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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12화 (112/236)

제112화

태양 체육관(1)

망령당이 천산시에 약과 환상을 뿌린다면, 흑사자회는 천산시에 술과 향락을 뿌린다.

천산시에서 밤늦게까지 운영하는 술집 중 흑사자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고, 그 돈은 대부분 흑사자회의 세력을 불리는데 쓰여졌다.

그렇기에, 그중 가장 많은 수익을 주는 가게 중 하나인, 慾望(욕망)을 운영하던 천화영은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으윽… 사… 살려줘….”

“크흐윽….”

가게를 지켜주던 흑사자회의 빌런들이 모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을 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산시에서 흑사자회의 힘은 막강하다.

해가 뜨는 곳에 경한 그룹이 있다면, 달이 뜨는 곳엔 흑사자회가 존재한다고 말할 정도니까.

잿빛망토단이 쓰러지고 나서부턴 그 구역을 먹고 힘을 키운 망령당과의 전쟁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긴 했지만, 얼마 전 플럭스 공학회에서 새어 나온 최첨단 병기들을 공수하고 나서부터는 조금 달라졌다.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플럭스 공학회의 무기들로 망령당이 먹었던 잿빛망토단의 구역들을 순식간에 다시 뺏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던 모양이다.

플럭스 공학회에서 공수해 온 최첨단 병기들이 오히려 흑사자회의 빌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방심한 사이 퍼부어진 공격에 술집 내부는 초토화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피투성이가 된 술집 안에는, 주인인 천화영만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저벅- 저벅-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벌벌 떨고 있는 천화영에게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천화영도 알고 있던 얼굴들이었다.

바이퍼, 데드 아이, 미즈 컴뱃.

예전과는 슈트의 모양이 많이 달라지고 통일된 느낌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못 알아볼 정도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잿빛 망토단. 무너진 줄 알았던 잿빛 망토단이 다시 부활한 모양이었다.

덜덜 떨리려는 몸을 가다듬은 채 천화영은 입을 열었다.

“욕망은 오늘부터 잿빛 망토단의 구역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틀렸다.”

“네?”

“잿빛 망토단이 아니라 강철 기사단이다.”

“네. 네. 강철 기사단. 네 강철 기사단이요. 그럼… 보스의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으면 될까요?”

바이퍼, 데드아이, 미즈 컴뱃.

모두 강력한 힘을 가진 빌런들이긴 하지만, 슈퍼 빌런들을 이끄는 리더를 할 정도로 리더십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분명 새로운 강자가 이들을 규합한 것이리라.

그 사람의 이름은….

“그렘린. 앞으로 이 구역의 주인은 그렘린 님이시다.”

*    *    *

“와~ 방학이다!”

“도유진. 여기 카페야. 큰 소리 내니까 주변에서 다 보잖아.”

강수아가 양손을 번쩍 들며 신을 내는 도유진에게 면박을 주었다.

“방학은 원래 이렇게 신나 하는 게 당연한 거야. 덤덤한 너네가 이상한 거라고.”

잔에 담긴 음료를 휘휘 저으며 도유진이 투덜거린다.

“난 방학이 싫은 걸… 방학이면 학교에서 너희들을 못 보잖아.”

“왜 못 봐? 보고 싶으면 너네 집에 만나러 가면 되는 거지. 이제 우리 너네 집 다 알잖아. 안 그러냐, 강수아?”

“도유진 말에 동의하고 싶진 않지만, 맞는 말이야. 방학이면 시간이 많으니까, 오히려 더 자주 볼 수 있어.”

“고마워 얘들아… 진짜 나한텐 너희밖에 없어….”

칭얼대는 소연이를 능숙하게 달래는 도유진과 강수아. 둘이 죽이 착착 맞아서 소연이를 달래는 게 한두 번 한 솜씨가 아닌 모양이다.

나는 방학 덕분에 신난 친구들을 보며 잔에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렸다.

대학 다닐 땐 참 많이도 마셨는데,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가 너무 좋다.

간만에 들이키는 카페인이 뇌까지 차오르는 느낌이다.

“그럼 너넨 방학인데 방학 동안 뭘 할 거야?”

소연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난 일단 보고 싶었던 미드 전부 정주행 하려고. 보고 싶은 드라마 리스트 뽑아놨거든.”

