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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56화 (156/236)

156화

가족, 그리고 친구

허억!

나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눈을 뜬 공간은 캄캄한 어둠 속이었다.

아니, 아니지.

예전에는 몇 번이고 착각했지만, 지금은 안다.

이곳은,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별이 빛나고 있는 우주 공간이다.

스타 라이트를 만난 적 있는, 내가 별을 찾아 헤매던 바로 그 우주 공간.

……!

나는 오랜만에 마주한 그 우주 공간의 별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정신을 차렸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갑자기 정신이 확 돌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터질지도 모르는 폭탄을 몸으로 끌어안았었는데….

그렇다면 여긴… 내가 죽었기 때문에 온 곳일까?

예전에 여기서 몇 번이고 스타 라이트를 만났던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나도 모르게 우주 공간의 별을 훑어보았다.

이모의 별, 지나의 별.

둘 다 아무런 이상 없이 밝은 빛을 내뿜으며 어두운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그제야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하는 기억.

아 맞다. 나 폭탄 막아냈었지.

마지막에… 날 끌어 안은 사람은… 이모였겠지?

뭐야? 그럼 나 안 죽은 거 아닌가?

이모도 옆에 계셨는데 팔다리 부러졌다고 내가 죽진 않았을 거고.

몸에서 힘이 쫙 풀리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죽어서 올 만한 곳은 아니긴 하구나.

매번, 내가 히어로 활동을 하며 큰 위기를 겪거나, 혹은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마다 왔던 곳이라 그런지, 왠지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마치 수영장 위에 둥둥 떠 있는 사람처럼 우주공간을 둥둥 뜬 채 유영하기 시작했다.

어? 생각해보니 이러고 있을 곳은 아닌데?

너무 편안해서 그런지, 하마터면 정신을 놓고 있을 뻔했다.

내가 이곳에 올 때는 항상, 무언가를 보고 위기 상황을 감지하곤 했었다.

처음에는 스타라이트가 나타나 내게 경고를 하기도 했었고,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죽기 직전일 때 다크 스코프 아저씨의 별이 붉게 빛나며 내게 경고를 보내주기도 했었다.

이 공간은 내가 원하고 싶을 때마다 올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이 공간이 내게 보여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때만, 나는 이 공간에 도착한다.

그렇다면, 분명, 지금도 내가 이 공간에 도착한 이유가 있을 터.

그럼 나는 그걸 찾아야만 한다.

내가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저 멀리서 번쩍, 하고 무언가가 빛을 내는 것이 느껴졌다.

어라? 뭐지?

번쩍, 빛이 났다고 느꼈던 게 착각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검은 우주.

하지만 나는 그 검은 우주 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언제 꺼질지 모를 정도로 아주 미약하지만, 그래도 분명 반짝이고 있는 나, 나 강림의 별을.

“허억!”

나는 눈을 떴다.

*    *    *

낯선 천장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풍겨오는 냄새는 익숙한 느낌이었다.

병원.

병원 특유의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하긴… 마지막에 팔다리가 다 부러졌었으니, 병원에 실려 올 만도… 뭐? 병원? 나 슈트 입고 있었는데?

[“마스터! 깨어나셨군요!”]

눈을 뜨자마자 들려오는 제인의 목소리. 나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에엑?”

내 오른팔과 다리가 전부 깁스에 꽁꽁 묶인 채 매달려 있었다.

“뭐야? 나강림 일어났네? 몸은 좀 괜찮냐?”

그리고 몸에 입고 있는 것은… 병원복?

“에에에엑!”

“뭐야? 얘 이상하네. 간호사 언니! 환자 깨어났어요! 의사 선생님!!”

어째서 내가 밀키웨이의 다프네가 아니라 병원에 있는 거야? 이러면 내 정체는…?

패닉에 빠져있는 내 귓가로 제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걱정하지 마세요. 마스터. 이모님이 다 알아서 잘하셨어요. 마스터의 정체는 들키지 않았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안 들킨 거 맞아?

[“네. 진짜 안 들켰다니까요.”]

제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나는 안심해서 패닉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제 괜찮아? 정신이 좀 들어?”

그런 내 귓가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나는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내 옆 침대에 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내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그래도 선생님 불러올게. 좀 기다려봐.”

사건이 일어났던 밤, 같이 있었던 설지나였다.

그래. 얘도 겪었던 일 생각하면 병원에 있을 만하지.

설지나가 선생님을 데려오겠다며 병실 밖을 나가고 나서야 나는 안심이 되어 뒤로 완전히 드러누웠다.

제인. 나 없는 동안 있었던 일, 브리핑 좀 해줄래?

[“네 마스터.”]

