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happysunday_xbxbxb(4)
<도 넘은 장난을 하던 SNS 스타, 이번엔 살인까지 벌여… 경찰 수사 착수….>
“아하하하. 다시는 사고를 치지 못하게 만들어준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군. 망령당은 일 처리 하는 방식이 화끈하구만 그래.”
조석한은 간밤에 일어난 일이 쓰인 신문 기사를 읽으며 껄껄 웃었다.
천산시의 시장, 조석한에게는 남들에게 들켜선 안 되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그가 시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비밀.
그는 천산시의 범죄 집단 중 하나인, 망령당과 협력하고 있었다.
그가 천산시의 시장에 당선될 자금을 빌려준 것도, 약에 찌든 시민들을 동원해 수많은 표를 확보하게 해준 것도 전부, 망령당의 보스 미닝리스(Meaningless)의 지원을 받아 해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임기 초반에는 망령당의 눈치를 많이 보고, 망령당이 시키는 일들을 많이 해왔었지만, 1년 전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사실상 천산시를 지배하고 있는 대기업, 경한 그룹의 협력 제안까지 받게 된 것이다.
조석한의 입장에선 당연히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두 개의 총을 가질 기회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천산시를 암약하는 두 조직의 비호를 받게 되었다.
경한 그룹의 경우 굳이 천산시의 암흑가를 손대, 더러운 돈을 벌 필요는 없다. 반대로 망령당은 굳이 천산시의 지배자에 가까운 경한 그룹과 대적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인지 조석한은 그들의 중간에서 줄다리기하며 충분히 필요한 이득만을 골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는 꽤 만족스럽게 생각하던 참이었다.
얼마 전에 자신의 집에 침입해서 자신과 와이프의 얼굴에 낙서한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정신병자가 등장하기 전까진.
시장으로서의 위엄과 체통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아주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미친 범죄자는 심심할 때마다 사고를 하나씩 치기 시작했다.
공공기관의 건물마다, 문화재마다 낙서질을 하는 것은 예삿일이고, 미술관의 물건을 숨겨놓고 알아먹을 수도 없는 수수께끼를 남겨 찾아내게 하는 등의, 이해할 수 없는 장난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결하기 위해선 비용이 꽤 깨지는 규모가 큰 악질적인 장난들이었다.
더욱 짜증 나는 점은, 사람들이 그 미친 범죄자가 하는 범죄들을 우스운 장난 정도로 치부하며 즐거워한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조석한은 그 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 상황을 정리할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경찰도 제대로 해결해 주지 못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조석한은 초법적인 힘을 이용할 수 있는, 자신을 도와주는 두 집단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경한 그룹에게 맡기기엔 너무 사사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조석한은 그 일을 망령당에서 자신에게 붙여준 망령당의 간부, 호플리스(hopeless)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는 묘하게 눈빛에 생기가 없는, 약을 많이 한 약쟁이 같은 느낌이었지만 능력만은 확실한 사람이었고, 일을 맡기고 며칠이 채 되지 않아 시민들이 그 범죄자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만들었다.
관심을 갈구하다 완전히 미쳐버린 정신병자.
바뀐 이미지를 음미하며 조석한은 껄껄 웃었다.
“좋아! 이 정도도 충분히 마음에 들긴 하지만, 설마 천하의 망령당이 이 일을 여기서 끝내진 않겠지?”
조석한은 자신의 뒤에 마치 귀신처럼 서 있는 호플리스를 돌아보았다. 190은 넘어 보이는 큰 키에, 하얗게 질려 있는 듯한 창백한 얼굴. 마치 귀신 같은 사람이었다.
“당연히 아닙니다. 저희를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믿음직한 말이었다. 호플리스가 이런 말을 한 다음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는, 조석한과 함께 일을 하는 동안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드디어 입 안의 충치처럼 나를 괴롭히던 놈을 이 도시에서 완전히 뽑아내겠구만 그래.”
* * *
다시 장소가 바뀌고,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해피 선데이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골목 안.
그 골목 안쪽으로 한 소녀가 들어서고 있었다.