도유진은 의외로 드라마, 특히 미드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어릴 땐 보기 싫다는 나를 붙잡고 온종일 같이 보게 하던 때도 있었는데….

“어? 정말? 뭐 보고 싶은데? 나도 드라마 좋아하는데. 그 리스트 같이 공유해줘.”

“그냥 하루 날 잡아서 같이 볼까? 내가 너희 집으로 갈게.”

“어 정말? 우리 집으로 올 거야?”

이런 부분에서 의외로 소연이와 죽이 맞는 모양이다.

“그럼. 그게 불편하면 네가 우리집 와도 되고.”

“아니야! 좋아! 아니 둘 다 좋아!”

“야 도유진. 너 목표하는 대학 가려면 공부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애 늙은이 같은 구석이 있는 수아가 살짝 태클을 걸었지만,

“공부? 공부하면서 드라마도 보면 돼. 야 강수아 너도 같이 보자.”

“그래 수아야. 같이 보자. 응? 공부도 같이하면 되잖아~”

“어? 응… 공부도 하면 상관없지.”

소연이의 애교에 순식간에 격침당하고 말았다.

매번 느끼지만 수아는 소연이에게 약한 구석이 있다.

“야 나강림. 거기서 쓴 물이나 들이키면서 실실거리지 말고. 넌 방학 때 뭐 할 거야?”

내가 듣기만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니꼬웠는지 내게 태클을 걸어오는 도유진.

【“아니꼬울 만하지… 아니, 알겠다. 더 말 안 하마.”】

내 화난 정신을 읽고 화들짝 놀라는 벨제뷔트를 무시하며 나는 입을 열었다.

“난 방학 때 복싱 한 번 배워보려고.”

“뭐? 복싱?”

*    *    *

“뭐? 복싱?”

“네. 이모. 복싱. 방학 동안만 조금만 배워보면 안 될까요?”

어째 친구들이랑 이모랑 반응이 똑같네.

【“아무래도 최근에 네 주변에서 있었던 일도 그렇고. 의외라고 생각했던 거겠지.”】

그래.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의외일 수도 있긴 하다.

왜냐면, 최근에 도지훈이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팼던 전 히어로, 밴디저(Bandager) 강무영의 전투 스타일이 복싱이었거든.

이 세계에서의 도지훈은 어렸을 때부터 프로 히어로를 지망하면서 프로 히어로의 훈련을 시작한 탓에 ‘듀크(Duke)’ 도지훈은 복싱 스타일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맞서 싸웠던, 그리고 나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매드독(MadDog) 도지훈은 복싱 스타일로 시작한 격투기 선수였다.

진짜 격투기 선수의 그 압도적인 강함을 느끼기도 했고, 지금은 볼 수 없어진 도지훈이 그립기도 했다.

‘…이대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걸 실감하기도 했고.’

지금까지의 나는 나약했다.

밤마다 히어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건 전부 신비한 힘을 가진 히어로 슈트 때문이었고, 제인이 없어진 지금은 벨제뷔트가 부여해주는 흑염의 힘에 기대어있다.

그러니까 매번 기술적인 부분에서 나보다 우위인 상대가 올 때마다 나는 고전하고 마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더 강해져야만 했다.

“어. 그래… 그냥 가볍게 운동한다는 느낌으로 방학 동안은 배워봐도 좋지. 몸 안 상하게 조심히 다녀오도록 해.”

“응 이모.”

이모가 반대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흔쾌하게 허락해주셨다.

반대해도 아마 몰래 다녔을 거 같기도 하지만, 숨길 필요 없는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이 주변에 복싱을 배울 수 있는 데가 있나 모르겠네.”

“어. 그건 걱정하지 마 이모. 가까운데 괜찮은 곳 하나 있더라. 생각보다 되게 크더라고.”

*    *    *

『태양 복싱 체육관』

【“크기에 비해… 사람은 없군.”】

그러게… 내가 예상한 것보다 너무 사람이 적은데.

직접 찾아간 복싱 체육관은 크기는 생각보다 꽤 컸지만, 사람은 너무 적었다.

커다란 도장에 있는 사람이라곤 셋.

그 셋도 전부 각자 다른 운동을 하고 있는지라 나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뭔가 좀 민망스러운데….

