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강수아(1)
<경찰, 키메라 해독제의 도입 뒤엔, 시청과 조석한 시장의 도움이….>
“허허….”
천산시의 시장, 조석한은 신문을 내리며 기분 좋게 웃었다.
자신과 협력관계에 있는 경한 그룹이 자신을 위해 경찰에 카메라 해독제를 도입해 준 덕분에, 키메라 약물을 사용한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장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이 타이밍에 해준 경한그룹의 도움은, 분명 자신이 재선에 성공하는 데 막대한 도움을 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한편, 키메라 약을 만드는 망령당도 자신과 협력하는 관계.
조석한은 망령당의 구역들을 직접적으로 건드는 게 아닌, 망령당에게서 키메라 약물을 구매해 사용하는 범죄자들을 제압하는데 중심을 두었다.
실질적으로 망령당이 경찰에 의해 본 손해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천산시에 일어나는 가장 굵직한 사건들이, 전부 조석한의 재선을 위한, 일종의 쇼였던 것이다.
‘아 그렇지. 망령당 쪽에 연락을 좀 넣어놔야겠군.’
조석한은 조금 전 들었던, 키메라 약물의 원료의 경로가 유출되었다는 사실을 망령당에게 알리기 위해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 * *
“그래서…. 다음 시장 선거 또한 조석한의 재선이 유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대수의 보고를 듣던 사대희가 손을 들어 올렸다.
정대수는 하던 보고를 멈춘 채 사대희의 말을 잠시 기다렸다.
손에 쥐고 있던 시가에 불을 붙여 입에 문 사대희가, 연기를 길게 뿜어낸 뒤 입을 열었다.
“조석한이한테 그렇게까지 해줘야 할 필요가 있었나?”
“허수아비는, 치졸하고 아둔할수록 이용하기 편한 것 아니겠습니까?”
정대수는 사대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곤, 보고해야 할 마지막 안건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실은 도련님의 이야기입니다만….”
정대수의 입에서 도련님이라는 말이 나오자, 사대희는 들고 있던 시가를 재떨이에 비벼껐다.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해.”
“예?”
“놈이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하라고. 광대 놈에게 제대로 한 번 혼쭐이 한번 났더군. 고놈 성격에 그렇게 당하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이미 알고 계셨다.
정대수는 자신의 등허리에서 땀이 주륵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보고하지 않았던 사항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은,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서도 보고를 받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는, 자신의 자리쯤은 언제든 대체 당할 수 있다는 경고에 가깝다.
정대수는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네. 알겠습니다.”
사대희 회장이 저 정도까지 이야기해 준다는 것은, 허락 그 이상으로 받아들여야 옳다.
사하준이 무슨 일을 하든 제대로 보조해서 완벽하게 처리하라는 의미다.
정대수는 사하준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빌런 교도소로 향했다.
* * *
병원.
사실 나는, 원래 세계에서 살 때부터 병원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는 병원이 두려웠다.
내가 지켜주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내 실수로 빌런이 탄생하기도 했던 공간이었으니까.
하지만, 나의 별을 발견하고, 이모에게서도 히어로 활동을 인정받게 된 지금만큼은, 병원을 예전처럼 두려워하진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범죄로 인해 다친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내 온 힘을 다해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마스터. 한 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봐도 되나요?”]
응? 뭐?
[“방금 이전에 살던 세계에서도 병원을 싫어했다고 하셨잖아요.”]
응 그랬지.
[“원래 세계에선 평범한 인생을 살고 계셨었는데…. 왜 병원을 무서워하신 거예요?”]
주사가 무섭거든.
[“…….”]
아 왜? 주사 좀 무서워할 수도 있지. 네 말대로 거기선 나 히어로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거든?
[“그러게요. 그런 사람이 용케도 지금까지 히어로 활동을 하셨네요.”]
“흐아아암!”
병원에 입원한 지 이제 이주일 가까이 돼가는 시점.
설지나는 어제부로 퇴원을 해버렸고, 이모도 며칠 전부터 다시 회사로 출근하게 되신 탓에 병실에 남은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악! 심심해!”
부러진 팔다리가 나은지는 조금 됐지만, 나는 아직도 병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네추럴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굉장히 수상하게 보일 테니까.
하… 다프네에서 치료받았으면 진작 털고 일어났을 텐데….
【“네가 나약하게 기절해버린 탓이다. 어쩌겠나?”】
그래… 어쩌겠나…. 아직도 나약한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인 걸…. 아직도 나는 갈 길이 멀구나.
그런 상황인지라 체육관에도 나가지 못하고, 히어로 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지 일주일이 넘은 상황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바쁘게 돌아다니던 내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병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휴식이 아니라, 실상 고문에 가까웠다.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시계를 보았다.
슬슬 학교 끝나고 친구들 모두 하교하겠네….
진짜 심심한데 오늘은 아무도 안 놀러 오려나….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푹 내쉬던 바로 그때.
똑똑.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넵. 들어오세요.”
“강림아… 몸은 좀 괜찮아?”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소연이와-
“심심하다고 소리 지를 정도면 거의 다 나았겠네.”
강수아였다.
“어… 밖에까지 들렸어?”
“응 다 들려.”
아까부터 계속 소리 지르고 있었는데… 진짜 다 들렸겠네.
