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00화 (100/236)

제100화

데빌-보이(2)

지하 2층. 레온 PC방.

이 PC방은 지하에 위치에 있었고, PC방에 가기 위해선 엘리베이터를 꼭 타야만 했다.

나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나 병원에 있는 동안 업데이트 많이 했던데? 템이랑 맵도 완전히 다 바뀌었더라.”

“어. 그랬을 거야. 나도 안 한 지 몇 개월 되긴 했지만.”

신기하네. 원래 세계에서의 시간까지 합치면, 지훈이 형이랑 게임 하러 간 지가 최소 5년은 되었을 텐데. 진짜 여러 가지로 옛날 생각나고 그러네.

“집에서 혼자 할 거 없으니까 맨날 게임만 하면서… 강림이까지 데리고 무슨 PC방이야?”

“이 지지배야. 혼자 집에서 하는 게임이랑 PC방에서 친구랑 하는 게임은 달라. 아니,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집에 있지 왜 따라 나왔냐? 시끄럽게 하려면 집에 가라.”

집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싸우기 시작하는 도유진과 도지훈. 둘이 남매 아니랄까 봐….

“나 그 PC방에서 일한 적 있거든? 거기 언니 보러 가는 거다, 왜?”

“아. 그러냐.”

알바 했다는 시점에서 입을 다물어 버리는 도지훈. 아마 거기서 더 나아갔으면 아무리 도유진이라지만 서운하긴 했을 거다.

도유진이 PC방에서 알바 했던 건 도지훈 때문이니까.

“뭐… 그래. 고맙다. 유진아.”

내가 생각한 걸 도지훈도 생각하고 있었던지, 도지훈은 매일 싸우는 남매 사이답지 않게 어색하게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알면 됐다.”

듣고 있는 내가 다 어색하네.

【“하지만… 꽤 감동적이군.”】

너 악마 주제에 갈수록 감상적이다?

【“매번 말하지만, 악마들이 네 생각처럼 모두 감정이 메마르고 악독하진 않다.”】

“야! 힐힐힐! 힐 줘! 힐!”

“장판기 온다 피해!”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PC방의 소리. 이틀 연속으로 PC방에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맨 앞에서 가고 있던 도지훈이 PC방의 문을 열었다.

“어, 우리 언니. 안녕. 오랜만!”

“어? 뭐야? 유진이 왔네. 뭔 일이래? 알바 그만두곤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언니 보고 싶어서 왔지~.”

PC방의 카운터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 익숙하게 자리를 잡는 도유진.

“오케이~~ 서렌!”

“와~ 준석이 뭐냐? 진짜 요즘 폼 개올랐네.”

“이건 박준석이 캐리해서 이겼다.”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우리 반 친구들의 목소리. 박준석의 이름이 중간중간 들리는 걸로 봐서, 또 준석이가 PC방에 있는 모양이다.

하필이면 게임 끝나고 이겼을 때 들어왔네. 골치 아픈데 이거.

알바 누나의 목소리가 들리자, 박준석이 귀신같이 이쪽으로 고개를 확 돌렸다.

가장 먼저 알바 누나에게, 그다음은 도유진에게, 마지막으로 나에게 시선이 돌아온다.

“어? 나강림? 너가 무슨 일로 이틀 연속으로 PC방을 다 오냐? 나한테 한 번 더 도전하러 온 거냐?”

내 이럴 줄 알았다.

박준석은 어제 내게 두 번의 패배를 안겨준 때문인지, 새삼 의기양양하게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냐… 오늘은 친한 형이랑 같이 게임 하러 온 거야.”

자존심 상하지만… 내가 슈트라도 입지 않는 한 박준석을 게임으로 이길 가능성은 낮다.

더러운 육체파 슈페리어 같으니….

“오, 뭐야. 강림아. 네 친구들이냐?”

“네? 네? 네. 강림이 친구 맞는데요… 누구세요?”

“야. 너 저 형 몰라? 도유진 오빠잖아.”

“도유진 오빠? 그 스타 히어로하는 형? 우리 동네에서 엄청 유명한 사람이었잖아.”

