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매드독(3)
도지훈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도지훈이 바라보고 있는 창 너머에서는 작은 새 한 마리가 지저귀고 있었다.
창 너머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으며 도지훈은 천천히 침대에 몸을 뉘었다.
처음 이 세계에서 깨어났을 때, 도지훈은 자신이 경기에서 패배한 줄 알았다.
내가 경기에서 패배해 눕고 말았구나. 나랑 경기 했던 사람이 누구지? 기억이 잘 안 나네.
그런 생각을 하며 눈물 젖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은 마치 5년은 젊어진 듯했다.
‘엄마. 왜 우는데? 내가 죽을 줄이라도 알았어?’
“어…. 므… 에….”
그런 말을 하려던 도지훈은 자신의 입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황해서 몸을 일으켜보려던 도지훈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까지 깨달았다.
그제서야 가까스로 고개를 내려 확인한 자신의 몸은, 그렇게도 열심히 빛나기 위해 만들었었던 건강한 몸은, 모두 그 빛이 바래고 비쩍 말라 있었다.
적어도 몇 개월은 병상에 누워있어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완벽한 환자의 몸이었다. 그리고 도지훈은 그때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신이 격투기 선수로서 활약하던 이야기는, 그저 자신이 꾸던 꿈과 같은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후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도지훈은 천천히 잊었던 자신의 기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동생 도유진이 태어나던 날의 기억,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날의 기억, 자신이 또래 아이들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기억, 학창 시절을 지나 히어로 일에 뛰어들기 위해 노력해오던 기억까지….
단 한 가지 안타까웠던 점은, 그가 자신이 실질적으로 히어로로서 활동했던 때의 기억은 모두 잊어버렸다는 점이었다.
히어로 팀 브릴리언트에 들어가서 활동하던 시절의 기억은 거의 희미하게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다. 당연히 히어로 시절의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니 자신이 사고를 당하던 날 또한 아무런 기억을 하지 못했다.
당시의 뉴스나 신문 기사들을 통해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건물 잔해 안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만을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오빠. 물 마실래?”
그런 도지훈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던 도지훈의 동생, 도유진이 입을 열었다.
“어. 물 좀.”
“화장실은 안 가도 돼?”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계집애가 별걸 다 챙기려고 드네. 징그럽게.
태어난 이후로 지금까지, 자신을 이렇게 잘 챙겨준 적이 없었던 여동생이기에 조금은 어색했지만, 아직 완전히 몸이 회복되지 않은 도지훈으로서는 그래도 여동생이라고 챙겨주는 도유진이 고맙긴 했다.
그래도 약물과, 병원 내부의 의료 초능력자들의 도움으로 인해 몸의 회복 속도는 꽤 빠른 편이었다.
의사가 말하길, 이대로 한 달만 회복에 전념을 한다면 그 이후에는 퇴원을 해도 좋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아졌다고 한다.
“오빠. 오빠가 갑자기 깨어났잖아… 혹시 잠들어 있는 동안에 무슨 꿈이라던가, 뭘 봤다던가 그러진 않았어?”
도유진이 갑작스레 물어보는 질문에 도지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잘 모르겠네. 무슨 꿈을 꿨던 것도 같은데… 전부 기억이 나질 않아서.”
똑똑.
그때,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팀 브릴리언트 소속 히어로, 플리커 오은별이었다.
* * *
경한 타워의 꼭대기 층, 사대희의 집무실. 정대수는 사대희에게 매주 해야 하는 정기보고를 올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프로젝트 리저렉션의 진행과 관련된 보고입니다. 일단 몇 개의 병원에서 10명의 실험체에게 테스트 해봤는데 테스트 결과가 생각보다 만족스럽습니다. 단 한 명의 실험체를 제외하고 전부 가지고 있던 병을 완전히 치유하고 병상에서 일어나게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대수는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정대수의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2차 테스트를 진행할 병원은 골랐고?”
