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기일
현장학습에서 있었던 사건은 금방 마무리되었고, 뉴스에는 경한 그룹이 만든 첨단 로봇을 노린 범죄라고 보도되었다.
얼마 전에 괴물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천산고에서 현장 학습을 간 사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때문에 놀라는 사람도 많았다.
거기에 현장에서 찍힌 동영상들에 거대한 괴물의 주먹이 로봇을 때려 부수는 장면이, 이젠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잔뜩 찍히고 말았으니까.
괴물 사건 당시의 피해자였던 소녀의 능력 각성의 가능성도 제기되었지만, 1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새롭게 한 능력자 검사에서 모두 기존과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져 별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사실 능력자 검사는 눈에 확실하게 띄는 능력이 아닌 이상 능력자 스스로가 밝히지 않으면 확인할 방법이 거의 없다.
완전히 미지의 분야이고, 아무리 많은 과학자가 연구해도 밝혀지지 않는 분야인 것이다. 뮤턴트 인자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이 가능하지만, 그걸 잘못 건드렸다가는 새로운 돌연변이를 만들어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능력자 검사를 믿는다. 나라에서 믿도록 만드는 것도 있지만, 믿지 않고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으니까.
당연하지만, 스카 페이스가 정말 로봇을 노리고 왔을 리가 없다. 로봇을 노리고 왔다면, 그 로봇을 가지고 대적하는 대신 빠져나가는 데에 주력했을 거다.
그렇지 않고 전투에 로봇을 사용했다는 것은, 로봇 외에 다른 것을 찾기 위해 왔을 확률이 높다는 거다.
다행히 제인을 통해 알아낸 경찰 내부의 자료에 따르면, 그 안에서 찾고 싶었던 물건은 찾지 못했던 모양이지만….
원작에서 스카 페이스는 지옥의 마왕 벨제뷔트에게 지배당해 지옥의 힘을 휘두르는, 지옥의 전사가 되었었다. 그때는 벨제뷔트에게 정신 지배를 당해 스카 페이스가 무얼 원하고 지옥의 알에 손을 댔는지는 나오지 않았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스카 페이스가 무얼 목적으로 하고, 무얼 찾아다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다시 내가 생각 없이 저지른 일이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지고 오진 않을까 두려워 등허리에 땀이 쭉 흐르기 시작했다.
【“아… 또 나인가…?”】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 나오자 통탄의 한숨을 내쉬는 벨제뷔트. 사실인 걸 어떻게 해.
“…이러면 x의 값은… 반대로 y의 값을 알아보려면….”
쏴아아아-
교실 창문 너머 운동장으로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초여름 장마다.
곧 기말 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온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초여름 장마는 힘들었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슬픈 기폭제이다.
[이모 이제 학교로 출발할게. 매일 기다리던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수업 끝나면 천천히 나오렴. -이모-]
스마트폰과 연동된 홀로그램에 이모의 문자가 뜨는 것을 보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늘은, 우리 부모님의 기일이다.
* * *
쏴아아아-
쏟아지는 비를 뚫고 이모의 차로 달렸다. 오늘 아침 등교할 때 가지고 나왔던 우산이 손에 쥐어져 있었지만, 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귀찮기도 했고, 주차장이 그렇게 멀지 않기도 했고.
“어머. 우산도 있는데 왜 비를 맞고 오고 그러니? 그러다가 감기들라. 엄마 아빠 보러 가는데 감기 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에이. 괜찮아 이모. 나 요즘 잘먹고 다녀서 그런지 튼튼해요.”
최근 운동한 것처럼 몸이 좋아져서 그런지, 빠르게 뛰어와서 비도 많이 맞지 않았다. 대충 휴지로 비 맞은 부분을 닦아내고 나는 안전벨트를 매었다.
“자 이모. 출발!”
부우웅-
엄마가 타고 다니던, 오래된 자동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나는 슬쩍 이모가 찍어놓은 네비게이션의 위치를 보았다.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진 몰라도, 다행히 네비게이션에 찍혀진 위치는 내가 아는 그 위치가 맞았다.