얼굴에는 방긋 웃고 있는 해를 형상화한 가면을 쓰고 화려한 형광빛의 옷을 입고 머리를 염색한 소녀는, 두리번거리며 살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살펴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자신이 한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살인범으로 몰리게 된 상황. 그렇다면 스스로 이 사건의 범죄자를 찾아내고 싶을 터.
당연히 이곳에 와서 범죄 현장을 살펴보고 싶을 터였다.
그래서 그 골목을 바라보는 건물들 안에는 망령당의 당원들이 내려다보며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원래 이곳을 지키고 있던 경찰들은 모두 당원들의 등 뒤에서 약에 취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천천히 자신이 그렸던 그림을 살펴본 뒤, 시체가 있던 곳까지 다가가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당장 소녀의 등 뒤를 습격한다면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테지만, 망령당의 1급 단원, 쉐이커(shaker)는 목표물이 미끼를 제대로 물 때까지 잠깐 뜸을 들이기로 했다.
“조금 더. 잠깐만 더 기다려라.”
지난번에도 비슷한 방법으로 잡으려고 했었지만, 그때는 골목으로 사라진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지고, 다신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리고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자리에 완전히 주저앉아, 핏자국을 바라보고 있는 바로 지금.
“좋다. 바로 지금이다.”
쉐이커(shaker)의 신호에 건물에 숨어 있던 망령당 당원들이 일제히 소녀를 향해 가스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크… 크엑… 켁….”
가스를 들이마신 소녀가 숨 막히는 소리를 내더니 바닥에 쓰러진다.
꽤 민감한 체질이군 그래. 보통은 가스를 마신지도 모르게 잠이 들곤 하는데.
뿌려졌던 가스가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뿌옇던 시야가 돌아오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으하하하. 드디어 이 쥐새끼 같은 놈을 잡는 데 성공했군. 보스가 기뻐하시겠어.”
미닝리스님이 맡긴 일을 성공시켰으므로 쉐이커의 입지 또한 높아질 것이다. 그럼 더 많은 약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럼 쉐이커는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을 테지.
쉐이커는 창틀 위에 놓아두었던 방독면을 얼굴에 쓰고, 건물의 창문을 뛰어넘어 골목으로 들어섰다.
쿵.
약물의 영향으로 근육질로 변해 무거워진 몸이 바닥을 깊게 패었다.
습---.
그런 자신의 뒤로 따라붙는 부하들.
“가서 확인해 봐라.”
습---.
지시를 받은 부하 두 명이 타깃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한다.
“…기… 나… 림….”
쓰러진 채로 뭐라고 중얼대기 시작하는 타깃. 약을 완전히 들이마신 채로 쓰러져서 그런지, 목소리에 힘이 없어 알아들을 수가 없다.
“뭐? 얘 뭐라는 거야?”
“지금 여기, 나 강림.”
갑작스럽게 골목을 비추고 있던 가로등 불빛이 모두 꺼졌다.
* * *
나는 운명의 장막이 가로등을 꺼트림과 동시에, 내 옆에 있던 망령당 당원의 얼굴을 후려쳤다.
“크헉!”
그와 동시에 내 몸에 걸려 있던 홀로그램이 내 격한 움직임 덕분에 해제되었다.
“어? 어?”
검게 변한 내 슈트를 보고도 아직 상황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한 명이 얼빠진 소리를 내길래 곧바로 쓰러진 친구의 옆에 똑같이 뉘어주었다.
이젠 굳이 슈트의 적외선 장비를 사용하지 않아도 어둠 속에서 시야를 유지할 수 있었다.
새로 생긴 오른눈의 능력이 꽤 쓸 만하단 말이지.
살인 사건 현장을 경찰이 지키고 있지 않은 부분부터 수상함을 느낀 나는, 오른눈의 능력을 사용해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창문에 기대서서 골목을 내려다보고 있는 수상한 집단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수상한 빛깔의 약이 잔뜩 담긴 통, 그리고 방독면. 전부 망령당이나 쓸 법한 물건들이었다.
제인의 분석을 통해 통에 담긴 물질이 마약성 수면제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홀로그램과 방독면 모드를 사용한 채 미끼로써 연기를 해 낚아낸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붉은 불빛을 움직여 주변을 살폈다.
