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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71화 (71/236)

제71화

@happysunday_xbxbxb(5)

다혜는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에 소스라치게 떨며 눈을 떴다.

날이 너무 추웠다.

내가 창문을 열고 잤던가? 다혜는 창문을 닫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 눈을 떴다.

평소와는 다른, 요상한 방식으로 눌려 있는 세상의 모습을 보며, 다혜는 그제야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깨닫고 말았다.

자신은 가출한 상태였다. 부모님이 전화를 해도, 문자를 해도 받지 않았다. 평소 엄하게 자신을 다그치는 부모님을 생각해 보면, 돌아가면 진짜로 머리를 전부 밀어 버릴지도 몰랐다.

아니, 사실은 그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였다. 심지어 자신은 살인자의 누명을 쓴 상태였으니까. 온 세상의 사람들이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고 있었다.

춥다.

날이 너무 추웠다.

처음으로 집을 나와 맞닥뜨린 세상은 너무 추웠다.

다혜는 숨어 있던 벽 안에서 빠져나와 스마트폰을 찾기 위해 허리춤을 뒤졌다. SNS를 다시 잘 살펴보면,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한두 명은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마음이라도 조금 따뜻해질 수 있을 거고, 그러면 이 추위가 조금 가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스럭.

“…없어.”

다혜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스마트폰의 파편을 보고 나서야, 스스로 스마트폰을 집어 던져 버렸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제야 다혜는 깨달았다. 자신이 SNS를 통해 연기하던 해피 선데이는 진짜 자신이 아니었다.

그저 현실이 무서워 도망치기 위해 숨을 만한 세계를 만들었을 뿐이었다.

조금의 충격만 가해져도 깨지기 쉬운, 유리 가면 같은 캐릭터.

그냥 도망치고 싶어 만들었던 어린 날의 치기.

두텁고 무겁다고 생각했던 SNS 속 세계는 실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얕고 가벼웠다.

평소에 자신이 좋다고 하던, 자신을 믿는다고 하던 SNS 속 팔로워들은, 자신이 살인 누명을 쓰자마자 순식간에 자신을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혜는 자신이 돌아갈 곳이 그렇게 미워했던 자기 집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 내고 말았다.

“흑… 흐흑… 흑… 흑….”

눈물이 흘러, 가면 안쪽에 짙게 칠했던 끈적끈적한 화장이 모두 지워져 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이제 그만하자. 돌아가자.

“흑… 흑흑… 흑….”

“어이~ 뭐야~ 이런 한밤중에 어떤 X이 질질 짜고 X랄이야? 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큰길로 향하려던 그때, 골목길에 누군가 들어서고 있었다.

다혜는 깜짝 놀라 다시 벽 안쪽으로 들어서 보려고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능력이 발동하지 않았다.

“뭐야? 웬 계집애가 칭얼댄다 싶어서 와봤더니, 이거 대박이잖아.”

“야, 쟤 뉴스에 나왔던 애잖아. 현상금도 좀 붙어 있을걸?”

“야, 나도 지금 수배 중인데?”

“쟤는 너보다 비싸잖아, 인마. 범죄 이력이 화려하시잖냐.”

“야, 현상금 받을 수 있는 놈 구하는 건 쉬워. 일단 가면 벗겨놓고 얼굴이나 한번 구경해 보지, 뭐.”

전부 뉴스에나 나올 법하게 생긴 범죄자들이었다.

천천히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하는 남자들을 보며, 다혜는 눈을 감고 주저앉았다.

제발… 제발 누가 절 좀 도와주세요!

그때, 주저앉은 다혜의 귀에 들려오는 기계로 변조한 듯한 이질적인 목소리.

“바로 여기, 나 강림.”

“이건 뭐야?”

“이 새끼. 뭔데 갑자기 치고 X랄이야. 뒈지고 싶냐?”

“알았어. 너… 너 다 가져. 난 현상금 필요 없으니까.”

“으억….”

그리고 곧이어 잠시 이어지던 살벌한 소리가 그치고, 주변이 조용해지자 다혜는 서서히 눈을 떴다.

“얘야. 괜찮니?”

검은색으로 구성된 멋진 슈트를 입은… 배가 조금 툭 튀어나온 중년 남자였다.

온몸에 검은 슈트를 뒤집어쓰고 있는데다 얼굴도 보이지 않았지만, 다혜는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혜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검은 옷을 입은 중년 아저씨는, 자신의 어깨에 걸치고 있던 망토를 풀더니 다혜의 어깨에 둘러주기 시작했다.

“춥겠구나.”

자신의 몸을 덮어준 망토는 따뜻했다.

방금까지 무서워서 흘리던 눈물과는 다른, 조금 더 따뜻한 눈물이 눈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흑… 흑흑… 흑흑흑….”

*    *    *

처음 보는 아저씨였지만, 다혜는 펑펑 울며 아저씨에게 모든 걸 말하고 말았다.

부모님과 겪었던 마찰들, 자신의 꿈, 자기가 도피하기 위해 해피 선데이가 되어 했었던 일들, 그리고 살인 사건의 누명을 쓰고 만 이야기까지.

검은 슈트를 입은 아저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말을 들어주었다.

다혜는 자신의 속에 있던 모든 말을 쏟아내고 난 후에야, 자신이 누군가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고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속마음을 모두 말한 사람이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하기엔 조금 무거운 주제였으니까.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그래. 고생이 많았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여 줄 뿐이었다.

조금 진정이 되고 나자, 이젠 진짜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혜는 몸을 일으켰다.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전… 이제 집에 돌아가려고요… 분명 엄청 화가 많이 나 있을 테니까, 많이 혼날 거고… 아마 머리도 전부 밀려 학교도 못 가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 거다.”

