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happysunday_xbxbxb(2)
골치 아프구만.
나는 엎드려서 움직이지 않는 다혜를 보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원작의 내용들 중에, 내가 자세히 기억하면서 미리 막을 수 있는 사건들은 미리 막기 위해 노력해 왔다.
스카 페이스가 지옥의 문을 열려는 것도 그랬고, 소연이가 심연의 여왕에게 잠식당하는 것도 막아냈다.
아스트로 스타즈의 가족들이 죽지 않기 위해 막아냈고, 나이트 스코프가 빌런이 되지 않게 막아내는 데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그런 내 노력을 비웃듯이, 항상 새로운 사건이 만들어지곤 한다.
나이트 스코프는 빌런이 되는 대신 다크 스코프가 되어 내 사이드킥을 하겠다며 따라다니고, 소연이의 몸에서 빠져나온 심연의 여왕은 지금 어디서 누구에게 붙어 기생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거야, 이 세상은 게임 같은 게 아니니까요. 예전에 하셨던 말이잖아요.”]
그래. 이 세상은 게임이 아니니까. 사건을 클리어했다고 그 일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닌 거다.
인과(因果).
만화나 게임에선 어떤 사건이 어떻게든 결말을 맺게 되면 그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나게 되지만, 이 세계는 만화나 게임 같은 게 아니니까.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이 세상의 사건을 해결하든 간에 인과가 생길 수밖에 없는 거다.
어쩌겠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좋은 인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내 오른쪽 눈의 능력 중 하나인 정신세계에 들어가는 능력을 사용하면, 심연의 여왕이 정신에 들어앉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터.
나는 의자를 끌고 와 다혜의 앞에 앉았다.
“반장. 어디 아프냐?”
다행히 이럴 때를 대비해서, 평소에 반에서 이것저것 오지랖 넓게 참견하기도 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거짓말 치지 마세요, 마스터. 그냥 새 인생 처음부터 사니까 신나셔서 그러셨던 거잖아요. ‘옛날의 나라면 이렇게까지 못 했을 텐데… 회귀라는 게 좋긴 좋아. 친구도 많이 생기고. 나도 이번 생엔 찐X 탈피다.’ 이러셨으면서.”]
나는 왜 내 흑역사를 스스로 만드는 버릇이 있을까? 단지 몇 달 전 일일 뿐인데도 듣는 순간 창피함이 몰려온다.
지금 바쁜 거 안 보여? 반장한테 심연의 여왕이 들어와 있나 없나를 확인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니까 가만히 있어 봐.
[“눼눼.”]
“킁… 뭐… 뭥데… 흥… 아… 아픙 거… 아… 아니니까, 나 싱경 쓰지 말… 말고 너… 너 볼 일 바. 킁… 흥….”
그렇게 질질 짜고 있는데 어떻게 너를 내버려 두니… 지금 우리 반 애들이 전부 너만 쳐다보고 있어.
그래도 썩 나쁜 상황은 아니다. 이 능력은 이전에 제인이 분석했던 것처럼,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에게 먹히는 능력이니까.
사고 현장에서 패닉에 빠진 구조자들을 위해 몇 번 사용했었다.
그러니까 지금 얘가 내 눈만 바라볼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나는 확실하게 심연의 여왕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혹시 어디가 안 좋은지 나한테 말해줄 수 있을까? 내가 양호실에라도 가서 약이라도 받아올게. 잠깐만 고개 들어볼래?”
“아! 나 구냥 냅두라고 햇자나!”
반장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고, 코맹맹이 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순식간에 내게 쏟아지는 시선.
솔직히 이렇게 될 줄 몰라서 너무 당황스럽다.
“아… 아니… 난 그냥 조금 걱정이 돼서….”
드르륵.
“뭐야? 무슨 일이야?”
하필 그때 교실 문을 열고 등장하는 담임 선생님.