내 옆에 서 있던 도지훈이 나와 일행일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놀란 표정으로 도지훈을 바라보는 박준석.

“어? 나 아는 애들이 있었구나?”

도지훈의 말에 긴장한 표정으로 나와 도지훈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는 박준석.

지훈이 형이 나랑 친하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사납게 생기긴 했지.

그리고 지훈이 형 성격이라면 아마 같이 게임을 하자고 할 가능성이 크다.

“이야~ 마침 잘됐다. 혼자 하기 심심해서 온 건데. 나도 같이 좀 끼워주라.”

내 이럴 줄 알았지. 미안하다 애들아.

*    *    *

- 승리.

나는 내 눈앞에 떠오른 두 글자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이겼다고 말하기에도 뭐하군. 승리 당했다고 표현해야겠어.”】

도지훈의 실력은 너무나도 깔끔했다. 상대의 시야 범위가 보이는 것처럼 시야의 사각을 이용할 줄 알았고, 습격하는 타이밍과 피지컬마저도 완벽했다.

나는 별 힘을 들이지 않고도 도지훈의 도움을 받아 박준석을 완전히 발라 버릴 수 있었다.

연속으로 이어지는 두 판 전부 나는 도지훈의 도움을 받아 박준석을 숨도 쉬지 못하게 몰아붙였다.

- 상대 팀이 찬성 4표 반대 1표로 항복에 동의하였습니다.

【“서렌이 나왔다. 빨리! 빨리 그 단어를 쳐라!”】

나 : ㅌㅊㅇ

나 : ㅌㅊㅇ

-승리!

【“잘했다! 드디어!”】

어제 먹은 저녁이 이제야 내려가는 것 같은 쾌감.

나는 슬쩍 몸을 일으켜 박준석의 표정을 보았다. 분해 보이는 표정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박준석.

탑티스트박준석 : 야, 나강림. 다음에 따로 한판 더해.

나 : 응. 안 해~

내가 못 해서 지는 것보다, 팀원 차이로 지고 조롱받는 게 가장 열받지.

그리고 나는 앞으로 절대 준석이와는 게임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초능력으로 게임 하는 주제에 나를 약 올린 벌이다.

“야,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갈까?”

“어. 그럴까?”

세 번을 내리 지고 나니, 친구들이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 같아도 도망가고 싶겠지.

“야, 얘들아. 오늘 내가 오랜만에 게임을 해서 너무 재밌어서 그러는데, 한 판만 더 해주면 안 되냐? 한 판만 같이 더 해주면 내가 너네 PC방비까지 다 쏠게.”

“와. 진짜요?”

“야, 그럼 한 판만 더 하고 가자.”

“와~ 개이득!”

“PC방비 내주면 어쩔 수 없지.”

“야. 이번 판은 내가 정글 간다.”

냉큼 다시 자리에 앉아 시끌시끌 떠들기 시작하는 내 친구들.

지훈이 형, 이럴 땐 참 시원하긴 해.

그때, PC방의 구석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

“야! 이 x새끼들아! 조용히 좀 하랬지?”

쾅쾅!쾅! 쾅!쾅! 쾅!

쾅!

*    *    *

뭐야? 무슨 일이래?

도지훈은 큰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구석에 앉아 있던 서른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한 남자였다. 화가 난 듯 쿵쿵대며 책상을 두드리는 그 남자의 머리칼은 잔뜩 성이나 일어서 있다. 기괴하게 보일 정도로.

도지훈은 그 모습에서 묘한 불길함을 읽었다.

“어…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지금부터 조용히 게임 할게요.”

도지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남자에게 사과했다.

보통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이렇게 순순히 사과하고 넘어가진 않겠지만, 여긴 동생이 알바 하던 곳이기도 하고, 동생 친구들도 많았기 때문에 굳이 큰 문제를 일으키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김 과장도… 너희도… 너무 시끄러워서 머리가 왱 울린단 말이야. 시끄러워서 머리가 울려.”