*    *    *

그날 저녁, 나는 폭탄을 막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너무 무리한 탓에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나를 찾으러 나왔던 이모였고, 제인이 가장 먼저 나를 찾으러 나온 이모와 접촉해 사정을 설명하고 슈트를 해제했다고 한다.

뭐야? 생각해보니 그럼 왜 다프네로 안가고 병원으로 온 거야?

[“마스터… 이모가 마스터를 다프네로 데려가면… 다프네의 사람들에게 마스터의 정체를 들키잖아요.”]

아 맞다. 그렇네.

요즘 내 정체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인지 조금 혼란이 왔던 모양이다.

아무튼 이모 입장에선 내가 치료를 받게 하기 위한 최선은, 내가 사건에 휘말려 다친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고, 나는 사건 현장에서 도망치던 도중 교통사고를 당해 팔다리가 부러진 설정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사건에 휘말린 피해자가 되어 있는 거지.

[“그리고… 마스터는 그날 이후 3일째 되는 날에 일어나신 거예요.”]

뭐? 3일? 그럼 그동안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은?

“으아아악!”

벌떡 몸을 일으키려던 나는 팔다리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다시 뒤로 드러누웠다.

“…강림아?”

“어?”

아 맞다. 여기 나 혼자 쓰는 방이 아니었지.

“괜찮아? 무슨 불편한 곳 있어? 선생님 불러올까?”

내 옆 침대에서 책을 읽고 있던 지나가 소리를 지르는 내 모습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어… 아… 아니야… 괜찮아. 미안. 잠깐 꿈자리가 안 좋아서.”

지금 내가 머무는 이 병실은, 실은 지나의 소속사에서 구해준 2인실이었다.

테러 당시, 지나는 쓰레기통 안에서 숨어있다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총을 든 범인을 향해 덤벼들었었다.

그리고 당시 있었던 일들은, 구출된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로 인해 기사화가 되었다.

거기에 지나가 프로 히어로 지망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갑작스러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히어로 지망생들이 이르게 유명세를 타서 좋을 것이 없다.

주목받는 히어로라는 것은, 오히려 개인에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르게 주목받는 경우, 병원까지 찾아와서 사진을 찍어가려는 파파라치들도 꽤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소속사가 있는 히어로였던 지나는, 소속사의 힘으로 병실을 비밀리에 구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마침 사건 사고가 많은 요즘 병원에서 1인실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고, 그나마 구할 수 있던 2인실을 사고를 당한 친구인 나와 함께 쓰고 싶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미 친구인 나는, 충분히 믿을 수 있다던가.

아무튼 그래서 난 지나와 함께 병실을 같이 사용할 수 있었다.

“…꿈자리가 안 좋을 만도 하지. 혹시라도 불편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간호사 언니나 의사 선생님 불러줄게.”

“어… 응… 고맙다….”

이 세계에 와서 나를 저렇게 안쓰럽게 쳐다보는 사람은 또 처음이네….

하긴, 생각해보면 프로 히어로 지망생인 지나 입장에서는 내가 PTSD를 앓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긴 하겠다.

그래서… 내가 3일을 쉬었다면, 그동안 내가 하려고 했던 일들은 어떻게 된 거야?

브루트들은? 키메라약은? 나 없는 동안 다른 빌런들은 안나타났고?

[“마스터. 진정하고 천천히… 일단은 마스터가 의식이 없던 동안 별다른 큰일은 없었어요. 마스터가 고생하면서 찾았던 키메라 약의 원료도 경찰이 추적하고 있는 중이구요. 브루트들이 일으키는 작은 테러들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아스트로 스타즈가 전부 훌륭하게 막아낸 상태에요.”]

다행이다… 그럼… 다른 빌런은? 이 기회를 틈타 무슨 일을 벌이거나 한건 아니고?

[“그런 건 없어요! 3일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 아니에요. 마스터. 그렇게 많은 사건이 있을 수 없다구요.”]

다행… 정말 다행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회복에만 전념하세요. 이번에 꽤 크게 다치셨으니까요.”]

그래….

내가 깨어난 뒤 나를 보러 온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내가 그렇게 크게 다쳤는데도 살아있던 건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하셨었다.

사실, 의사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실 만도 한 게, 팔다리가 부서질 정도로 큰 사고가 났으면, 실제로 목숨을 구하기란 어려운 게 맞을 거다.

실질적으로 내 입장에선 팔다리만 크게 다친 것일 뿐이지만.

지금은 치료능력을 가진 슈페리어들의 도움으로 뼈가 많이 붙어있는 상태라고 한다.

