떠냐?”
원투 펀치에 이어 들어오는 훅.
팔을 들어 전부 막아내도 흘려지지 않는 타격이 몸 안으로 스며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러 개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차원은 차원별로 각자의 디멘션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그리고 그 디멘션 에너지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발현된다. 예컨대, 네가 사는 이 차원의 디멘션 에너지는 인간의 몸에 스며들어 정신을 통해 발현된다. 그게 너희들이 말하는 초능력이라는 것이지.”】
“으하하하!”
“끄라아아!”
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나를 공격해 들어오는 미즈 컴뱃. 전투에 미친 사람 아니랄까 봐 아주 신이 나 있는 모양이다.
그에 반해 나는 미즈 컴뱃의 공격을 피하는 데도 급급했다.
예시 들지 말고, 빨리!! 이러다 나 죽는다니까?
나는 미즈 컴뱃의 발차기를 가까스로 흘리며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지옥은 이 우주와 가까운 차원 중 하나지만, 지옥만의 디멘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네가 사용하는 나의 흑염의 힘도 그런 디멘션 에너지 중 하나지. 그 디멘션 에너지를 지구 차원과 나눠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너와 내가 맺은 계약이다.”】
【“악마와의 계약으로 지옥의 디멘션 에너지를 빌려 쓰는 사람이 더 강한 힘을 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감정’이다. 지옥에 대한 감정. 지옥에 대한 공포, 혹은 숭배. 그게 어떤 방향이든 지옥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이미지에 맞춘 방식으로 사용한다면, 헬 에너지는 더욱더 강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네가 사용하는 것처럼 화염 방사기마냥 뿜어내기만 할 필요가 없는 거다.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해 보란 말이다.”】
상상력…?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 어렵지 않지만… 내 상상력의 결과물이 다크 카이저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상상력의 방향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 수 있다.
[“마스터. 그건 마스터가 어렸을 때 이야기잖아요. 지금은 다르지 않을까요?”]
그래. 지금의 나는 군대 전역까지 하고 왔던 군필자. 완전한 성인. 그러니까 중2병 따윈 벌써 졸업한 지 오래다. 나는 우선 벨제뷔트가 조언했던 것처럼 지옥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해 보았다.
공포… 일단 지옥에서 나온 악마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하며 나는 미즈 컴뱃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화르륵
오른손 위로 흑염이 맺힌다. 내 오른손에 맺힌 흑염이 또다시 발사될 거라 생각한 미즈 컴뱃이 내 손을 피해 몸을 숙인다.
내 손에서 뻗어져 나간 화염은 머리에 뿔이 달린 작은 꼬마 악마의 형태가 되어 미즈 컴뱃을 향해 날아갔다.
[“마스터. 저건 너무 귀여운데요?”]
“으랴아아!”
미즈 컴뱃은 날아오는 꼬마 악마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치이이익
순식간에 흩어지고 마는 두 마리의 꼬마 악마.
그래도 꼴에 지옥의 화염이라고, 미즈 컴뱃의 살갗을 조금 태우는 데에 성공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한 대 맞았다는 듯 미즈 컴뱃은 자존심 상한 표정으로 웃었다.
【“…어둠의 황제가 지옥에 가진 공포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모양이군.”】
[“마스터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모양이에요.”]
“으하하하! 재밌는 놈이군! 이번엔 한 방 먹었다.”
미즈 컴뱃이 등 뒤에서 나이프를 두 개 꺼내 손에 쥔다. 그 칼은 미즈 컴뱃의 덩치에 비해선 매우 작은 편이었지만, 내겐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네가 새로운 무기를 들고 나왔다면, 나 또한 새로운 무기를 보여주는 수밖에.”
미즈 컴뱃이 휘두른 나이프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거 약간 트라우마가 오려고 하는데… 내가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사경을 헤맨 게 나이프에 맞아 입은 상처 덕분이었으니….
