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가족(1)
경한 그룹의 키메라 치료제 개발로 인해 기껏 알아낸 내용이 무용지물이 될지도 몰랐다.
나는 조금 서둘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랬지.
서둘러야할 필요성을 느꼈는데…. 분명 그랬었는데….
“강림아. 이것 좀 봐. 이거 이모한테 어울릴 것 같니?”
옷가게에서 옷을 하나 집어보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이모.
나는 지금, 이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이렇게 바쁜 시기에 왜 그렇게 하고 있냐고?
사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이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했었거든.
나를 방안에 가두고 절대 안 내보내겠다고 펑펑 울던 우리 이모를 달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어디 보자… 한번 위로 올려봐요. 크으… 역시 우리 이모. 흰색 너무 잘 받는다.”
나는 일단 이모를 향해 양손 엄지를 치켜들고 인상을 찡그렸다.
“얘는… 아직 고등학생인 애가 반응이 무슨 아저씨 같네.”
하지만, 이모가 들어 올린 옷은 말하자면 조금 평범한, 그리고 이미 집에 수벌은 있을법한 무난한 형태의 옷이었다.
내가 이 세계에 오면서 시간이 조금 당겨진 탓에 지금의 이모는 서른 초반. 사실 아직 꽤 젊은 편이다.
삼십 대 초반이면, 사실 요즘 같은 세상이면 아직도 젊고 아름다울 때인데….
저렇게 집에 수벌은 있는, 그냥 편하게 입고 다닐법한 옷차림만 하고 다니니까 이모가 애인이 안 생기지.
원래 세계에서 돌아가셨을 때 내가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내가 전역하고 돌아올 때까지 결혼은커녕, 연애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이모가 결혼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점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모가 돌아가시면 내 주변에 남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실, 오히려 반대가 되었다고 봐도 괜찮을 것이다.
이 세계의 이모는 원래 세계의 이모처럼 병에 걸려 돌아가실 가능성이 없다.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이젠 더 많은 시간을, 오랫동안 사실 가능성이 더 높다.
나는 매일 밤, 빌런들과 사투한다.
날붙이를 가차 없이 휘두르고, 총탄이 날아다니고, 심지어는 초능력이나 기계병기까지 사용해서 나를 공격해오는 수많은 빌런들과 밤거리에서 매일같이 목숨을 걸고 싸운다.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이모보다, 내가 더 일찍 죽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만약 어느 날 내가 죽게 된다면, 이모는 나 없이 혼자만의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나는, 이모를 그렇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내가 느꼈던 그 깊은 외로움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왠지 마음 아프고, 조금 서운하기도 하지만… 이모도 이제, 나보다 소중한 사람을 만들 때가 왔다.
나는 혼자 큰 결심을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라도 이모의 행복을 빌어줄 필요가 있어.
“이모, 그 옷 이모한테 정말 잘 어울리는데… 그거 말고 좀 더 화려한 거 입어보시면 안 돼요?”
“응?”
“아니… 이모도 아직 젊잖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좀 예쁘게 꾸미고… 연애도 좀 하고… 그러고 사셔도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
“어머. 요놈 봐라? 말하는 게 꼭 지 엄마랑 똑같네. 누가 자식 아니랄까 봐 잔소리하는 레퍼토리마저 똑같네. 그건 이모가 다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까 우리 조카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이소희 아직 안 죽었다?”
잘 안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남자는 무슨… 같이 사는 내가 뻔히 아는데….
나는 슬쩍 튀어나오려던 한숨을 잠깐 참고 옷걸이에 걸린 옷 중에 내 눈에 가장 예쁘게 보이는 옷을 하나 들어 올렸다.
[“앗. 마스터.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어… 그래? 왜? 이 정도면 괜찮지.
[“그게 괜찮아 보여요?”]
【“…인간의 이야기라 참견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내 눈에도 그건 좀….”】
내가 들어 올린 옷을 보자마자 질색을 하는 제인과 벨제뷔트를 보고 나는 머쓱하게 들고 있던 옷을 다시 옷걸이에 걸었다.
음… 그럼 이건?
[“그것도 좀….”]
【“지옥의 죄수들에게 줘도 안 입을 수준이군.”】
어… 이건?
[“…그게 진짜 이전에 들어 올렸던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이제 더 이상 못 보겠군. 끝나면 깨워줘라.”】
이거?
