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RedRabbit Returns(1)
천산시를 대표하는 기업, 경한 그룹. 그리고 경한 그룹이 스폰해 주고 있던 히어로. 파워 피스트.
쿨럭… 쿨럭….
파워 피스트는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고 있었다. 파워 피스트의 몸 여기저기에 나 있는 찔린 듯한 자상. 여름철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온몸 여기저기 생겨나 있는 동상의 흔적들.
파워 피스트는 다크 카이저에게 두 번의 패배를 하고 난 이후, 스폰서였던 경한 그룹의 지원이 끊기고 고향인 천월군으로 돌아와 활동하고 있었다.
사유는, 두 번의 패배로 인해 경한 그룹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것. 만약 여기서 한 번 더 실패했다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자신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정대수의 말에, 파워 피스트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두려움이라곤 느낄 것 같지 않았던 정대수의 표정에서 극심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서포트을 받는 동안 모아놨던 돈도 있겠다, 나 하나 살 정도의 돈은 있으니 그냥 부모님을 도우며 살 생각으로 고향으로 내려왔다.
크고 사건이 많은 천산시에 비하면, 시골인 천월군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나진 않았다.
가끔씩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브루트들이 난동을 피우는 정도. 사실 그 정도 사건들도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선 위협적인 일들이긴 하지만, 천산시에서 히어로 일로 밥 벌어 먹고살던 파워 피스트에겐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던 거다.
그래서 금은방에서 난동을 부리는 브루트가 있다는 신고를 듣고서도 그렇게 큰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 주변은 불곰파, 빅 베어의 구역. 강력한 브루트는 빅 베어의 부하들뿐이고, 그 금은방은 빅 베어의 사촌이 운영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금은방이다.
이 주변에서 사는 브루트들 중 제정신인 놈이라면 그런 곳을 건들 리가 없다. 그래서 어딘가에서 쫓겨나 시골로 내려온, 그냥 조무래기들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그와 싸운 것은 조무래기 같은 것이 아니었다.
“어머. 쟈기야. 저 친구 아직 살아 있는데? 조오기~ 꿈틀꿈틀하면서 도망치고 있어.”
“어? 어? 자기 말이 맞네~. 형님! 형님! 저 녀석 살겠다고 도망가고 있는데요? 죽여 버릴까요?”
“아니. 내버려 둬라.”
“아니. 왜요? 내버려 둬서 저희한테 좋을 게 없는….”
그렇게 말하던 골드 재킷은 레드 래빗의 무시무시한 표정을 보곤 말을 바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뭐. 어차피 형님이 처리한 거니 형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시죠. 하하.
탁. 차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형님. 그럼 이제 어디로 갈까요?”
“천산시. 천산시로 가자.”
“드디어 천산시로 가는 고야? 꺄아~ 쟈기~ 달려~.”
“안전벨트 꽉 매시고. 자, 지금 갑니다?”
부우우웅….
차가 떠나는 소리를 들으며, 파워 피스트는 정신을 잃었다.
* * *
“다크 카이저… 또 너냐?”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가 내 귓가로 들려온다. 거기서 느껴지는 것은, 나를 향한 지독한 악의. 예전 같았으면 나를 향한 이런 지독한 악의에 긴장했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이 정도의 악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런 일에 익숙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아니면 슬퍼해야 하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하긴 했소만, 이곳으로 오고 있는 히어로가 최소 넷은 될 거요. 그만하고 항복하는 게 서로에게 편하지 않겠소?”
물론 그럴 리가 없겠지만.
이곳은 천산시 외곽에 있는 화력 발전소. 그리고 내 앞에서 온몸에 흐르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파란빛으로 번쩍이고 있는 저 사람은, 전(前) 잿빛 망토단의 보스였던 라이트닝 스파크다.
라이트닝 스파크의 주 능력은 전기와 결합된 불꽃을 분사하는 능력. 발전소야말로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기에 적절한 곳이다. 그런 고로, 원작에서도 당연히 라이트닝 스파크는 스타라이트에게 패배한 이후, 힘을 얻기 위해 발전소를 점거했었다.
발전소부터 시작해서 능력의 덩치를 키운 라이트닝 스파크가, 도시 전체의 전력을 모조리 잡아먹고 덩치를 키워 천산시 전체를 위협하는 에피소드. 그런 라이트닝 스파크를 막기 위해 천산시 전역에 있는 히어로들이 모두 라이트닝 스파크와 대적하는 장면은, 만화책의 내용을 많이 잊어버린 지금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랬으니까 당연히 라이트닝 스파크가 사라진 이후부터 항상 제인을 통해 발전소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고.