정대수가 건넨 보고서를 훑어보던 사대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사실, 이런 일을 뒤탈 없이 맡길 수 있는 병원은 천산시에선 단 하나밖에 없었다.
“경한센트럴 병원의 한강운 원장이 맡아 주기로 했습니다.”
“테스트 결과 나오면 똑같이 보고서 올리도록 하고. 부작용은?”
“아직까지 부작용은 나타나진 않았습니다만… 아직 부작용이 나타나기엔 조금 이른 시기라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렇군.”
사대희는 다 훑어본 보고서를 불에 넣어 태웠다. 이른바 기밀 수준에 가까운 정보들은 모두 정대수의 수기로만 작성되어 사대희의 손으로 들어간다. 사대희가 읽고 머릿속으로 저장한 정보는 곧장 불에 태워 흔적도 없이 폐기한다.
그런 조심성이 사대희가 지금까지 탈 없이 도시 하나를 집어 삼키고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
“검은 광대와 관련한 보고는 왜 소식이 없지?”
올 게 왔구나.
“저 그게…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났었습니다만… 요즘 도련님이 그 광대 놈에게 관심을 조금 가지고 있어서….”
정대수의 이마 위로 땀방울이 하나 흐르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명령에 불복종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평소 아들을 아끼던 사대희의 모습을 생각하면 정대수가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향이었다.
“하준이가?”
“예….”
정대수의 이마에 맺혀있던 땀방울이 턱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렇군… 하준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광대놈이라… 운이 좋군….”
꿀꺽꿀꺽.
잔에 담겨 있던 술이 사대희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정대수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예. 도련님의 관심사가 바뀌는 일이 있으면 또 바로바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다행히 이 방향이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정대수는 흐르려는 땀방울을 훔치며 고개를 숙였다.
* * *
“자기양~~ 또 검은 쫄쫄이한테 잡혀버렸엉~~”
“크으으윽. 검은 쫄쫄이! 다음번엔 꼭 복수하겠다!”
나는 나를 보며 투지를 불태우는 주얼리 커플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원작「Heroicest」를 볼 땐 그냥 그저 그런 개그 캐릭터들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직접 잡으러 다니는 입장에선 까다롭기 그지없는 놈들이다.
뜬금없이 잘 보이지도 않는 투명한 차를 타고 사라져버리는 데다 겨우 어딨는지 확인해서 쫓아가려고 하면 이미 멀리서부터 투시를 통해 내 위치를 확인하고 도망 다녀버린다.
거기에 조심성도 없는 놈들이라 나와서 대형 사고를 칠까 무서워 빠르게 잡아야 하는 놈들이기도 하고.
거기에 탈옥은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지…. 벌써 두 번째 탈옥이다. 매번 어떤 방법으로 탈옥했는지 찾아서 분석 후 기존 방법은 사용할 수 없게 구금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런데도 매번 또 탈출하는 것을 보면, 내가 모르는 탈출과 관련된 다른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고~ 오늘도 수고 많으심다~. 이거 저희가 해야 되는 일인데. 그쵸?”
내 뒤에서 선 차에서 내려 쥬얼리 커플의 팔목에 수갑을 채우고 있는 이 사람은 정경구 형사.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경찰들과도 자주 엮이게 되는 경우가 많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중 가장 많이 보게 되는 사람이 이 정경구 형사였다.
“그래서 능력자 등록은 언제쯤 해주실 검까? 아. 안 하실 거라굽쇼? 네. 알겠슴다. 매뉴얼이라서 물어보는 거니까 양해해주십쇼.”
또 이러네 이 아저씨.
“난 아무 말도 안 했소만.”
“경찰로서 해선 안 되는 말이긴 한데, 전 히어로하는 사람들이 등록 안 했으면 좋겠어서 그렇슴다.”