[“우웩.”]
【“네가 지금까지 짝을 구하지 못한 이유를 이제 정말 정확하게 알겠군.”】
나는 오기가 생겨서 다음 옷을 들어 올리기 위해 손을 뻗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뻗으려 했다.
덜덜… 덜덜덜….
내 손이… 혼자 떨고 있어…?
내 머릿속에 초등학생 때 가본 적 있는 미술학원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내 꿈은 화가와 만화가였다. 멋진 그림을 그리고, 멋진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멋지게 보였다.
부모님을 졸라 집 주변 미술학원에 일주일 정도 다닌 적 있던 어느 날, 학원에서 부모님께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미술학원의 전화를 받은 엄마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었다.
그리고 간 병원에서 나는 혹시 색맹이 아닌지, 혹시 눈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닌지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봐야만 했다.
“색약은 아닙니다만… 색깔에 대한 감각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군요.”
색맹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해진 이후에도 내 그림은 여러 가지 논란에 휩싸이곤 했었다.
짝꿍 그리기 시간에서도….
“이게… 나라고? 흑흑… 으아아앙!”
가족 그리기 시간에서도….
“이게 뭐야? 너 대체 뭐랑 같이 사는 거야? 뭐? 이모랑 단 둘이 산다고?”
나는 매번 굴욕을 맛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에 열람한 내 생활기록부에는 ‘미술적 감각이 심하게 떨어짐.’ 이라는 문장이 매번, 전부 틀어박혀 있었다.
지금까진 잊고 있었던 그때의 PTSD를, 내 머릿속에 살고 있는 괴물들이 깨어나게 하고 만 것이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천천히 바닥으로 떨궜다.
맞아… 난 안 돼….
내가 이모에게 옷을 골라줬다간 우리 이모는 평생 연애는 꿈도 꾸지 못 할 수도 있어.
내가 좌절하고 있던 바로 그때.
“그럼, 이건 어때요?”
부들부들 떨리던 손을 내린 내 옆에서, 갑자기 확 풍겨오는 꽃냄새와 함께 하얀 손이 튀어나와 옷을 한 벌 골라 들어 올린다.
[“와. 저건 괜찮네요.”]
“아니면, 이거, 이거나 이거. 아니면 이거.”
“어머. 진짜 예쁘네. 이것도 진짜 예쁘고.”
언뜻 보는 내 눈에도 이모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옷 몇 벌을 꺼내 드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익숙한 목소리인데… 누구지?
나는 목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강림이 이모. 저번에 뵌 적 있었죠? 강림이 체육관 친구 설지나에요.”
옷을 잔뜩 들고 우릴 향해 웃고 있는 소녀는, 슈팅 노바 설지원의 동생, 설지나였다.
* * *
“어머. 이런 곳에서 강림이 친구도 다 만나고, 잘됐다. 아무래도 강림이는 남자애라 여자 옷 보는 눈이 좀 없었는데.”
【“이건 남자애라서 그런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방금의 발언으로 벨제뷔트의 수감기간이 최소 10년 더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알아두세요.
【“크아아악!”】
“아휴, 아녜요. 어차피 심심해서 혼자 놀러 나온걸요. 마침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저도 즐거워요.”
“아휴. 말도 예쁘게 하네~ 그럼 잠깐 옷 좀 입어보고 올게. 조금 기다려주렴. 마침 이런 곳에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아 정말요? 전 너무 좋죠.”
골라준 옷을 잔뜩 들고 이모가 피팅룸 안으로 들어간다.
이모가 피팅룸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특유의 눈웃음으로 방긋방긋 웃는 설지나.
설지나는 엔터테인먼트의 프로 히어로가 되면, 분명 엄청난 인기를 누릴 것이 분명했다.
예전에 살던 세계에선 아이돌 같은 거 할법하게 생긴 친구인데, 여기선 프로 히어로 지망생 같은 걸 하는구나.
잠깐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내게, 설지나가 입을 열었다.
“이모랑 단둘이 이런 곳도 오고 그러는구나. 생각보다 더 가정적이네.”
“응? 뭐? 나한텐 유일한 가족인데 당연하지.”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음… 사실 넌 체육관에서 그… 독종이라고 불리거든.”
“뭐? 내가?”
