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고스트 카이저(1)
“강림아 저녁 먹을 준비하렴~”
“네~”
이모의 부름에 바깥으로 나가며, 나는 시계를 흘끗 보았다.
현재 시간은 7:30분정도.
원래 같았으면 이 시간에 편의점에서 대충 저녁을 때우고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방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식탁 위에는 이미 식사 준비가 완전히 마쳐져 있었다.
“이모. 혼자 힘들게 일 하시지 말고 저도 좀 부르라니까요. 바쁘게 일하다 오셔놓구선….”
“괜찮아. 넌 딴 생각하지말고 공부나 해.”
“넵.”
이모의 으름장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식탁 위에 잔뜩 차려진 반찬, 그중 고기반찬을 하나 집어 입에 가져다 넣고 우물거렸다.
“우와~ 역시 우리 이모 요리 솜씨가 최고야. 너무 맛있다.”
“어… 강림아 그건 이모가 오늘 반찬가게에서 사온거야.”
아.
“강림아. 그거 말고 이걸 좀 먹어봐. 이건 진짜 이모가 만든거야.”
“아 정말? 어디….”
나는 이모가 올려주신 반찬과 밥을 입에 잔뜩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우와~ 역시 우리 이모 요리 솜씨가….”
“아이구. 입 발린 소리는 좀 그만하시고 식사나 하시죠? 참나~”
그렇게 말하며 웃는 이모의 얼굴을 보자 나는 조금 안심이 되는 것을 느꼈다.
“오늘 학교에선 별 일 없었니?”
“학교에선 뭐 항상 똑같죠. 아, 또 이번에 도유진이 또 바보짓 한 게 하나 있긴 한데….”
“강림아. 유진이한테 바보가 뭐니, 바보가. 유진이한테 좀 친절하게 대해주렴.”
“걔한텐 그래도 돼요.”
그때였다.
[띠리리링~ 다~~크 카이저!]
내 방에 가져다 두었던 다크-호출기에서 사건 알람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띠리리리링~ 다~~크 카이저!! 다~~~ 크! 다~~~~크~! 다크 카이저!]
“강림아. 다녀와.”
“넵.”
갈 때 가더라도 이모가 기껏 만들어준 음식인데 이대로 버릴 순 없지.
나는 식탁 위에 놓여있던 밥그릇을 들어 올리고 와구와구 입에 밀어 넣었다.
“어머. 강림아 그렇게 먹다 체한다.”
“다뇨오게씀미다.”
“갔다 오면 다시 차려줄 수도 있으니까, 괜히 무리하지 말고 두고 가.”
“아프로눈 구롤게요.”
나는 곧바로 거실 창문을 열고 가면을 쓰며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추락하는 내 몸 위로 천천히 검은색 물질이 칭칭 감긴다.
다크 카이저 슈트 온.
[“다크 카이저, 슈트 온.”]
“강림아! 몸 조심 하고 다녀와! 제인! 벨제뷔트! 강림이를 부탁할게!”
[“걱정마세요 이모!”]
【“…….”】
[“다크 스텔스 모드 온. 다크 윙 모드 온.”]
펄럭!
내가 굳이 명령하지 않았음에도 다크 카이저의 망토가 다크 윙의 날개로 변형된다. 내 몸이 밤하늘의 색깔에 동화되어 잘 보이지 않게 천천히 바뀌어 가기 시작한다.
눈앞에 떠오르는 사건 일람과 지도를 살피며 나는 건물 위를 날았다.
[“마스터. 그래도 이모님이 많이 좋아진 모양이네요.”]
그래… 다행히도….
역시,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에는 시간만큼 좋은 것이 없는 법이었다.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충격받았던 이모의 마음도 많이 나아진 듯, 이제는 천천히 내 히어로 활동을 받아들여 주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이모는 내게 화를 내기도 하고, 달래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나를 방안에 가두기까지 해가며 내가 히어로 활동을 그만두게 만들고 싶어 하셨었다.
“강림아! 네가 그런 일을 하다 크게 잘못되기라도 하면 평생 내 가슴에 대못 박는 일이야. 알아?”
“너… 지훈이 일 기억 안나니? 제발… 제발 이모 말 좀 들어줘….”
하지만,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이어진 나의 설득 덕분에 나는 다시 다크 카이저로서 히어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세계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이 세계는 먼 미래에 결국 빌런들의 손아귀에 넘어가 평범한 사람은 살기 힘든, 범죄의 온상이 되어버린다.
미래를 알고 있고, 남들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최악의 미래를 막아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천산시 빌런집단의 가장 큰 축 중 하나였던 잿빛망토단이 무너졌지만, 아직도 천산시의 뒷골목에서는 빌런들이 암약하고 있었다.
불곰파, 흑사자회, 망령당 그리고, 경한 그룹까지.
그런 빌런들이 이 세상에 아직 존재하고 있는 한, 다크 카이저라는 히어로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서는 안 된다.
[“마스터! 목표까지 100M 남았습니다.”]
나는 머릿속에 남아있던 상념을 지웠다. 먼 미래의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이 있었으니까.
* * *
잿빛 망토단이 무너진 지금, 최근 천산시에서 가장 골치 아픈 빌런 집단을 꼽자면, 얼마 전에 큰 사고를 친 경력이 있는 망령당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도유진 때문에 지하 마약공장의 일들이 수면으로 올라온 이후에, 천산시의 시민들이 망령당이라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그런 일을 벌이고 있는 빌런 집단이 도시에서 암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민들은 분개하였고, 그런 여론에 힘입어 경찰은 망령당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자신들이 주목받게 되고, 경찰에게 공공의 적으로 지목받게 되자 오히려 망령당은 더욱더 날뛰기 시작했다.