【“과연 이런 곳에서 제대로 된 무술을 배울 수 있겠느냐? 이렇게 큰 체육관을 딱 세 명이서 쓰는데.”】

지금이 사람이 별로 없는 시간일 지도 모르잖아.

【“곧 체육관에서 파리라도 날리겠구만 그래.”】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대화도 안 해보고 돌아갈 순 없지 않겠어? 일단 관장님이라도 한번 만나보자.

“저… 안녕하세요?”

【“ 저기까지 들리지도 않겠군. 목소리를 조금 더 키워라 나강림.”】

알았어. 조금 더 키워볼게.

“저기요~!”

그제서야 한참을 운동하던 사람 중 한 명이 고개를 돌린다.

“어 네~”

한참을 저편에서 혼자 용을 쓰며트레이닝을 하던 여자아이 하나가 땀을 닦으며 두두두 내 쪽을 향해 달려온다.

오….

【“흠… 예쁘군. 균형감각이 잘 잡혀 있어. 몸의 밸런스가 아주 좋아. 지옥 군단의 새로운 멤버로 탐이 나는군.”】

지옥 군단은 또 뭐야?

나는 벨제뷔트의 헛소리를 무시하고 대답했다.

“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 네. 여기… 체육관에 등록하고 싶어서 왔는데요….”

“아 손님이시구나. 잠시만요~ 관장님 불러다 드릴게요.”

【“나강림. 입에서 침 떨어지겠다. 입 좀 다물어라.”】

뭔 소리야. 내가 언제 침을 흘렸다고 그래?

【“한소연이랑 도유진이 불쌍하군 그래. 이런 머저리 같은 놈이 어디가 좋다고…”】

뭐?

【“나도 오늘따라 제인이 보고 싶구만 그래. 언제쯤에나 돌아 오련지….”】

내가 잠시 벨제뷔트랑 투닥거리는 사이 내 쪽으로 다가오는 노인.

분명 얼굴은 주름이 가득한 노인인데, 몸은 웬만한 히어로 못지않게 다부진 것이 느껴진다.

아마 저분이 이 체육관 관장님이신 모양이다.

…저 할아버지 분명 옷 입고 계신 거 맞지?

【“티셔츠를 너무 작은 걸 입고 다니는군. 몸을 자랑하고 싶은 것인가? 인간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지.”】

“왜 이경이가 안 오고 지나 네가 왔느냐?”

“이경 언니 잠깐 요 앞 가게 다녀온다고 나갔거든요.”

“그래 알았다. 그만 놀고 언능 가서 네가 해야 할 몫이나 채우거라. 잔꾀 부리지 말고.”

“넵.”

옆에 붙어서 쪼르르 따라오던 여자아이가 할아버지의 호통에 다시 쪼르르 자신이 트레이닝 하던 자리로 돌아간다.

“어디 보자… 네가 새롭게 등록하고 싶다는 사람이냐?”

“네? 네….”

이 할아버지 위압감이 엄청난데…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는데도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몸만 봐도, 충분히 강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한참을 나를 내려다보던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혼자 트레이닝은 열심히 하는 모양이군. 육체 계열 슈페리어는 아닌 모양이군.”

이 할아버지… 내 몸을 한 번 훑기만 하고도 내 옷 안쪽의 근육이 어떻게 발달했는지 알 수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는 내가 육체 계열 슈페리어인지 아닌지도 알아맞혔다.

“네. 맞아요.”

“너처럼 육체 계열 슈페리어가 아닌 사람은 복싱을 열심히 배워도 히어로가 될 수 없고, 경찰도, 군인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복싱을 배우려고 하는 이유가 있는 게냐?”

“…강해져야만 할 이유가 있거든요.”

“강해져야만 한다고?”

“네.”

“우리 체육관의 트레이닝은 대부분 육체계열 슈페리어에게 맞춰져있다. 일반인 트레이닝 코스를 만들어 줄 순 있지만, 그것도 엄청나게 힘들 거야. 그래도 하겠느냐?”

“네.”

“흠….”

할아버지는 내 대답에 생각이 필요했는지 잠시 눈을 감으셨다.

그러기를 몇 분이 지났을까.

곧, 그 입이 열렸다.

“좋다. 지나야!”

“네~”

아까 친절하게 나를 데려다주던 여자아이가 다시 한번 도도도 이쪽을 향해 달려온다.

“너 얘랑 스파링 한번 해 보거라.”

“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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