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58화 (158/236)

158화

강수아(2)

“이 주변에는 없네….”

“그러게.”

한참을 병원 주변을 찾아다니던 도유진과 한소연은 결국 수아를 찾지 못한 채 벤치에 주저앉았다.

벤치에 앉아 다시 한번 수아에게 전화를 걸어보던 도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안 받아.”

“으으음… 지금 수아가 가 있을 만한 곳이 대체 어디일까?”

“역시… 그냥 집에 간 거 아닐까?”

집이라….

소연은 도유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도 점점 해가 저물어 가는 것이, 이 시간에 미성년자가 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해봐야 집 정도가 전부일 테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집에 간 거 아닐까?”

“한소연. 너 혹시, 강수아 집이 어딘지 알아?”

도유진의 말에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소연이 이번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니,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너도?”

아까와는 다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연.

“생각해보니 지금껏 집에 관한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소연도 유진도 수아가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는 사실만 넌지시 들었을 뿐, 집이 어디인지, 평소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었다.

그건, 양친과 함께 살고 있지 않다는 수아를 배려하기 위함인 것도 있었다.

하지만, 수아를 가장 친한 친구로 생각하는 소연은, 못내 그 사실이 미안했다.

소연은 아까 보았던 수아의 표정을 떠올렸다.

깜짝 놀란 듯한, 또 한편으로는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아의 모습은, 평소의 당당하고 자신감 있던 수아의 모습과는 달랐다.

자신의 외로움, 자신의 사정,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서 수아에게 말하지 않았어도 수아는 항상 자신의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수아에게 기대고만 있었을 뿐, 수아가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인상을 찌푸린 채 고심하는 소연의 말에, 도유진이 무릎을 탁 치며 일어났다.

“한 가지, 한 가지 방법이 있어.”

“어? 뭐? 뭔데?”

“지난번에 여행 갈 때, 소희 이모가 수아 할머니 전화번호를 받아두셨었거든. 소희 이모한테 물어보면 수아 할머니하고 연락할 수 있을 거야.”

유진의 말에, 소연은 놀란 표정으로 유진의 손을 잡았다.

“어… 우리가 진짜 그렇게까지 해도 될까? 수아가 말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소연의 약한 말에, 유진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소연의 손을 확 잡아 끌었다.

“야. 친구라는 게 뭔데?”

“앗… 응?”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우리가 멋대로 한 것 때문에 수아가 화가 나면, 그냥 진심을 다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돼. 그게 친구야.”

소연은 유진의 말이 억지라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도 친구들에게 아직 말하지 못한 아픔들이 남아 있었으니까.

만약 자신이 말하지 않은 부분들을 친구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들춰내려고 하면 분명 자신은 더 큰 상처를 받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래. 한번 가보자.”

하지만, 억지로 들춰낸 자신의 과거를 보고 자신의 친구들이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자신도 친구들을 용서할 터였다.

그게 친구니까.

그렇기 때문에 유진의 말대로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수아는 분명 자신들을 용서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연은 도유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    *    *

강수아는 현재, 병원의 맞은편 건물 옥상 위에 앉아 있었다.

소연도, 유진도 수아가 건물의 옥상에 숨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고, 그래서 수아는 건물의 옥상에 숨은 채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킬 수 있었다.

사실 별 것도 아닌 실수, 아니 사고에 가까웠다.

유진에게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사소한 장난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수아는 그냥 그런 유진의 장난에 놀라 과민반응 했을 뿐이다.

하지만 강수아는 그렇게 생각 할 수 없었다.

자신은, 강수아이면서 동시에 히어로 ‘퀘이사’였으니까.

‘인간 강수아’는 그런 장난에 놀랄 수 있었다.

하지만 ‘히어로 퀘이사’는 그런 장난에 놀라선 안 됐다.

‘인간 강수아’는 자신을 놀래킨 친구에게 호신술을 사용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히어로 퀘이사’는 자신을 놀래킨 친구를 다치게 해선 안됐다.

‘인간 강수아’는 자신을 괴롭히는 트라우마를 잊지 못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히어로 퀘이사’, ‘히어로 퀘이사’는 자신을 괴롭히는 트라우마를, 지금은 잊었어야 했다.

몸도 마음도, 꽤 자랐다고 자부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아직도, 그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은 강수아에게 있어 충격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그래서 도망쳤다.

친구들의 앞에서 무너진 자신의 마음을 숨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도 수행이 부족한 셈이다.

멍하니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던 강수아가 묶고 있던 머리를 풀었다.

스르륵.

강수아의 검은 머리칼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큰 실수를 저지른 만큼,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했다.

수아는 다크 카이저가 만들어준, 다크 호출기의 버튼을 눌렀다.

다크 호출기의 인터페이스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 촤르륵 펼쳐졌다.

*    *    *

강림의 이모, 이소희에게 전화를 걸어 알아낸 수아의 동네는, 생각보다 후미진 곳에 있는 가난한 달동네였다.

