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87화 (87/236)

제87화

현장학습(6)

어둠의 황제, 다크 카이저라….

자신의 앞에서 로봇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내며 허덕이고 있는 다크 카이저를 보며 스카 페이스는 피식 웃었다.

‘유명해졌더군. 다크 카이저.’

품에 아이를 안고서도 로봇의 변칙적인 공격들을 모두 피해내는 다크 카이저는,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많이 성장해 있었다.

‘이렇게 영향력이 강해질 줄 알았더라면 그때, 그 은행에서 끝내버렸어야 했는데 말이야.’

스카 페이스는 다크 카이저와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경한 은행에서 지옥문의 열쇠를 찾아 도망치려던 자신을 다크 카이저가 막아서던 바로 그때의 일을.

처음 만났을 때의 다크 카이저는 정말 말 그대로 허접한, 오늘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자경단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 만들었을 법한 우스꽝스러운 코스튬에, 과하고 정돈되지 않은 행동. 그리고 초보자의 티가 풀풀 나는 몸놀림.

수준을 모두 파악했다고 생각했을 때 갑작스럽게 바뀐 육체 능력에 한 방 얻어맞긴 했지만, 적어도 시간이 30초만 더 있었더라도 다크 카이저는 그 은행에서 목숨을 잃었을 터였다.

사실 거기서 죽이지 않아도 결국은 제 명에 못 살고 곧 죽어버릴 거라 생각도 했었다.

그랬던 초짜 자경단이, 이제는 심심찮게 뉴스에 이름이 등장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제 슬슬 거슬리는군.’

스카 페이스는 바이저에 떠오르는 로봇의 기능 정보들을 보았다. 바이저에는 어떤 버튼을 누르고 어떻게 운행해야 그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지까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마치 스카 페이스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그때그때 필요한 공격의 정보가 정확하게 바이저의 정보 표시창에 떠올랐다. 그중 하나를 골라 다시 한번 다크 카이저를 공격하며 스카 페이스는 씨익 웃었다.

경한 그룹에서 이렇게 성능 좋은 머신을 만들어냈을 줄은 몰랐는데….

처음 만져보는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머신의 앞 유리 부분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정보를 따라 하며 공격하기만 해도 충분히 강력하다.

채굴 장비의 탈을 쓴 전쟁 병기 수준이었다.

이건 분명 프로토 타입이다. 전쟁 병기를 만들기 전에 위력을 시험하기 위해 만든 프로토 타입.

대체 경한 그룹, 아니 사대희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물건을 만들었단 말인가? 그리고 이런 물건으로 대체 어떤 짓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인가?

지금쯤 엄청나게 발전해 있을 머신 슈트의 성능을 상상해 보며 스카 페이스는 몸을 떨었다.

그건 그거고, 지금은 다크 카이저와의 전투에 집중해야 할 때.

재차 이어지는 자신의 공격에 슬슬 다크 카이저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은 머신을 움직이고 있고, 다크 카이저는 몸을 직접 움직이고 있는 상황.

다크 카이저가 훨씬 더 빠르게 지치게 될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다크 카이저의 마스크 밑으로 삐져나와 있는 턱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첫 번째 전투에서도 모든 걸 파악했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투 패턴을 사용하면서 자신을 당황하게 만들었었다.

스카 페이스는 슬슬 자신이 만든 덫으로 다크 카이저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자신이 바닥에서부터 뚫고 나온데다, 계속되는 전투로 인해 이 주변의 지반들은 많이 불안정해진 상태. 자신은 불안정해진 이 주변의 지반을 머신의 정보창에 있는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다크 카이저는 알 수 없을 거다.

불안정해져 있는 지반 위에서 땅에 충격을 준다면, 다크 카이저가 딛고 있던 땅은 무너질 테지. 바닥이 무너지는 바로 그 순간 공격한다면, 분명 다크 카이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터였다.

그때, 다크 카이저의 뻗어진 손에서 갑자기 뿜어져 나오는 검은 흑염…!

화아아아아악!

뿜어진 검은 흑염이 머신의 바이저를 순간적으로 완전히 가렸다.

대체 뭘 하려고 했나 했더니 이런 공격을 숨기고 있었나? 경한의 기술력을 우습게 보는군.

당연하게도 그렇게 뿌려진 화염은 머신의 외갑에 전혀 손상을 입히지 못했다. 오히려 다크 카이저가 화염을 뿌리고 난 후 도망치기 위해 선택한 방향이, 자신이 다크 카이저가 딛길 원하던 바로 그 땅으로 향하는 방향이었다.

정확하게 그 땅을 밟고 있는 다크 카이저를 보고 스카 페이스가 머신의 바이저의 정보창에 떠오르는 지점에 드릴을 발사하려던 바로 그때,

바로 앞을 달리고 있던 다크 카이저의 모습이 사라졌다.

