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강수아(3)
천산시 번화가의 화재현장.
“꺄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화르르륵!
건물에 불이 붙기 시작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았지만, 불길은 순식간에 건물 전체에 들러붙었다.
번화가의 식당가에 위치한 건물, 기름을 많이 쓰는 중식당에서 만들어진 불이 건물을 타고 순식간에 불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 사람 있어요!”
8층 건물의 5층, 아직 채 탈출하지 못한 사람이 창밖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쏴아아아!
도착해있던 소방차에서 물줄기가 흩뿌려진다.
계속해서 소화작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불길은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
평범한 소방대원이 구조를 위해 진입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불길이 더 잡혀야만 가능하다.
지금 상황에서 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소방대원을 투입했다간, 애꿎은 소방대원마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그때.
씨이이잉-
“어… 저… 저기! 저기 봐!”
“저게 뭐지?”
건물을 향해 순식간에 다가오는, 한줄기 붉은 섬광.
콰앙!
쏜살같이 달려온 그 빛은 순식간에 건물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한줄기 섬광은, 이윽고 기절한 사람을 안은 채 바깥으로 빠져나온다.
“퀘… 퀘이사다! 퀘이사!”
“아스트로 스타즈! 히어로가 왔어!”
“세상에 퀘이사가 오다니… 하느님… 감사합니다!”
퀘이사의 모습을 보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퀘이사는 품 안에 안고 있던 사람을 구조대원에게 건넨 뒤 자세를 잡았다.
“한다! 한다!”
“모두들 준비해!”
기대하는 눈빛으로 퀘이사를 바라보는 시민들.
오늘은 조금 부담스럽네.
퀘이사는 그 눈빛에 쓰게 웃으며, 자신의 포즈를 취했다.
“모두들 안녕! 여러분의 하루를 지키는 히어로! 퀘이사가 여기 등장!”
“여기 등장!”
“와아아아! 진짜 퀘이사다!”
이런 히어로들의 컨셉은 규약을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함도 있지만, 히어로들이 나타났을 때 조금 더 안심할 수 있게 만든다는 장점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히어로들이 당장 시간을 내 시그니처 포즈와 대사를 외칠 이유가 충분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에 늦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쿠… 쿨럭… 쿨럭… 퀘… 퀘이사님! 아직 안에…! 안에 사람이 있어요! 아까 전에 위층에서 사람 소리를 들었어요!”
방금 퀘이사가 구해 나온 시민이 기침을 하면서도 퀘이사에게 크게 외친다.
평소 같았으면….
‘좋아! 걱정하지마! 퀘이사에게 맡겨!’
같은 대사를 외치며 팬서비스를 더 해주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저 사람을 구해온 것이 5층이었다. 그렇다면 6층이나 7층에 사람이 아직 남아있을 거라는 의미.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가장 베스트는, 화재현장의 화염을 흡수해 불길을 줄여 구조대원들도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 이 곳에 있는 불길은 퀘이사의 화염 흡수 능력으로도 잘 흡수되지 않았다.
바깥의 소방대원들이 불을 끄지 못할 만도 했다.
자신도 흡수하지 못하는 불길이라면, 분명 엄청난 온도의 화염이 사용되고 있을 걸 테니까.
‘이상하다… 보통 이 정도까지 뜨거워지진 않는데… 기름이 아직 많이 있는 불길이라 그런가?’
이런 상황에선 어쩔 수 없다. 자신의 몸 하나를 믿고 안으로 치고 들어가는 수밖에.
퀘이사는 머리칼의 화염을 흩뿌리며 재차 화재 현장의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화르르륵!
화재 현장은 퀘이사에게 가장 쉬운 구조 현장 중 하나였다.
기본적으로 화염에 대한 어느 정도의 내성이 존재하는 퀘이사에게 화재 현장의 불길은 큰 피해를 주지 못했으니까.
오히려, 충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역으로 퀘이사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수아는 화재현장에 뛰어드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강수아에게 화재현장은, 옛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현장이기도 했으니까.
화재가 일어난 건물 안을 훑어 사람을 찾아다니며, 강수아는 지울 수 없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 * *
히어로 네임 파이어 스타와 히어로 네임 블랙 홀.
그들은 천산시 히어로의 암흑기라 불리우던 때에 천산시를 지키던 빛과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아직도 인터넷상에서 파이어스타와 블랙홀의 이야기를 검색하면 그들이 해냈던 일들에 대한 기사와 이야기를, 수두룩하게 찾아낼 수 있을 정도.
천산시에서 몇 안 되는 젊은 히어로였던 그들은 금세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의 결실로 나온 것이, 바로 퀘이사, 강수아였다.
세 식구는 꽤 오랜 시간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히어로에게 영원한 비밀은 없었다.
블랙홀과 파이어스타 사이에서 애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결국 천산시의 빌런들의 귀에 들어가고야 말았고, 강수아는 아홉 살이 되던 해, 하교하던 길에 납치를 당하고야 만다.
* * *
화르륵-
그리고 화재가 일어난 건물들은 강수아에게 그 때의 그 기억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강수아가 납치당해 눈을 가린 채 잡혀 있던 그곳에도 이렇게 큰불이 났었으니까.
반대로 생각하자면, 강수아는 지금 이 건물 안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수아는 이 불길을 두려워하면서도 건물 안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쾅!
강수아의 머리 위쪽에서 타버린 건물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떨어져 내린 건물 조각은 그대로 바닥을 무너트린다.
“후아….”