휘둘러지는 칼날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는 사이에도 내 팔을 스치고 지나가는 미즈 컴뱃의 나이프.
지난번에 스카 페이스를 상대하며 겪었던 상황과 거의 비슷하다. 전투의 방향이 이대로 진행된다면 스카 페이스에게 패배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미즈 컴뱃에게 패배하고 말겠지.
상상력을 발휘하라… 상상력….
【“이번엔 숭배. 숭배하는 감정은 어떤가?”】
[“무서워하지도 않는 사람이 무슨 숭배의 감정을 가지고 있겠어요? 혹시 우습게 보는 감정 같은 걸로도 힘을 낼 수 있나요?”]
【“지옥은 그런 감정에 힘을 빌려주지 않는다.”】
내가… 내가 지옥에 가지고 있는 감정….
조금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별로 하고 싶진 않았지만 내가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을 거라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SHEEEEK!!
순식간에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칼날에 소름을 느끼며 나는 다시 한번 화염을 흩뿌렸다. 헬-스폰에서 튀어나왔던 벨제뷔트의 모습, 작은 개구리 한 마리가 미즈 컴뱃을 향해 뛰어올랐다.
“으랴아아아아!”
뛰어오른 개구리를 미즈 컴뱃은 별로 힘들이지도 않고 두 개의 나이프로 잘라내어 버렸다. 이번 흑염은 미즈 컴뱃의 살갗도 태우지 못했다.
【“저건 내가 힘을 온전히 가져오지 못해서 취한 모습이었을 뿐이다. 내 원래 모습은 저렇게 우습지 않아! 좀 더 공포스럽고 좀 더 위엄있단 말이다!”】
아니, 지옥의 군주님. 내가 본 게 그거밖에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누가 그딴 모습으로 이 세계에 강림하래요?
【“으아아아!”】
내가 지옥에 가지고 있는 감정… 그리고 그 이미지와 비슷한 형태의 에너지… 역시 이건가…?
“으랴아아!”
쏘아낸 흑염을 피해내고 내게 나이프를 휘두르려는 미즈 컴뱃을 향해 다시 한번 손을 올린다.
뿜어내기 전부터 느낌이 왔다. 이번엔 된다.
나는 내가 생각한 이미지대로 흑염을 뿜어냈다.
키요오오오오!
내 손에서 뿜어져 나온 흑염이 포효하며 미즈 컴뱃을 집어삼켰다.
* * *
지금까지의 흑염과는 차원이 다른, 꽤 강한 힘을 가진 흑염이었다.
【“흑염룡…?”】
【“어둠의 황제가 지옥에 가지고 있는 감정은… 동경에 가까운 것 같군….”】
[“마스터. 혹시 지옥이 멋있다고 생각하고 계신 거예요? 아직도 중2병에서 졸업하지 못하신….”]
아니… 아니!! 아니야!! 내가 아직도 중2병일 리가 없어!! 말도 안 돼!!
다크 카이저라는 이름도 쪽팔리는데, 오른팔에서 흑염룡이 나간다고? 그런 창피한 능력을 사용해야 한단 말이야?
루키 히어로니 뭐니 하며 나를 좋아해 주던 사람들도, 이 능력을 보면 꽤나 창피하게 생각할 거다. 흑염룡을 뿜어내는 어둠의 황제 더 다크 카이저.
내가 스스로에게 경악하는 사이. 흑염이 꺼지고 쓰러져 있는 미즈 컴뱃의 모습이 보였다. 지난번 파워 피스트 때도 느꼈지만, 흑염은 사람을 완전히 태우지 않는다.
