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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15화 (115/236)

115화

팀워크(1)

밀키웨이가 준 호출기는 역추적과 해킹에 강한 대신, 정보를 주고받는 데에 조금 제한이 있었다.

호출기 자체의 크기가 크지 않다 보니 보낼 수 있는 글자 수가 제한된다. 또 암호화 과정 때문인지 하루에 보낼 수 있는 문장 수 또한 제한되었다.

신기하긴 한데 왜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어져 있는지 모르겠네.

아무튼 밀키웨이는 내게 협업을 제안한다는 호출을 남겼고, 호출을 본 나는 지금 타투 다프네의 문 앞에 서 있다.

사실 뭐, 호출을 받은 순간부터 무슨 이야기를 할지 예상이 가긴 했다.

요즘 천산시 밤거리의 상황이 심상치 않았으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범죄 집단끼리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 전쟁의 대부분은 새로 생긴, 강철 기사단이라는 집단이 주도해서 벌이고 있다.

【“어차피 자기들끼리 싸우는 건데, 그냥 내버려 뒀다 정리해도 되지 않나? 왜 굳이 히어로들이 헛심을 써야 하지?”】

너야 지옥으로 떨어질 악인들이 다 죽어 지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로 인해 다치는 사람들이 생기거든. 누군가를 벌하기 위해 다치는 사람이 생긴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런가… 벌을 받는 사람 외의 사람이 다쳐서는 안된다라….”】

나는 타투 다프네의 문을 열었다.

차르륵-

차임벨 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이미 히어로 슈트로 갈아입고 장비를 준비하던 밀키웨이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어머. 무슨 일로 이렇게 평범하게 등장하는 거예요?”

아니, 창문 잠갔으니까 문으로 들어오라면서요?

【“나강림! 표정 관리해라! 헬 카이저는 저런 도발에 넘어가선 안 된다!”】

“아. 창문 잠갔다고 문으로 들어오신 거예요? 신기하네. 창문을 잠그면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낼 줄 알았는데.”

【“도발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 나강림! 내일부턴 등장 장면 특훈이다! 각오해라!”】

아니 악마님, 도발 당하지 말라면서요?

벌써 도착한 사람은 아무래도 나 뿐인 모양이다.

“다들 조금 늦는 모양이군.”

“네. 오늘은 다들 평소보다 조금 늦네요. 아무튼 어서 와서 앉아요. 보통 항상 맨 마지막에 등장하니까 오늘도 마지막에 등장할 줄 알았는데….”

약속 시간 딱 맞춰서 왔는데요?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늦는 느낌인데.

【“나강림! 다음부턴 약속 시간보다 5분, 아니 10분 이상 늦게 도착하는 걸로 한다!”】

칭얼대는 벨제뷔트를 무시하고 나는 자리에 앉았다.

이 세계 히어로들의 슈트는 컨셉에 따라 갈리긴 하지만 대부분 남녀 구분 없이 몸매가 드러나는 일명 쫄쫄이 슈트 기반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 비슷하게 생긴 옷을 입는 것은 아니다. 가면의 형태, 쫄쫄이 슈트의 색깔과 디자인, 그리고 보호구와 액세서리 등의 차이만 줘도 놀라울 정도로 다르게 보이거든.

마찬가지로 밀키웨이의 히어로 슈트 또한 스판 슈트에 가깝다. 다만 밀키웨이의 히어로 슈트는 남들보다 더 화려하다.

타투이스트답게 슈트 자체에 아름다운 그림들과 글자들이 그려져 있거든.

【“확실히…. 디자인이 미려하군.”】

그리고 만화책의 설정상으로 저 슈트에 있는 모든 그림은, 밀키웨이의 몸에도 동일하게 타투로 남아있다.

…흠. 괜한 상상을 했네.

나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다행히, 그런 내 상념은 오래 가지 않았다.

쉬이이익!

밝게 빛나는 무언가가 문 앞으로 날아오는 것이 창밖으로 보였다.

새로운 히어로가 등장할 모양인듯하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들어온 사람은 역시나 히어로, 퀘이사였다.

원래 매일 같이 학교에서 보던 사이였는데,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네. 그동안은 거의 카톡으로만 연락했었는데.

“언니! 나왔어! 어? 다크 카이저? 돌아온 거야?”

들어오자마자 나를 보며 크게 놀라는 퀘이사.

“어. 미안하게 됐군. 나는 다크 카이저가 아니야.”

“뭐?”

그제야 내 모습이 다크 카이저와는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알아차린 퀘이사가 인상을 찌푸린다.

“맙소사…. 이런 모양의 슈트를 입고 활동하는 히어로가 이 세상에 한 명이 아니었다고?”

