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happysunday_xbxbxb(3)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다혜의 모습은, 분명 조금 이상해 보이긴 하지만… 당연히 확신할 순 없었다.
아까 전에 멘탈이 흔들렸을 때 정신 내부를 조금 들여다봤어야 했는데… 지금은 많이 늦은 감이 있다.
다혜가 허공에 그리고 있는 그림이 무엇인지라도 알아보기 위해, 다혜가 바라보는 방향을 함께 바라보고 있던 바로 그때,
“거기, 나강림이 깨워라.”
뭐야? 벌써 수업이 시작했어?
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엎드려 집중하고 있었던 탓인지 입가에 침이 조금 흘러있길래 서둘러 손등으로 훔쳤다.
“나강림이는 왜 수학 시간마다 자고 있는 거냐? 거, 내가 다른 선생님들한테 물어보니까는, 다른 선생님들 시간에는 그렇게 자고 그러지는 않는다던데… 나강림이는 이… 수학 선생님을 무시하는 거냐?”
아니… 선생님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요… 제가 밤마다 밤잠 아껴가면서 범죄와의 사투를 해야 하는데요. 선생님 과목이 1교시에 들어 있는데다, 선생님 말투가 너무 졸립거든요.
“죄… 죄송합니다… 일어났습니다.”
나는 후다닥 교과서를 펼치고 수업 준비를 했다.
* * *
다혜가 다시 반으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10분 정도 지난 후였다. 나 같으면 배려받은 김에 한 이십 분 낮잠 때려 버리고 돌아올 거 같은데….
[“마스터랑 저 친구가 같나요? 마스터는 마스터가 뭘 하든 믿어주는 이모랑 함께 살고 있잖아요. 저 친구는 성적 떨어지면 또 혼날 거고.”]
나는 그런 이모를 속여가며 밤마다 밤거리를 쏘다니고 말이지.
나는 교과서 대신 참고서를 꺼내고 혼자 문제를 풀기 시작한 다혜를 슬쩍 바라보았다.
역시 이렇게 들여다봐선 진짜 그런 짓을 저지른 친구라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부 잘하는 평범한 친구일 뿐이다.
제인. 오늘 나오는 사건, 래피드 스타랑 다크 스코프한테 업무 분담 좀 시켜줘.
* * *
“다녀왔습니다.”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당연했다. 다혜의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으니까. 말 없는 야근은 일상에 가까웠다.
다혜가 초등학생일 시절에는 야근 때마다 전화나 문자로 달래주곤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중학생이 된 시점부턴 빈도수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서로 익숙하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다혜는 그런 변화가 민감하게 느껴졌다. 점점 적어지는 부모님과의 대화가 무서워 중학생 때부터 성적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성적이 올라갈 때마다 해주시는 부모님의 칭찬이 좋았다.
하지만 성적이 점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 위를 노리기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전교 100등 할 땐 등수 올리는 게 참 쉬웠는데, 전교 10등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부턴 한 문제, 혹은 두 문제만으로 등수가 갈리곤 했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다혜의 부모님은 다혜의 성적이 오를 때 칭찬해 줬었던 것만큼 떨어지는 것에도 민감했다는 사실이다.
다혜의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다혜의 부모님은 다혜를 차갑게 질책했다.
요즘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는 거니, 마는 거니?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떨어졌다고? 컨디션 관리도 실력이야. 그렇게 해서 대체 어떻게 대학에 들어가려고 그래?
이럴 줄 알았다면, 성적을 올리는 게 아니었는데.
“흑… 끄흑… 흑흑….”
다혜는 냉장고에서 꺼낸, 차갑게 식은 음식을 씹으며 눈물을 삼켰다.
오늘은 더 무섭고 힘든 날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계셨으면 했는데….
위이이잉-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그때, 대충 식탁 한켠에 던져두었던 다혜의 스마트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빠였다.
다혜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그냥 아빠에게 모두 말하고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밤마다 몰래 나가 무슨 짓을 했는지, 그리고 이제 자기가 어떤 누명을 쓸 위기에 처했는지. 지금은 모두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빠… 저… 오늘….”
“서다혜! 너 담임 선생님이랑 상담하면서 미술이 하고 싶다고 했다며.”
“…네.”
“네 성적을 생각해 봐. 조금만 더 노력하면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을 얻을 수도 있는데… 미술 해서 뭐 해먹고 살려고 그러는데? 너도 엄마 아빠처럼 힘들게 벌어먹고 살 거야?”
“아니, 아빠… 저….”
“아빠 지금 너 때문에 퇴근하고 있으니까 이따가 집에 들어가서….”
다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전화를 끊어버렸다.
위이잉- 위이이잉- 위이이잉-
또다시 스마트폰이 진동하기 시작했지만, 다혜는 받지 않았다.
이젠 이 무채색의 삶을 끝내 버리고 싶었다.
다혜는 방으로 달려가 옷장 깊숙이 숨겨두었던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해피 선데이로 활동할 때 입는 복장과 가면이 숨겨져 있었다.
다혜는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해피 선데이의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부모님의 성화에 평소 하지 않는 화장도 짙고 강하게 바르고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 있는 것은 무채색의 서다혜가 아닌, 형광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해피 선데이였다.
그런 다혜의 뒤에서 다혜도 모르게 번쩍, 붉은빛이 반짝였다.
* * *
아이 씨, 깜짝이야. 갑자기 옷을 갈아입고 그래.
어떤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옷을 갈아입는 바람에 깜짝 놀라 능력을 흩었다 다시 사용했다.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들은 슈트를 입을 때 옷을 벗고 갈아입는 게 당연한 건데, 나는 항상 입고 있는 옷 위에 슈트가 덧씌워지는 느낌이다 보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화 슈트를 가지고, 저처럼 멋진 AI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마스터 외엔 없어요.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들여다볼 땐 항상 주의해 주시길 바래요.”]
