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지옥의 형벌
“이 새끼 안 일어나?”
퍼억!
“헉…!”
추재식은 복부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정신을 차렸다.
“이 새끼 누가 처 자래? 잠깐 앉아서 쉬라고 했지, 처 자라고 했어? 엉?”
자신의 눈앞에 망령당의 하급 팬텀이 씩씩거리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여기 어디지…?’
추재식이 눈을 뜬 곳은 자신이 오랫동안 운영하던 마약 공장이었다.
최근에는 망령당의 명령에 따라 키메라 약을 더 많이 만들고 있긴 했지만, 원래는 중독성 있는 마약을 만들던 공장이었다.
‘뭐야? 여긴 내 공장이잖아?’
추재식은 다른 곳이면 몰라도, 이 공장 안에서라면 사실상 왕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한 마디면 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한둘 정도의 목숨은 공장에 숨어든 쥐새끼 한 마리 잡는 것처럼 쉽게 죽여버릴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어떤 새끼가 내 공장에서 나를 걷어차?’
애초에 자신이 왜 공장에서 자고 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긴 했지만, 자신의 부하가 자신의 배를 걷어찼다는 사실은 도저히 덮고 넘어갈 수 없었다.
추재식은 배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야 X발 너 뭐야? 너 나 누군지 몰라?”
“뭐?”
“내가 이 공장 담당하는 구역장 추재식이다. 너 이 새끼 내 얼굴 몰라? 앙?”
웅성웅성.
공장 내부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 공장 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까, 소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추재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뭐? 이 새끼 쳐 자더니 정신이 나갔나? 엉?”
퍼억-!
“허억-!”
본래라면 자신에게 슬슬 기어야 할 하급요원이 자신의 배를 다시 한번 걷어찼기 때문이다.
“야! 너 니 위로 다 데려와. 어떻게 구역장 얼굴을 몰라봐?”
“어이… 추재식이… 갑자기 왜 그려… 그러다 진짜 맞아 죽어….”
자신의 옆에서 엎드려 벌벌 떨고 있던 노동자 중 한 명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말렸음에도, 추재식은 아직까지 이상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오늘 걍 한 놈 죽여놔서 기강 좀 잡아야겠다.’
추재식도 아무런 힘 없이 망령당의 구역장을 맡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현역에서 물러난 지 조금 된 지라 무뎌졌을지 모르겠지만, 칼잡이로서 칼 한 자루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 왔던 그였다.
아무리 약물로 몸이 강화되어 있는 전투요원이라지만, 아직도 충분히 자신이 압도할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사시미칼을 빼 들기 위해 손을 품 안에 집어넣었다.
‘…없어? 이럴 리가 없는데….’
천산시의 뒷골목에서 일한다는 것은, 언제든지 싸움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절대 무기를 품 안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잠을 잘 때마저도 마찬가지였다.
‘뭐… 이 정도의 놈이라면 무기 없이도 충분히 처리하고도 남지.’
추재식은 품에 넣었던 손을 빼고 그냥 양 주먹을 꽉 쥐었다.
“진짜 이 새끼가 아직도 여기가 꿈나라인 줄 알지?”
퍼억-!
다시 한번 재차 자신의 배에 틀어박히는 전투요원의 발.
추재식은 피하지도 못하고 얻어맞고 말았다.
‘어라?’
무언가 이상했다.
손도 발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 신체계열 슈페리어였던 자신의 능력이, 전혀 발현되지 않는 것이다.
퍼억! 퍽! 퍽!
재차 자신을 향해 주먹질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반항하려고 시도해보았지만, 몸 자체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탓에 추재식은 속절없이 두들겨 맞고 말았다.
“야. 너네 이 새끼 똑바로 깨워서 일 시켜놔. 알았어?”
추재식을 한참 두들겨 패던 전투요원은 노동자들에게 그렇게 말하곤 추재식을 두고 가버렸다.
한참을 두들겨 맞은 추재식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제야 추재식은 정신이 돌아왔다.
“추재식이… 좀 괜찮아?”
“어…? 어… 그래….”
마약에 중독된 자신의 딸이 이 공장에 잡혀있고, 추재식은 딸을 되찾기 위해 이 공장에서 일한 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아까까지 머릿속에 가득해 있었던 자신의 공장장이었던 과거는 모두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내가 잠깐 정신이 돌았었나?’
어쩌면 이 공장 내부의 뿌연 연기 때문에 정신이 돌아버렸었던 걸지도 모른다.
“대체 갑자기 왜 그런 거여?”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잠깐 갑자기 정신이 확 돌아버렸나보다 싶네.”
주변 노동자의 부축을 받으며 정신을 차린 추재식은, 자신에게 떨어진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그날 이후로 추재식의 일상은 지옥처럼 변했다.
전투요원에게 덤벼들었던 적이 있다는 이유로, 추재식은 알게 모르게 계속해서 감시를 당하고, 사소한 이유만으로 두들겨 맞기도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배당되는 식사도 적어지기 시작했고, 방독면의 정화통도 종종 불량품이 배급되기도 했다.
그런 날은 추재식은 정화통을 뚫고 들어오는 유독가스를 마시며 일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일하고 공장 한켠의 숙소로 돌아갈 땐 얼굴 전체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곤 했다.
추재식은 점점 쇠약해지는 자신의 몸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추재식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점점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져 갔다.
‘아. 죽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거구나.’
이런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것보단, 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추재식은, 점점 흐려지는 정신을 완전히 놓았다.
아니. 놓으려고 했다.
콱!
그때, 자신의 누군가 강제로 벌린 것처럼 두 눈이 떠졌다.
