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62화 (62/236)

제62화

한밤의 수호자, 다크 카이저(3)

중간고사의 첫 번째 날이 끝이 났다.

어젯밤에 제대로 된 시험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소연이와 수아가 만들어준 요점 정리가 제대로 힘을 발휘한 덕에, 공부한 것 이상의 성과는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X발! 한소연! 강수아! 너네 진짜 공부 개잘하네. 니네가 알려준 거 시험에 진짜 나오더라.”

그 덕을 본 건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도유진. 저급해 보이니까 욕 좀 하지 마. 바르고 고운 말만 써.”

“와, X발. 강수아. 공부는 잘하는데, 말하는 거 개틀딱 같애. 저급해 보인다? 바르고 고운 말만 써라? 무슨 선생님 같애.”

“뭐… 뭐…? 트… 틀딱?”

틀딱이라는 소리에 충격받은 듯, 목소리가 떨리는 수아.

“아. 공부를 잘하니까 단어 선정이 좀 고급스러운 건가. 내가 좀 촐싹대긴 해. 욕 안 할게. 미안.”

도유진도 그 반응을 눈치챘는지 수아의 비위를 맞춰주지만, 조금 늦은 모양이다. 수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어둠의 황제여. 틀딱이 뭐지?”】

어. 너 같은 사람 말하는 거야.

【“나는 사람이 아니라 악마다… 혹시 이거, 비꼬는 건가?”】

아니 얘, 어제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그래도 시험 때는 좀 조용하더니, 시험이 끝나자마자 너무 시끄럽게 재잘대네.

제인! 얘 좀 조용히 시켜봐.

[“죄송해요, 마스터… 이젠 제 맘대로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마스터께서 부탁하셔야….”]

뭐야? 왜?

【“나랑 약속을 한 게 있기 때문이지. 이제 제인은 내 입을 강제로 막을 수 없다.”】

아니, 왜? 아… 됐다. 제인, 사운드바 켜줘.

[“네, 마스터.”]

[보이스 소리 설정

제인 : ■■■■■

시끄러운 악마 : ■■■■■]

냉큼 보이스 창을 띄워주는 제인.

얘도 많이 귀찮았나 보네.

제인이 맘대로 할 수 없다면 내가 하면 그만이지.

【“아니. 안 된다. 이런 편법은 인정할 수 없다! 이 악독한 놈들!”】

[보이스 소리 설정

제인 : ■■■■■

시끄러운 악마 : ■□□□□]

【“으아아아악! 안 돼!!”】

“어제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우리 집 못 갔잖아. 오늘은 우리 집에서 공부하지 않을래?”

다행히 소연이가 좋은 타이밍에 난입해 준 덕에, 말을 걸어오는 소연이를 본 수아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요즘 둘이 부쩍 사이가 좋아진 기분이야.

“오늘 시험은 너희 때문에 잘 봤어. 어제 가르쳐줘서 고맙다.”

오늘도 무임승차 할 생각이었는지, 어딜 가지 않고 아직도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도유진도, 친하지 않은데 집에 가서 공부하긴 무리였나 보다.

나도 어제 억지로 같이 공부하려다 싸움도 나고 사단이 나기도 했어서, 또 도와주기엔 무리다. 나에게도 염치라는 게 있으니까… 미안하다, 유진아.

“유진아. 너도 우리 집에 같이 갈래?”

어?

“어? 나도? 괜찮아?”

가방을 싸서 나가려다 그 말을 듣고 화색이 되어 고개를 돌리는 도유진. 쟤 공부 열심히 하고 싶다더니, 진짜 진심인 모양이다.

“괜찮아. 대신 오늘부터 우리 친구 하는 거다?”

소연의 이런 말은 나도 의외였다. 원작에서 보았던 소연의 모습은 항상 어둡고 겁 많은 친구였으니까. 그런 모습들은 전부 다 심연의 여왕이 만들어낸, 소연의 약한 모습들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과 우울함만 몰아낼 수 있다면, 누구든 저렇게 밝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거다.

“야. X발. 당연하지! 원래 같은 학교 다니면 다 친구야. 진짜 고맙다. 내가 경찰 되면 이 은혜는 꼭 갚을게.”

도유진, 어제부터 공부 시작한 주제에 자신감이 왜 이렇게 넘치냐?

붙임성이 많이 생긴 소연이와 별개로, 수아는 도유진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아 항상 틱틱댔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된다.