아니. 아무것도 못 본 거 너도 알잖아. 이건 업무상 과실이라고.
[“네네. 그러시겠죠.”]
그때, 집 창문을 열고 빠져나가는 해피 선데이의 모습이 보였다.
슈트 갈아입는 건 나랑 달라도, 몰래 창문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은 나랑 비슷하네.
나는 벌써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하는 해피 선데이의 뒤를 따라붙기 위해, 다음 건물을 향해 점프했다.
* * *
무채색 세상에 사는 다혜일 때의 자신과 다르게, 해피 선데이의 세상은 형광빛이다. 그리고 다혜일 때는 사용할 수 없는, 해피 선데이만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오 해피, 해피 선데이.
해피 선데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골목길을 걸었다. 해피 선데이가 지나는 벽마다 해피 선데이가 그려놓은 낙서가 한가득 새겨졌다.
“후-.”
해피 선데이는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물감처럼 진한 액체를 후 불어 바닥에 흩뿌렸다.
해피 선데이의 열 손가락은 붓이자, 물감이다.
평소에는 페인트 스프레이를 사용한 그림을 즐기는 편이지만, 얼마 전에 SNS에 올린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두 써버렸다. 다시 사기엔 다혜의 용돈이 부족했다.
내일이면 다혜가 용돈 받는 날이라 새롭게 페인트 스프레이를 사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겠지만, 해피 선데이는 이제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앞으로 다시 다혜로 돌아갈 일은 없으니까.
오늘로써 다혜라는 무채색의 옷은 끝이다. 앞으로는 해피 선데이로서 거리에서 살아가 보기로 했다.
탕.
가까운 곳 어디에선가 총소리가 들려왔다. 해피 선데이는 방금 벽에 그려놓은 그림 안에 몸을 숨겼다.
지금껏 해피 선데이가 별별 심한 장난을 치면서도 잡히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해피 선데이는 그림을 그릴 수도, 자기 자신이 그림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자신이 물감을 뿌려놓은 벽 어디라도 해피 선데이는 몸을 숨길 수가 있었다.
드르르르륵. 탕.
아까 총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가게의 셔터문을 닫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시간을 쓱 살펴보니 슬슬 거리에 있는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는, 밤늦은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도시의 밤거리는 위험한 편이므로, 조금 과하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해피 선데이는 조금의 위험 요소만 있어도 그림 속으로 숨어들곤 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본 뒤, 해피 선데이는 그림 안에서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오늘은 어떤 장난을 쳐볼까?
도로 한가운데에서 아이돌 노래를 틀어놓고 춤이나 한번 춰볼까?
아니야. 한 지 얼마 안 됐어. 재미없을 거야.
이 건물 창문마다 내 얼굴을 그려놔 볼까?
아니야. 이건 너무 식상해.
해피 선데이는 평소엔 팔로워들의 댓글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장난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부재중 전화 12통… 문자 35통….>
부모님에게서 전화와 문자가 꽤 많이 와 있었지만, 모두 깔끔하게 지워 버렸다. 다혜라는 이름의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서 없어졌다.
띠링-
순식간에 쌓여오는 알람 메시지.
메시지의 윗부분부터 살펴보던 해피 선데이는 이윽고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자신은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duck_tape_tt123051 아니, 근데 살인은 선 너무 넘었는데. 너 진짜 미친X 아님?
@bring_me_tea5512 해피 선데이 님, 방금 뉴스에 님 나왔어요. 수배령 떨어졌대요. 님 완전 대스타 됨 ㅋㅋ
@twotw0two_1212 피해자의 아버지가 남긴 편지입니다. 아직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면 읽어보시고 빨리 자수해 주세요. (링크)
….
..
.
퍽-!
해피 선데이, 아니 다혜는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벽에 던져 부숴 버렸다.
형광빛으로 빛나던 해피 선데이의 시간도 순식간에 무채색으로 덧칠되기 시작했다.
이제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는 재미있다고 자신의 편을 들어주던 자신과 절친한 팔로워들도, 모두 자신을 비난하고 있었다.
손가락에서 나오던 형광빛의 물감도, 모두 무채색의 검정색 물감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제는 있어야 할 곳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갑작스럽게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다혜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벽에 다시 그림을 그리곤, 그 안으로 숨어들었다. 한숨 자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런 다혜를 붉은빛이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 * *
뭐야… 쟤 저기 들어가서 자는 거야?
이쯤 되면 슬슬 심연의 여왕이 충분히 잠식할 만큼 절망적인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다혜에게 심연의 여왕이 잠식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혜의 정신 안에 자리를 잡은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럼 대체 이 아줌마는 어디에 숨어든 거야?
【“어둠의 황제여.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저 소녀를 저 안에서 끌어내서 집으로 돌려보낼 건가?”】
아니. 지금까지 같이 봐서 알잖아. 쟤 가면을 도피처로 사용하고 있는 거야. 취미로 하던 장난들도, 이젠 장난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가면이라는 게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 것인지 알려줘야지. 자기가 한 장난들도 장난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큰일이라는 사실을 알려줘야만 하고.
【“틀린 말은 아니군. 저 소녀에게 가르침을 줄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 전에, 나는 쟤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한 놈이 누군지 찾아봐야지.
제인. 일단 이 앞에 카메라 설치하고. 쟤 저 안에서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계속해서 체크해.
[“네, 마스터.”]
그럼… 내가 일 수습하기 전에 깨어나면 쟬 붙들고 있을 사람이 필요하긴 한데.
제인. 다크 스코프 아저씨한테 통신 연결해 줘. 사이드 킥은 이럴 때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