대장으로 보이는 덩치 큰 빌런이 당황해서 이 방향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눈에서 요상한 빛이 번쩍번쩍하는 것이, 아무래도 신체를 강화하는 종류의 약을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보통, 그런 약을 쓰는 놈들은 강제로 신체 능력을 개방한 것이기 때문에 대체로 눈이 좋다.
지금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진 않지만, 가까이 오면 나를 발견하고 공격해 오겠지.
놈은 육체 능력이 꽤 좋아 보이니, 한번 대치하게 되는 순간, 남아 있는 잔챙이들에게 등을 보이는 꼴이 되고 만다.
지금의 상태로 질 만큼 수준 높은 놈들은 아닌 것 같지만,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혹시라도 놈들 중 광선총이라도 가지고 있는 놈이 있다면, 내 슈트는 물론이고 다크 쉴드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나는 곧바로 건물의 벽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건물의 벽에 매달린 채로 붉은빛을 움직여 주변을 살펴보았다.
내가 주변을 살펴봄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지도를 만들어내는 제인.
대충 훑어보고 난 뒤 제인의 지도를 살펴봤더니, 이 주변에 숨어 있는 망령당 당원은 10명이 넘어가는 숫자였다.
아니, 평범한 여고생 하나 잡는데 이렇게 많은 인원이 들어온단 말이야? 요놈들 너무하는구만.
[“평범한 여고생치고 저지르는 사고의 수준이 너무 높긴 하죠?”]
그 말엔 동의해. 장난은 여고생이 할 법한 수준을 넘어서긴 해.
그나저나, 혼자 상대하기엔 숫자가 너무 많은걸. 약물 때문에 육체 능력의 수준이 높은 친구들도 많은 편이고, 하나하나 잡는 덴 고생이 많겠어.
【“그럼 내가 더 쉬운 방법을 알려주도록 하지.”】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는 지도의 홀로그램에, 악마 모양의 아이콘이 몇 군데 표시되기 시작한다.
【“방금 놈들이 쓴 수면 마취제가 들어 있는 통들이다. 바람에 흩어지긴 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방독면을 쓰고 나오는 걸 보면 약이 꽤나 독한 모양이다.”】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제인이 방독면을 쓰지 않고 건물 내부에 있는 망령당 당원의 숫자를 표시해 준다.
총 6명.
순식간에 절반의 숫자가 줄어든다.
나는 곧바로 건물을 뛰어다니며 돌을 몇 개 던져 마취제가 들어 있는 통들을 터트려 버리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욱.
“가스! 가스가 샌다!”
“전부 방독면, 방독면 써!”
순식간에 주변에 가스가 차오르고, 방심하고 있던 망령당 당원의 절반의 수가 마취제를 흡입하고 쓰러져 버렸다.
보스를 제외하고 남은 숫자는 총 7명.
방금 가스를 뿜어내는 공격으로 4명을 쓰러트렸지만, 아직도 7명이나 숫자가 남아 있는 상태였다.
아직도 숫자가 꽤 많다. 하지만 놈들은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고, 나는 충분히 시야를 확보한 상태.
“전부 당황하지 마라! 히어로 다크 카이저다. 다들 핸드폰 꺼내고 플래시를 켜서 서로를 비춰. 훈련했던 대로 한다.”
이런. 너무 유명해져 버려 부작용이 생겨 버린 모양이다. 역시 히어로는 유명하면 유명할수록 불리해진다니까.
‘운명의 장막’ 지속 시간은 아직도 3분여 정도 남아 있긴 하지만, 방금의 파훼법으로 인해 거의 효능을 잃어버렸다.
내가 건물 안에 몸을 숨기고 지도를 살펴보며 하나하나 쓰러트릴 방법을 찾고 있던 바로 그때,
<“다크 카이저 님. 제가 왔습니다. 눈 꼭 감으십시오.”>
이 목소리는… 다크 스코프 아저씨?
통신 라인을 통해 다크 스코프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허공에서 작은 깡통 하나가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깡통을 봄과 동시에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돌렸다.
삐이이익-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이 꺼져 어둡던 골목에 갑자기 환한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바로 여기… 나도 강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