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Dark Kaiser Reborn!(1)
제인! 다크 카이저 슈트 온.
간만에 내 눈앞에 익숙한 파란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다크 카이저(Dark Kaiser)
슈트 가동 중…
10%…
…
100%
가동 완료.
슈트를 개방합니다.]
길어봐야 두 달 조금 넘었을까? 그렇게 오랜 시간도 아니었는데, 꽤 오래 헤어졌다 만난 친구처럼 느껴졌다.
짜식. 오랜만이다.
내 얼굴에 씌워져 있던 헬 카이저의 악마 가면이 까마귀의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까마귀 가면에서 삐져나온 검은색 실이 내 몸을 순식간에 칭칭 묶었다가, 슈트의 형태로 변화한다.
내 몸에 슈트가 만들어지는 감각을 느끼며, 나는 오른눈의 능력을 개방하였다.
소연의 친구, 데다이트가 소연과 도유진을 구하기 위해 시간을 벌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자신의 몸에 무슨 주사를 하더니, 사람이 아닌 것처럼 커다란 모습이 되어버린 정애정의 부하가 데다이트의 거대한 팔과 싸우고 있었다.
예전에는 팔 하나만 툭 튀어나와 있었던 거 같은데, 이제는 팔이 두 개까지 나올 수 있는 모양이다.
앗.
나는 잠시 머리를 잡고 휘청거렸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지난번에 저 팔을 수줍게 흔들면서 나한테 인사하던 게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라서… 꿈에 안 나오면 좋겠다.
일단은 쟤가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나도 이 주변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겠지.
나는 오른쪽 눈의 능력을 이용해 주변 상황을 둘러보았다.
컨테이너가 세워져 있는 곳은, 평범하게 공사가 중단된, 빈 부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붉은 기운을 움직여 지하 밑으로 내려가 보았다.
【“어허… 내가 이 세상에 지옥을 만들러 올라올 필요도 없었군. 여기가 바로 지하세계에 있는 지옥 아닌가?”】
붉은 기운이 아니었으면, 거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매캐한 연기 속에서 사람들이 방독면을 쓴 채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이 정도 매캐한 연기면… 방독면만 써서는 안 될 것 같은데….
나름대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우비와 장갑을 끼고 있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약품의 독성을 막기에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 중엔, 분명 어린아이로 보이는 사람들도 존재하고 있었다.
다시 붉은 기운을 돌려 원래 자리로 돌아오던 나는, 건물 위에 있는 히어로를 보고 깜짝 놀라 멈췄다.
쫄쫄이긴 하지만, 유치한 느낌은 들지 않는 슈트, 멋지게 각이 진 검은색 까마귀 가면, 그리고 마치 까마귀의 머리처럼 보이는 후드와, 까마귀의 날개처럼 두 개로 갈라진 망토.
저… 간지 나는 히어로는 누구지?
[“마스터. 제가 돌아온 기념으로 선물이에요. 다크 카이저의 복귀 때 사용하기 위해 열심히 만들었답니다.”]
저 모습이… 바로 나?
[“이제부터는 Dark Kiaser가 아니라, Dark Kaiser라고 불러드릴게요.”]
정애정이 자신의 부하가 데다이트와 싸우고 있는 틈을 타 지하의 공장으로 내려가기 위해 공사 중인 건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새롭게 만들어진, 다크 카이저 완성판 슈트에 만족하며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 * *
“지금 여기, 나 강림.”
Bang! Bang! Bang!
내가 떨어지는 것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품에서 권총을 꺼내 내게 쏘아대는 정애정.
하지만….
Dark Shield
■■■■■■■■■□
내 눈 앞에 펼쳐진 다크 쉴드에 형편없이 막히고 말았다.
나는 다크 쉴드를 들어 올린 채 정애정을 향해 걸어 나갔다.
“으아아아악! 오지 마! 오면 죽여버린다! X발 말했어! 오지 마!”
악에 받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정애정.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히어로까지 오는데? 저 꼬맹이가 그렇게 중요해?”