“크… 크하하하!”

내 옆에 서서 퀘이사가 하는 모양을 지켜보던 밀키웨이가 깔깔 웃기 시작했다.

“나, 너 지금 무슨 생각 했는지 알 거 같아.”

“언니도 처음 봤을 때 같은 생각 한 거지?”

“아마 다른 히어로들도 다들 똑같은 생각 했을걸?”

이젠 이런 상황이 익숙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내 의도대로 다들 내가 두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니, 그건 다행이라고 할만했다.

퀘이사는 반짝반짝 빛나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퀘이사 슈트의 기본적인 형태는 밀키웨이의 슈트와 같다. 왜냐면, 슈트 자체를 만들어준 사람이 밀키웨이니까.

그래도 역시 색깔과 디자인만으로 큰 차이를 느낄 수가 있었다.

밀키웨이처럼 화려한 그림이 들어가 있지 않아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던 퀘이사의 슈트는 검은색과 주황색의 적절한 배합으로 인해 꽤 멋지게 보였고, 가슴팍에 포인트로 들어간 퀘이사(Quasar) 문양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그렇군. 심플한 디자인이 오히려 세련되게 느껴지게 만들기도 하는군….”】

다만 일반적으로 눈 근처를 가려 신원을 숨기는 다른 히어로들과는 다르게 퀘이사의 마스크는 코와 입을 가린다.

【“왜지? 눈 근처를 가리는 게 신원을 숨기는 데 더 도움이 될 거 같은데 말이지?”】

아. 퀘이사는 눈을 가리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있거든.

똑똑.

마침 나를 바라보는 퀘이사의 고까운 눈길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던 찰나에 누군가 문을 노크하고 들어섰다.

“밀키웨이 나왔어~ 오, 반짝이도 오랜만이네!”

“너 자꾸 내가 반짝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우리 사이에 왜 그래? 어. 깜찍이도 이미 와 있었네?”

“깜찍이?”

슈팅 노바가 나를 깜찍이라고 부르자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퀘이사.

【“크윽…. 저 여자가 결국 또 헬 카이저를 웃음거리로 만드는구나.”】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 래피드 스타. 우주를 가르는 혜성처럼 빠르게. 늦지 않게 도착해서 다행이군. 내가 늦는 일은 없지만 말이야.”

그 타이밍에 갑자기 나타나 내 옆자리에서 커피를 홀짝이기 시작하는 페이퍼백.

“죄송한데, 오 분이나 늦었거든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구만.

*    *    *

잠시간의 소동이 지나고, 전부 자리에 앉은 히어로들은 회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럼 대충 올 사람은 다 온 건가?”

“깜찍아. 꼬맹이는 어디에다 두고 혼자 온 거야? 요즘 안 데리고 다녀?”

“이런 일은 그 녀석한텐 너무 위험하니까. 녀석은 아직 초보다.”

최근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열심히 데리고 다니며 훈련 시키긴 했지만, 준석에게 이런 슈퍼 빌런과의 전쟁은 시기상조다.

이제 슬슬 자기 실력에 대해 과신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내가 가장 크게 후회했던, 래빗즈의 사건도 내가 히어로 활동을 한 지 거의 한 달 여쯤 지났을 때 일어났던 일이다.

“그래? 아쉽네. 그래도 꼬맹이가 센 척하는 게 나름대로 귀엽던데 말이야.”

“거 취향 독특하군.”

“왜? 깜찍이 질투나?”

나를 보며 씨익 웃는 슈팅 노바.

그 표정을 보는 순간 곧바로 설지나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와 진짜 누가 자매 아니랄까 봐 소름 돋게 똑같네. 하는 짓도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나는 슈팅 노바에게 말리지 않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그럼 칙칙이 아저씨는? 불렀다며?”

다크 스코프 아저씨? 그만둔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게요. 온다고 하셨었는데….”

“안 오면 어쩔 수 없지 뭐. 일단 우리끼리….”

덜컥… 덜컥덜컥….

그때, 갑자기 덜컥거리기 시작하는 다프네의 창문.

바람 소리는 아니다. 누군가 이 안으로 침입하려고 하고 있다.

장내에 있던 히어로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뒤섞인다. 표정을 보아하니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철컥 철커덕.

순식간에 권총을 조립해 손에 들고 창문을 겨누는 슈팅 노바, 머리카락의 밝기를 더 강하게 올리는 퀘이사, 양손을 창문을 향해 뻗는 밀키웨이. 전부 전투 준비를 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른 눈의 능력을 활성화했다.

바깥에 누가 몇 명이 왔는지 확인한다면 상대하기 편할 테니까.