【“지옥의 흑염은 사람의 감정에 관여하기 때문이지. 모든 걸 태우는 불처럼 생겼지만 사실 불의 형태는 지옥의 디멘션 에너지가 발현하기 위한 형태일 뿐이다. 즉, 태우고 싶지 않다면 태우지 않을 수 있다.”】
지금까지 흑염을 뿜어냈을 때 사람이 죽지 않았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나는 새로 얻은 능력에 대한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마스터, 방심할 때가 아니에요. 아직 한 명 남은 걸 잊지 마세요! 쪽팔리고 아니고는 조금 더 있다가 생각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나는 제인의 말을 듣고 열 감지 모드를 켜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내 시야에 걸리는 곳엔 없다. 그렇다면….
[“마스터, 뒤!”]
나는 등 뒤에서 찔러 들어오는 칼날을 피해 몸을 비틀었다. 놈은 내가 자신의 회심의 공격을 피해냈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내 얼굴에 하얀 가루를 뿌렸다.
“으억?”
뭔지도 모르는데 나도 모르게 삼켜버리고 말았다. 짭짤한 맛?
바닥에 떨어져 있는 소금 봉투가 보였다.
“소금?”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투명화 능력자는 기절해 있던 미즈 컴뱃과 함께 사라진 후였다.
* * *
일단 3층은 정리가 끝났기 때문에, 나는 다른 일행에게 통신을 시도했다.
<“여기는 다크 카이저. 3층 클리어. 도움이 필요한 층이 있소?”>
<“어. 1층은 숫자가 꽤 많아서 시간이 좀 걸렸는데, 금방 정리하고 2층의 다크 스코프랑 합류했어. 2층엔 간부가 있긴 한데, 나랑 다크 스코프 정도면 충분히 커버 가능한 수준이야.”>
1층은 슈팅 노바가 맡았던 모양이다. 하긴, 비행 능력도 없고 이동 관련 능력도 없는 슈팅 노바는 입구를 통해 걸어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을 거다.
<“다크 카이저 님. 저 혼자서도 충분히 2층을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실력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얼른 끝내고 3층으로 올라가겠습니다.”>
<“페이퍼 백은 어떻소?”>
<“여긴 지하 1층. 여기도 간부가 몇 있긴 한데… 나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 가능하다네.”>
<“4층으로 올라간 퀘이사는?”>
쨍그랑!
내가 4층의 퀘이사의 안위를 물음과 동시에 4층의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며 빛이 쏟아졌다. 창문 바깥으로 튕겨져 나갈 뻔했던 퀘이사가 다시 허공을 날아 4층으로 쏘아져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도와주세요! 여긴… 조금 힘들어!!”>
나는 밀키웨이의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고, 곧바로 4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 * *
toong-toong-toong!
슈팅 노바가 양손에 하나씩 쥐고 있던 권총에서 화염 에너지가 발사돼 앞쪽에 숨어있던 빌런, 데드 아이를 향해 날아갔다.
총탄이 날아가는 것을 본 다크 스코프는 그대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슈팅 노바의 화염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데드 아이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앞을 돌파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
다크 스코프는 돌파하고 들어간 안쪽의 잿빛망토단원들을 향해 곧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탕탕탕!
당황한 단원들이 다크 스코프의 가슴팍을 향해 총을 발사했지만, 다크 스코프는 총탄을 몸으로 받아내며 단원들을 제압했다.
입고 있는 옷은 자신이 직접 만든 방탄 소재. 가까이서 쏘는 권총탄 정도는 몇 발 정도 막아줄 수 있다. 몸에 멍자국은 조금 남겠지만.
다크 스코프가 뚫고 들어간 것을 본 슈팅 노바가 들고 있던 총을 하나로 합친다.
철컥 철컥. 기계적인 소리를 내며 두 개의 총이 변형하여 하나의 총으로 변한다.
Bang! boom! pang!
“크으윽!”
총탄이 발사되는 소리부터가 다르다. 발사된 총탄은 벽을 뚫고 들어가 데드 아이의 몸을 맞췄다.
이것이 진짜 슈퍼 히어로와 슈퍼 빌런의 전투라는 것인가?
다크 스코프는 두 초능력자의 전투를 보며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