“순순히 항복할 것 같으냐? 끄으으으아아아아!!”
커다랗게 비명을 지르며 온몸의 힘을 끌어모으기 시작하는 라이트닝 스파크.
최대한 일찍 온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능력 충전을 많이 해놓은 모양이다. 벌써부터 온몸이 번쩍번쩍하며 온몸에서 전기를 뿜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며 블래스터를 몇 번 발사해 보았지만,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는다.
빠지지지지!
내가 블래스터를 발사함과 동시에 맞서 내게 전격을 뿌려오는 라이트닝 스파크. 뿌려져 오는 전격을 다크 쉴드로 막아내며 나는 간만에, 하늘을 가르는 운명의 장막을 펼쳤다.
[“마스터. 하늘을 ‘가르는’이 아니라 ‘가리는’이에요. 하늘을 가리는 운명의 장막(the DESTINY)라구요. 확실하게 해주세요.”]
지금 농담 따먹기 할 때냐?
내 투덜거림과 함께 주변의 불이 꺼졌다. 그와 동시에 라이트닝 스파크의 몸에 있던 에너지가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장막은 주변의 정전을 유도하는 능력. 발전소 전체가 잠시 정전에 들어간 참이라 라이트닝 스파크의 충전량도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제인. 유지 시간은 얼마나 돼?
[“여긴 발전소라 막아내야 할 에너지가 너무 많아서, 길어도 3분이면 끝나겠는데요?”]
유지 시간 홀로그램으로 띄워줘.
[2:54]
[2:53]
눈앞에 홀로그램이 떠오르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망토로 몸을 가리며 홀로그램 투영기 몇 개를 여기저기 흩뿌렸다.
망토로 가린 몸이 서서히 주변의 색과 동화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얼마 전에 새로 개방한 다크 스텔스(Dark stealth) 모드다.
그동안은 다른 히어로들의 강점만을 부러워한 나머지 위력적인 모드에만 경험치를 투자하곤 했었지만, 다크 카이저라는 히어로에게 강력하고 위력적인 힘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가장 먼저 개방해 놓았다.
<“지금 여기. 나 강… 으갸갸갸갹!”>
<“죄 지은 자를 벌하고… 으드드드윽!”>
<“외면당하는 자들을… 우댜아아아악!”>
연이어 나타나는 홀로그램들이 전부 라이트닝 스파크의 전격에 맞고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멍청한 녀석! 나에게 이런 바보 같은 술수가 통할 것 같으냐?”
라이트닝 스파크가 손을 휘젓자 라이트닝 스파크의 몸 주변에서 뿜어져 나온 전기 에너지가 주변으로 뿜어져 나갔다.
뿜어져 나간 전기 에너지들은 주변의 조명을 모두 밝게 밝혔다. 밝혀진 주변에 보이는 다크 카이저의 모습은 단둘. 하나는 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라이트닝 스파크는 손을 들어 올려 두 신형 모두에게 전격을 쏘아 보냈다.
내 쪽으로 쏘아져 나오는 전격을 다크 쉴드로 받아내며 나는 라이트닝 스파크를 향해 달려 나갔다.
“바로 네가 진짜였군! 다크 카이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양손을 이용해 나에게 전격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붓는 라이트닝 스파크. 넌 나의 노림수에 걸려들었다.
“바로 여기. 나 강림.”
내 반대편에 있던 것은 홀로그램이 아니라 다크 스코프 아저씨였으니까. 절연체로 만들어진 망토를 들어 올려 전격을 흘려낸 다크 스코프가 손에 쥐고 있는 무언가를 발사하였다.
펑!
들고 있던 총에서 발사된 줄이 라이트닝 스파크의 몸을 칭칭 묶은 뒤 바닥에 꽂혔다. 내 말을 들은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만들어낸, 대(對) 라이트닝 스파크 병기다.
라이트닝 스파크의 몸에서 흘러나온 전기 에너지가 바닥으로 흩뿌려져 흩어지기 시작했다.
“끄… 으아아아아!”
나도 곧바로 흑염을 뿌려 라이트닝 스파크의 몸을 묶었다. 내 정신과 감응하는 흑염이 밖으로 뿜어져 나오려는 라이트닝 스파크의 전격을 바닥으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1:23]
[1:22]
1분여간의 사투 끝에 켜져 있던 주변의 조명은 모두 불이 꺼졌고, 라이트닝 스파크의 몸에서 밝게 빛나던 빛들도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으으윽… 끄아아아악!”
