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한밤의 수호자, 다크 카이저(2)
래피드 스타, 공다혁은 건물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옷을 갈아입은 채로 사고 현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 래피드 스타라고 불리는 공다혁에게도 고충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의 실체가 실제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빠르지 않다는 것이다.
지켜보는 입장에선 시간의 흐름을 천천히 흐르게 하고 달려오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느려진 공기의 흐름을 가르고 달려가야 하는 다혁의 입장에선 매번 능력을 쓸 때마다 죽을 맛이었다.
한번 능력을 써서 활동하고 나면, 하루 이틀은 근육통에 시달려야만 했으니까.
신체계열 슈페리어로 알려진 그의 모습과 다르게, 그의 몸은 평범한 인간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히어로 활동의 후유증으로 관절염에 시달려 파스를 붙이고 다니면 다녔지.
그가 딱 붙어 몸을 드러내는 스판덱스 재질의 복장을 하고 다니는 이유도 파스 때문이었다. 늘어진 옷 틈새로 붙이고 있는 파스가 보이진 않을 테니까.
거기에 실제로 자신이 체감하는 속도는 평소보다 훨씬 느려진다는 것도 문제였다.
느려진 세상에서, 느려진 공기 사이를 걷는다고 생각해 보라. 그게 얼마나 답답한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겠지.
남들이 보기에 순식간에 해결되는 사건들도, 그의 처지에선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여야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가 능력을 쓰는 동안 시계가 먹통이 돼서 그렇지, 가끔은 사건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몇 시간을 달려 다녀야 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보통 사건 현장까지 출동해야 하는 일이 생길 땐 자동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 사건은 어쩔 수 없이 달려야만 했다.
사고 현장 때문에 도로가 마비되기도 하는 데다, 건물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한시가 급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후… 슬슬 머리가 어질어질 해지는데.
점점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 공다혁은 잠시 능력을 해제하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어! 페이퍼 백!”
맞은편에 자신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 학생이 보였다. 보통 이렇게 숨을 들이켤 때 마주치는 시민들에게 팬서비스 차원에서 포즈를 취해주기도 하는 편이었지만(사실 그런 식으로 하며 한숨도 돌리고 쉬는 거긴 했지만), 오늘은 서둘러야만 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보였다가 다시 사라진 페이퍼 백을 보고 놀랐던 학생은 스마트폰을 꺼내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기 시작했다.
<야 나 방금 페이퍼 백 봄 잠깐 눈앞에 보였다가 갑자기 사라짐 와 존나 빨라 ㅋㅋ>
그 학생이 스마트폰으로 그 한 줄의 문장을 쓰고 있는 동안, 공다혁은 방금 막 사고 현장이 보이는 길에 도착한 참이었다.
옆으로 쓰러진 건물, 그 주변을 통제하고 있는 경찰과 구조대가 보인다. 그는 남들보다 시간이 많았으므로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구조 활동을 하는데 익숙한 편이지만, 경찰과 구조대를 무시하고 싶진 않았다.
그는 통제하고 있는 경찰과 구조대원의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녕하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 우주를 가르는 혜성처럼 빠르게. 래피드 스타. 방금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늦지 않은 모양이군요. 제가 늦는 일은 없지만 말입니다.”
“어? 뭐야? 히어로?”
“래피드 스타?”
갑자기 앞에 나타난 래피드 스타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경찰과 구조대원. 그가 한창 활동할 때는 안면 있는 사람들이 많아 놀라지도 않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은퇴한 지 몇 년 안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많이 물갈이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 래피드 스타! 서로 충분히 대화할 시간이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무너지려는 건물의 상태를 봐선 그러긴 힘들 거 같습니다만. 빠르게 건물 안 상황에 대해서 알려주시겠습니까?”
“어? 어, 네. 일단 지상에 가까운 1~3층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모두 구출한 상황입니다만, 4층 이상의 사람들은 건물의 상태 때문에, 구조대가 들어가기에 너무 위험한 상황이거든요? 건물이 무너지면서 기둥이 받치고 있는 대신, 강철 문이 꽉 물려 있다거나… 그런 식이면 건물 안에 진입해서 문을 제거했을 때 건물의 붕괴가 더 빨라질 수가 있어서요.”