소연과 유진에게 있어서 수아의 동네는, 오래된 티비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가상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마치 이곳만 시대가 흐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동네.

퀴퀴한 냄새가 소연과 유진의 코를 찔렀다.

‘수아는 이런 곳에서 살고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소연과 유진은 감히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런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수아에게 실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수아의 집은, 이 달동네의 굽이친 골목의 가장 높은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여기네….”

꿀꺽.

침을 삼키며 소연은 유진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평소에는 겁날 거 없어 보이던 유진도 오늘은 얼굴에 긴장감이 맴도는 것이 느껴졌다.

잠깐 도어벨을 찾아 눈을 굴리던 소연은 그냥 칠이 다 벗겨진 파란 대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퉁퉁.

“저… 계세요?”

끼이이익….

소연이 두어 번 두드린 파란 대문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렸다.

잠겨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도 못 들었나?

소연은 이번에는 조금 더 큰소리를 내기 위해 힘을 주어 문을 두드렸다.

퉁! 퉁!

“저… 계세요?”

안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냥 들어가 보자.”

소연의 손을 잡은 유진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작은 마당을 지나 나온 집의 작은 거실에는, 할머니 한 분이 마늘을 까고 계셨다.

소연과 유진이 들어온 것도 모르는 듯, 마늘을 까며 티비를 보고 계시는 할머니.

“저기요 할머니?”

유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계속해서 티비를 보고 계시는 할머니.

“유진아. 할머니 귀가 안좋으신가봐.”

소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유진이 이번엔 목소리를 키워 할머니를 부른다.

“저기요! 할머니!”

“엉? 아이고매. 아직 할매 귀 안 먹었어. 조용 조용히 말혀! 근데… 너희는 누구냐?”

*    *    *

부엌, 작은 거실, 작은 방 두 개, 바깥에 있는 욕실과 화장실.

2000년대가 넘어서야 태어난 소연과 유진에게 있어서 이런 집은 살면서 처음 보는 곳에 가까웠다.

바깥에 있는 화장실과 욕실이라니. 수아는 이런 곳에서 매일 같이 이런 곳에서 생활하며 학교를 다녔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소연과 유진의 앞에 작은 접이식 식탁이 하나 펼쳐진다.

작은 접이식 식탁 위에 올라오는 두 잔의 컵.

소연이 컵 안의 음료를 살짝 홀짝여보니, 안에 들어 있던 것은 식혜였다.

“내가 들었는디 깜빡혔네. 수아 친구들이 여까지 찾아온 건 처음이라 줄 게 이것밖에 없구먼.”

“아니에요 할머니. 저 식혜 좋아해요.”

“그래 그래… 그런데 수아는 어디에 두고 너희끼리 왔는고?”

역시 수아는 아직 집에 안 왔구나.

유진은 슬쩍 소연의 얼굴을 본다.

소연은 유진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저… 그게….”

소연과 눈을 마주친 유진이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제가 놀라게 한 모양이더라구요. 일찍 사과하려고 했는데 전화도 안 받고 그래서 조금 걱정되서요.”

도유진의 말을 모두 들은 할머니가 잠시 테이블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들어올린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먼….”

“저희는 그래서 집에 왔을 거라 생각하고 왔는데… 아직도 집에 안 들어온거면 조금 걱정이 되네요.”

강수아의 할머니는 소연의 걱정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걱정하지 말거라. 시간 되면 집에 들어올 테니까. 수아는 내가 잘 타이를 테니 너희는 더 늦기 전에 집에 가는 게 좋겠구나.”

“아무리 그래도 조금 걱정되서 그러는데… 수아가 들어오는 것까지 보고 가면 안될까요?”

‘내 손녀에게 어느새 이런 친구들이 생겼구나.’

이 아이들이라면 자신의 손녀의 마음을 열어줄 수 있지 않을까?

소연의 말에 잠시 소연과 유진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살펴보던 수아의 할머니, 이정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조금 더 있다 가거라.”

작은 앉은뱅이 식탁 위에 수아의 할머니, 정례가 아까까지 까고 있던 마늘을 턱 올린다.

“대신, 너희는 이 할머니 좀 도와줘야겠다.”

정례는 수아가 겪은 일을 이 아이들에게 말해주기로 결심했다.

*    *    *

“그래. 내 이럴 줄 알았지.”

다크 호출기에 찍히는 퀘이사의 이름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강수아라면, 오늘 같은 날일수록 히어로로서 더 열심히 활동하리라는 사실이 뻔했으니까.

순전히 내 실수로 인해 모든 것을 망쳐버린 나와는 다르게 강수아가 겪은 일은 전혀 수아의 잘못이 아니다.

그런 방향이 틀렸다곤 말할 수 없지만, 수아의 나이는 아직 열일곱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은 더 세상의 밝은 면들을 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나이인 것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내 팔다리에 붙어있는 깁스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뼈가 다 붙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나.

제인… 다크 카이저 슈트 준비해줘.

[“네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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