서서히 빛이 꺼지고 완전히 알몸이 되어버린 라이트닝 스파크가 바닥으로 툭 쓰러졌다.
다행히 이번 사건도 더 크게 번지기 전에 정리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 * *
“다크 카이저 님.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니오. 다크 스코프야말로 짧은 시간 안에 이런 도구를 만들어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크흐흑… 다크 카이저 님… 말씀만이라도 감동입니다.”
별것 아닌 인사치레만으로도 감동의 눈물을 뽑아내려고 하는 다크 스코프 아저씨. 아저씨, 매번 나한테 이런 반응을 보여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창피함을 가끔씩 느끼기도 한다.
“한 대 피워도 되겠습니까?”
빌런을 잡고 나서 연행해서 가기 전까지가, 참 마법의 시간인 모양이다. 흡연자들이랑 같이 일하면 꼭 이 타이밍에 담배를 피워도 되겠냐고 묻곤 한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나이 차이가 심하기도 했고, 오늘은 정말 고생하시기도 했으니까.
어차피 불쾌함을 감지하면 제인이 알아서 가면에서부터 냄새를 걸러주기도 한다.
칙—치이이익.
다크 스코프 아저씨 장갑의 끝에서 분사되는 가스 소리, 그와 동시에 타오르는 불꽃.
장갑에 별 장치를 다 해두셨네.
“후우… 죄송합니다. 요즘 조금 심란한 구석이 있어서.”
뭐지? 이 분위기는?
“다크 카이저 님. 다크 카이저 님도 아시다시피 이 일이 사명감만으로 하는 일이지 않습니까?”
심각한 분위기를 풍기며 입을 열기 시작하는 다크 스코프 아저씨.
“얼마 전에 안사람한테 이 옷을 입은 걸 들키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저런….
내가 살다 살다 나이 30살 차이는 나는 아저씨의 고민을 들어줄 날이 올 줄이야.
“사실은 이런 일을 하며 제대로 된 성과를 내면, 그래도 가족들이 이해해 줄 거라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이젠 슬슬 아저씨를 놓아드릴 때가 온 모양이다.
“그건 이기적인 생각이지.”
“예?”
“반대로 생각해 보시오. 아내가 밤마다 거리로 나와 범죄와 싸우고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그걸 용납할 수 있을 것 같소?”
“그건….”
“가족이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 있는데도 이런 위험한 일을 하겠다는 건, 남는 가족들을 생각하지 않는 처사요. 한번 깊게 생각해 보시오.”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weeeooo-weeeooo- weeeoo-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들려왔다. 나는 한 번 더 라이트닝 스파크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크 카이저… 너 정도 능력이 되는 슈페리어가 왜 아무런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거지?”
어이쿠. 벌써 깨어나셨네. 미안하지만, 나는 슈페리어가 아니라 거의 내추럴이거든?
“나와 손을 잡자, 다크 카이저. 그래서 이 천산시를 지배하자. 너와 내가 손을 잡는다면 천산시의 지배자인 사대희도 충분히….”
내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슬슬 선을 넘어 기어오르기 시작하는 라이트닝 스파크.
이 새X가… 날 이기고 이런 말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지고 잡혀 있는 주제에 이런 말을 해대네.
지난번부터 매번 뻔한 소리만 하는 뻔한 악당이다.
뻑-!
시끄럽게 헛소리하는 게 꼴 보기 싫어 얼굴을 사정없이 한 대 후려쳤다. 라이트닝 스파크의 앞니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어이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이건 좀 미안하네….
“끄으으윽… 다그 가이서… 이 이른… 잇지 안겟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하나도 안 무섭거든. 너 같은 놈들 하루 이틀 보는 줄 아냐?
나는 말없이 라이트닝 스파크의 얼굴을 한 번 더 후려쳐 기절시켰다. 그나마 남아 있던 아랫니마저 모두 깨져 흩날렸다.
당분간 밥 먹으려면 고생하겠구만.
경찰차가 코앞까지 도착한 듯 보이자,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럼 저도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촤르르륵. 착.
허리에 달려 있던 장치에서 쏘아낸 로프로 옆 건물의 옥상으로 날아오르는 다크 스코프 아저씨를 보며, 나도 허공으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