정애정이 만들었던 키메라라는 약.
키메라라는 약을 사용해서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빌런들이 부쩍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히려 티비에 나온 정애정의 영상을 틀어주며 이런 효과가 있는 약이라고 PR하며 팔아넘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상황 때문에, 요즘 천산시에서 활동하는 범죄자들은 수틀리면 자신의 몸에 앰플을 꽂아 넣고 덩치 큰 괴물들로 변하곤 했다.
지금 보이는, 이런 상황처럼.
“하하하! 다크 카이저! 이렇게 도망친다면 어떻게 할 거지?”
“으하하하! 어떤 놈부터 쫓을테냐?”
나는 은행에서 돈주머니를 든 채 도망가는 다섯 명의 키메라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놀랍게도 이 다섯 명의 키메라는 돈주머니를 다섯 개로 나눠 든 채 각자 다른 길을 타고 도망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도망치게 되면 어떻게든 운이 좋아 도망칠 수 있다면, 자신이 가지고 도망친 돈은 가질 수 있을테니까.
제인! 지금 당장 도망치는 루트 파악해서 아스트로 스타즈에 지원 요청해.
[“네! 알겠습니다 마스터!… 마스터! 복동에서도 키메라들이 출몰했다는데요? 아스트로 스타즈도 지금 그쪽으로 출동했다는 모양이에요!”]
이런… 다크 스코프 아저씨는 지금 뭐해?
[“다크 스코프는 지금 이쪽으로 출동하고 있긴 한데요,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요!”]
쾅!
“꺄아아악! 도망쳐!”
“살려주세요!”
내가 잠시 제인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이 키메라들이 큰 덩치로 주변 차들을 때려 부수며 길을 터 달리기 시작했다.
키메라 하나하나를 제압하는 건, 이제 나에게 있어서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다섯 명이나 되는 키메라를 전부 피해 없이 막아내는 것은 힘들었다.
일단은 나 혼자서라도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나는 도망치고 있는 키메라 중 한 명을 쫓아 움직이려던 바로 그때.
갑자기 잿빛 슈트를 입은 히어로 하나가 하늘에서 순식간에 떨어져내렸다.
“흩날리는 영혼 속에서, 나, 강. 림.”
푸확!
순식간에 도망치던 키메라의 머리가 갈라져 피분수를 뿜어낸다.
얜 또 뭐야?
“안녕하신가? 다크 카이저. 내 이름은 고스트 카이저라고 하네. 만나서 반갑군.”
너 대체 뭐냐고?
* * *
“이제 정말 돌아왔구나! 다크 카이저! 아하하하!”
사하준의 웃음소리가 스튜디오를 가득 메웠다.
다크 카이저가 없는 동안, 다시 예전처럼 기존에 하던 히어로, 빌런 장비 리뷰나 사건 현장 답사 같은 걸 하며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다크 카이저가 있을 때처럼 하준의 채널은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신기한 장비 리뷰를 올릴 때마다 조회수가 꽤 잘 나왔지만, 아빠의 화사에서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장비를 가져와야만 가능한 영상이었다.
그런 영상들을 찍어내기 위해 아빠의 창고에서 장비를 계속해서 꺼내오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혹시라도 그 물건의 출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있기라도 하면 곤란해지게 될 테니까.
사건 현장 답사나 다른 히어로의 전투는 이제 하준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다크 카이저가 아닌, 다른 히어로의 전투들과 사건 현장의 영상을 찍는 데에 하준은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별 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지, 아무리 열심히 영상을 만들어도 다크 카이저의 영상을 만들 때처럼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다크 카이저가 활동하던 때에 하준은, 하루하루 쏟아지는 아이디어의 홍수에서 살았었다.
어떻게 하면 다크 카이저와 관련돼서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크 카이저와 관련돼서 주목받는 영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하루를 보내던 하준에게 갑작스럽게 사라진 다크 카이저는 한참 열심히 운영하던 미튜브에 대한 열정을 식게 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이젠 다크 카이저가 돌아왔다. 예전처럼 다시 활발하게 활동하며 밤거리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다크 카이저의 영상만을 만드는 것으론 만족하지 못하겠는걸.”
다크 카이저가 없는 동안 이 세상은 너무도 재미 없는 일들만이 가득했다.
이젠 다크 카이저라는 히어로를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크 카이저의 옆에 서는 동료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다크 카이저는 사이드 킥 한 명 외에는 자신의 동료를 만들어 두지 않는 편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다크 카이저의 동료가 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던 하준의 눈에, 헬 카이저라는 새로운 히어로가 들어왔다.
다크 카이저와 비슷한 능력, 비슷한 모양의 슈트.
다크 카이저와 연관이 있다고 외치고 다니는 듯한 그 외형을 보며 하준은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저거야.
하준은, 자신이 직접 만든 슈트를 입기 시작했다.
검은색인 다크 카이저와는 다르게 회색빛으로 디자인 되어있는 슈트였다.
후드가 달린 잿빛 망토를 머리에 뒤집어 쓴 뒤, 하준은 마지막으로 허리춤에 아빠의 비밀창고에서 훔쳐온 검을 찼다.
“고스트 카이저(Ghost Kaiser). 슈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