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여름방학의 끝(2)
그렇게 큰 꽃집은 아니었다. 동네에 하나둘쯤은 있는, 혼자서 운영할만한 작은 꽃집이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꽃집이라는 느낌은 들었는데, sns아이디와 블로그 아이디, 쇼핑몰의 이름이 적힌 푯말과 함께, 꽃으로 만든 여러 가지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스터는 꽃집에 관심이 없으셔서 잘 모르셨겠지만, 요즘 꽃집들은 이 정도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거든요.”]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그냥 위장용으로 만든 가게는 아닌 거 같아서.
이 세계의 히어로들 컨셉이 평소의 모습과 괴리감이 있다는 건 알고 있긴 했지만, 이건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심한 편이 아닌가 싶었다.
[“제 생각엔 중2병 컨셉인 마스터도 별다를 건 없는 것 같은데요… 아마 도유진이 마스터의 본 모습을 알게 되면, 진심으로 비웃을걸요?”]
나는 제인의 말에 잠깐 내가 다크 카이저라는 걸 알게 된 도유진의 모습을 떠올렸다.
<“꺄하하하! 나강림 너 아직도 그러고 살고 있었냐? 개웃겨~”>
절 대 안 돼.
“우리 언니 어때? 예쁘지?”
나는 지나의 말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격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외모로만 봤을 땐 확실히 예쁘긴 했으니까.
“그러네. 너랑 진짜 자매가 맞나 싶을 정도야.”
“너 죽을래?”
“어머. 칭찬 고마워요.”
단정하게 빗은 머리, 꽃무늬가 새겨진 앞치마, 생글생글 웃는 표정을 하며 나타난 슈팅노바 설지원이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찻잔을 건넸다.
“좀 들어요. 제가 직접 말린 꽃으로 만든 꽃차랍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언니 나는?”
“너는 물 마셔.”
입술을 삐죽 내미는 설지나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자매 사이에서는 슬슬 성격 나오긴 하네. 지나 성격이 괜히 쎈 건 아니야.
【“굉장히 수상쩍은 물이군. 안에 독이 들었을지도 몰라. 마시지 않는 걸 추천한다.”】
슈팅 노바와 관련된 일이라면 항상 거부감을 일으키는 악마를 무시한 채, 나는 차를 입으로 가져다 댔다.
오. 생각보다 훨씬 괜찮네.
“어때요? 맛, 생각보다 괜찮죠?”
“아 네. 꽃차를 많이 마셔본 적은 없는데, 정말 맛있어요.”
내 말을 들은 설지원이 박수를 짝, 치며 눈웃음을 지었다.
“입맛에 좀 맞나보네요. 우리집 주력 상품이거든요. 선물용으로 참 좋답니다. sns랑 블로그에 매일 오늘의 상품 정보도 올라가는데….”
만약 내가 슈팅노바의 실제 모습을 알지 못했더라면 아마 저 눈웃음에 넘어갔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다행히도 슈팅 노바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
동생 친구에게 차를 팔아먹기 위해 설명에 열을 올리는 설지원의 모습을 보며, 나는 설지원과 슈팅노바의 모습이 아무리 달라 보여도, 절대 달라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돈을 밝힌다는 본질은, 아무래도 변하지 않는 듯하다.
“어때요? 한 세트 사서 가지 않을래요? 어머니도 좋아하실 거예요.”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지나한텐 말을 안 했나?
나는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뒤에 입을 열었다.
“아. 전 부모님이랑 못살아요. 제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
내 말에 깜짝 놀라 지나를 바라보는 설지원. 그리고 설지원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설지나.
“어머. 그랬구나. 미안해요. 내가 실수했네.”
“아 괜찮아요. 이모랑 사는 데에 익숙해졌거든요. 오히려 부모님보다 이모랑 산 기간이 더 오래라서 이모가 엄마 같아요.”
“굉장히 밝은 친구네. 지나가 좀 오래 아팠어서, 좋은 친구를 만날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은 친구라서 다행이네요.”
안심한 표정으로 내게 말하는 설지원.
투닥거리고, 돈만 밝히는 것처럼 보여도, 당연하지만 진심으로 동생을 걱정하는 모양이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이후로는 일상에 관한 이야기가 주로 지나갔다.
“전 막 들어간 초보인데도 자존심 상하게 툭툭 건들면서 엄청 무시하고 그랬다니까요.”
“어머. 그건 지나가 너무했네.”
“아니 언니, 그랬더니 쟤가 반칙까지 해서 덤비더라니까? 쟤 저렇게 붙임성 좋아보여도 성격 장난 아니야.”
체육관에서의 사건이나, 트레이닝, 지나와 있었던 일들이 주된 대화 주제가 되었다.
평온한 시간이었다.
“저,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잘가요. 나중에 또 놀러 와. 이건 이모 가져다드리구.”
내게 쇼핑백 하나를 쥐여주는 설지원, 쇼핑백 안에는 아까 마신 꽃차와 꽃으로 만든 작은 소품들이 몇 개 들어있었다.
“사실, 지나도 우리 강림 친구랑 똑같은 상황이거든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사실상 내가 지나를 키웠거든. 밝은 친구라 그런지 지나랑 잘 지내줘서 보기 좋네.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요.”
“언니, 참 별이야기를 다하네.”
나는 내 눈으로 확인한, 설지나와 설지원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씨익 웃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지나한테 자주 도움 받고 있어요. 선물 감사합니다. 지나야, 나중에 체육관에서 봐.”
“응… 강림이 다음 주에 체육관에서 봐!”
내게 손을 흔들어주는 자매를 뒤로한 채, 나는 스타 플라워를 떠났다.
* * *
“다녀왔습니다!”
“강림이 이제 오니? 오늘은 평소보다 좀 늦었네. 이게 뭐야? 어머~ 정말 예쁘다.”