중얼중얼 대는 모습에서 도지훈은 묘한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건 PC방 알바도 똑같이 느꼈던 모양이다. 알바는 조심스럽게 남자의 자리로 다가섰다.

“저기… 괜찮으세요?”

“…웅얼웅얼…”

PC방 알바의 말에 뭐라고 중얼대긴 하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몸 상태가 안 좋긴 한 모양이다.

“저기… 몸이 어디 안 좋으신 거 같은데… 그만하시고 집에 가시는 게 어떠실까요, 선생님?”

“…웅얼웅얼…”

그제서야 보이는, 책상 주변에 널려 있는 약 봉투들. 전부 경한 병원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들이었다. 어디가 아픈 사람인 게 분명해 보였다.

도지훈이 입원해 있던 병원에도 간혹 있었다. 엄청난 고통 때문인지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던 환자들.

하지만, 동시에 도지훈은 그 남자에서 이상한 동질감을 느꼈다. 뭔가… 같은 것을 품은 듯한… 그런 동질감.

이상한 기분이었다.

최근에 계속해서 악몽을 꾸더니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한 모양이다. 자신도 정신과 진료라도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도지훈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여성 알바 혼자에게 맡기기에는 조금 불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도지훈을 보며, 조금 안심한 표정을 보이는 알바생. 혼자서 해결하기엔 불안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몸 상태가 안 좋으신 거 같은데… 병원에 보내는 게 맞겠죠?”

“네. 그러시는 게 맞겠네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일단은 이 남자를 병원에 보내는 게 우선이었다. 도지훈은 남자의 상태를 보기 위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디 아프신 거 같은데 지금 구급차 불러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끄… 끄아아아아아아악!”

퍼억!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대처하지 못했다.

도지훈은 남자의 팔에 얻어맞고 저 멀리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    *    *

퍼억!

나는 도지훈과 알바생이 얻어맞아 날아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남자를 보았다.

“…웅얼웅얼…”

도지훈에게 주먹을 휘두른 남자는 잠시 웅얼대더니, 그 자리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아 버렸다.

바짝 일어섰던 머리칼이 순식간에 모두 빠지고, 그 자리에 비늘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로테스크한 파충류 인간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능력의 폭주, 감정 조절의 실패. 결과적으로 괴물처럼 변한 모습까지.

인휴먼증이다.

【“인휴먼증과 관련된 사건은 분명 지난번에 막아내지 않았던가?”】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남아 있던 약물이 있었던 모양이야. 대체 어디서 약물이 퍼져나갔는진 모르겠지만.

“으아아악!”

“저게 뭐야?”

“도망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기 시작한 PC방 내부.

“다들 입 닥쳐! 시끄럽다고 했잖아!”

퍼억! 퍼억!

주변을 부수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는 남자.

다행히 PC방 내부에 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망치는 데에 성공했지만….

“저기요… 괜찮으세요? 정신 좀 차리세요!”

“살려주세요! 다리가 안 움직여요!”

남자의 난동에 휘말려 상처 입고 쓰러진 사람들이 몇 명 정도 남아 있었다.

거기엔 도지훈과 알바 누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 오지 않길 바랐는데….

카이저 슈트의 변신 모습은 생각보다 너무 화려하다. 어딘가에 숨어서 하지 않으면 너무 눈에 띈다. 여기서 너무 눈에 띄었다가는 내 정체가 까발려질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문 쪽에 우글우글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이 PC방의 화장실은 문 너머 복도에 있었고, 지하이다 보니 창문 너머로 나갔다 들어오기도 수월하지 않다.

일단은 사람들이 나에게 주목하고 있지 않을 때, 잘 보이지 않는 구석 자리로 뛰어가 책상 밑에 숨어 변신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숨을 곳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던 바로 그때,

펑!

깡!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나, 놈의 앞을 가로막는 한 사람.

“지금 아저씨가 제일 시끄럽거든? 앙? 공공장소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난동 부리고 그래도 되는 거야?”

검은색 바이크 슈트에 바이크 헬멧. 그리고 검은색 금속 배트를 들고 있는, 익숙한 느낌의 한 남자.

【“네 친구 박준석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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