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47화 (147/236)

147화

사이드킥(1)

학교에서야 준석이 얼굴을 계속해서 보고 살았지만, 데빌 보이로서의 준석이는 거의 두 달 가까이 보지 못했다가 오늘 와서야 처음으로 보는 상황이었다.

거의 두 달 가까이 데빌 보이를 보지 않은 것은, 내가 사이드킥인 데빌 보이를 무시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다크 카이저의 복귀 타이밍에 맞춰 만든 헬-호출기로 날아온, 한 줄의 문자 때문이었다.

<보스, 저는 오늘부터 멋진 사이드 킥이 되기 위해 특훈에 들어갑니다. 특훈이 끝나고 뵙겠습니다. -데빌 보이->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고 사라지는 바람에 혹시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조금 걱정했었다.

혹시라도 무슨 특훈이니 어쩌니 하면서 내가 모르는 곳에서 싸움질이라도 하고 다니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매일 같이 학교에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게 등교하고 있어서 밤거리에서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니는 건 아니구나 하고 마음의 짐을 덜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데빌 보이로서 연락해온 것이 바로 며칠 전이었다.

<보스. 두 달간의 특훈이 끝났습니다. 완벽한 사이드킥은 아닐지 몰라도, 이젠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이드킥이 된 것 같습니다.>

왠지 엄청나게 불안하게 느껴지는 헬-호출기의 메시지 내용을 보고, 나는 최대한 빨리 만날 날을 잡아 데빌 보이와의 만남을 앞당긴 것이다.

겸사겸사, 헬 카이저로서 실험해봐야할 능력도 있었고.

“오셨습니까 뽀쓰!!”

내 앞에 서 있던 데빌 보이가 나를 보고 경례를 올려 붙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간만에 보는 데빌 보이의 모습을 보았다.

【“오호…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더니, 최소한 입고 있는 코스튬에는 확실한 발전이 있었던 모양이군.”】

감탄하는 벨제뷔트의 말처럼, 데빌 보이의 모습은 옛날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페인팅한 바이크 헬멧을 쓰고 있던 머리는 어느샌가 머리까지 뒤집어쓰는 멋진 악마 모양의 마스크로 변해있었고, 징 달린 가죽 재킷을 입고 있던 몸에도, 이젠 완벽한 모양의 멋들어진 히어로 슈트를 입고 있었다.

저거 직접 만든 건 아니겠지?

[“그동안 입고 왔던 데빌 보이 코스튬을 생각해보면, 직접 만든 코스튬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 준 게 아닌가 싶은데요.”]

동감이야.

준석이 나름 손재주가 있는 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하지만 지금 입고 있는 코스튬의 수준은 아마추어가 만들 수 있는 수준을 아득하게 넘어 있는 수준이었다.

저 정도면, 소속사가 존재하는 프로 히어로 수준에서나 만들어 입을 수 있을 만큼 퀄리티가 좋은 코스튬이다.

보통 저런 수준까지 만들어서 입으려면 돈이 보통 드는 게 아닐 텐데….

【“그런가? 하지만 우리의 걸작, 헬 카이저 MK.2에는 버금가지 못할 듯싶다만.”】

자부심이 드러나는 목소리로 으스대며 말하는 벨제뷔트.

벨제뷔트의 말대로, 헬 카이저가 입고 있는 슈트 또한 예전보다 훨씬 때깔 좋게 변해있는 상태였다.

만나는 히어로들의 코스튬을 분석하던 벨제뷔트가, 제인이 만든 다크 카이저의 새로운 슈트를 보곤 최근 헬 카이저의 슈트도 새롭게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벨제뷔트가 괜히 헬 카이저로서 활동하는 상황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보스… 슈트 진짜 멋지십니다요. 정말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처럼 무시무시하십니다요!”

새로운 헬 카이저의 슈트를 입은 나를 보고 데빌 보이가 아부해 오기 시작했다.

근데 얘 말투가 왜 이래?

“…고맙군. 너도 안 보는 사이에 괜찮은 슈트를 만들었어.”

“앗!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하지만, 보스의 새 슈트를 보니, 아직 저는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요!”

【“이 녀석… 못 보던 사이에 보는 눈이 늘었군… 어떤 수행을 했는지 몰라도 보는 눈도 많이 늘어난 것 같다.”】

[“못 보는 사이에 하는 수행이라는 게 처세술과 관련된 수행이었을까요? 어쩐지 학교에는 멀쩡하게 다니더라니.”]

아오 정신 사나우니까 조용히 좀 해라! 너네 둘 요즘 왜 이렇게 싸우는 거야?

최근 다크 카이저와 헬 카이저로 나뉘어 활동하게 되면서부터 제인과 벨제뷔트가 서로 싸우는 상황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스. 그 사이에 슈트만 바꾼 건 아닙니다. 바뀐 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기대하십쇼!”

갑자기 나를 향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데빌 보이를 보며, 나도 똑같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기대해보도록 하지.”

근데 얘랑 맨날 학교에서 보던 사이라 그런가, 진짜 개 오글거리네. 차라리 표정이 안 보이던 예전이 나았네.

좀 징그럽다.

*    *    *

“제가 말씀드린 곳이, 바로 저곳입니다.”

데빌 보이가 가르킨 곳은, 시멘트를 만드는 평범한 공장이었다.

우리가 시멘트 공장 앞까지 온 이유는.

“저 곳이 키메라를 만드는 공장이라고?”

데빌 보이가 직접 키메라를 만드는 공장 중 하나의 위치를 알아왔기 때문이었다.