얘는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없구나. 범죄자의 마인드란.
“이 밑, 마약 공장에 사람들을 가둬다 놓고 쓴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온 거요.”
“으아아아악! 웃기지 마! 다 죽여버릴 거야!”
【“재밌군. 약해빠진 녀석이 싸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저렇게 기를 쓰고 소리를 지르다니.”】
마치 누군가 그런 말을 하길 기다렸다는 듯, 품에서 앰플을 꺼내 자신의 허벅지에 푹 찔러넣는 정애정.
[“제 생각엔 이건, 벨제뷔트가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그래요.”]
【“무슨 소리! 내 말 한마디로 미래가 바뀔 리가 있겠냐!”】
내 머릿속에서 악마와 ai가 티격태격하는 동안, 앰플을 주사한 정애정의 몸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어휴. 그래. 일이 이렇게 쉽게만 끝날 리가 없지.
* * *
쾅! 쾅!
뒤에서 일어나는 전투들을 보며, 도유진은 몸을 으스스 떨었다.
히어로와 빌런들의 전투 상황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몇 번씩 봐도 익숙해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지금의 일어나는 전투는 자신의 친구가 사용하는 능력이니까.
뒤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손과 거대 괴물의 전투를 보며 도유진은 이를 악물었다.
과연, 자신이 경찰이 되어 저런 거대한 괴물과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어. 유진아! 전화! 전화 왔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도유진에게 전투를 하고 있던 소연이 무언가를 던져주었다.
“이거… 내 폰이네. 너…”
“우리 친구잖아. 친구끼린 흘린 물건도 찾아다 주고 그러는 거 아냐?”
“…그래. 고맙다.”
도유진은 소연이 건네준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수신전화 : 김미연 중위님>
예전에 현장학습을 갔을 때 친해졌던 여군 중의 한 명이었다. 도유진에게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는 걸 안 뒤, 도유진이 혹시라도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지 않았는지 자주 연락을 유지하며 도움을 주던 사람이었다.
도유진은 여기로 출발하던 때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이곳으로 향했는지를 김중위님에게 문자메시지를 남겼었다.
도유진은 전화를 받았다.
“네. 중위님. 저 괜찮아요. 네. 지금 여기가 어디냐면요….”
* * *
하긴,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구역장 정도 하려면, 무언가 한따까리는 한다는 의미였겠지.
그런 게 이런 의미일 줄은 몰랐지만.
완전히 거대한 근육질의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정애정의 모습을 보며, 나는 혀를 쯧 찼다.
저 누나 시집가긴 글렀겠는걸.
“내… 가 키메라를 사용하게 만들다니… 널 절대… 용서… 할 수 없다….”
저 약 이름이 키메라였군. 원작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나 때문에 바뀐 이 세상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약인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못 봤던 부분이던지.
“주거!!”
혀까지 근육질이 되어버린 듯 혀 꼬이는 소리를 내며 정애정이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풀쩍 뒤로 물러나 정애정의 주먹질을 피했고,
쾅!
정애정이 휘두른 주먹은 공사 중이던 건물의 기둥을 후려쳤다.
순식간에 반쯤 박살 나버리는 기둥.
이 정도 위력이라면 아머 모드의 방어력을 믿고 격투전으로 가긴 어렵겠군.
나는 일단 스피드 모드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저런 덩치 큰 빌런을 잡을 땐 역시, 페이퍼백의 전법이 가장 좋거든.
제인. 스피드 모드!
[“네. 마스터.”]
SUIT MOD
The Dark Kaiser
슈트가 변형되며 몸이 순식간에 가벼워진다.
천천히 나를 향해 날아드는 정애정의 주먹을, 나는 가볍게 몸을 움직여 피했다.
쾅!
두 번째 기둥은 완전히 부서져 파편만이 흩날렸다.
나는 내 팔목을 감고 있는 봉마의 체인을 들어 올려 정애정이 휘두른 주먹에 휘감았다.
이대로 빠른 속도로 움직여, 이 거대 괴물의 몸을 감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마스터! 주변에 기둥이 너무 많아서 인피니티 체인은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다른 방법이 필요합니다!”]