“네?”

“너희 부모님도 지금 너를 분명 엄청 걱정하고, 찾아다니고 있을 거야. 내가 장담하마. 가자. 내가 데려다주마.”

그렇게 말한 아저씨는 등을 돌려 먼저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혜는 아저씨의 그 뒷모습에서 아빠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너희 집이 어디냐?”

*    *    *

다혜의 아빠, 서금식 씨는, 딸 아이의 방 안에서 얼마 남지 않은 머리숱을 부여잡고 후회했다.

뚜- 뚜-

<지금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서금식 씨는 핸드폰의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내 보물>이라고 쓰여 있던 핸드폰 화면이 잠깐 깜빡거리다 꺼졌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딸 아이가 가출을 선택한 것, 그리고 전화도 받지 않는 것. 둘 모두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항상 말도 잘 듣고 부모의 말을 거스른 적이 없던 딸아이였다. 어찌 보면, 그런 딸 아이와 살며 처음으로 하는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싸움의 원인이, 미술을 하고 싶은 딸아이의 꿈이라는 사실이 서금식 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서금식 씨는 사진첩에 들어가 다혜의 담임 선생님이 보내준 다혜의 미술시간 과제물을 들여다보았다.

다혜의 담임 선생님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서금식 씨의 눈에도 다혜의 작품들은 분명 알 수 없는 매력들이 있었다.

미대 출신이었던 서금식 씨도 그 안에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은, 아버지라는 사람이 딸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출한 딸아이와 연락이 되지 않는 지금, 생애 처음으로 깨닫고 말았다.

서금식 씨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챙기고 코트를 챙겨 입었다. 서금식 씨가 다시 한번 딸아이를 찾기 위해 거실로 나가려던 바로 그 순간,

-띠 –띠 –띠 –띠.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텅 빈 거실을 울렸다.

*    *    *

다혜는 집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누르기 전, 뒤를 슬쩍 보았다.

다행히 아저씨는 어디 가지 않고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 거라. 어디 가지 않고 지켜보고 있을 테니. 내가 보고 있으면 부모님도 그렇게 화내시진 못할 거다.”

그 말에 다혜는 용기를 얻어 천천히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0… 6… 2… 1….

비밀번호를 모두 누른 다혜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오늘따라 현관문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누… 누구? 다… 다혜? 다혜냐?”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눈물범벅이 된 아빠의 얼굴이었다. 처음 보는 옷을 입고 화장을 잔뜩 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빠는 다혜의 얼굴을 보자마자 알아보았다.

“아… 아빠….”

“다혜야!”

다혜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이제 분명 혼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오랜만에 맡는 냄새였다.

쿰쿰한 듯한 땀 냄새에 살짝 섞여 있는 듯한 술 냄새. 따뜻하게 감싸주는 아버지의 체온.

다혜는 뒤늦게 자신이 아빠의 품속에 안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안하다… 아빠가 미안해.”

“흐흑… 흑….”

평소에는 정말 싫었던 냄새였는데, 그 냄새를 맡는 순간 다혜는 자신이 정말 집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아빠… 저한테 지금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냐면요….”

아버지에게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던 다혜는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다주었던 아저씨를 떠올렸다.

“아, 아빠. 그전에… 저를 도와주시고 여기까지 데려다주신 분이….”

고개 돌린 다혜의 등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    *    *

나는 다혜의 번호로 아까 전에 찍어두었던 사진을 보내주었다.

조금 전 싸움을 통해 사로잡은 살인 사건의 진범들 사진이었다.

나와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사로잡은 놈들의 얼굴에는, 형광색 페인트로 해님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어휴, 드디어 끝났네.

[“결국 심연의 여왕이 다혜의 정신 속에 있진 않았네요.”]

하아… 그러게. 그럼 또 다른 사람을 찾아봐야겠네.

[“다시 한소연의 몸속으로 들어갔다거나… 하는 가능성은 없을까요? 다시 숨어서 천천히 몸을 키운다든지….”]

【“그건 불가능하다. 지난번 싸움으로 심연의 여왕은 큰 힘을 잃었다. 그 힘을 다시 채우기 위해선 더 많은 양의 어두운 감정이 필요할 거고, 누군가에게 기생하고 있다면 숙주에게 영향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 소연이는 아니겠네. 걔 요즘 엄청 밝아졌거든. 그리고 심연의 여왕이 그런 상황이라면… 얼마 가지 않아서 곧 티를 낼 수밖에 없겠네.

[“최근에 급격하게 기분이 안 좋아졌거나,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한 친구를 찾아야겠네요.”]

“다크 카이저 님. 저 왔습니다.”

아이 씨. 깜짝이야.

나는 다혜의 집 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오른쪽 눈의 힘을 다시 거둬들였다.

방금까지 저기 있던 사람이 언제 여기로 온 거야? 진짜 깜짝 놀랐잖아.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는 주저앉아 도시를 내려다보던 자세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셨군. 고생 많으셨소.”

“아닙니다. 저한테 가르침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무슨 가르침이요?

“평소에 저한테 허드렛일만 맡기신다고 생각했는데… 요번 일에선 조금… 깨달음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평소에 제가 하기 힘든 허드렛일만 맡겼던 거… 마… 맞는데요.

“오늘은 이만 집에 돌아가서 가족과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오늘 나머지 일들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게 고개를 숙인 다크 스코프 아저씨는, 몸매와 어울리지 않는 빠른 속력으로 건물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 나 내일도 학교 가야 하는데….

[4:45]

오늘도 잠은 다 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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