화재로 무너지고 있는 건물 안에선 빠르게 움직이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방금 같은 경우가 그렇다. 조금만 더 빨리 들어갔다면 저 건물조각이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정신계열 슈페리어라면 건물의 구조를 파악해서 어디가 어떻게 무너질 것인지를 알아내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었겠지만, 강수아는 신체/자연 계열 슈페리어였다.
작게나마 홀로 불꽃을 피워낼 수 있는 강수아는 정신계열의 능력을 함께 지닐 수가 없었다.
당장 화재가 일어난 것을 알고 있으니 이곳으로 향하는 히어로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이 올 때까진 시간이 부족할 듯싶었다.
퀘이사는 무너지는 건물을 더 이상 자극하지 않기 위해 허공에서 내려왔다.
화염을 뿜어내야만 날아다닐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 오히려 불길을 잡기 힘들게 할지도 몰랐으니까.
“계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살려… 주… 세요….”
크게 소리 지른 퀘이사에게 작은 목소리의 대답이 들려왔다.
일반인이라면 듣지 못했을 만큼 작은 소리였지만, 신체계열 슈페리어인 퀘이사는 가까스로 그 소리를 들어낼 수가 있었다.
퀘이사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향했다.
“살려… 주세요…. 여… 기… 사람 있… 어요….”
가느다랗게 들려오는 사람 목소리.
화르륵!
쿵!
불길이 거세어지는 것을 느끼며 퀘이사는 무너진 건물의 바닥을 건너뛰며 그곳으로 향했다.
* * *
납치당한 수아는 팔다리가 묶이고, 눈까지 가린 채 작은 캐비넷 안에 들어가 있던 상태였다.
히어로의 자식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수아가 끝까지 반항을 해서 얻은 결과였다.
강수아가 캐비넷 안에 있는 지도 모르고 전투를 벌이던 강수아의 부모님은 빌런을 쓰러트린 뒤 빌런이 불을 지른 공장 단지를 쥐잡듯이 뒤졌지만 강수아를 일찍 발견하지 못했다.
강수아의 아버지, 블랙홀이 강수아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차렸을 땐 이미 꽤 늦은 뒤였다.
무너지는 건물 안에서 수아가 들어있는 캐비넷을 꼭 안은 채, 블랙홀은 자신의 충격흡수 능력을 최대한을 다해 사용했고.
아버지의 능력 때문에 강수아는 가까스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건물이 무너지는 충격을 모두 흡수했던 블랙홀은 거기서 목숨을 다하고 말았다.
* * *
‘…왔다!’
바깥을 향해 온 신경을 사용하고 있던 메두사는 알 수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이 곳으로 오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으며 메두사는 다시 한번 구조가 필요한 시민을 연기했다.
“살… 려주… 세… 사람… 있… 어요….”
이 건물의 화재의 원인은, 사실 빌런 메두사였다.
메두사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천산시에 더 많은 피와 혼란이 일어나야만 한다.
하지만, 이 작은 도시에는 지금 능력 있는 히어로가 너무 많았다.
수많은 히어로들 때문에 메두사가 천산시의 혼란을 만들기 위해 어떠한 일을 꾸미더라도 계속해서 히어로에게 방해받는 상황이 몇 번이고 일어나게 된 것이다.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내고 있던 빌런들과의 전쟁이 아스트로 스타즈에 의해 무위로 돌아가고 난 뒤, 메두사는 발상의 전환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루기 쉽다는 이유로 빌런들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조금 어렵더라도 히어로들을 이용해보자고.
그래서 메두사는 화재가 일어난 건물을 만들었다. 건물 안에 숨어서 피해자를 연기하고 있다가 구출하러 온 히어로를 습격해 정신지배할 생각이었다.
메두사는 가만히 웅크린 채 히어로가 자신을 구해주기 위해 안으로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여기 있는 거 맞아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메두사에게도 꽤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건 예상 못했는데?’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지금 바깥에는 히어로 퀘이사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퀘이사는 자신이 가장 증오하는 자신의 옛 친구, 밀키웨이가 가장 아끼는 히어로 중 하나였다.
‘월척이군. 생각지도 않은 물고기가 걸려들었어.’
마침,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정신 파동도 꽤 불안정하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일수록 메두사의 능력이 통할 확률이 높아진다.
메두사는 입술을 핥으며 완드를 꺼내들었다.
* * *
“뭐야? 무슨 불꽃 색이 저래?”
붉다 못해 거의 노랗게 보이는 화재현장의 불꽃 색을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퀘이사가 이곳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따라오는 것까진 좋았는데,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내가 처리하기 꽤 곤란한 사건이었다.
다크 카이저의 방염 능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저 정도의 화염 안으로 들어가기란 무리다.
몸이 완벽한 상황이라도 모자랄 판국에 완전하지 않은 몸상태로 저 정도의 화재현장이라니….
퀘이사는 기본적으로 화염을 다루는 히어로, 다크 카이저 같은 히어로보다 훨씬 화염에 대한 내성이 높을 터.
그래서 주변 상황만 정리하며 조금 상황을 지켜보려고 했지만….
“…퀘이사. 저 안으로 들어간지 너무 오래되지 않았어?”
상태도 안 좋은데 무리했다가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모양이었다.
수군대는 주변 시민들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심 혀를 찼다.
[“마스터. 그래도 퀘이사인데… 정말 무슨 일이 생겼을까요?”]
아무 일이 없더라도, 들어가서 확인해서 나쁠 건 없잖아.
제인. 파이어 파이터 모드 켜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