잔재주를 부리는군.

환영 능력을 가지고 있었나. 자신의 눈을 가릴 순 있어도 기계의 눈은 가릴 수 없을 터였다. 스카 페이스는 곧바로 바이저의 정보창을 확인했다.

바이저에는 도망가지 않고, 머신의 옆에 가만히 서 있는 다크 카이저의 모습이 깜빡이며 표시되고 있었다.

“…가리려고 했던 건 내 눈이 아니었나.”

갑작스럽게 무너져 버린 지반으로 인해, 스카 페이스가 타고 있던 머신이 땅 안으로 떨어졌다.

*    *    *

다크 카이저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둠의 힘, 암살자, 봉인된 오른손… 이런 중2병스러운 요소들에 빠져 있던 내가 만들었던 히어로 다크 카이저는 슈트의 변형, 어둠의 힘, 그리고 홀로그램과 해킹을 번갈아 이용하며, 트리키한 전투 스타일을 구사하는 히어로였다.

그러니까, 마스터 컴퓨터를 이용해 가장 먼저 로봇의 해킹을 시도해 봤을 테지.

내 명령을 듣고 로봇을 해킹한 제인이 보여준 화면을 보고 나는 씨익 터져 나오는 미소를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처음 타보는 로봇을 이렇게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는 정보 덕분에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고.

나는 곧바로 스카 페이스가 보고 있을 화면을 조심스럽게 조작하기 시작했다. 어디가 무너질지, 어떤 식으로 무너질지를 파악하고 상대가 보고 있는 정보를 조작한 후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함정에 빠진 척했다.

눈을 가리기 위해 흑염을 뿌렸고, 완전히 속이기 위해 홀로그램도 동원했다. 그리고 내가 자신이 보고 있는 화면을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스카 페이스는 내가 파놓은 함정으로 기어들어 갔다.

나는 슈트를 디제스터 레스큐 모드로 변형하였다. 본래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슈트였지만… 의도한 대로만 돌아가지 않는 게 또 인생이라는 거 아니겠어?

드릴이라는 장비는 너만의 전유물이 아니란다.

나는 다크 드릴을 바닥에 꽂아 넣었다.

우르르르륵!

땅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너져 바닥으로 꺼졌다.

*    *    *

쾅! 쾅! 쾅! 쾅!

지지직… 직… 지지직….

연속으로 들어가는 데다이트의 공격에 거의 반파된 로봇이 지직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로봇의 모습은 처참했다. 한쪽 팔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나머지 한쪽 팔마저도 반쯤 떨어진 채 너덜거리고 있었다. 로봇의 가슴 부분에 있던 바이저는 완전히 깨져 탑승자의 모습을 모두 드러냈다.

충격 때문인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탑승자의 바로 앞에 균열이 열린다.

균열 너머에서 보이는 것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며 빛나는 커다란 한 개의 눈.

탑승자는 그 안에서 처음 느껴보는 압도적인 공포심을 느꼈다. 탑승자는 결국 그 안에 있는 무언가가 만들어내는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듯 침까지 흘려가며 기절해 있는 탑승자를, 데다이트의 거대한 손이 머리부터 잡아 들어 올린다.

심연에서 태어난 괴물, 데다이트는 생각했다.

이자는 어머니를 해하려 한 자. 그 죄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다. 그런 자에게 내릴 수 있는 형벌은, 오직 죽음뿐.

머리를 쥔 팔에 보이는 거대한 힘줄이 꿈틀거린다.

<“데다이트. 안 돼.”>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데다이트는 머리를 쥐고 있던 손을 그대로 놓았다.

뿌드드득

“끄… 끄아아악!”

바닥으로 떨어진 탑승자의 허리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끄아아아아악!”

척추가 완전히 부서져 버린 모양인지 바닥에서 꿈틀대지도 못한 채 비명만 질러댔다.

<“데다이트! 내가 말하기 전엔 ‘사람’을 마음대로 상처 입혀선 안 돼!”>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한소연이 깜짝 놀라 몸을 크게 움찔거렸다. 옆에서 함께 있던 반 친구들이 놀라 쳐다본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과격하기도 하고, 힘 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 마치 야생에서 살다 온 맹수처럼.

“소… 소연아. 보지 마. 보지 마.”

소연의 옆에 있던 반장, 다혜가 소연을 끌어내리고 품에 안았다. 이전에 ‘해피 선데이’로서 여러 가지 잔혹한 일을 겪었던 다혜는 그 이후로도 가끔 밤에 악몽에 잠을 설치곤 했었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아직 더 도와줘야 할 사람이 남았는데….’

저 너머에서 아직도 군인들이 전투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나타난 로봇이 군인들을 더 다치게 하기 전에 도와야만 했다.