이대로라면 짧으면 일주일, 길면 이 주일 정도만 요양하고 나면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을 거라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모 앞에서 그렇게 허세를 부리며 튀어 나갔는데, 결국 사건은 못 막아내고 반송장이 돼서 겨우 살아 돌아온 셈이니까.

그때도 그렇게 걱정하셨는데, 앞으로는 내가 히어로로서 활동하기가 훨씬 더 힘들어질지도 몰랐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설득을 해드려야하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때였다.

똑똑.

그때,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지나 소속사 관계자인가?

내가 깨어난 이후로, 이 병실에 드나든 사람은 지나 소속사 관계자 이외에는 없었다.

우리 이모? 사고가 난 지 얼마 안 되셨지만, 회사에 남겨두고 오신 일이 걱정되셔서 잠깐 회사에 출근하고 돌아오신다고 한다.

세상에… 예전에 살던 세계든, 지금 살던 세계든, 사람이 먹고 사는 건 힘이 들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네. 들어오세요.”

지나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사람.

“어머. 지나야. 몸은 좀 괜찮니?”

“아 네. 오셨어요? 의사 선생님은 이미 왔다 가셨어요. 강림이 몸 상태는 생각보다 괜찮다고…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하시더라구요.”

아… 나 괜히 이모 생각했나보다.

“이… 이모….”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우리 이모였으니까.

어떻게 하지… 아직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변명이 준비가 안 됐는데….

이모의 표정만 봐서는 화가 별로 안나신 것 같았지만….

혹시 모른다. 우리 이모는 내가 히어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몇 개월을 보내신 분이었으니까.

저벅 저벅….

이모가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온다.

어… 어떻게 하지….

“강림아… 지금까지 고생 많았어.”

하지만, 이모의 반응은 내가 생각하던 반응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금까지 정말… 정말 고생 많았어….”

그저 나를, 꼭 안아주는 이모.

“흑… 흐흑…. 흑… 흑….”

나를 안아주는 이모의 온기를 느끼며, 나는 나도 모르게 이모의 품 안에 얼굴을 묻은 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    *    *

“조금 진정 됐니?”

“네….”

“그래…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에 집에 가게 되는 날, 그때 하도록 하자.”

“네….”

이모가 이런 말을 하시는 것은, 이 병실에 지나도 함께 있기 때문일거다.

아무래도 지나의 앞에선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그나저나 부끄럽네… 내 옆에 지나가 있는데 그렇게 펑펑 울다니….

[“걱정 마세요. 그 나이 또래 아이라면 당연한 일일 거라 생각할 테니까요.”]

그래… 그런 식으로라도 생각해주면 다행이지….

똑똑.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

“네. 들어오세요.”

벌컥.

뭐야? 무슨 병실 문을 저렇게 사정없이 열어?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내 눈앞에 보인 사람은….

“안녕하세요… 여기 나강림… 얘들아 여기 맞아!”

도유진….

“안녕하세요. 강림이 이모.”

강수아….

“가… 강림아… 몸 괜찮아?”

그리고 한소연이었다.

“와… 진짜 크게 사고 났었던 모양이네….”

기세좋게 문을 열고 들어온 도유진이 내 꼴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사고를 당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이모가 말하길, 학교에선 내가 테러에 휘말렸다는 말은 친구들에게 하지 않았다고 했으니까.

다만….

“강림아… 정말… 흑… 흐흑….”

“소… 소연아… 왜… 왜 울어….”

내 꼴을 본 소연이는, 눈물을 펑펑 쏟아버리고 말았다.

내 정체를 아는 소연이는, 내가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테니까.

“어머… 지나야… 거기 휴지 좀 줄 수 있니?”

“앗… 네….”

“소희 이모! 근데 옆에 있는 환자는 누구예요…? 보통 남녀가 같은 병실은 잘 안 쓰지 않나?”

“응. 강림이 체육관 친구래. 마침 사고가 일어난 날 같이 있었거든….”

“어허… 그… 그래요…? 쟤가 강림이 체육관 친구구나….”

…….

친구들이 와서 떠들썩해진 병실을 보며, 나는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말았다.

뭔가 마음 한쪽이 따뜻해지는 듯한, 그러면서 뭔가 안도감이 밀려오는 듯한….

【“드디어 네가 살아남았다는 게 실감되는 모양이로군.”】

그렇네.

나는 또다시 오늘도, 살아남았다.

살아남아서, 이 광경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였다.

“…여기.”

“응…?”

내가 멍하니, 떠들썩해진 병실을 보고 있는 동안, 내게 다가온 수아가 조용히 나를 향해 티슈를 뜯어 내밀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또다시 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수아에게서 티슈를 받아들었다.

“고맙다.”

고마워.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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