“아. 오늘 같은 체육관 다니는 친구네가 꽃집을 한다고 하더라구. 거기 놀러 갔다가 받아왔어요. 이모 가져다드리래.”
“어머. 거기서 이렇게 예쁜 선물을 받아온거야? 나중에 한번 가서 가게 구경이라도 해드려야겠네. 꼭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받아온 선물을 이모에게 건넨 뒤 방으로 들어왔다.
제인이 돌아온 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아직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았다던 제인의 기능들도 이젠 슬슬 모두 회복되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젠 슬슬 한번 정리를 할때가 되었네.
털썩, 침대 위에 주저 앉은 다음 허공에 홀로그램 창을 띄웠다.
제인! 동화율 보여줘!
[“네 마스터.”]
벨제뷔트가 서포트 하는 동안은 제인과의 계약때문이라며, 벨제뷔트가 정확한 동화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동화율이 대체 어느 정도로 모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현재 동화율 : 67.7%]
제인이 돌아온 지금, 나는 현재 동화율을 확인할 수 있었다.
67.7 퍼센트.
앞으로 남은 동화율은 35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올해 초부터 히어로 활동을 시작했던 것을 생각하면, 단순계산으론 한달에 10퍼센트가 넘게 모으고 있는 수준이었다.
갈수록 동화율이 모이는 속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감안해보아도, 4개월, 늦어도 5~6개월 안에는 100퍼센트가 모두 모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름방학이 끝난것처럼, 내 히어로 생활도 언젠가 끝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물론 앞으로 가야할 길은 멀다.
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동화율이 모이는 속도가 빠르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제인! Heroicest 주요 사건 정렬 해줘.
...
..
.
.
● 인휴먼증
● 일렉트릭 스파크 거대화
● 그렘린과 강철 기사단
주르륵 떠오르는, 내가 heroicest의 수많은 사건들.
제인! 미해결 주요사건만 정렬 시켜줘.
[“네 마스터.”]
....
.
.
○ 스타라이트 정신 공격
◐ 스카페이스의 지옥의 문
○ 영계의 문
☆ 사대희의 경한 그룹
이젠 내가 알고 있는 사건의 대부분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상태였다.
내가 보고 온 원작의 사건들은 대부분 거의 전부 일어나지 않게 막아낸 후였고, 이제 내가 알고 있는 남은 사건들은 많지 않았다.
나는, 내가 모으고 있는 동화율의 속도가 왜 이렇게 빠른지에 대한 가설을 하나 세웠다.
원작에서 있었던 사건들은 언제나 다른 후속 사건을 부르곤 했었다.
예를 들면, 인휴먼증의 병증이 발전되어 만들어진 뱀파이어 사건이나, 지옥의 문을 성공적으로 닫은 탓에 나오지도 않은, 지옥 군세의 지구 습격 사건 같은, 사건을 미리 막지 못해서 일어나는 대형 사고들.
하지만 내가 활동하던 이 세계는 다르다. 원작에서 있었던 큰 사건들을 모두 사전에 막아낸 탓에, 후속 사건들은 대부분 이 세계엔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기때문에 원작의 내용보다 훨씬 빠르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래서 그만큼 동화율을 더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가설.
물론 이 가설이 확실하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내가 모은 동화율이 점점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세상이 바뀌는 게 느껴진다.
행복해진 등장인물들, 아니 이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 점점 행복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면 나도 언젠가, 이 사람들처럼 행복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제인이 내게 약속했던 것처럼, 이 세상에서 행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잠깐 침대에 드러누웠다.
오늘 하루 동안 했던 트레이닝이 고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바짝 긴장했던 하루하루가 풀리기 시작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제인. 나 잠깐만 자고 일어날게. 무슨 사건이라도 일어나면 깨워줘.
나는 잠깐의 단잠에 천천히 빠져들었다.
* * *
‘이번에도 실패인가….’
지난번에도 잿빛 망토단과 불곰파와의 전쟁을 만들어내려 했던 것처럼, 메두사는 이번에도 전쟁을 유도하기 위해 플럭스 공학회의 물건을 빼돌려 잿빛 망토단, 아니 강철 기사단에게 지원했었다.
그리고 메두사의 예상대로 더러운 인종 차별 주의자들의 집단인 강철 기사단은, 불곰파와 전쟁을 시작하기 거의 직전이었다.
또다시, 다프네와 그년의 동료 히어로들의 방해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자신과 똑같은 탈주자인데도 스승의 추적을 받지 않는 소서러 다프네. 메두사는 그것이 다프네가 주문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항상 억울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년이 마법을 쓰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는 건, 그년이 슈페리어이기 때문이다. 메두사도 슈페리어로써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주문에 목맬 이유가 없었다.
메두사는 품속에서 작은 병을 하나 꺼내 흔들어보았다.
그 병은 아직 1/3도 채 차오르지 않은 상태였다.
이나마도 강철 기사단과 다른 빌런 집단이 만들어낸 소규모 전투들에서 뽑아낸 에너지라, 모인 에너지의 품질이 떨어졌다.
직접 나서서 일을 만들어냈다면 훨씬 더 빨리, 많은 에너지를 모을 수 있었겠지만, 자신이 규모가 큰 마법을 사용한다면 스승의 눈을 피할 수 없을터였다.
한 번에 큰 규모의 전쟁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힘들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메두사는 다프네의 방식을 보고,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생각해낼 수 있었다.
강력한 히어로들을 이용하는 다프네처럼, 자신도 강력한 히어로를 이용하면 쉽게 에너지를 모을 수 있을 터였다.
머릿속에서 찬찬히 계획을 세우던 메두사는 빙긋 웃었다.
‘좋은 후보가 떠올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