나는 슬쩍 수아의 얼굴 표정을 살펴보았다. 별생각 없어 보이는 표정이긴 한데….

“나강림. 뭘 봐? 표정 꼴 보기 싫어.”

아니. 쟨 원래 소연이 빼면 항상 틱틱대는 애였지. 내가 깜빡했네.

*    *    *

소연의 집은 생각보다 평범한 아파트였다.

“다녀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엄마는 지금 출근하셨을 시간이라 안 계셔.”

“아니, 그럼 왜 인사한 거야? 너가 인사하니까 계시는 줄 알았잖아!”

“아니… 그냥 버릇이라… 미안해. 그래도 엄마껜 말씀드려놨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도유진! 친구 집에 놀러 와서 너 존… X나 시끄럽게 하지 마. 조용히 하고 개… 개쩔게 공부할 준비나 해.”

수아야… 아까 틀딱이라는 말이 신경 쓰였구나. 근데 사용 방법이 너무 어색해….

“아하하하하! 말투 그게 뭐야, 개웃겨!”

도유진이 수아의 말투를 듣고 빵 터져서 깔깔 웃기 시작했다. 옆에서 조용히 키득키득 웃는 소연이는 덤. 나도 옆에서 피식 웃다가, 얼굴이 벌게져 있는 수아를 보고 정신을 차렸다.

“야, 도유진. 층간소음 나니까 적당히 웃어. 너가 웃으니까 동굴에서 메아리 울리는 줄 알았잖아. 무슨 목청이 이렇게 좋아?”

“뭐? 너 죽고 싶냐?”

“야. 근데 소연이네 집 되게 이쁘게 잘 꾸며져 있다. 아기자기해.”

나는 부들대는 도유진을 무시하고, 펜트하우스처럼 예쁘게 정리되어 있는 거실을 보았다.

엄마도 일하시는데, 이렇게까지 깨끗할 수 있나? 이모가 일하시니까 이렇게까지 깨끗하게 관리하기 힘들던데… 엄청 깔끔한 스타일이신가 보네.

“어… 그치. 우리 집도 항상 이렇진 않아… 내 방은 네 명이서 들어오기엔 조금 좁으니까, 거실 테이블에서 같이 공부하자.”

“어. 소연아. 난 니 방 구경 좀 해도 돼? 너처럼 공부 잘하는 애 방은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나도 궁금해.”

“어… 사실 별거 없는데… 그래도 보고 싶으면 볼래?”

“어, 난 볼래.”

소연이 말을 꺼내자마자 후다닥 달려가는 도유진과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는 강수아. 나는 여자애 방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조금 어색해, 가방에서 책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테이블이 새 거 같네. 산 지 얼마 안 됐나 보다. 깨끗하게 쓰고 가야겠네.

“나강림. 넌 안 볼 거야?”

“어? 아니, 그래도 여자애 방을 들여다보는 건 좀….”

“그냥 빨리 와.”

내 손목을 억지로 잡아 끌어가는 수아. 매일 밤마다 히어로 활동을 하니까 손이 거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손이 부드럽고 따뜻해서 조금 놀랐다.

[“마스터. 손 좀 잡아줬다고 헤벌레하는 거… 너무 음흉해요.”]

제인은 반박할 말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내 머릿속에서 살고 있으면 이런 건 좀 모른 척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책이 엄청 많네. 이걸 다 읽은 거야? 대단하네.”

“응… 내가 좋아하는 책만 모아서 가지고 있는 거야.”

열린 방은 마치 침대가 있는 서재 같았다. 방 한편에 가득 채워진 책장과 책상이 하나씩, 그래도 침대가 붙어 있는 벽에는 여러 가지 영화와 드라마 포스터가 잔뜩 붙어 있어 여자애 방이라는 느낌이 들긴 했다.

“소연아, 만화책은 없냐?”

“도유진. 너 지금 공부하러 왔거든?”

“아, 맞다. 나 여기 공부 하러 왔지?”

“어… 우리 대충 봤으면 공부나 할까?”

나는 그래도 여자애 방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게 묘해서 헐레벌떡 테이블로 돌아왔다.

[“마스터. 그냥 친구의 방일 뿐인데 자꾸 창피해하면, 음흉한 생각하는 거 같잖아요.”]

아니라고!!

*    *    *

“도유진. 이번엔 많이 맞았네?”