“허. 참.”

붉은 눈을 이용해 바깥을 살펴본 나는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뱉고 말았다.

순식간에 장내에 있는 히어로들의 시선이 내게로 모인다.

“그냥. 창문 열어주시오. 기다리던 사람이 왔으니까.”

“기다리던 사람이요? 설마?”

내 말에 창문을 확 열어젖히는 밀키웨이.

덜컥 덜커덕.

“어? 다들…. 오랜만입니다. 하하!”

창밖에서 멋쩍게 웃고 있는 사람은, 잠긴 창문을 따고 들어오려던 다크 스코프였다.

*    *    *

나를 보고 놀랄 거라고 생각했던 다크 스코프는 의외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헬 카이저라는 존재를 조사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 그도 다크 카이저의 행방에 관해 나에게 살짝 물어오긴 했지만, 나는 여태까지와 똑같이 나도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밤거리의 균형이 깨진 건, 강철 기사단들이 사용하고 있는 최첨단 장비들 때문이에요. 이 장비들은 플럭스 공학회에서 빼돌린 것들이구요. 최근 플럭스 공학회에서 내분이 일어나 물건들을 도난당했다는 정보를 획득했었는데, 강철 기사단의 리더, 그렘린이 플럭스 공학회의 사람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어요.”

삑-

밀키웨이가 리모컨을 누르자 모니터의 화면이 넘어간다. 넘어간 화면에는 천산시의 지도가 펼쳐져 있다.

“저희의 목표는 일단 하나. 놈들이 사용하고 있는 최첨단 장비를 모아놓은 창고를 찾는 거예요.”

“지금 지도에 표시된 두 개의 위치가 그 빼돌린 장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창고의 위치인가?”

페이퍼백의 질문에 밀키웨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맞아요. 제가 판단하기론 둘 중 하나는 장비 창고, 나머지 하나는 본부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창고와 본부라….”

“일단은 여섯 명이니까 각각 세 명씩, 두 팀으로 나눠서 활동할 생각이에요. 6명이 한 번에 움직이면 아무래도 눈에 띄고, 그러면 장비를 은닉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나는 대화하는 동안 오랜만에 보는 다크 스코프 아저씨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내가 못 보는 사이에 슈트의 형태도 더 세련되게 바뀌고, 장착하고 있는 장비도 발전한 것이 눈에 보인다.

장착한 장비들이 자연스럽게 슈트의 디자인과 어우러진 모습은 감탄이 나오게 만들기도 했다.

다크 스코프의 원형이 된 다크 카이저 슈트의 모습은, 이제 후드 달린 망토와 까마귀를 닮은 마스크 외에는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렇군. 복잡한 디자인을 살리기 위해 이런 형태들을 취한 것인가….”】

그러고 보니 이 개구리는 아까부터 왜 슈트 디자인에 이렇게 집착하는 거야?

【“우리의 슈트가 자꾸 비웃음을 당하지 않나. 인간들에게 멋지게 보일 수 있는 슈트 디자인을 연구하는 중이었다. 기다려봐라. 내가 멋지게 만들어주지.”】

지금 만들어진 슈트의 디자인을 보면 그렇게 기대되진 않지만…. 어차피 안 입어주면 또 삐칠 테니까…. 나는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해줘야겠다.

【“다 들린다 나강림….”】

“그럼 팀은 어떻게 나누실 생각입니까?”

“이번 일은 지난번 잿빛 망토단의 본부를 습격하는 일보다 위험할지도 몰라요. 지금 우리는 서로 처음 보는 사람도 있을 테고, 서로의 능력이 얼마나 궁합이 좋은지 알 수가 없어요. 시행일은 넉넉잡아 최소 3일 뒤에는 시행해야겠지만, 그 사이엔 서로 이런저런 조합을 바꿔가면서 활동하며 조합을 시험해보는 걸로 하는 게 좋겠어요.”

“첫 번째 날엔 헬 카이저와 퀘이사, 그리고 다크 스코프가 한 팀. 저랑 페이퍼 백, 그리고 슈팅 노바가 한팀으로 손발을 맞춰보기로 하죠.”

그 말을 듣자마자 내 팀원으로 지목당한 두 사람 모두 나를 쳐다본다.

어쩐지 두 사람 모두 나를 껄끄러워하는 느낌이었다.

【“네가 헬 카이저가 다크 카이저와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을 만들어 놨지 않나.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크 카이저와 더 오래 활동을 한 사이다. 불편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앗. 맞다. 그런 설정이었지…?

나는 다시 한번 나를 껄끄럽게 쳐다보는 두 사람을 차례로 살폈다.

이 조합… 이대로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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