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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61화 (161/236)

161화

퀘이사, 그리고 강수아

“아이! 아이는 대체 어디에 숨겨 놓은 거냐!”

“아하하하! 파이어 스타가 이렇게 허둥대는 꼴이라니! 그 아이가 네 딸이라는 소문이 사실이었던 모양이구나!”

화르륵!

플레임 스캐빈저.

엄마를 끝없이 괴롭히고 있다던 빌런의 목소리가 건물 바깥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눈이 가려진 채, 좁은 공간에 갇혀 있던 강수아에겐 바깥의 일들이 두렵게만 느껴졌다.

뜨거워….

플레임 스캐빈저도, 파이어 스타도, 모두 불을 위주로 사용하는 초능력자.

파이어 스타는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해 불이 붙지 않게 노력했겠지만, 빌런인 플레임 스캐빈저는 달랐다.

파이어 스타에 의해 친우를 모두 잃은 플레임 스캐빈저는 이 자리에서 살아나갈 생각이 없었다.

그랬기에 주변을 모두 태워버릴 심산으로 가진 바 능력을 모두 활용했다.

플레임 스캐빈저가 뿜어내는 불길은 순식간에 강수아가 숨어있던 건물까지 옮겨붙었다.

“비켜! 내 앞을 가로막지마!”

“그럴 순 없지. 내가 꿈에서도 바라던 네 겁먹은 표정을 지금 보고 있는데.”

불길은 서서히 강수아가 숨어있는 캐비넷 안까지 들이 닥쳐오고 있었다.

아빠의 목소리는 바깥에서 들려오지 않는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엄마와 다르게 아빠는 항상 바이크를 타고 움직이셨다.

지금도 아마 최선을 다해 이쪽으로 달려오시는 중일 터였다.

화르륵 화륵!

하지만, 그때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피부로 느껴지는 열기는 마치, 캐비닛의 바로 바깥까지 치달은 듯했다.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상황이 어린 강수아에게 더 불길하고 무시무시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우륵… 텅… 퉁….

수아가 숨어있는 창고 방이 붕괴하려는 듯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바깥에서 누군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노 때문인지, 혹은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어린 수아는 그저, 제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길 비는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입에 물린 재갈 덕분인지, 화재 때문에 일어난 연기 때문인지 점점 숨을 쉬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

점점 가물가물해지는 수아의 귓가로 여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쿵….

쿵….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동시에 세워져 있던 자신의 캐비넷도 기울어져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헐겁게 묶여있던 안대가 풀리며 캐비넷의 틈으로 바깥이 보인다.

건물조각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였던 수아도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물해지는 정신을 막 놓으려던 바로 그때.

쿵!

검은 슈트를 입은 누군가가, 자신이 들어있던 캐비넷을 꼭 안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는 사이에서도, 강수아는 그 슈트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빠….

쿵 쿵쿵! 투두두둥!

비처럼 쏟아지는 건물이, 아빠의 몸 위로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어린 강수아는 눈을 감았다.

*    *    *

쿵 쿵쿵! 투두두둥! 쿵!

그때와 똑같은,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강수아는 눈을 떴다.

검은 슈트를 입은 사람이 자신의 위에 버티고 서서 자신을 막아주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검은 슈트를 입은 사람, 아버지. 그리운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 빠?”

쿵 쿠쿵! 투두두둥! 쿵!

순간 강수아는 자신이 아직도 어린 시절 겪었던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신이… 큭… 좀… 윽… 드나?”

그 검은 슈트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자신의 귓가에 울림과 동시에 보고 있던 것들이 모두 바뀌었다.

창고처럼 느껴졌던 곳이 사고 현장으로, 아버지 블랙홀처럼 느껴졌던 검은 슈트의 사내가 다크 카이저로.

“…다크 카이저?”

“아버지가 아니라서 미안하군.”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은 퀘이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히어로 슈트를 입은 사람이, 다른 히어로에게 구출을 받고 있는 상황.

사고 상황에서 누군가를 구출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도 모자랄 상황에 자신은 역으로 히어로에게 구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수치.

방금까지 기억하고 있던, 돌아가신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기도 두려운 수치였다.

다크 카이저의 어깨 위로, 무거운 건물 파편들이 층층히 쌓여있는 것이 보였다.

쌓여있는 건물 파편들의 크기가 상당했다. 이 정도 무게는 다크 카이저 혼자의 힘으로 밀어내기엔 무리일 터였다.

상황을 깨달은 퀘이사는 몸을 움직이려고 해보았지만….

“윽… 큭…”

퀘이사는 자신의 팔다리가 건물의 조각에 깔려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미안하게 되었군. 어떻게든 막아주고 싶었는데….”