“어, 진짜?”“당연히 거짓말이야. 이렇게 해서 너 경찰대 갈 수 있겠니? 그냥 포기하고 다른 일 찾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어디 봐봐… 으아아악! 아깝다. 이건 알고 있었는데!”

수아야, 말이 너무 심해.

아까 틀딱이라고 놀림 받은 게 억울했는지, 오늘은 수아가 더 공격적으로 도유진을 공격하고 있었지만… 더 말을 심하게 하는 일진들 사이에서 지내던 도유진에게 딜이 박히는 것 같진 않았다.

띠 띠띠띡 띠띠띠띠띡.

그때, 갑자기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이 시간에 누구 오실 사람 있어?”

“어? 엄마는 5시에 퇴근하시는데….”

시계를 바라보니 지금 시간은 3시. 지금 퇴근하시기엔 확실히 이른 시간이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나타난 사람은, 누가 봐도 소연이의 어머니라고 말할 만큼 소연이와 똑 닮은 아주머니셨다.

“어. 안녕하세요!”

약간 어안이 벙벙한 채로 인사하는 나와 친구들.

“안녕! 얘들아!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해! 내가 너무 일찍 왔지? 소연이가 친구를 집에 데려오는 게 처음이거든. 그래서 오늘 좀 일찍 퇴근했단다.”

“어디 보자. 보니까 네가 수아구나. 듣던 대로 키도 크고 엄청 예쁜 친구네. 모델 해도 되겠어. 그리고… 네가 강림이구나. 들었던 거보다 훨씬 듬직하구나. 운동도 열심히 하나 봐. 어머머, 나 좀 봐. 아줌마가 주책이야. 오호호.”

“엄마!”

“한 명이 더 왔다더니, 네 이름이… 어, 유진이구나. 이름이 참 예쁘다. 유진이도 앞으로 우리 소연이랑 친하게 지내렴. 그래도 거실 참 깨끗하지? 내가 너희가 온다고 해서 청소도 엄청 열심히 하고 가구도 새로 사왔거든.”

“엄마!! 그만해요! 나 지금 너무 창피해!”

“어머어머. 딸이 처음으로 데려온 친구들인데, 엄마가 친구들 얼굴 좀 보면 안 되니?”

“아이. 내일 시험이잖아요. 다음에 한 번 더 데려올게요, 엄마.”

“어머, 얘들아. 아줌마가 피자 사 왔거든? 여기 식탁 위에 올려둘 테니까 공부하다 출출하면 먹으렴!”

얼굴이 빨개져서 엄마를 안방으로 밀고 가는 소연.

“우와….”

“소연이 어머님은 소연이랑 성격이 완전히 다르시네.”

아니, 트라우마 때문에 친구들하고 어울리기 힘들어하던 소연이를 많이 걱정해서 그러시는 거 같긴 하지만… 조금 기가 눌리긴 하네.

“얘들아… 우리 그냥 다시 공부하면 안 될까?”

어머니를 방에 밀어 넣은 뒤 문을 꼭 닫고 테이블로 돌아온 소연의 얼굴은 불타오를 것처럼 벌겋게 되어 있었지만, 아무도 소연이에게 그 사실을 지적하진 않았다.

*    *    *

‘햐. 이성민, 얘는 진짜 편집도 기가 막히게 한다니까.’

오늘 미튜브에 올라갈 영상을 확인한 사하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손에 들고 가까이서 찍었던 영상은 메모리 카드까지 모두 깨져서 사용할 수 없었지만, 드론까지 부서지진 않아 생각보단 만족스러운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야. 오늘도 편집 잘했네. 수고했다, 성민아. 아, 이 영상으로 먹는 수익금은 평소랑 다른 계좌로 빼놔.”

“어? 왜? 어디 다른 데 쓰게?”

“야, 이거 사실 우리 영상이 아니라 다크 카이저 영상이잖아. 영상 수익 꿀꺽했다가 다크 카이저가 열받아서 또 쫓아오기라도 하면 어쩔래? 히어로가 돈 받을 리도 없고, 다크 카이저 영상으로 받는 수익은 전액 기부할 거야.”

‘전액 기부한다고 하면 지가 뭐라고 하겠어? 오히려 칭찬하려면 칭찬해야지.’

어쩌면 영상을 내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영상이 올라가서 지워지기 전에 조회 수와 구독자를 빨아먹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

올라가자마자 좋은 반응을 받으며 순식간에 올라가는 조회 수를 보며, 사하준은 한 번 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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