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팀워크(2)
빌런 집단끼리의 전쟁으로 하루하루 피가 마를 날이 없는 천산시.
그런 천산시에서 활동하는 히어로들의 반응은 대부분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다.
엔터에서 활동하는 히어로들이야 대부분 회사의 판단에 따라 이런 전투에 히어로들을 투입하는 것을 꺼려할 거다. 얻을 것은 없고, 되려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높다. 굳이 이 판에 끼어들 이유가 없다.
나머지 소수로 활동하는 자경단들도 전투가 과열되기 전인 초반엔 사건을 막아내기 위해 움직였을지도 모르지만, 뜨겁게 과열된 지금은 대부분 몸을 사린다.
이런 상황을 정리하겠다고 뛰어드는 히어로들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런 히어로 둘과 함께 팀을 이뤄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3일간의 조합 테스트에서 나는 결국, 퀘이사와 다크 스코프와 한팀이 되고 말았다.
조합 테스트를 하기 위해 서로의 능력을 확인하던 도중, 현재 가지고 있는 능력끼리의 시너지가 가장 강력한 조합이 나와 퀘이사, 그리고 다크 스코프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습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곳은, 강철 기사단이 기밀을 유지하고 있던 두 개의 전초기지 중 하나였다.
이곳이 놈들이 비밀 무기를 숨겨둔 창고일지, 아니면 놈들의 본부일지는 부딪혀 봐야 알겠지.
나는 내 옆에서 함께 밑을 내려다보고 있는 두 히어로, 퀘이사와 다크 스코프를 보았다.
“일단 공중전은 내 특기니까 내게 맡겨. 화력도 내가 가장 좋으니까.”
퀘이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다크 스코프 아저씨.
“그럼 지상에서의 기계 장치들은 제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헬 어쩌고 님은 지상의 빌런들을 제압해주시죠.”
“그렇게 하도록 하지.”
【“헬 어쩌구가 아니라 헬 카이저라고 정확하게 말해라!”】
“그리고 헬 어쩌구가 아니라 헬 카이저. 이름을 똑바로 불러줬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헬 카이저.”
“그럼 간다?”
아저씨와 내가 신경전 아닌 신경전을 하는 동안 능력을 완충했는지, 반짝반짝 빛나는 머리를 하고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퀘이사.
“난 준비 됐다.”
“저도 준비 됐습니다.”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서서히 기울어지는 퀘이사의 몸.
나는 퀘이사의 몸이 추락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똑같이 바닥을 향해 뛰어 내렸다.
* * *
S 내 이름은 나강림.
H 현재 나이 열 일곱.
H 만화 「Heroicest」에
H 들어온지는 약 7개월 정도.
H 이 세상의 평화를 위협하는
H 빌런들을 막아내기 위해
H 나는 매일 밤,
H 히어로 활동을 하는 중이다.
“지옥에서, 나 강림.”
“바로 여기, 나 강림.”
“모두들 안녕! 천산시의 하루를 지키는 히어로, 퀘이사가 여기 등장!”
칙칙한 색감의 히어로 둘 옆에 화려한 색감을 가진 퀘이사가 함께 내려오니까 퀘이사만 반짝거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반짝거리는 것이다.”】
우리가 허공에서 떨어지자 깜짝 놀라 우리를 향해 돌아서는 강철 기사단.
이름처럼 일개 조무래기들도 강철로 된 장비들을 삐까번쩍하게 착용하고 있다.
‘잿빛 망토단’이 일찍 무너진 것은 원작에선 없었던 전개이다. 직접가서 고통 받고 있는 아이들을 본 내가 훨씬 더 일찍 히어로들을 소집해 소탕해버렸거든.
그러므로 ‘잿빛 망토단’이 무너지고 ‘강철 기사단’이라는 새로운 단체가 생긴 것은 사실, 내가 읽었던 원작에서는 없었던 전개다.
나로 인해 만들어진, 새로운 전개.
