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화
강철기사단(4)
<“헬카이저!”>
퀘이사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붉은빛으로 빛나던 머리카락이 깜빡거리며 허공을 붕붕 뛰어다니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퀘이사가 보였다.
뭐야? 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허공을 뛰고 있는 거지?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야 나는 퀘이사가 밀키웨이가 만든 파란 보호막을 밟고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래도 전투 도중에 힘이 다해 허공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했던 걸 밀키웨이의 보조를 받아 버티면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던 모양이다.
허공에서 바닥으로 천천히 떨어지고 있는 퀘이사에게 나는 블래스트를 몇 발 갈겨주었다.
화륵!
붉은 색으로 깜빡이던 퀘이사의 머리칼이 순식간에 흑염의 색으로 물든다.
흑염은 잠깐 적들의 공격을 피해 빠르게 바닥으로 내려오게 도와줄 순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퀘이사가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야 했을 텐데….
퀘이사는 내가 뿜어낸 흑염을 흡수하자마자 곧바로 쉴드를 딛고 뛰어올라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빌런들을 향해 흑염을 뿜어내었다.
자연스럽게 내게서 받아든 흑염을 이용해 전투를 이어나가기 시작하는 퀘이사.
뭐야? 벨제뷔트! 저게 어떻게 되는 거야?
【“흑염과 네 친화력이 강해져서 예전보다 덜 아픈 것도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타격이 있을텐데….”】
이번 전투를 위해 흑염의 타격을 견뎌내고 있는 거로구나.
나는 퀘이사의 전투 방식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저게 일반적인 정신력으로 가능한 거야?
【“나강림! 언제까지 정신 빼고 있을 테냐? 네가 이렇게 정신 빼고 쉬고 있으니, 네 동료들이 더 고생하는 거다!”】
나는 벨제뷔트의 잔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흑염의 날개를 만들어냈다.
허공을 맡고 있는 퀘이사가 잠시 화염을 충전하는 동안, 내가 대신 공중 지원을 해줄 예정이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내 흑염을 받아들여 전투 상황을 유지하고 있지만, 흑염을 이용한 전투를 오래 지속할 순 없을 테니까.
【“가서 좀 쉬다 오라고 해도 말을 들을진 모르겠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감이긴 해.
화륵!
내 어깨 위로 느껴지는 흑염의 열기를 느끼며, 나는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와씨. 생각보다 훨씬 덥네. 퀘이사는 이 여름에 어떻게 매번 이런 상황에서 전투를 벌이는 거람?
“헬 카이저! 잘 왔어! 화염! 화염이 더 필요해!”
내가 날아오는 것을 확인한 퀘이사가 허공에서 날아드는 적의 날개에 화염을 쏴 떨어트리며 예상한대로 외쳤다.
벨제뷔트한테도 예상 당할 정도라니. 강수아, 너 어떻게 되먹은 거냐?
나는 한숨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강수아에게 말했다.
“내가 잠시 공중을 맡겠다. 넌 가서 화염을 충전해오도록 해.”
“뭐? 지금 같은 상황에 내가 빠지면 이 상황이 유지될 거 같아?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흑염이나 더 내놔.”
퀘이사라는 인물이 왜 이렇게 자신을 태워 가며 이 악물고 히어로 활동을 하는지 원작을 본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끝까지 자신을 태워 히어로 활동을 하려는 퀘이사를 말리고 싶었다.
우릴 향해 날아오는 총탄을 허공을 날아 피하며 나는 퀘이사에게 말했다.
“밀키웨이가 이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히어로들에게 꼭 지켜줬으면 한다고 했던 말 기억나나?”
“뭐? 갑자기 이런 상황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이런 작전에선 결국 히어로 개개인이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 기억 안 나나? 지금 이 상황은 누구를 구해야 하는 것도, 여기 있는 모두를 빨리 쓰러트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너를 태워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오지랖 부리긴.”
투두두두둥!
미쳐 퀘이사와 내가 보지 못했던 공격을 밀키웨이가 쉴드를 만들어 막아내주었다.
<“헬 카이저의 말이 틀린 거 없어! 퀘이사!”>
그와 동시에 섀도우-통신기를 통해 들려오는 밀키웨이의 목소리.
밀키웨이의 잔소리가 마지막 한 방이 되었는지 퀘이사가 한숨을 내쉬며 남은 흑염을 뿜어내며 지상으로 떨어졌다.
<“알겠으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하늘 제대로 맡고 있어. 다른 히어로 다치게 뒀다간 가만 안둘거야.”>
알겠습니다. 퀘이사님.
대답은 속으로만 하며, 나는 허공으로 날아드는 적들과 맞서기 시작했다.
* * *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전초기지를 보며 그렘린은 이를 악물었다.
완전히 와해되었던 집단을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끌고 올라왔는데!
바보 머저리들 밖에 없는 이 집단을 내가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 만큼 키웠는데!
빌어먹을 히어로들!
쾅쾅쾅!
마음 같아선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집어 던져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를 공격해온 히어로들이 대체 어떤 수를 썼는지,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파지직- 파직-
그렘린은 신체의 파손 정도를 알려주는 홀로그램을 살폈다. 히어로들이 자신의 움직임을 봉인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육체에 남은 데미지는 제로에 가까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억제력이 떨어지고 있다. 바깥에서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복구하면 그만이다.
그렘린은 앉아있던 의자에 딱 달라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는 몸을 계속해서 움직이기 위해 노력했다.
에너지 사용이 적은 부분부터 천천히 움직여보는 게 좋겠다.
