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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19화 (119/236)

119화

여행(1)

나강림이 체육관에서 매일 같이 트레이닝에 몰두하는 동안 강수아, 도유진 그리고 한소연은 방학 시작 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셋이 뭉쳐 방학을 같이 보내고 있었다.

한 집에 함께 모여 공부를 한 후, 함께 외출해서 쇼핑 혹은 소연이나 유진의 집에 모여 드라마나 영화를 함께 보고 헤어지는 것이 일과처럼 굳어지게 되었다.

오늘도 셋은 소연의 집에 모여 함께 공포영화를 보고 있었다.

<“얘들아~ 나랑 같이 가주면 안 돼? 나 무서워….”>

<“아…. 화장실 정도는 혼자 다녀오면 안 돼?”>

<“세상에 귀신이 어딨다고 자꾸 귀신 타령이야?”>

<어쩔 수 없이 혼자 화장실을 향해 걸어가는 여학생…. 화장실 문 옆에 서서 그런 여학생을 기다리는 하얀 얼굴의 여성…!>

“좋아! 우리도 여행 가자!”

영화를 보다 말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한소연.

“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런 한소연 때문에 놀라 비명을 지르는 도유진. 공포영화를 보는 걸 꺼렸던 수아는 비명도 못 지른 채 놀라 뒤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한소연! 놀랬잖아!”

“아하하! 미안해!”

소연은 자신을 원망하는 친구들을 향해 사과했다.

“근데 갑자기 무슨 공포영화를 보다 말고 여행이야?”

“응. 우리도 모여서 진짜 무서운 담력 훈련 같은 거 한번 해보면 좋겠다 생각이 들어서. ”

담력 훈련이라는 말에 도유진과 강수아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소연은 자신들보다 공포물에 대한 내성이 훨씬 높다. 소연이 무서울 정도의 담력 훈련은 분명 수준급의 난이도일 테지.

그런 친구들의 표정을 보고 소연은 또 깔깔 웃었다. 이제 슬슬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친구들의 표정을 읽어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자신을 배려한답시고 하고 싶지도 않은 담력 훈련을 강요하고 싶진 않았다.

“담력 훈련은 농담이구, 여름방학인데 한 번은 다 같이 놀러 갔다 오면 좋지 않을까?”

소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벌떡 일어나는 도유진.

“그래! 나도 동의! 안 그래도 방에서 드라마나 보면서 노는 거 답답했는데. 시원하게 한번 놀러 가자! 강림이도 불러서!”

“와~ 좋아! 강림이도 부르자!”

친구들의 반응을 보니 여행을 가는 것은 이미 확정이다. 그렇다면 강수아 자신이 여행지를 찾는 편이 좋다. 어차피 자신들은 미성년자라 숙소도 못 구할 테고, 하루 안에 돌아온다면 히어로 활동에도 영향이 오진 않을 거다.

“좋아. 내가 주변에 하루 만에 놀러 다녀올 만한 여행지 한 번 찾아볼게.”

“야. 방학 때 놀러 가는데 그래도 며칠은 자고 와야지!”

“숙소를 우리가 어떻게 구할 건데? 우리끼리 갈 거면 숙소 못 구해.”

“그리고 강림이도 안 올걸? 요즘 매일 공부하고 운동한다고 바쁜 모양이던데.”

“후후후.”

친구들의 말에 알 수 없는 웃음소리를 내는 도유진.

“걱정하지 마. 그거 둘 다 내가 해결할 테니까.”

*    *    *

“아 여행?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강수아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허락하는 황서현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언니. 내가 무슨 시간이 있어서 여행을 가? 내가 여행을 간다고 자리 비운 동안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

“걱정하지 마. 하루 이틀 사이에 무슨 일 안 생겨. 강철 기사단도 지난번 공격 이후로 비교적 얌전하게 지내는 편이고, 어차피 다크 스코프 씨가 약점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내려면 시간도 더 필요해. 그리고 네 몸도 회복할 필요가 있어.”

“그래도….”

“강수아.”

강수아는 성까지 붙여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황서현의 반응에 조금 긴장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낸 황서현이 화가 났을 때 하는 버릇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난 네가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

“나처럼 이 일에 인생을 바치진 말았으면 좋겠어. 넌 아직 고등학생이야. 아직 살날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야 할 나이야. 꼭 나처럼 되기 위해 네 인생을 깎아낼 필요는 없어.”

“…….”

강수아는 황서현이 꺼낸 말에 입을 다물었다. 황서현은 이중 신분을 만들어두지 않는다.

히어로나 빌런 사이에서 밀키웨이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처음부터 히어로 네임과 자신의 본명을 모두 걸고 가게를 만들었으니까.

자신의 삶을, 모두 온전히 히어로의 삶에 내던진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강수아는 그런 자기희생적인 황서현의 삶을 동경하고 있었다.

“너도 내심 가고 싶으니까 말을 꺼낸 거잖아? 넌 좀 더 솔직해져도 돼. 천산시에는 강한 히어로가 많아.”

강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앞에 있는 밀키웨이, 다크 스코프, 페이퍼백과 슈팅 노바 그리고 헬 카이저까지.

모두 자신만큼 강하고 멋진 히어로들이다. 그들이 있는 한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자신이 필요할 때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올 수 있는 거리까지만 여행을 가면 된다.

“알겠어. 언니. 다녀올게.”

*    *    *

“뭐? 여행이요?”

“그래. 네 친구들이랑 같이 여행 가자고 어제 도유진이 전화했더라.”

어제 나한테도 연락이 한 번 오긴 왔었지만 고민해 볼 필요도 없이 거절했었다.