하지만 ‘그렘린(Gremlin)’이라고 이름 붙여진 빌런은 다르다. 원작의 중반부쯤에서부터 나타나 주인공인 스타 라이트를 괴롭히는 존재니까.
나로 인해 무너진 잿빛 망토단을 삼킴으로써 조금 더 일찍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
“히어로들이다!”
“퀘이사다! 퀘이사가 왔어!”
“혼자가 아니다! 히어로가 둘이 더 있어!”
가장 유명한 퀘이사 외의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걸로 보아, 빌런 일을 해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놈들인 듯하다.
마침 팀워크를 맞추기 위해 시작하려는 일로는 적절하다 할 수 있겠다.
놈들이 제대로 반응 하기 전에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가장 먼저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퀘이사.
화르륵! 화륵!
허공을 날아 다니며 하늘에 떠 있는 전투 드론들을 요격해 나가기 시작한다.
다크 스코프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등 뒤에 걸려있던 푸른색으로 번쩍이는 총을 꺼낸 다크 스코프가 땅 위에 있는 전투 로봇들을 향해 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발전기의 전력을 흡수했던 라이트닝 스파크와의 전투에서 빼앗았던 전기 불꽃이다.
요 한 달간 잘 보이지를 않기에 현실에 지쳐 히어로 활동을 포기한 줄 알았건만, 새로운 장비들을 연구하고 만들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층 강력해진 장비들로 무장한 다크 스코프 아저씨는 이젠 정말 히어로라고 불리기 손색이 없을 수준이었다.
【“나강림! 한 눈 팔 때가 아니다! 너도 공을 세워야지!”】
네. 네. 알겠습니다. 지옥의 군주님.
두 사람이 저렇게 멋진 불꽃을 뿜어내고 있는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나는 허공에 흑염을 뿌리며 놈들의 사이로 스텝을 밟았다.
기왕 연습하는 김에 요즘 익히고 있는 격투 기술들을 사용해볼 생각이었다.
놈들은 강철로 된 장비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선 육탄전을 피하고 원거리전으로 상대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쉬이익-
벨제뷔트! 헬 나이트 모드 온!
【“알겠다! 지금 바로 준비하마!”】
SUIT MOD
HELL Kiaser
도지훈과의 전투로 방어형이라고 생각했던 아머 모드에서 새로운 쓰임새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육체의 단단함은 의외로 육탄전에서 파괴력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가져왔다.
허공에 뿌려진 흑염에 빌런들의 시야가 좁아진 것이 느껴진다. 내가 파고들어 왔음에도 내 위치를 빠르게 파악하지 못한다.
나는 흑염에 시야를 뺏긴 빌런 한 명에게 최근 수도 없이 휘둘렀던 주먹을 던졌다.
쉬이이이익-!
예전과는 주먹을 뻗을때의 느낌 자체가 달라졌음을 체감한다. 불길함을 예감한 빌런이 고개를 돌려보지만-
빠-각!
순식간에 틀어박힌 헬 나이트 모드의 단단한 건틀릿이 순식간에 놈의 헬멧을 부순다.
“앗!”
옆의 동료가 얻어맞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내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내게 들고 있던 광선총을 겨누고 발사하는 두 번째 빌런.
하지만 좋지 않은 판단이었다.
총에서 나간 광선은 허망하게 허공을 갈랐다. 내가 놈의 총을 잡아 허공으로 방향을 비틀어버린 탓이다.
초인들의 싸움에서 이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다면 총기를 사용하는 것은 포기하는 게 신상에 더 이롭다.
놈의 총을 잡고 있는 반대손으로 물흐르듯이 공격을 이어나간다.
뻐-억!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부서지는 놈의 강철 갑옷.
“커헉!”
배를 부여잡고 쓰러지는 놈을 내버려 둔 채, 그 옆의 다음 놈의 공격을 받아낼 준비를 한다.
그 옆에 있던 놈은 아까 전 녀석보단 나았다.
들고 있던 총을 내게 겨누기보다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활용한다.