“뭐야? 강림이가 다혜 울렸어? 왜 남자가 여자애를 울리고 그래? 너 여자 울리면 네가 울린 여자의 눈물의 100배만큼 지옥에 가서 먹어야 된다.”
【“사실이다. 바람이나 불륜으로 배우자가 피눈물 흘리게 만든 놈들이 지옥에 왔을 경우 사용하는 처벌 방법이지. 100배라는 말은 낭설이지만. 보통은 피해자의 원망이 풀릴 때까지 먹이지.”】
안 물어봤어, 이 자식아.
“저… 제가 울린 거 아닌데요… 어디 아픈가 해서 물어본 건데….”
내가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자, 재밌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반 친구들의 얼굴이 보였다.
이 나쁜 놈들….
“알았으니까 가서 자리에 앉아라. 보니까 올 사람 다 왔네. 잠깐 쉬었다가 1교시 선생님 오실 때까지 자습하고 있고. 다혜는 잠시 나 따라와라.”
“…네.”
힘없이 일어나 담임 선생님 뒤를 따라가는 다혜.
평소와는 확실히 다르다. 신경질적인 반응도 그렇고,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도 그렇고. 감정 조절을 잘 못 하는 느낌이야.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게 생겼는데, 그래서 충격이 큰 거 아닐까요?”]
글쎄. 원작의 설정은 해피 선데이가 누명을 썼다는 설정이었지만, 그건 내가 막아냈잖아. 범인이 그럴 마음을 먹기도 전에 잡아넣었어.
그럼 살인 누명이 아니라, 직접 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도 무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그렇네요.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하실 거예요, 마스터?”]
어. 일단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봐야지. 요 며칠간은. 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나 대신 히어로 활동해 줄 분신이나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마스터가 꽤 노력하신 덕분에, 마스터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잖아요.”]
그래. 이번 사건 조사하는 동안은 간단한 사건들은 다크 스코프 아저씨나 래피드 스타한테 넘겨줘야겠다.
“야, 나강림. 매점 안 갈래?”
“어. 됐어. 나 중간고사 기간 동안 잠을 잘 못 자서 좀 자게.”
“지금 안 오면 햄버거 다 팔리는 거 알지?”
“오냐~ 너나 많이 먹어라.”
우르르 몰려나가는 준석이와 친구들. 그래도 친구라고 챙겨서 놀아주려는 애들이 있는 건 고맙지만, 지금은 좀 바쁘다.
눈이 보이지 않게 책상에 엎드렸다.
조금 사생활 침해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다혜와 담임 선생님의 대화를 훔쳐 들을 생각이었다.
그때, 내 머리를 쿡쿡 찌르는 익숙한 손길.
“야, 나강림. 너도 우냐?”
도유진의 목소리였다.
“야. 나 피곤하다. 잠 좀 자게 내버려 두라.”
“이 누나 좋다고 따라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여자애도 울리고 다니고… 강림이 많이 컸네….”
원래 반 밖으로만 나돌던 녀석이 원래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랑 사이가 틀어진 이후론, 반에서만 서식하며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바깥으로 나가면 옛날 친구들이랑 마주치고, 그러면 어색해지니까.
걔네들이 질이 좋은 애들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대신 반 안에서 어슬렁거리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장 만만한 나를 괴롭히려는 시간이 늘어나 버린 건 조금 귀찮지만.
“나 진짜 잘 거다. 맘대로 해라.”
나는 내 머리를 쿡쿡 찔러대는 도유진의 손길을 무시한 채, 오른쪽 눈의 능력을 개방했다.
내 눈에서 빠져나온 붉은빛이 교실 바닥을 지나 벽을 통과한다.
“방금 뭐야? 뭔가 붉은 게 번쩍 하지 않았어?”
“아니? 난 못 봤는데.”
“잘못 봤나?”
붉은빛이 지나온 길에서 놀고 있던 친구들 중 한 명이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댄다.
이런. 이거 감 좋은 애들 눈엔 잡히나 본데. 앞으로 사용할 땐 이런 부분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다.