일단은 여자애들끼리 여행 가는 데에 끼어봐야 강수아한테서 눈총이나 받을 것이고, 나도 불편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지금 천산시 빌런들의 분위기마저도 심상치 않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틈은 없다.

“저는 생각 없어요. 집에서 공부나 할게요.”

“안 돼. 이미 너까지 포함해서 예약 다 해놨거든.”

“네? 누구 맘대로요?”

“이모 마음대로다. 왜?”

어? 갑자기 왜 이러시지?

평소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하라고 하시고 하기 싫다는 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해 주시던 이모의 갑작스러운 태도 전환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강림아. 이모 말 들어. 공부도, 운동도 가끔 쉬는 시간이 있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법이야. 솔직히 이모는 좀 걱정된다. 고등학생이 되더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건 아닌가 생각도 들고.”

“그건 그냥 고등학생이 되었으니까 그런 거예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잖아요.”

“공부도 운동도 가끔은 쉬면서 해야 발전이 있는 법이야.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모도 너랑 시간도 보내고 하면 좀 좋아?”

나는 이모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최근 바빠도 너무 바쁘다 보니 이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줄긴 했다.

이모가 퇴근해서 돌아와도 히어로 활동을 하기 위해 집을 비웠으니까.

내가 갑자기 운동과 공부에 열중하는 타이밍도 마찬가지다.

최근 학교에서 몇 번이나 안 좋은 일이 생겼었고, 거기에 나와 가까웠던 도지훈마저 좋지 않은 일에 연루되어 재판까지 받았다.

이모로서는 내 심리 상태가 미친 듯이 걱정될 거다.

평소 온화하던 이모가 이 정도까지 단호하게 말한다면, 아무래도 함께 여행을 가는 상황을 피할 순 없다.

여행을 가더라도 오래 자리를 비울 상황을 피하는 방법을 생각해야겠다.

“알겠어요. 이모. 그럼 어디로 가는 건데요?”

“네 친구 수아가 할머니 때문에 너무 멀리는 안 갔으면 좋겠다고 하더구나. 연백산 계곡으로 갈 거야.”

산…? 계곡…?

연백산과 계곡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내 머릿속으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원작의 에피소드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욱신거리기 시작하는 내 오른눈.

원작 만화의 세계관이 영적 세계와 연결되게 만드는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 바로 연백산이었다.

욱신거리는 오른눈이 내 기억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오른눈이 욱신거릴 땐 항상 무슨 일이 생기곤 했으니까.

【“이런 타이밍에 갑자기 기억나는 미래지식. 그리고 오른눈의 고통. 불길한 예감이 드는군.”】

나는 간만에 벨제뷔트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게. 이렇게 불길한 예감이 든다면, 안 갈 수가 없네.

“알겠어요. 이모. 준비할게.”

*    *    *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여행은 순식간에 준비되었다. 이모가 아는 사람에게 빌린 6인승 SUV는 6명이 타기엔 충분히 넓었다.

나, 이모, 강수아, 도유진, 한소연. 다섯 명 아니냐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우리의 여행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한 명의 사람이 더 함께하게 되었다.

“아이구. 안녕하세요. 저는 소연이 엄마. 한영애라고 해요.”

“아 네. 안녕하세요. 저는 강림이 이모예요.”

“어머~ 강림이 이모 되시는구나. 어쩜 너무 미인이시네~”

소연이가 우리와 함께 여행을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소연의 어머니까지 보호자로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이 아이들의 유일한 보호자였던 이모는 거들어줄 일손이 생기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우리 소연이가 강림이랑 너~무 친해지고 싶어 하거든요.”

“엄마!”

“어머. 정말요? 저도 강림이한테 소연이 같은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가는 동안 강림이 이모가 운전하실래요? 돌아올 땐 제가 할게요.”

“어머. 그럴까요? 그럼 저도 감사하죠.”

어휴 벌써 정신이 없구만.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먼저 차에 올랐다.

“야 도유진. 넌 내 옆에 앉아.”

“뭐? 또? 왜 넌 이럴 때마다 나랑 같이 앉고 싶어 하는 건데?”

“조용히 하고 내 옆에 앉아.”

강수아가 내 옆에 올라타려는 도유진의 팔을 붙잡고 뒷자리로 끌고 올라간다.

최근 셋이서 붙어 다니더니 둘이 티격태격하긴 해도 둘이 생각보다 친해진 모양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얼마 전에 있었던 일 덕분에 도유진이 내 옆에 앉는 건 좀 어색했으니까 잘되기도 했다.

“어머. 우리 소연이가 강림이 옆에 앉았네. 잘됐다. 그치?”

“엄마! 제발 그만!”

소연이가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내 옆자리에 올라탔다.

“자 그럼 출발합니다.”

시끌시끌한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아~ 정말! 오늘따라 우리 엄만 자꾸 왜 이러시는 거야!

여행에 따라오겠다고 했을 때 더 열심히 말렸어야 했다.

소연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차창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에 달아오른 얼굴을 식힌다.

소연은 달아오른 얼굴이 조금 식고 나서야 강림이를 볼 수 있었다.

강림이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속을 알 수 없었지만, 소연은 그 사이에서 즐거워하는 강림이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다행이다.

소연은 강림이가 다크 카이저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이후부터 항상 다크 카이저에게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는지 주의 깊게 살펴왔다.

그리고 소연은 최근 강림이가 많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다크 카이저인 강림이가 천산시에 나타나지 않은 지 거의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으니까.

강림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히어로를 그만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지.

걱정은 많이 되지만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 강림이를 부르겠다는 도유진의 말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보기 힘들었던 강림이의 얼굴을 볼 수 있음과 동시에, 혹시 그 안에 있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소연은 자신이 강림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소연아. 그렇게 쳐다보면 얼굴에 구멍나겠다.”

“아 엄마!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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