이런 부분까지 바꾸지 않아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이모를 보았다. 활기차고 다정하던 평소와는 다른, 슬픈 표정의 이모가 보였다.
그랬지.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선 좀 나아지긴 했지만, 그전까진 우리 이모는 매번 부모님의 기일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심하게 우울해하시곤 했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10년 정도 함께 살던 나보다 더 오랜 시간 우리 부모님과 함께 하던 사람이 바로 이모니까.
나 때문에 내색하지 않고 최대한 참으셨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더 힘들고 슬펐겠지.
“이모. 우리 심심한데 라디오나 들을까?”
“어? 어 그냥 가만히 있기엔 좀 심심하지? 그래. 라디오라도 듣자.”
치이익….
<…팀 브릴리언트의 멤버, 듀크. 도지훈씨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이 전에도 우리 달밤에 나오셔서 멤버가 병상에서 꼭 일어날 수 있길 기원하셨던 적이 있으셨잖아요. 진짜 팀원이 일어나게 되어서 마음이 많이 편하시겠어요.>
<네 그럼요. 얼마 전에 멤버 전부와 같이 병원에 들렀다 왔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정말 큰 사고였는데 이렇게 깨어날 수 있는 건 거의 기적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정말 신께 감사드릴 뿐이에요.>
<듀크씨가 팀에 복귀는 하실 수 있을까요? 사실 조금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이거든요.>
<당연히 저희는 그럴 수 있길 바라죠. 하지만 그런 큰일을 겪은 지훈이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제가 여기서 확언은 해드릴 수가 없네요.>
…어쩐지 이 차 안에서 라디오를 틀 때마다 저 아저씨가 나오는 거 같네.
나는 밴디저의 목소리에 묘한 불편함을 느끼며 채널을 돌렸다. 돌린 채널에선 밝은 목소리의 아이돌이 발랄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제 좀 낫군.
“지훈이는 좀 괜찮대? 계속 히어로는 하고 싶다고 하고?”
“네. 지금 계속 재활 훈련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얼마 전에 찾아가 보니까 자기는 정말 다시 히어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모양이에요.”
“아이고… 언니가 또 엄청 걱정하겠네….”
나도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팀 브릴리언트도 어차피 천산시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히어로. 천산시 내부라면 그래도 내가 언제든지 도우러 갈 수 있다.
<자 다음 곡은, 가수 김한서 씨가 부릅니다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치이익-
나는 다시 한번 라디오의 채널을 돌렸다.
* * *
4층 다-218,219.
부모님은 내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위치에 아직도 함께 계셨다. 하나도 바뀐 것이 없이, 내가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
이 세계에선 직업도 다르고, 살아온 삶도 달라졌을 텐데도, 내가 기억하던 그 모습은 그대로였다.
[엄마 아빠. 정말 다시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내가 아주 어릴 적에 써 붙였던 말도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다.
“언니. 나왔어. 형부. 저 왔어요.”
이모는 품에 안고 있던 꽃을 내려놓았다.
흰 국화.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부턴, 엄마가 좋아하는 보라색 튤립을 가져왔었는데…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진 이모는 하얀 국화를 꼭 가지고 오시곤 했다.
“언니, 형부. 여긴 비 많이 오는데 거긴 좀 괜찮나? 그쪽 세상은 여기처럼 비가 많이 안 올 수도 있겠다 그치?”
“언니. 형부. 여기 봐. 언니, 형부 아들 이렇게 많이 컸다? 특히 요즘은 진짜 빨리 커. 이제 벌써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그런가. 키도 엄청 부쩍부쩍 자라더라구.”
뚝뚝.
이모의 얼굴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언니… 형부… 강림이는… 내가… 내가 잘 키울 테니까 너무 걱정 마. 언니랑 형부 아들이라 그런가, 말썽 한 번 피우는 적 없이 항상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잘살고 있어.”
엄마와 아빠의 사진을, 한번 쓱 쓰다듬은 이모는 뒤로 물러났다. 나는 가지고 온 티슈를 이모에게 건넸다.