종합해 보면, 잘못 손대면 어디가 먼저 무너질지 몰라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황, 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리고 사실 이런 상황은 래피드 스타의 주특기이기도 했다. 그가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동안엔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좋습니다. 일단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까 제가 먼저 들어가 확인해 보도록 하죠. 혹시 건물 안에 진입해 있는 구조대원이 있….”
“어이! 거기! 더 가까이 가면 위험해요! 거기서 더 가까이 가시면 안 돼요!”
래피드 스타는 고개를 돌려 구조대원이 소리를 지른 허공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가면을 쓴 한 소년이 어깨에 매단 물건으로 허공을 날아다니며, 카메라를 든 채 사고 현장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순간 래피드 스타는 사고 현장을 도울 새로운 히어로가 등장했나 싶어 반가움을 느꼈지만, 그 반가움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중얼중얼 대며 카메라를 여기저기 들이대는 폼이, 히어로보다는 기자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면 미튜브 나부랭이를 찍는 놈들이거나.’
어떤 쪽이든 사고 현장에서 도움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사고를 일으키면 모를까.
“저기 보이세요? 저 창문에서 한 분이 손 흔들고 계시거든요? 가까이 가서 이야기라도 한번 나눠볼까요?”
역시 아니나 다를까, 무너진 건물에서 떨어진 파편이 소년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아-아-!”
“어-어-어-! 하-아-아-주-우-우-나-아-아-!”
주변의 소리가 마치 늘어진 테이프처럼 함께 늘어지기 시작한다.
래피드 스타에겐 익숙한 상황이지만,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일단 먼저, 소년이 허공에 있다는 점.
래피드 스타는 결국 시간을 멈추고 맨몸으로 뛰어다니는 타입. 발 디딜 땅이 없는 허공에서의 사고는 막아내기 힘들다.
일단은 곧 일어날 사고를 막아내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공다혁은 소년이 다가가는 층까지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람을 치우든지, 파편을 치우든지.
둘 중 하나를 해야 하는데, 둘 다 공다혁의 능력으로는 무리한 상황에 가까웠다. 하지만 무리한 상황이라고 사람의 목숨을 포기할 순 없었다.
“아-아---아-----.”
도착한 창문 앞에 서자, 건물 안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여자가 한 명, 그리고 그 맞은편에 보이는 소년과 그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건물 파편이 보였다.
거의 무한하게 늘릴 수 있는 인피니티 체인도 지금 상황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야 하나 싶던 바로 그때, 공다혁은 허공 저 너머에 흑염의 빛이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와서 다행인걸.
공다혁은 지금 오고 있는 저 영웅을 믿고, 자신의 능력을 해제하고 지켜보았다.
“아아아악!”
“조심해!”
“어?”
슈화아아악.
“역시. 믿길 잘했군. 늦지 않았다, 다크 카이저.”
빠른 속도로 날아온 다크 카이저가 소년을 품에 안고, 떨어지는 파편을 등으로 막아내는 모습을.
* * *
크어어억!
진짜 너무 아프다…!
나는 다크 쉴드로 막아냈음에도, 등허리에 들어오는 충격에 인상을 찌푸리며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허어어억! 히… 히어로?”
내 등 뒤에 있는 날개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소년.
나이는 나랑 비슷한 또래나 되려나. 얼굴에 가면을 쓰고 요상한 장치들을 잔뜩 달고 있긴 했지만, 체격이나 골격을 보면 나랑 비슷한 또래의 어린아이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았다.
이 세계는 이런 부분이 문제다. 히어로라는 거 정말 아무나 하는 거 아니고, 함부로 뛰어들면 안 되는 직종이거든?
