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86화 (86/236)

제86화

현장학습(5)

지이이이잉-

양손에 달린 드릴이 회전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주요 빌런들이 사용하는 장비는 아니지만, 원작에서도 등장한 바 있던 물건이다. 경한 그룹에서 굴착 장비라는 핑계를 대고 만들었던, 흉악한 살인 병기.

원작에서는 천산시 바깥에 있던 빌런이 천산시 내부로 몰래 반입해 들어온 물건인 것으로 묘사되었었는데, 그 물건의 출처가 여기 있는 물건을 훔쳐서 가지고 들어왔다는 설정이었던 모양이다.

플럭스 공학회 출신의 정신계열 빌런이 이 물건에 영감을 받아 다른 로봇 슈트를 개발하긴 하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겠…! 으아아악!

내 머리 위로 휘둘러진 드릴을 나는 몸을 숙여 가까스로 피해냈다.

쿠쿠쿵!

휘둘러진 드릴은 뒤에 있던 건물의 벽을 쉽게 뚫고 들어갔다.

“예전보다 몸놀림이 좋아졌군, 어둠의 황제, 다크 카이저. 왠지 너랑은 자주 보게 될 거 같아서 말이야. 오늘 같은 날 끝을 보는 게 좋겠어.”

지금 나는 방금 구출해 낸 꼬마 아이를 안고 있는 상태. 저런 로봇을 상대하기 위해선 파워 모드 정도의 화력이 필요한데, 아이를 품에 품고 있는 상황에선 그런 화력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이 상태로 쉐이드와 쉐도우를 던져 봐야 로봇 슈트에 박혀들 리가 없을 테고…. 블래스터 모드를 이용한 공격이 최선이겠지만, 품 안에 아이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다.

지이이이이이잉!

이번엔 내 쪽을 향해 찔러 들어오는 드릴. 뒤로 살짝 물러서서 피하려고 하던 그때,

철커덕 지이이이잉!

팔 길이보다 더 길게 한 번 더 늘어나 나를 공격해 오는 드릴을, 나는 다크 쉴드를 만들어 가까스로 막아냈다.

Dark Shield

■■■■■□□□

총알은 그렇게 쏟아져도 별 피해 없이 잘 막으면서, 이런 공격에는 대체 왜 에너지가 이렇게 많이 깎여 들어가는 거야?

“이런 방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군. 경한 그룹은 이런 걸 굴착용으로 만들었단 말이야? 조금 이상한데.”

저게 처음으로 만져보는 장비를 사용하는 거였다고? 그런데 저렇게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 실화야?

퀘이사! 페이퍼 백! 대체 언제 오냐고!

*    *    *

강수아는 힐끔힐끔 본 창밖의 상황과 버스를 지키고 있던 운전병의 무전을 통해 바깥의 총격전이 거의 끝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군인들은 슈페리어, 강력하진 않더라도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초능력을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거기에 군인들 특유의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손발을 맞춘 경험이 있는 군인들과 여기저기 뒷골목에서 긁어모은 듯한 조무래기에 가까운 빌런들과의 전투는 꽤나 격차가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거기에 다크 카이저가 관람객들의 구출을 우선순위로 잡고 활동해 준 덕에 관람객들의 피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두두두둑!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버스의 벽을 두드리는 것이 느껴졌다.

“다들 고개 숙여! 절대 고개 들지 마!”

dudadadada!

버스를 지키고 앉아 있던 수송병이 몸을 일으키고 총알이 날아온 곳을 향해 들고 있던 소총을 발사했다.

“치이익- 32호 버스. 공격받고 있습니다. 32호 버스. 공격받고 있습니다.”

그래도 격렬하게 전투 중인 군인들의 무전을 들으며 밖의 상황을 알게 된 강수아는,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

다행스럽게도 버스를 향해 들어오던 공격은 군인들의 지원으로 인해 금방 정리되었다.

이렇게 순탄하게 상황이 정리된다면… 큰 피해 없이 여기서 일어난 사건을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드드드드드드드….

“어? 버스가 좀 흔들리는 거 같지 않아?”

“어? 어어?”

“꺄아아아악!”

“지진이야? 뭐야?”