조금 창피하구만.
그나저나 오늘은 익숙한 얼굴이 안보이네.
“오늘은 둘이서만 온 거야?”
내가 넌지시 묻자,
“아 유진이 화장실 들렀다 온대.”
그렇게 대답해주는 소연.
내가 묻긴 했는데, 굳이 물을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
저 뒤에서 입술에 집게손가락을 댄 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도유진이 보였으니까.
최근 소연이랑 친해지더니, 소연이를 놀라게 할 생각인 듯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조용히 소연이의 등 뒤를 향해 살금살금 걸어오기 시작하는 도유진.
마침 나도 심심했겠다, 장난에 동참할 생각으로 나는 입을 열었다.
“요즘 학교에는 무슨 일없어?”
“뭐… 학교는 항상 똑같지 뭐…. 아 그래. 강림아. 우리 단풍 구경하러 가자. 바깥에 단풍이 예쁘게 졌더라.”
하긴, 병원 창문 너머로만 봐도 하늘이 높아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벌써 날짜가 그렇게 됐나… 시간 참 빠르구만.
뭔가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는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서 그런지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을 때가 많았는데,
또 막상 되돌아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 사실 봄에 꽃구경 가자고 했던 거, 우리 결국 못 가지 않았었나? 나 나으면 단풍 구경은 꼭 하러 가자.”
“아 정말? 이번엔 진짜 약속이다?”
내 말에 밝게 웃으며 즐거워하는 소연.
그리고, 그런 소연의 등 뒤에 검은 기운을 풀풀 풍기며 천천히 다가오는 도유진.
“응. 그래. 이번엔 꼭 가자.”
내가 소연이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있던 바로 그때.
소연의 등 뒤를 향해 걸어오던 도유진이, 갑자기 타깃을 바꿔 수아의 등 뒤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라? 그건 좀 위험한데.
내가 잠깐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도유진은 결국 수아의 등 뒤에 서서 수아의 눈을 가리고 말았다.
앗. 그건 안 되는데….
“야 도유진!”
깜짝 놀란 내가 몸을 일으켜 도유진을 말리려고 했지만, 아직도 다리에 묶여 있는 깁스 덕분에 내 시도는 헛수고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 누구~~게.”
수아가 자신의 눈을 가린 도유진의 손을 잡더니, 자연스럽게 앞으로 끌어당긴다.
“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끌려 나오는 도유진.
콰당!
“어어?”
순식간에 호신술을 사용해 도유진을 제압한 강수아. 그리고 그런 수아를 보며 입을 딱 벌리고 어벙한 소리를 내는 한소연… 그리고….
“아… 아야야….”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바닥에 내팽겨쳐진 도유진.
“미… 미안… 미안해….”
자신이 저지른 일을 놀란 표정으로 보고 있던 강수아가 병실 밖으로 뛰쳐나간다.
나는 그런 강수아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유진, 사고 쳤구만.
* * *
보통 일반적으로 코 위쪽을 가리는 경우가 많은 다른 히어로들의 복장에 비해 퀘이사의 가면은 코 밑, 일반적으로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마스크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당연하지만 정체를 가리는 데에는 눈과 코를 가리는 마스크를 쓰는 편이 훨씬 더 좋다.
그런데도, 퀘이사가 코 밑을 가리는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은, 강수아의 개인적인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도유진의 장난은 그런 강수아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전화… 안 받아.”
“…수아 괜찮을까? 나 수아 저런 모습 처음 봐.”
“야! 당하긴 내가 당했는데 왜 수아를 더 걱정하는 거야?”
“별로 안 다쳤잖아 너. 그러니까 왜 그런 장난을 치고 그래.”
“한소연 너무해애.”
다행히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면서 넘어갔는데도, 도유진은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수아도 놀라서 손을 쓴 것이지 다치게 할 의도는 없었던 모양이다.
“하긴… 강수아가 그 정도 장난에 그렇게 반응할 줄은 나도 모르긴 했어. 그렇게까지 할 줄 알았으면, 나도 그런 짓은 안 했을 텐데….”
푹, 한숨을 내쉬는 도유진.
“강림아. 잠깐 수아 좀 찾아보고 올게.”
소연이가 나를 보고 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 무슨 일인지 몰라도, 잘 풀어서 데리고 와. 도유진, 너도 꼭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다 너 때문이니까.”
“아니… 그래도 강수아한테 얻어맞은 맞은 사람은 나거든? 너희들 너무해!”
“알겠어 알겠어. 일단 가자 유진아.”
소연이의 손에 질질 끌려 나가는 도유진.
도유진 성격 많이 죽긴 했네. 소연이랑 어울려 지내서 그런가?
“다음에 또 놀러 올게. 강림아~”
쾅.
병실의 문이 닫히고, 소란스러웠던 병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나는 병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아까 보았던, 강수아의 표정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바로 강수아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던 나는 볼 수 있었다.
강수아가 얼마나 놀라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는지를.
잠시 멍하니 그 얼굴을 떠올려보던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내 침대 옆에 세워져 있던 목발을 집어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면 모를까, 원작 만화를 본 나는 수아의 사정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와 강수아는 같은 학교의 같은 반 친구다.
그런 친구의 속사정을 알면서도 가만히 누워 기다리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목발을 짚으며 복도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