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Dark Kaiser Reborn!(2)
경찰이 이곳으로 오고 있는 건 오고 있는 거고, 오른눈의 능력을 사용했을 때 살펴본 지하 공장에는, 총을 든 채 감시하고 있는 감시역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었다.
위에서 일어난 상황이 이 지하까지 전해지지 않았을 리도 없고, 대장 잡았다고 내가 뒤로 물러서면 경찰들과 빌런 간의 총격전이 일어날 뿐이다.
하려면 완벽하게 지하까지 처리해주는 게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지하공장으로 내려갈 수 있는 방법은, 공사 중인 척 위장한 건물을 통해 내려가는 방법밖에 없는 모양이다.
아마 일하는 노동자들이 도망가기 쉽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겠지.
나는 지하 공장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오른 눈의 능력을 다시 한번 개방했다.
그리곤 이 공장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방독면을 쓴 채 일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 그리고 공장 한켠에 있는 수면실에서 교대를 위해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
벨제뷔트의 말처럼, 인간 세상에서 만들어진 지옥같은 환경이었다.
뭐? 이 정도면 대우를 잘해주는 거라고? 거참 웃기지도 않는구만.
나는 지하 공장을 마무리 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내 생각보다 훨씬 신고를 빨리 하셨네.’
지금 경찰이 그곳으로 향하고 있으니 거기 꼼짝 말고 숨어있으라는 김미연 중위의 말에 도유진은 생각했다.
김미연 중위에게 자신이 다시 연락하지 않으면 그때 신고해주시면 좋겠다고 문자를 남겼었는데, 도유진의 생각보다 훨씬 일찍 신고해버리신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자신을 오래 도와준 사람이라지만, 결국 자신이 고등학생인 이상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스마트폰의 위치추적을 통해 진작부터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고 했다. 도유진의 스마트폰을, 소연이 들고 도유진을 구하러 왔기 때문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도유진은 스마트폰으로 다크 카이저의 전투 장면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슈퍼 빌런들을 제압하는 경찰이 목표인 도유진에게 지금만큼 가까이서 슈퍼빌런의 전투를 지켜볼 수 있는 상황은 거의 없었으니까.
주먹 한방에 건물의 기둥을 하나씩 부숴버리는 정애정을, 정면 대결로 손쉽게 제압하는 다크 카이저의 모습을 보며 도유진은 혀를 내둘렀다.
자신이 만약, 저 빌런과 맞서 싸웠다고 했을 때, 빌런을 저렇게 쉽게 제압할 수 있었을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체 능력도 또래보다 강한 편이라고 자신했던 도유진이지만, 저런 빌런과 맞서 싸울 자신은 없었다.
약을 사용해 덩치가 커진 정애정을 제압한 뒤 지하 공장으로 내려가는 다크 카이저를 보며, 도유진은 그 뒤를 따라 들어가기 위해 소연이의 손을 잡고 내달렸다.
지금은 병원에 있는 자신의 오빠가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던, 히어로라는 일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었다.
“어…? 어? 유진아? 어디가? 위험해!”
“히어로가 있잖아. 그리고 히어로만큼 강한 너도 있고.”
도유진은 천천히 몸을 숨기고 다크 카이저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히어로! 히어로가 나타났다!”
“다크 카이저! 다크 카이저야!”
“다크 카이저? 천산시에서 사라졌던 거 아니였어?”
“으악!”
뿌옇게 안개 낀 공장 안을 뛰어다니며 악당들을 제압하는 다크 카이저의 모습을 정신없이 내려다보며 동영상을 찍고 있는 그때, 자신의 머리 위쪽에서 수많은 사람이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신고 받은 경찰들이 도착했던 모양이다. 그 사실을 다크 카이저에게 알려주기 위해 도유진은 고개를 돌려 다크 카이저를 찾아보았지만….
그 잠깐 고개를 돌린 사이, 다크 카이저는 남아 있던 악당들을 모두 제압한 뒤 사라진 후였다.
도유진은 동영상의 촬영 종료 버튼을 눌렀다.
* * *
이번 마약 공장 사건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게 이슈화가 되었다.
아무도 모르게 갱들이 큰 규모의 마약 공장을 마약 중독자들을 이용해 운영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충격적이긴 했지만, 사람들이 열광했던 것은 그런 범죄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열광했던 이유는, 친구의 엄마를 구하기 위해 마약 공장에서 일을 한 서지예와, 그런 지예를 구하기 위해 마약 공장의 실체를 조사한 두 여자아이의 이야기가 자극적인 탓이었다.
“서지예! 지예야!”
“유진이? 도유진이야? 너 왜 여기….”
“너 찾으러 왔지. 이 멍청아. 채경이 엄마 때문이었으면 나한테라도 말을 하지 그랬어.”
“흑흑… 난 이제 네가 나랑 영영 연을 끊을 생각인줄 알았어.”
“얘들아… 울지마아….”
유진이와 지예, 소연이가 서로 얼싸안고 우는 장면은 얼굴에 모자이크가 된 채, 신문, 티비, 인터넷상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런 도유진이 증거품으로 제출한 다크 카이저의 전투 동영상 또한 순식간에 주목받았다.
친구를 구하기 위해 마약 조직까지 잠입하려 한 여고생, 그리고 그런 여고생들을 구해준 히어로.
<사라진 줄 알았던 루키 히어로, 다크 카이저의 화려한 귀환!>
<히어로 다크 카이저, 새로운 슈트와 함께 돌아오다.>
구역장에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정애정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순식간에 모두 경찰에게 불어버렸다.