“네. 보스. 실은 한 달 정도는 더 수행을 해야했는데… 하지만 최근 천산시 내부의 상황을 보니 제가 계속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서요.”

나는 오른쪽 눈의 능력을 사용해서 시멘트 공장의 내부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흠… 꽤 자세하게 살펴보았지만… 아직까진 평범한 공장인 것 같은데….

시멘트 공장의 지상층은 전부 정말 시멘트를 만들기 위한 공장이었다.

24시간 교대 근무를 통해 끝없이 계속해서 동작하는 공장이었는지, 밤이 조금 늦은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공장엔 많은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생각해보았을 때, 이건 위장일 가능성이 높을 터.

지난번 정애정이 운영하던 공장은 공사현장으로 위장한 뒤, 지하에 공장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지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붉은 기운을 움직여 지하로 내려가보았다.

정애정 때와 똑같이 지하에 깔려있는 뿌연 연기가 이곳에서 무언가 다른 물건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게 하고 있었다.

[“지난번 정애정에게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키메라라는 약품을 위한 시설들이 맞습니다. 키메라 공장이 맞아요.”]

…진짜였네.

나는 조금은 놀라서 데빌 보이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였군. 이곳 지하에서 키메라를 만들어내고 있었어. 어떻게 알아냈지?”

“뽀쓰!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 데빌 보이, 이제 옛날의 데빌 보이가 아닙니다요. 바뀐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어디서 알아냈냐고 물었더니, 뜬금없이 재선 공약을 외치는 국회의원 같은 소리를 외치는 데빌 보이.

얘 좀 수상한데….

이런 고급 정보를 얻어오는 것은 평범한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애초에 똑같이 고등학생으로서 히어로 활동을 하고 있는 나와 강수아뿐만 아니라, 따로 본업이 있는 히어로인 페이퍼 백 같은 성인 히어로마저도 이 정도 수준의 고급 정보는 사실상 밀키웨이에게 의존하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이 녀석. 어디서 이용당하는 거 아닐까?

제인, 당분간 얘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감시 좀 해야겠어. 스마트폰 위치추적 기능 이용해서, 최근 어디 위주로 움직였는지 알아내 봐.

[“네 알겠습니다 마스터.”]

“이 위쪽은 위장용으로 진짜 시멘트 공장입니다. 위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지하공장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흐음… 보는 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본인들도 힘들어질텐데 말이지.”

“아무래도 시멘트 공장의 설비를 조금 끌어다 쓰는 모양입니다. 시멘트 공장이 작동하지도 않는데 매연이 계속해서 뿜어져 나온다면 수상하게 느껴질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진짜로 무너트려야 할 곳은, 바로 이 밑 지하. 지하로 가야 합니다.”

나는 데빌 보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꿔 말한다면 24시간 운영되고 있는 시멘트 공장의 눈을 숨기기 위해, 또 다른 입구가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

“허어억! 맞습니다! 역시 보스십니다요!”

또다시 오버해서 아부를 시작하는 데빌 보이 때문에 혼미해지려는 정신을 붙잡고 있는 사이, 데빌 보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입구도 제가 알아놨습니다. 가시죠 보스.”

*    *    *

데빌 보이가 나를 데려온 입구는, 공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숨겨져 있는 작은 창고 하나였다.

조금 떨어진 이 작은 창고의 지하 복도를 타고 움직여야 시멘트 공장의 지하로 내려갈 수 있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창고의 입구는 총 네 명이나 되는 인원이 배치되어 있었다.

입구의 문 앞에 두 명, 창고 옥상 위에 두 명.

이 네 명이라는 인원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불법 시설을 지키는 인원치고는 많은 인원이다.

이 세상에선 네 명이나 되는 건장한 남자들이 창고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 엄청나게 불길하고 수상한 느낌을 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런 것을 감안하면서까지 이 곳에 네 명의 인원을 배치했다는 것은, 이 공장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1층 입구와 지상에 따로 인원을 배치한 상황에선, 혼자서 몰래 숨어서 가긴 쉽지 않은 상황이 벌어진다.

1층의 인원을 처치하게 되면 2층의 인원이 알람을 울리게 되고, 2층의 인원을 먼저 처치하려고 하면 1층의 인원이 알람을 울리게 될 테니까.

네 명을 모두 제압하긴 어렵지 않지만, 알람이 울리게 되면 키메라 공장의 내부에 있던 인원들이 무장해서 공격해올지도 모르고, 최악의 경우 망령당의 다른 지부에서 지원을 오게 될지도 모른다.

1층에는 몸을 숨기고 가면 몰래 제압할 수 있는 상황도 많이 나오지만, 시야가 높은 2층은 아무래도 들키지 않고 제압하긴 어렵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지금의 나라면, 조금 싸움이 커지더라도 충분히 모두 제압할 수 있다.

잠시 고민에 빠져있는 내게, 데빌보이가 입을 열었다.

“보스. 제가 2층을 맡겠습니다. 보스가 1층의 인원을 맡아주십시오.”“2층을?”

“네.”

조금 위험한데….

[“맡겨보세요 마스터. 어차피 마스터 혼자서도 싸움이 크게 번지는 걸 막기 어렵다면, 한번 맡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왜 이렇게 갑자기 자신감이 넘치게 되었는지, 또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어왔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데빌 보이의 실력을 보아야 할 필요도 있었다.

“알겠다. 네게 2층을 맡겨보지.”

내 허락을 받은 데빌 보이가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쇠구슬이라도 던져서 순간이동을 할 생각인가 보군.

데빌 보이가 품에서 꺼낸 것은 쇠구슬이 아니라 잘 만들어진 날카로운 표창이었다.

“가자. 데빌 수리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