그렘린은 자신의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여보기 시작했다.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계속해서 눈 앞에 떠오르던 에러창을 무시하며 몸을 움직이기 위해 시도하던 그렘린은, 결국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는데 성공하고 말았다.
파지직-
손가락 하나가 움직임과 동시에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에너지가 몸 전체를 빠르게 돌아다니며 그렘린의 육체에 활력을 넣어주었다.
가볍게 돌려본 신체 기능 테스트에도 이젠 에러가 잡히질 않는다.
지금까지 내게 준 수모를 모두 갚아주마.
그렘린은 주먹을 휘둘러 벽을 깨 부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히어로들에게 당해 쓰러져 있는 자신의 부하들이 보였다.
어떻게 키운 세력인데, 이대로 세가 꺾일 순 없다. 이 이상 타격이 심해졌다가 다른 빌런 집단들이 손을 잡고 치기라도 한다면 막아내기가 힘들어진다.
자신이 뚫고 나온 벽을 기대고 사용하고 있던 히어로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 보였다.
그렘린이 뻗어낸 손에서 나온 레이저가 그 히어로를 정확하게 맞췄다.
* * *
강철기사단과의 전투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점점 마무리 단계로 치닫고 있었다.
우리 여섯 명이 모두 함께 힘을 맞춰 싸워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지만, 마치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본 것처럼 전투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나와 다크 스코프, 퀘이사가 앞장서서 전선을 유지한다.
둘 중 누군가가 버거운 정도의 숫자와 맞서게 되면 슈팅 노바의 총알이 날아와 지원해준다.
보지 못했던 총알은 밀키 웨이의 쉴드가 막아준다.
혹시라도 우리가 놓친 적은 페이퍼백의 인피니티 체인에 꽁꽁 묶여 바닥으로 쓰러진다.
물흐르듯 이어지는 콤비네이션!
하지만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조금 방심했을지도 모르겠다.
CLASH!
갑자기 벽에서 튀어나온 금속팔에서 뿜어져 나온 레이저!
ZIE-YOUU!
뿜어져나온 레이저는 벽에 기대서서 쉴드로 지원해주고 있던 밀키웨이를 정확하게 맞추고 말았다.
“꺄아악!”
“밀키 언니!”
히어로 활동을 하며 처음 듣는 히어로의 비명이 내 귓가를 울린다.
“밀키웨이님! 괜찮으십니까?”
“페이퍼… 아니 래피드 스타! 지금 가는 중!”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나도 모르게 등 뒤를 돌아보려고 하던 그때,
<“다들 정신 차려! 한 명 다쳤다고 정신 빠트렸다간 여기서 다 같이 당한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 말 들어!”>
통신기로 들려오는 슈팅 노바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놀랐던 목소리를 진정시켰다.
<“지금 퀘이사 어차피 화염 다 썼지? 퀘이사가 부상 입은 밀키웨이를 데리고 전투에서 빠져나간다.”>
<“뭐? 나보단 페이퍼백이….”>
<“너 지금 쓸모 없어. 페이퍼백은 아직도 우릴 도와줄 힘이 있고. 여기서 다 같이 살아나가려면 내 말 들어.”>
슈팅 노바의 단호한 목소리에, 퀘이사가 하는 수 없이 대답한다.
<“…알겠어.”>
<“나머지는 퀘이사가 밀키웨이를 데리고 빠져나가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엄호한다. 그 후에 우리도 여길 빠져나가는 거야. 알겠냐? 대답은 안 해도 된다.”>
슈팅 노바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렘린 님이시다! 그렘린 님이 오셨다!”
“절대 이놈이 저쪽으로 가게 내버려 두지 마!”
“최대한 시간을 끌어!”
그렘린! 보스도 여기 있었나!
오른눈으로 꽤 제대로 훑어봤다고 생각했는데, 내 능력이 미쳐 닿지 않은 곳에 그렘린이 스크랩 메이커 덕분에 묶여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지금 상황을 보고 받고 멀리서부터 찾아왔던지.
자신들의 보스가 일어나자마자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아는 듯, 나와 대치하던 기사단원들이 좀 더 끈덕지게 나에게 달라붙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이미 쓰러졌던 놈들마저 다시 몸을 일으킬 정도.
빠른 시간내에 내가 저쪽을 도우러 가긴 힘들지도 모른다.
나는 오른눈의 능력을 이용해 밀키웨이 쪽의 상황을 살폈다.
피가 흐르는 팔을 꽉 쥐고 퀘이사에게 부축되고 있는 밀키웨이의 모습이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목숨이 위중할 정도의 상처는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전투를 지속하긴 힘들어 보였다.
다크 스코프와 페이퍼 백이 그렘린과 대치하고 있지만, 다크 스코프와 페이퍼 백이 상대하기엔 화력이 조금 부족하다.
슈팅 노바는 저 멀리서 저격해오는 빌런, 데드아이를 견제하고 있느라 이쪽까지 신경 써주긴 힘든 모양이다.
이 상황에는, 내가 최대한 빨리 이곳을 정리하고 저쪽으로 합류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끈덕진데.
탕탕탕!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나와 대치하고 있던 기사단원들에게 순식간에 총탄이 틀어박힌다.
기사단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따뜻한 피가 내 얼굴에 튀어 오른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비살상용 탄환이 아니었다. 실탄이다.
실탄을 사용했어?
<“헬 카이저! 정신 차리고 제대로 지원해!”>
【“걱정하지마라 나강림! 치명상은 면했어! 죽지는 않을거다!”】
슈팅 노바가 실탄을 사용했다는 충격보다, 지금 당장은 밀키웨이를 구출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몸을 돌려 그렘린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