트드득!
팔목에서 튀어나온 칼날이 헬 나이트의 갑옷을 할퀴고 지나간다.
웬만한 금속보다 단단한 헬 나이트의 갑옷이 순식간에 뜯겨져 나갔다.
기본적인 육체능력도 좋고, 사용하는 무기의 질도 나쁘지 않다. 기본기도 있고 스피드도 빠르다.
속도에 익숙해지고 나서부턴 공격을 보고 피할 순 있었지만, 의외로 틈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한 후 공격한다.
한번의 공격이 지나고, 놈의 어깨가 움직이는 것을 기다린다. 어깨를 보고 놈이 내게 해올 공격을 예상했다.
칼날이 내 쪽으로 향함과 동시에 내 주먹도 놈을 향해 날아간다.
뻐-걱!
내 주먹은 놈의 헬멧과 턱을 부쉈지만, 놈의 공격은 내게 스치지도 않았다.
【“잘했다 나강림!”】
POW!
BAM!
SMASH!
내가 요 며칠 배운 격투 기술들을 재현해가며 주변을 정리해가던 도중, 나는 이 주변에 서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끄윽… 끅….”
“어어억….”
사방에서 나는 소리에 나는 얼떨떨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쓰러트린 빌런들의 대부분이 바닥을 구르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전투 자체에 너무 몰두해 있었던 모양이다.
“아저씨. 나는 사실 다크 카이저가 장난하는 게 아닌가 의심했거든?”
“네. 저도 비슷한 의심을 했습니다만… 확실히 다크 카이저님보다 손이 맵습니다. 더 자비가 없어요.”
나를 돕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네. 아직도 텃세를 부리는 거야? 원래 이런 히어로들이 아니었는데 왜 이러는 거람?
팀웍을 맞춰보기 위해 만든 팀이지만, 팀웍을 맞춰보기는커녕 각개전투를 진행했다.
다크 카이저일 땐 손발이 꽤 잘 맞는 팀원들이었는데….
나는 서글픈 감정을 느끼며 주변의 장비들을 살펴보았다.
“일단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 보는 게 좋겠습니다. 혹시나 안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요.”
되도록, 여기가 창고였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이런 일을 일으킨 빌런이 누군진 알았지만, 지금의 그렘린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창고 내부의 물건들을 확인해야만 한다.
이런 기계에서 정보를 추출해 내는 데에는 제인이 최고였는데…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옛말에 틀린 것이 없는 모양이다.
“잠깐, 그 전에 내 소모된 화염을 보충할 시간을 좀 가지는 게 좋겠어.”
퀘이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오른눈의 능력을 사용했다.
아까까진 거리도 멀고, 장애물도 많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건물의 앞에 도착한 지금은 다르다.
건물의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정도는 확인 할 수 있을 거다.
* * *
[“허억!”]
제인은 눈을 뜨자마자 이 세계의 시간을 확인했다. 대충 셈을 해보니 자신이 슈트를 과부하 시키고 나서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흐른 후였다.
슈트의 과부하는 위험에서 강림이를 구출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슬슬 ‘별이 빛을 잃은 세계’의 상황을 살펴야 할 필요도 느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 달여 시간 동안 파악한 바로는, ‘별이 빛을 잃은 세계’에선 아직 이 세상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벨제뷔트! 헬 나이트 모드 온!’
【“알겠다! 지금 바로 준비하마!”】
SUIT MOD
HELL Kiaser
자신보다는 서투른 솜씨지만, 그래도 열심히 나강림을 보조하고 있는 벨제뷔트가 보였다.
다행히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별 일 없이 히어로 활동을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마스터! 벨제뷔트!”]
히어로 활동에 열중하고 있는 그들을 불러보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 슈트의 기능 자체가 완전히 회복 된 것은 아니었다.
제인은 슈트 내부의 회복된 기능들과 주요 방화벽들을 확인한 후, 남은 힘을 회복하기 위해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