티슈를 받아든 이모가 내게 말했다.
“강림아. 너도 할 말 있으면 가서 해.”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섰다. 환하게 웃고 있는 부모님의 사진이 보였다. 집에도 걸려있는 가족사진에서 가져온 사진이었다.
살던 집도, 다니던 학교도, 원래 있던 세계의 친구들 마저도. 모두 바뀌었지만 여기는 바뀌지 않았다.
나는 이모가 그랬던 것처럼, 사진 한켠을 쓱 쓸었다.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전에 살던 곳에선 이모를 지키지 못했었는데, 이 세계에서는 꼭 지킬게요.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쏴아아아-
비는 그치지 않았다.
* * *
집으로 돌아온 뒤, 저녁을 먹고 이모가 잠에 든 것을 확인한 나는, 포도 주스 한잔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제인. 오늘 정도는 별 일이 없으면 좀 쉬어도 괜찮을까?
[“네. 그럼요. 마스터.”]
나는 포도 주스를 책상 위에 올리고, 가방 안에서 아까 전에 사뒀던 과일과 과자를 꺼내 책상 위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포도 주스와 과일, 그리고 골라온 과자. 전부 이모가 좋아하던 것들이다.
【“이모? 그럼 지금 만들고 있는 게 이모의 제사상인가? 이모는 지금 살아… 어? 음소거? 이건 계약 위반….”】
[“눈치 없는 악마 같으니라고.”]
맞아. 이건 이모를 위해 만드는 제사상이야. 이 세계의 이모 말고, 내가 이전 세상에서 버리고 온, 나를 키워준 이모.
당연히 나는 살아있는, 이 세계의 이모를 사랑한다. 이 세상에서 이모가 살아 계시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히어로 활동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평생, 이모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사무치게 아프지만, 이 세상의 이모는 내가 알던 이모가 아니다.
나를 키워주고 길러준 이모는, 내가 다른 세계에서 살 때 돌아가셨으니까.
내가 수능 보기 100일 전부터 아침마다 기도를 하던 이모, 대학 합격 발표가 떴을 때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던 이모, 내가 훈련소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나를 배웅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이모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모든 기억은, 오로지 나 혼자만이 가지고 있는 나 혼자만의 것이다.
지금의 이모도 정말 사랑하지만, 병상에 누워서도 나를 향해 다정하게 웃어 주시던 이모는, 절대 내 마음속에서 평생 내려놓을 수가 없다.
“흑…흐흐흑….”
잠겨있던 수도꼭지를 열었던 것처럼, 눈물이 펑펑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아마 이젠 평생 볼 수 없는 이모의 모습을 그리며, 나는 책상에 앉아 홀로 울었다.
쏴아아아-
비는 그치지 않았다.
* * *
쏴아아아아-
빗소리가 병실 안을 가득 메웠다.
병실 침대 위에 있는 사람은 도지훈. 도지훈은 병상에 앉아 손에 쥔 종이를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러 가지 법적 용어가 잔뜩 쓰여진 종이의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상기한 여러 사유로 인해, 히어로 듀크의 자사 계약은 만료되었습니다.>
콰과과광!
창밖에서 번개가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콰과과광!
차창 밖에서 들리는 번개 소리.
보조석에 앉아 있던 브릴리언트 팀의 리더, 밴디저 강무영은 백미러를 통해 쓱 뒷자리를 살펴보았다.
밴디저 강무영.
부스터 양요한.
럭키펀치 신현지.
그리고 플리커 오은별.
현재 브릴리언트를 이루고 있는 팀원은 이렇게 총 네명이었다.
듀크 도지훈의 팀 복귀를 원하는 팬들이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도지훈은 그렇게 해줄 수 없었다.
만약 도지훈이 히어로 활동을 다시 시작한다면, 그날의 기억이 다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니까.
만약… 도지훈에게 그날의 기억이 돌아온다면? 그럼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르르쾅!
하늘에서 친 번개에 비친 강무영의 얼굴은 굳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