처음에는 살짝 흔들리는 느낌이 들던 감각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땅이 흔들리며 땅 밑에서부터 뭔가 뚫고 올라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살려주세요!”

갑작스럽게 일어난 지진에 아수라장이 벌어지기 시작한 상황! 강수아는 숙였던 몸을 살짝 일으켜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에는 거대한 드릴 팔을 들고 있는 로봇이 바닥을 뚫고 나타나 군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언뜻 봐도 총알이 제대로 박히지 않고, 군인들이 가지고 있던 초능력도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는 상황.

이젠 상황이 역전되었다.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정리가 될 것 같았던 전투는 갑자기 나타난 로봇들로 인해 전세가 기울었다.

강수아는 이젠 슬슬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느꼈다.

“다들 고개 숙이고 여기 가만히 숨어 있어. 절대 고개를 내밀거나 움직여서는 안 돼!”

창밖을 향해 총을 내밀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군인이 침착을 잃은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로봇에 당해 쓰러지기 시작하는 동료를 보는 군인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앳돼 보이는 얼굴의 수송병은 군복을 입고 총을 들었지만, 실질적으로 버스 안에 있는 아이들과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잠깐의 분노에 시야가 좁아진 수송병의 머리를 향해 로봇의 드릴이 날아들었다.

퍼억-

로봇의 드릴은 버스의 벽을 뚫었음에도 불구하고 힘을 잃지 않고 수송병의 머리를 으깨버렸다.

피익-

버스의 앞 창문으로 피가 확 튀었다.

두두두두두!

분명히 머리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인의 총에서 총알이 튀어 나갔다. 튀어 나간 총알은 정확하게 로봇을 향해 발사되었지만, 총알은 로봇의 몸을 완전히 뚫지 못했다.

“꺄아아악!”

“왜인지 버스가 시끌시끌하더라니… 여기 꼬맹이들이 전부 숨어 있었구만 그래.”

킬킬킬. 로봇 안에서 들리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들으며, 강수아는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능력이 완전히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다행스럽게도 강수아는 육체계열 슈페리어로, 육체 강화 능력 또한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한 번도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전투를 하며 능력을 예열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자신의 능력이 완충된다면, 이 정도 로봇들이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서서히 머리카락으로 열기를 집어넣고 있던 바로 그때,

Crash!

BOOOOOM!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거대한 팔이 로봇의 얼굴을 후려쳤다.

*    *    *

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능력을 사용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인지했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소연은 버스를 지켜주던 군인이 자신들을 지켜주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로봇 때문에 군인이 죽는 것을 목격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분노하고 말았다.

분노.

소연에겐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었다. 분노보다는 공포와 외로움이 더 익숙했던 소연이었으니까.

차원의 통로를 움직이고 있던 소연의 지시에 따라 데다의 주먹이 재차 휘둘러졌다.

BABAM!

아까 로봇에게 휘둘렀던 공격보다 훨씬 더 커다란 소리가 났고, 공격을 맞은 로봇은 휘청이며 뒤로 물러났다.

먹혔다.

총알도 박혀 들어가지 않던 로봇이었지만, 이번에는 분명히 먹혔다. 로봇이 휘청이며 뒤로 물러나는 것을 확인한 소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영화처럼,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사귄 친구들이었다. 야, 너, 찐따라고 부르는 게 아닌, 진짜 소연의 이름을 불러주는 친구들이 있는 학급이었다.

지금 이 친구들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그 순간, 소연은 저기 바깥 어딘가에서 싸우고 있는 다크 카이저, 나강림이 항상 느끼고 있을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강림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

소연의 마음을 읽은 데다가 재차 주먹을 휘둘렀다.

콰쾅!

*    *    *

저 팔의 괴물은… 지난번에 만났던 심연의 괴물과 비슷한데….

무언가가 타는 듯한 냄새.

갑작스럽게 나타난 팔이 로봇을 공격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던 수아는 버스에서 매캐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수아는 버스의 구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아까 전에 일어났던 총격전이 버스에 악영향을 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대로 버스 안에 앉아 있다간 버스가 위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디서 연기 냄새 나지 않아?”

“연기 냄새?”