제인이 순식간에 홀로그램들로 기둥들의 위치를 표시해준다.
그렇네. 이 정도로 장애물이 많다면 진짜 래피드 스타가 아닌 이상에야 같은 전법을 사용하긴 힘들겠어.
나는 묶었던 체인을 풀며 다시 한번 정애정의 주먹을 피해 내달렸다.
쾅!
세 번째 기둥도 부서져 파편이 흩날린다.
[“마스터! 이 이상 기둥이 무너지면 건물이 무너져요! 그렇게 되면 지하 공장이 위험합니다!”]
제인이 홀로그램 창으로 건물이 무너졌을 때 지하 공장의 피해 상황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보여준다.
확실히 이 건물이 무너진다면 지하에 있는 사람들의 몸에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
정애정을 이 자리에서 끌어낼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바깥으로 유도했다가 옆 건물로 도망이라도 시도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큰 피해를 만들게 될 거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박투전으로 가는 수밖에.
[“네? 마스터. 아깐 아머 모드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셨잖아요?”]
아머 모드를 써야만 박투전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네? 그럼….”]
파워 모드. 다크 카이저의 기본 모드로 변형해줘.
[“네? 기본 모드의 방어력으론 저 주먹 잘못 맞았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는데요?”]
그 한 번도 안 맞으면 돼.
[“… 네. 알겠습니다 마스터.”]
SUIT MOD
The Dark Kaiser
줄어들었던 슈트의 근육들이 다시 부풀어 오른다. 온몸에 아까와는 다른 힘이 깃드는 것이 느껴진다.
약물의 힘으로 부풀어 오른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내용물은 그저 스물네 살의 평범한 범죄자 여성일 뿐이다.
거대한 덩치의 괴물이 되었어도 그 움직임은 한 번도 제대로 싸워본 적 없는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그렇다면 한 번도 얻어맞지 않고 이길 수 있다.
나는 이미 부서진 기둥 앞에 섰다.
이 이상 기둥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선,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아야 했다.
양다리에 힘을 주며 서서, 두 팔을 들어 올려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주거버려!!!”
서 있는 나를 향해 날아오는, 정애정의 거대한 주먹.
나는 정애정의 어깨를 보며 주먹이 날아들 곳을 예상해 고개를 옆으로 움직였다.
수우우우웅!
내 머리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정애정의 주먹.
주먹이 빗겨나가는 걸 확인함과 동시에 정애정의 얼굴에 오른 주먹을 뻗었다.
거대하게 부푼 정애정의 코에 정확하게 주먹이 틀어박힌다.
“끄어어어억!”
역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리는 정애정을 보며, 나는 재차 주먹을 연속으로 뻗었다.
계속해서 연속으로 틀어박히는 주먹에 정애정은 눈을 감고 손을 휘저어댔지만, 눈도 뜨지 않고 휘두르는 공격에 맞을 만큼, 나는 나약하게 배우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손이경 사범님.
나는 손이경 사범님에게 마음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남기며, 재차 정애정의 얼굴에 파워 모드의 주먹을 꽂았다.
정애정의 입에서 작은 이빨들이 우수수 튀어나온다.
쾅!
그대로 뒤로 넘어가 쓰러져버리는 정애정. 커졌던 몸이 천천히 줄어드는 것이 느껴진다.
후. 끝났다.
“그래도… 나 정도면 대우 잘해주는 거야! 방독면도 씌워주고, 우비도 주고! 돈 다 갚고 나면 일부는 생활비로 쓰게 도와주고 후원도 해 준다고! 나 정도면 양심 있는 거라니까?”
쓰러진 채로 아직도 독기를 품은 채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는 정애정.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정애정의 손발을 묶으며, 나는 입을 열었다.
“나도 히어로치곤 신사적으로 대우 해주는 거요. 이빨 몇 개로 봐줬잖소.”
weeooo weeooo weeooo-!
마치 내가 정애정을 사로잡길 기다렸다는 듯, 경찰들이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