“응. 슈페리어가 아닌 네추럴이면서 슈페리어급 훈련을 군소리 없이 받고 있으니까. 거기에 스파링 같은 거 할 때면 네가 달려드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아니? 우리 체육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은 네가 슈페리어였다면 프로 히어로라고 해도 믿었을걸?”
생각해보니 같은 체육관 다니는 사람도 얼마 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이랑 별로 교류해본 적은 없었다.
나는 항상 바빠서, 오늘치 훈련이 끝나면 쏜살같이 체육관을 빠져나가곤 했으니까.
그런데 그 체육관 사람들이 나를 독종이라고 생각했구나.
이거 기분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그나저나, 얜 왜 혼자 여기 와 있는거지?
“그러고 보니 넌 혼자 여기 왜 온 거냐?”
“응? 나? 이건 비밀인데….”
“어. 응.”
내 귀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대고 소곤소곤 말하기 시작하는 설지나.
가까이 다가오자 특유의 샴푸냄새가 훅 풍겼다.
얜 샴푸를 뭘 쓰길래 항상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냐?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실은… 우리 언니가 너무 짠순이라서….”
그런 말을 하곤 주변을 슥 훑어보는 설지나.
“뭐?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용돈이 부족해서 알바 자리라도 찾으러 다니던 중이었어. 그러다 네가 옷가게 들어오는 거 보고 따라 들어온 거고.”
“근데 무슨 그런 이야기를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하냐?”
“우리 언니가 어디 숨어서 듣고 있을지도 몰라. 뜬금없이 나타난다니깐? 눈도 엄청 좋고 귀도 엄청 좋아서 욕 잘못했다 걸리면 혼나.”
그러고 보니 설지원도 탑급 히어로긴 하지. 특유의 신체능력 때문에 당한 적이 몇 번 있는 모양이다.
“거기에 네가 너희 이모랑 대화하는 거 듣는데 너무 공감이 가더라고. 우리 언니도 내가 오래 아픈 바람에 연애를 못 하고 살았거든. 조금 공감이 돼서 도와주고 싶었달까?”
그렇게 듣고 보니 그렇네. 얘랑 나랑은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은 사이였다.
가족을 잃고 단둘이 살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시집 보내야 할 가족이 하나 있다는 것도 그렇고.
나는 설지나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듣고 보니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다. 도와줘서 고맙네.”
“이 정도야 뭘, 우린 친구잖아? 그리고 곧 맛있는 것도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고.”
설지나가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 눈웃음에서 향기로운 꽃내음이 풍겨 나오는 듯했다.
* * *
“후우….”
피팅룸에 들어온 강림의 이모, 이소희는 들고 온 옷을 벽에 걸어둔 채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강림이의 친구도 있겠다, 이소희는 여기 잠깐 주저앉아 조금 시간을 보내다 나갈 생각이었다.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친구가 하나 옆에 있으니까, 아마 갑자기 히어로 활동을 하겠다고 떠나는 일은 없을 거다.
이소희는 조카와 외출한 이 시간이 끝나지 않길 바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희에게도 점점 과열되고 있는 범죄자들의 양상이, 피부에 와닿도록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조카 강림은 지금, 매일 같이 뉴스에 나오는, 사람을 괴물처럼 만드는 약을 만드는 집단과 싸우고 있었다.
그 정도 약을 만들 줄 아는 범죄집단이라면,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로 가득하겠는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소희는 자신의 조카, 강림이 점점 변해가고 있는 것 또한 느꼈다.
정확히는,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데에 무뎌져 가는 것이다.
당연히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그것이 자신의 의무인 것처럼, 아무런 대가 없이 몸을 던진다.
소희는 그런 자신의 조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신의 조카 강림은 경찰도 아니고, 소방관도 아니다. 그런 싸움에 자신의 몸을 던져야 할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자신의 가족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의 싸움에 점점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하지만 이 시간이 끝나고 밤이 오면, 자신의 조카 강림은 언니가 남긴 히어로 슈트를 입은 채 밤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그러면 또 자신은, 그 긴 밤을 강림이 돌아올 때까지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게 될 테지.
밖에서 도란도란, 강림과 지나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피팅룸 안으로 들려왔다.
소희는 벽에 걸린 옷을 한 벌, 느릿느릿하게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