근데 개나 소나 자신을 지킬 능력도 안 되는데 뛰어든단 말이지. 최소한 성인은 되고 나서 뛰어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자기 자신을 충분히 책임질 수 있는 나이에나 해야 할 일이라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둠의 황제여.”】
나는 다르지! 물론 내 의지가 들어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난 처음 시작부터 억지에 가까웠다고. 지금은 억지로 살기 위해서만 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일단 품 안에 품고 있던 소년을 구급차 옆에 내려주었다. 구해준 건 구해준 거고, 일단 한마디 해야겠다.
“자, 여… 여러분! 미드나이트 헌터 채널에 다크 카이저가 출연해 주시게 되었네요. 다크 카이저님, 제가 미튜브를 하거든요? 잠깐 출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바닥에 내려주자마자 내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최악의 말을 주절대기 시작하는 소년.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얘는 히어로를 따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관심이 필요한 어린아이였을 뿐.
나는 소년이 쥐고 있는 카메라를 뺏어 들고, 한 손으로 쥐어 부숴 버렸다.
“여긴 네 놀이터가 아니다, 꼬마. 한 번 더 사건 사고 현장에서 유튜브 놀이하다 걸리면, 뼈라도 하나 부러트려 버릴 줄 알아라.”
“아아앗! 내 카메라가! 방금까지 찍은 거 진짜 예술이었는데!”
예술은 무슨. 건방진 꼬맹이 같으니. 부서진 카메라 사이에서 SD카드까지 찾아내 꼼꼼하게 가루로 만들어 버린 후, 나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이, 다크 카이저! 믿고 있었다고!”>
다시 허공에 떠오르자, 스타즈의 채널에서 통신이 들어왔다. 나는 통신이 수신되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앗. 페이퍼 백? 먼저 와 있었구나.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쫄쫄이, 머리에 쓴 종이봉투. 이번에 쓴 종이봉투엔 옷 브랜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눈에 엄청 띄네… 저거 거의 광고해 주는 수준 아닌가? 페이퍼 백이 돈 받아야겠는데.
“어. 역시 페이퍼 백이군. 나보다 훨씬 먼저 도착해 있었어.”
<“당연하지. 내 이름은 래피드 스타.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니까.”>
<“인사는 나중에 제대로 하기로 하고, 일단 일부터 하지. 1~3층의 사람들은 모두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는데, 4층 이상의 사람들은 건물이 어긋나서 문을 열 수가 없다고 한다. 문을 잘못 열었다간 건물이 무너질 수가 있다는군.”>
여기서 내가 새로 얻은 능력을 활용해 볼 차례군. 나는 오른쪽 눈의 능력을 개방시켜 건물 내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내 오른눈부터 날아간 붉은빛이 건물 곳곳을 살핀다. 내가 건물의 구조를 살펴보는 동안, 제인이 나를 대신해서 무너진 건물의 지도와 단면도를 만든다.
곧 붕괴할 수도 있는 부분, 위험한 부분도 붉은 눈을 통해 금방 찾아낼 수 있다.
원작에서 페이퍼 백은 발 디딜 곳이 없으면 갈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었지. 그럼 페이퍼 백이 갈 수 있는 곳을 정리해서 보내주고, 나는 페이퍼 백이 갈 수 없는 곳의 사람들을 구조하면 되겠지.
나는 곧바로 페이퍼 백에게 제인이 만든 지도를 보내주었다.
<“오케이. 역시 다크 카이저랑 일하면 여러 가지로 편하단 말이지. 일단 일 시작하고, 혹시 특이 사항 있으면 바로바로 말하도록 하지.”>
페이퍼 백이 종이봉투 안에 쓰고 있는 고글은 제인이 만들어준 물건으로, 나와의 통신과 데이터 교환을 쉽게 하기 위해 만들어 선물했던 물건이었다.
거기에 빠르게 달려 다니는 페이퍼 백의 눈을 보호하기에도 좋은 장비이기도 했고.
방금까지 창문에 붙어 있던 페이퍼 백과 그 옆에 있던 여성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걸 보곤, 나도 일을 하기 위해 다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