소연이 버둥거리며 다혜의 손에서 벗어나려던 바로 그 순간.

“저… 저기 봐! 얘들아!”

슈우우우우웅!

허공에서 날아드는 노란 불빛! 마치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혜성처럼, 빛의 길을 만들어내며 날아오는 무언가.

“퀘… 퀘이사?”

“퀘이사다! 퀘이사가 왔어!”

그건 바로 퀘이사였다. 머리에서 밝은 빛을 뿌리며 날아온 퀘이사는 허공에서 바로 손을 뻗어 군인들과 전투 중이던 로봇을 향해 불을 뿜어냈다.

눈이 부시도록 밝은 화염이 로봇의 얇은 허리를 그대로 녹였고, 반으로 나눠진 로봇의 상체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쿵!

정말 짧은 시간 만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소연은 심연과 연결되어 있는 통로를 닫았다. 퀘이사가 나타난 이상 위험을 감수하고 능력을 계속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로봇을 순식간에 끝장낸 퀘이사는 그대로 날아 군인들을 돕기 시작했다.

천산시에 있어야 할 퀘이사가 이렇게 빠른 시간 만에 여기에 나타난 것은, 다크 카이저가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연은 밝은 빛을 뿌리며 허공을 날아다니는 퀘이사를 보았다. 화려하고 멋진 능력이었다.

심연의 어둠과 이어지는 통로를 열어 괴물을 소환하는 자신과는 다른, 화려하고 멋있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멋진 능력.

직접 본 퀘이사는 그 누구라도 좋아할 만한… 그런 사람이었다.

소연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역사박물관에서 아주 조금 떨어진 정원의 흙바닥.

그 흙바닥이 잠시 꿈틀거리더니, 가면을 쓴 무언가가 흙바닥을 뚫은 채 튀어나왔다.

“푸… 푸헤에엑….”

뚫고 나온 사람의 정체는 스카 페이스였다.

다크 카이저와의 전투에서 땅에 묻혀 죽을 위기에 처했었지만, 초인적인 힘으로 땅을 헤엄치다시피 해서 겨우 빠져나온 것이다.

아마 빠져나오는 것이 5초만 늦었더라면 땅 밑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스카 페이스는 땅바닥에서 몸을 꺼내 역사박물관 쪽을 보았다.

자신이 데려온 부하들이 모두 히어로와 군인들에게 제압당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어차피 모두 오합지졸, 자신의 명성과 경한 그룹이 숨겨놓은 보물들만 생각하고 함께 일하고 있던 머저리들이었으니까.

어차피 안에 자신이 찾던 물건은 없었고, 머신은 조금 아깝긴 했지만 자신이 빠져나오는 데 썼다고 생각하면 아까울 것도 없었다.

머신을 희생하는 대신에 자신의 목숨을 구했으니까.

이 주변에 오래 머물러서 좋을 것은 없다. 자신이 머신 안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다크 카이저가 곧 자신을 찾아 여기까지 올지도 모른다.

쯧… 이번엔 진짜 찾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몸을 질질 끌며 이 자리를 빠져나가려던 스카 페이스의 시선이 허공에 있던 구멍에 머물렀다.

그 구멍이 존재하던 것은 약 3초 남짓이었지만, 스카 페이스는 그 안에 있는 존재를 느꼈다. 그 존재는 분명 이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자신이 찾던 것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    *    *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 래피드 스타. 우주를 가르는 혜성처럼 빠르게. 늦지 않게… 도착… 하지 않았군.”

이번엔 아주 늦어버린 모양이다.

방금 막 도착한 래피드 스타는 슬슬 정리되고 있는 장내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잠시 자신이 도울 일을 찾아 빠른 속도로 주변을 돌아다녀 본 래피드 스타는, 일어난 사건에 비해 피해 규모는 매우 작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다크 카이저와 퀘이사가 자신보다 빠르게 여기에 와서 일을 해결한 덕분이었다.

‘이거, 이거… 세상에서 제일 빠른 남자라는 이명에 오점이 남게 되었구만.’

그래도 별일 없이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게 중요하지.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래피드 스타는 자신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남편? 거긴 별일 없어? 남편은 안 다쳤어?”

“어. 걱정하지 마. 여긴 다행히 별일 없고, 나도 하나도 안 다쳤어.”

나를 생각해 주는 건 역시 아내밖에 없지….

“남편… 미안한데 지금 너무 바빠서… 전화 끊어야 될 거 같아. 조심히 천천히 와.”

“어? 어? 아니야, 아니야. 금방 갈게. 걱정하지 마.”

전화를 끊은 래피드 스타는 뒤를 돌아 자신이 뛰어왔던 길을 바라보았다.

“하… 언제 다시 돌아가냐….”

길게 늘어진 길이 자신을 향해 웃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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