빌런들 같은 경우에는 감이 좋은 정도를 넘어서 붉은빛에 수상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벽을 뚫고 내달려 다혜와 담임 선생님이 들어간 상담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래… 그렇구나. 그럼 선생님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괜찮아요… 그래도 저희 부모님이신걸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그래. 수업 곧 시작하니까, 가서 수업 준비하렴. 또 무슨 일 있으면 선생님한테 말하고.”
“네… 감사합니다….”
벌써?
박준석이랑 도유진의 방해 때문에 조금 늦어, 앞 내용을 듣지 못했다. 그래도 반응을 보니 특별한 이야기를 한 것 같진 않긴 한데….
“저… 선생님.”
그렇게 몸을 일으켜 상담실 밖으로 나가려던 다혜가 몸을 돌려 담임 선생님을 다시 바라본다.
“어. 그래. 말해보렴.”
“선생님이 아까 그러셨잖아요. 당장의 미래 때문에 꿈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그래… 부모님이 반대하시긴 하지만, 그게 평생 네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란다. 네가 지금은 다른 길을 걷더라도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언제든 다시 네 꿈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건 제가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걸까요? 세상이 반대한다고 해서 꼭 모든 걸 포기할 필요는 없는 거겠죠?”
“부모님이 반대하는 것이, 네 꿈을 이 세상이 반대하는 것은 아니란다… 이렇게 할까?”
안쓰러운 표정으로 다혜를 바라보던 선생님이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메모하시며 입을 열었다.
“혹시 네가 그린 그림이 있으면 몇 개 뽑아서 선생님한테 줘볼래? 큰 대회에서 수상을 한다면, 네 실력을 증명할 수 있어. 그럼 부모님께서도 계속해서 반대하시진 않을 수도 있어. 네 실력을 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네. 감사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증명해 볼게요.”
“그래… 다음 시간이… 수학 시간이었나? 내가 1교시 선생님한테 말씀드려 볼 테니, 조금 더 쉬어야겠으면 상담실에서 좀 쉬다 가도 된단다. 선생님은 1교시 수업이 있어서 먼저 가마.”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도 금방 돌아갈게요.”
* * *
드르륵.
상담실의 문이 닫히고, 다혜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허공을 바라보았다.
괜히 담임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 아니구나.
오늘 오전 내내 했던 고민들이 조금은 풀린 기분이다.
그래.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해피 선데이를 포기할 필요는 없는 거다.
사실 다혜는 현실의 자신보다 해피 선데이인 자신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현실의 삶은 무채색이다.
학교, 공부, 성적, 부모님. 그것들엔 색이 없다. 전부 무채색으로 덧칠되어 있다. 쳇바퀴처럼 항상 같은 일상이 반복될 뿐, 거기에 새로움은 없다.
반면 해피 선데이의 삶은 형광빛이다.
하루하루가 다르다. 마음먹은 거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어떤 장난을 치든 재미있다며 칭찬받고, 그런 자신을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실의 무채색은 해피 선데이의 형광빛 삶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한 덤일 뿐이다.
다혜는 그래서 불안했었다.
살인 사건으로 인해 앞으론 해피 선데이의 삶을 포기해야 하게 될까 봐. 세상이 자신에게 형광빛을 빼앗고, 다시 무채색의 세상으로 떨어트리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해피 선데이의 삶에 시기와 질투, 악플은 당연한 것들이었다.
살인 사건 또한 내가 한 것도 아닌, 그냥 누군가 던진 악플과도 같은 사건이다.
예전에 악플이 달렸을 때 다혜는, 해피 선데이가 그렇게 겁쟁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저지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면 그만일 뿐이다.
“치이이익… 칙… 칙….”
다혜는 손에 스프레이 캔이 쥐어진 것처럼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입으로 스프레이 캔에서 가스가 나오는 소리를 흉내 냈다.
이번에도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면 되는 거다.
허공에는, 다혜의 눈에만 보이는 해님이 활짝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