“안 되지. 안 돼. 여기선 죽을 수 없어. 아무리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단 말이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두 눈의 색깔이 다른 악마.
붉은빛과 푸른빛의 안광을 가진 악마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뜨거워… 뜨거워!’
정신이 든 추재식은, 자신이 지옥 불구덩이 한가운데에 묶여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모든 기억이 돌아왔다.
자신은 이 지옥 같은 불구덩이에 묶인 채 이 지옥의 악마가 보여주는 환상 속에서 몇 번이고 같은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 지옥 같은, 연기가 가득 찬 마약 공장 노동자의 삶을, 끝없이 계속해서 다시 살아야만 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계속해서 자신의 머릿속에 밀려 들어오는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 추재식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내질렀다.
“으흐흐흐흐흐하하하하하!”
공포스러운 악마의 웃음소리가 추재식의 귓가에 계속해서 울렸다.
* * *
“제… 제발!! 그만!! 그만해! 제가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제발… 잘못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망령당 나박동 구역장인 추재식.
절대 말하지 않을 것처럼 굴던 놈은 정신세계 안에서의 고문 끝에 결국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정신 세계 자체가 놈의 정신 세계이다 보니까 훨씬 강력해진 놈의 정신체와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아마 평소에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즉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정신세계에서의 강함에 영향을 주는 모양이었다.
놈의 본래 능력보다 훨씬 강한 능력자와 싸우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조금 고생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거기에 사용할 수 있는 능력도 체인과 흑염 수준에 머물기도 했었고.
하지만 결국 승자는 내가 되었고, 내가 놈을 제압하고 나자, 벨제뷔트는 놈의 정신 내부를 조종해 환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전, 정애정 공장의 피해자 이야기를 각색한 공장에서의 삶을 보여주길 몇 번, 놈은 입을 열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정보는 꽤 값진 것들이었다. 놈이 알고 있는 약물의 원자재 수입 경로와 천산시에 있는 키메라 공장 몇 군데의 위치.
하지만 아무리 고통스러운 환영을 보여줘도 놈은 절대 미닝리스에 대한 정보는 불지 않았다.
마치, 머릿속에 무언가 금제가 걸린 것처럼 말하려고 할 때마다 정신을 잃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망령당을 이 도시에서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해선 망령당의 보스, 미닝리스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미닝리스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재차 다시 한번 새로운 삶을 보여주려고 하던 바로 그때.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제….”
한참을 빌던 놈이 기절하며 정신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르르르….
검은색의 무언가가 정신세계를 좀먹으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뭐야? 이거 왜 이래?
【“정신력이 한계에 온 거겠지. 아무리 그래도 정신력이 무한하진 않을 테니.”】
이런… 좀 아쉬운데… 아직 알아낼 수 있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았는데.
【“걱정하지 마라. 아무래도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말한 듯하다. 이 이상 놈에게 알아낼 것은 없을 거다.”】
뭐? 확실해? 네가 어떻게 알아?
【“확실하니까 걱정하지 마라. 최근 내 힘과 감각이 슬슬 돌아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특히 이 정신 세계 안에서는 훨씬 예민해지는군. 이 안에서라면 인간이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계약자가 거짓을 말하는지 아닌지 파악하는 것이, 악마에겐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니까.”】
나는 벨제뷔트의 말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야 너 근데 나한테 그런 말 해도 돼? 요즘 나랑 사이가 너무 좋아져서 잊은 모양인데, 너를 봉인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나거든?
【“흥. 그래서 더 솔직하게 말하는 거다. 네 친구랑 계약까지 해버린 상황이라 봉인에서 풀려나려면 네가 봉인을 풀어주지 않으면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으니까. 기왕이면 네가 죽기 전엔 봉인 해제를 해주면 좋겠군.”】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 여기서 너 꺼내주는 방법 모르는데? 뭐 대충 외치면 되나? 봉인 해제! 뭐 이렇게? 요즘은 창피한 거에 내성이 생겨서 가능도 할 것 같은데?
【“…네가 모른다면 제인이라면 알고 있겠지.”】
그럴지도 모르겠네. 나중에 제인과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긴 하겠다.
정신을 완전히 잃은 사람의 머릿속에 남아있어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흑염을 이용해 놈의 정신 세계에 구멍을 뚫고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 * *
<시멘트 공장 지하에 숨어 있던 불법 약물 공장을 발견하다.>
<도 넘은 마약 갱단, 사실상 현대판 노예제도….>
<지옥에서 온 악마가 내린 벌? 범죄자와 구출된 노동자 모두 악마를 언급해….>
다크 카이저로서 활동하는 동안은 최대한 요란하게 사건을 해결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지만, 헬 카이저로서 활동하는 동안은 그렇게 시끄럽게 사건을 해결할 필요가 없었다.
헬 카이저로서 활동할 땐, 딱 이 정도로 아름아름 알려지며 공포감을 전파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다만, 며칠 뒤 조금 의외의 사건이 생겼다.
<경한제약, ‘키메라’ 약물 치료제 개발 성공.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경찰과 협업, 도입 예정…>
평소엔 밑바닥 싸움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어떤 일이 생겨도 침묵을 유지하던 경한 그룹에서 키메라 치료제를 개발했다고 대대적으로 기사를 싣기 시작한 것이다.
경한이 개발한 치료제는 곧바로 경찰 무기에 적용되어 키메라 약물을 가지고 사고를 치던 범죄자들을 빠르게 제압해나가기 시작했다.
이러면 이미 설비를 갖추고 약물을 생산하던 키메라 공장들이 전부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어쩌면 기껏 알아낸 키메라 약물의 원자재 수입경로와 공장의 위치가 전부 쓸모없는 상황이 될지도 몰랐다.
나는 서둘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