“등록하고 나면 경찰을 하시든 군인을 하시든 해야 할 텐데, 둘 다 추천하고 싶지 않거든요. 엔터테인먼트에 취직하실 생각이셨으면 진작 하셨을 거 같기도 하고.”
“경찰하면서 그런 말 해도 되는거요?”
“경찰 하니까 이런 말을 하지 경찰이 아닌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합니까?”
칙-칙-
내 옆에 서서 담배를 하나 입에 물더니 라이터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하는 정형사. 하지만 들고 있는 라이터의 수명이 다한 모양인지 불은 켜지지 않았다.
“거. 미안한데 불 좀 붙여주시면 안 됨까?”
“…그럴 때 쓸 수 있는 능력이 아닌데.”
“거 쪼잔하게 구시네.”
weeeooo-weeeoooo-
정형사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다시 품 안에 챙겨 넣고 있는 사이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형사의 뒤를 따라 지원해줄 특수팀이 오고 있는 모양이다.
특수팀이 오고 나서부턴 경찰들에게 맡겨도 괜찮기 때문에, 자리를 떠나기 위해 나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항상 고생해주셔서 감사함다--!!! 다음에도 잘 부탁 드리겠슴다---! 다크카이자---!”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내 등 뒤로, 정형사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 * *
천산시 괴물 게이트 출현 사건 이후로 약 이 주일이 지났다. 채경이 범인이라는 사실에 수사나 뉴스 인터뷰 등으로 술렁거리던 학교도 꽤 진정이 되었고, 도유진의 오빠, 도지훈의 회복도 꽤 빠르게 진행 중이라고 한다.
원작에서 일어난 적이 있던 큰 사건들도 요즘은 꽤 잠잠한 편이었고, 강력한 슈퍼 빌런들과 관련된 사건들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 뛰어들고 나서 가장 편안하게 히어로 활동을 하고 있는 시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이 주일이였다.
“어? 하늘에 저거 뭐야? 까마귀 같은 건가?”
“어? 다크 카이저다!”
“꺄아아아아아악! 다크 카이저!”
“뭐야? 다크 카이저가 누군데?”
“다크 카이저를 몰라? 뉴스 좀 보고 살아라.”
최근… 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가 올라갔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뉴스에 간간이 나오는 내가 막아낸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 미튜브에 나오는 나와 관련된 설레발, 실제로 나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일화 등이 겹쳐 최근 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다크 카이저! 아까 그 방향으로 퀘이사가 이미 날아 갔는데요!”
“꺄아아악! 데이트 하러 가나봐!”
그리고, 나는 관심도가 늘어나기만 하는 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 경험치 모아서 이동하는 동안 내 모습을 숨길 다른 방법을 찾아보든지 해야겠네.
오늘은 다프네에 모여서 회의를 하는 날이다. 그러니까 퀘이사가 나랑 같은 방향으로 날아갈 수 밖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허공에서 내려와 건물 사이로 몸을 숨겼다. 당분간 별 일이 없으면 걸어다니던가 해야겠다.
* * *
플리커 오은별은, 도지훈의 병실의 문을 닫고 나섰다. 참고 있던 눈물이 주륵, 눈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 누구시더라?’
‘아휴… 죄송해요. 오빠가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서 기억이… 오빠. 이분은 오빠 같은 팀 동료였던 플리커님이셔.’
도지훈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함께 팀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사고를 당했던 때의 기억, 그리고… 자신과 만나던 시절의 기억까지, 전부 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다면,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배신했던 시절의 기억도 모두 잊었을 테니까.
지훈에게 건네주기 위해 가져왔던 스마트폰을 가방 속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지훈이 쓰던 스마트폰을, 사고 당시 몰래 주워다 숨겨뒀었다. 연예계의 비밀 연애라는 게 그러하듯, 전화 하나에는 담긴 비밀이 너무도 많았으니까.
깨어났을 때 돌려주며 사과를 전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오빠. 이제 이런 위험한 일은 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