경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애정과 그의 일당들은 마약 중독자들을 빚으로 허덕이게 만든 뒤, 그 마약 중독자들의 빚을 이용해 착취하는 방법으로 계속해서 마약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마약은 천산시 뿐만 아니라, 시외로도 유통되고 있었다고 한다.
정애정 일당의 마약공장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탄하게 끝난 것은 아니었다.
화려하고 멋지게 꾸며진 이야기가 막이 내리고 나면, 이야기의 뒤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있던 대부분의 노동자는 마약 중독자이거나, 마약 중독자의 가족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미 마약에 중독 되어 마약 없이 살 수 없는 사람들이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마약 공장에서 일한 탓에 몸이 완전히 망가져 버린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몸이 망가진 피해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제인.
[“네. 마스터.”]
내가 동화율 100퍼센트를 만들면, 그 때부턴 히어로 활동을 그만해도 된다고 했었지.
[“네. 동화율이 100퍼센트에 도달한 뒤부턴, 마스터에 대한 제약이 모두 사라집니다. 다크 카이저의 슈트를 더 입을 필요도 없고, 다크 카이저의 컨셉을 꼭 지킬 필요도 없으며, 마스터의 이모, 이소희님도 평생 큰병치레 없이 살게 될 거예요.”]
그렇다면 내가 동화율을 100퍼센트를 만든 이후엔, 이 세상의 범죄가 모두 사라질 수 있을까?
[“아니요. 마스터. 이 세상이 존재하고, 사람이 존재하는 한 범죄라는 것은 사라질 수가 없죠.”]
그렇다면 내가 히어로 활동을 그만 둔 뒤에도 이 세상엔 계속 이런 범죄들이 생겨나게 될까?
[“아마… 그럴 거예요.”]
제인의 대답을 듣고 나서 나는, 얼마전까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구해낸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있었던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행한 삶을 사는, 범죄에 노출된 사람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동화율을 모두 모은다고 해서 내가 해야할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던 거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나는, 평생 가면을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나는 이제, 내가 없는 곳에서 불행하게 살 사람들을 외면한 채 혼자서만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었다.
* * *
데빌 보이, 준석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체크하고 있었다.
옷은 깨끗하게 세탁한 새 옷으로 차려입었고, 부츠와 헬멧은 광이 날 정도로 깨끗하게 닦아 두었다.
헬멧을 깨끗하게 닦고 지워진 해골 그림을 다시 그리기 위해, 준석은 헬멧을 벗었다.
준석은 헬멧의 그림을 다시 그리는 동안 며칠 동안 커뮤니티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사공모.
사이드킥을 위한 정보 공유 모임은 사실, 진짜 히어로의 사이드킥들이 활동하고 있는 사이드킥 커뮤니티였다.
물론 거기에서 활동하는 모든 인물들이 진짜 사이드킥인 건 아니었다. 일반 가입한 회원들의 대다수는 준석이 생각한 대로 컨셉을 잡고 노는, 일반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개중에는 진짜 사이드킥인 사람들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진짜 사이드킥인 것 같은 사람은, 사공모의 운영자 섀도우 마스터에 의해 선별되어 사공모의 핵심 채팅방에 초대를 받을 수 있었다.
준석은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것이 느껴졌다.
헬 카이저에게선 인정받지 못했지만, 같은 사이드킥들에겐 자신이 진짜 사이드킥이라는 사실을 인정 받은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운영자인 섀도우 마스터가 자신이 진짜 사이드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을 채팅방에 초대한 걸 테니까.
그리고 오늘은, 그런 사공모의 진짜 회원들과 함께하는 정모날이었다.
오늘의 모임을 위해 준석은 슈트를 깨끗하게 세탁하고, 오래된 부츠는 새것으로 구매했다.
그리고 지금은, 전투를 하면 어쩔 수 없이 지워지는 그림 또한 훨씬 더 멋들어지게 그렸다.
빙그레 웃고 있는 해골 모양의 그림처럼, 준석은 씩 웃으며 헬멧을 머리에 쓰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 장소는 구석진 곳에 숨겨진, 낡은 아파트 단지에 있는 한 아파트였다.
약속장소로 천천히 걸어 나가던 준석은, 너무 낡고 초라한 아파트의 행색에 조금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
과연 이런 낡은 아파트에서 만나는 게 진짜 슈퍼 히어로들의 사이드킥이 맞을까? 혹시 빌런들이 자신을 유인하려고 수를 쓰는 것이 아닐까?
그런 불안함이 들었던 데빌보이, 준석은 낡은 아파트의 현관문 앞에서 주머니의 쇠구슬을 꺼내 손에 쥐었다.
자신의 능력은 누군가를 공격하기보단, 도망치는 데에 훨씬 최적화되어 있는 능력이다.
웬만한 위기 상황에서는 충분히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다.
띵동-
평범하기 그지 없는 오래된 아파트의 벨소리가 들리고, 오래된 인터폰에서 성별을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배달오셨나요?”
잘 찾아왔다. 채팅방에서 들은 적 있는 암호였다.
“네. 사이드메뉴요.”
덜컥.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준석은 침을 꿀꺽 삼키곤 안으로 들어섰다.
낡은 아파트에 들어선 준석은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어서 와요.”
노란 우비를 뒤집어 쓴 저 사람은 분명 캡틴 클라우드의 사이드 킥 레인 걸이다.
“안녕 반가워 꼬마친구.”
고양이 가면을 쓰고 있는 이 여자는, 분명 솔라 버드의 사이드 킥 문 캣이었다.
그렇다면, 저기 앉아 있는 저 사람은…?
“어서오십시오. 사공모, 정식 회원이 된걸 축하드립니다. 데빌 보이님.”
섀도우 마스터의 정체는, 다크 카이저의 사이드킥, 다크 스코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