불길한 징후를 느낀 것이 강수아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가만히 내버려 뒀다간 버스의 폭발에 휘말려 반 친구들이 전부 크게 다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

강수아는 몸을 벌떡 일으켜 버스에 있는 탈출용 망치를 유리창을 향해 휘두르기 시작했다.

콰지직.

유리창은 수아가 휘두르는 망치에 의해 거미줄처럼 부서지기 시작했다.

“얘들아. 버스가 폭발하게 될지도 몰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부터 천천히 이쪽으로 넘어가자.”

아직은 버스 바깥에서도 전투가 끝나지 않았다. 버스 바깥으로 나간 이후에는 자신도 힘을 써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강수아의 머리가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    *    *

원작에선 저 로봇을 어떻게 처리했더라?

원작에서 등장 했던 시기에는 이미 아스트로 스타즈가 결성되어 있던 이후였다. 아스트로 스타즈에서 함께있던 동료들이 스타 라이트가 나설 필요도 없이 처리했었지.

페이퍼백은 인피니티 로프를 이용해 꽁꽁 묶어 로봇을 쓰러트렸었다. 탱크처럼 무한궤도로 구성되어있는 로봇의 다리는 혼자서 몸을 일으킬 힘이 없어 쓰러지는 것만으로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화력으로는 최강의 조합에 가까운 퀘이사와 슈팅 노바의 콤비 공격으로 로봇 자체의 외부장갑을 녹여버리기도 했었고.

하지만 이곳에는 페이퍼백도, 슈팅 노바도 없다. 내게 스타 라이트만큼의 카리스마가 있었더라면 그들과 이미 동료가 되어 함께 활동하고 있었겠지만, 바보처럼 우유부단하고 결단력 없는 나는 아직도 그들의 마음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

스타 라이트, 최강훈이었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 했을까?

지금의 나보다 훨씬 강력하고 멋진 히어로인 스타 라이트라면 나처럼 고전하지 않고 순식간에 이런 로봇들을 제압해냈을지도 모른다.

여기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 스타 라이트였다면, 군인들도 관람객들도 아무도 다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니라 스타 라이트였다면….

내가 아니라 스타 라이트였다면….

내가… 아니라… 스타라이트… 였다면…?

[“마스터! 정신 차리세요!”]

내 귓가로 빼액 소리를 지르는 제인의 목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피슈우욱!

로봇의 가슴팍에서 뿜어진 부식액체를 가까스로 피하며, 나는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되려던 정신을 다잡았다.

지금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 품 안에 숨어있는 작은 꼬마가 덜덜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정신을 차려야할 필요가 있다.

[“마스터가 왜 이곳에 있는지 생각해봐요. 스타라이트, 최강훈은 실패했어요. 계속되는 실패와 압박감을 못 이기고 정신이 무너져 동료 히어로들을 공격하고 다녔었다구요. 잊은 건 아니시죠?”]

나는 그제야 내가 읽었던 만화의 장면을 떠올렸다. 결국 결말이 나오는 최종권에서 스타 라이트는 패배하고 도시는 빌런들이 지배하는 결말.

그래. 그랬었지.

[“지금의 다크 카이저는 절대 스타라이트보다 못하지 않아요. 충분히 멋지게 이 세상을 구해내고 있다구요. 스타 라이트는 어비스 위치를 구해내지 못했지만, 마스터는 어비스 위치가 빌런이 되지 않게 구해내는 데 성공했어요.”]

[“거기에 지금 마스터의 오른손에는 지옥에서 올라온 꼬마 개구리가 봉인되어 있잖아요. 결국 지옥문이 열리는 것을 막지 못했던 스타 라이트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라구요.”]

【“잘 나가다가 갑자기 가만히 있던 나는 왜…?”】

[“스타 라이트와 다크 카이저는 달라요. 마스터, 다크 카이저라는 캐릭터도 결국 마스터가 만들어낸 히어로에요. 히어로인 다크 카이저라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 보자구요.”]

제인의 말이 맞았다. 나는 스타라이트가 아니다. 다크 카이저는 다크 카이저의 방식대로 싸우면 되는 거다.

히어로인… 다크 카이저라면 어떻게 했을까?

거기서 나는,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