퀘이사가 느끼기에, 지금의 상황은 온전히 자신의 실수에 가까웠다.

하지만 다크 카이저는 자신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 퀘이사는 부끄러움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

“천천히 움직일 수 있겠나?”

“끄응… 으윽….”

깔려있는 위치가 너무 비좁고, 자세도 좋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밀고 일어날 수 있을 정도의 무게도 천근처럼 느껴졌다.

퀘이사는 다크 카이저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리인가… 어쩔 수 없지.”

사과의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도저히 입을 열 수 없었다.

너무 가깝다.

다크 카이저의 체온은 물론이고,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땀냄새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자신을 구해준 사람 앞에서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버… 버틸 수 있겠어? 조금 더 버티면 다른 히어로들이 도우러 와줄지도….”

“끄으으윽… 그건… 안돼….”

“…왜?”

“아직… 구출하지 못한 시민이 건물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다크 카이저의 표정이 바뀐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을 꾹 다문다.

“뒤를 부탁하지.”

“뭐? 너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

만류하려던 퀘이사는 다크 카이저의 결연한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경험상, 저런 표정을 짓는 히어로는 그 어떤 말로도 막을 수 없었다.

“끄윽… 으으윽….”

보고 있는 눈앞에서 다크 카이저의 근육이 꿈틀대는 것이 느껴진다.

꽈아악-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인지, 근육이 극한까지 조여들어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천천히, 다크 카이저의 팔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스륵… 트르륵….

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등을 누르고 있는 파편들을 들쳐올린다.

파들파들 떨리는 손이, 얼마나 많은 무게를 버티고 있는지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아직도 파편을 밀어내기엔 자세가 부족하다.

다크 카이저가 그대로 다리의 힘을 디뎌 올린다.

“끄으으으으으.”

한발.

꽈아아악-

다시 한번 들려오는, 근육이 조여지는 소리.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다크 카이저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건물 파편을 서서히 들어올린다.

그런 다크 카이저를 멍하니 보고 있던 퀘이사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젠 자신도 힘을 쓸 수 있을 만큼 공간이 생겼다.

퀘이사도 자신의 팔다리를 잡고 있던 파편들을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쿵!

파편이 모두 치워짐과 동시에 퀘이사는 몸을 일으켜 쓰러지려는 다크 카이저를 받아들었다.

“뒤를… 부탁….”

희미하게 들려오는 다크 카이저의 목소리를 들으며, 퀘이사는 다크 카이저를 품에 꼭 안았다.

“고마워.”

*    *    *

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메두사는, 아쉬움에 혀를 쯧 찼다.

‘아쉽게 되었군.’

주문을 완성하기도 전에 다크 카이저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정신 지배의 힘이 두 개로 나눠지고 말았다.

둘 모두가 주문을 버티지 못했다면 주문의 힘이 흩어질 일이 없었겠지만, 다크 카이저는 자신의 주문을 어느 정도 이겨내고야 말았다.

꽤 괜찮은 수준의 정신력이었다.

하지만….

‘정신 지배는 실패했지만, 암시는 성공했어.’

아스트로 스타즈의 퀘이사, 그리고 현재 천산시에서 가장 유명한 히어로인 다크 카이저.

둘 모두에게 훗날, 정신지배로 발전할 수 있을 만한 씨앗을 하나씩 박아놓은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수확을 거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젠… 슬슬 자리를 떠야겠군.’

주문을 사용했으니 곧 자신의 스승이 이곳까지 들이닥칠 터였다.

퀘이사가 다크 카이저를 안고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것까지 본 메두사는 몸을 돌렸다.

*    *    *

“걱정하지 마. 팔다리가 부러지긴 했지만, 다행히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밀키웨이, 황서현이 한 말을 떠올리며 강수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온 힘을 다해 자신을 구해줬던 히어로였다.

그런 히어로의 몸에 큰 문제라도 생긴다면, 그때는 정말 다시는 퀘이사로서 활동을 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히어로로서 퀘이사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강수아는 그 다음 황서현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머리를 갸웃했다.

“그런데… 다리가 한 번 부러졌던 흔적이 있네… 이미 한번 다쳤었던 모양이야. 그런 몸으로도 건물 파편을 들어 올리다니….”

대단하다는 듯 혀를 내두르는 황서현의 말에, 강수아는 순간적으로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었다.

얼마 전, 교통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있던 자신의 친구, 나 강림.

자신이 알기론, 강림이가 사고를 당한 그 자리에 다크 카이저도 나타났었다.

그렇다면… 혹시…?

잠깐 그런 생각을 떠올렸던 강수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사고 당시 함께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이모도, 거기에 같은 체육관을 다니는 친구도.

그런 상황에서 히어로 슈트를 입고 활동하기란 쉽지 않다.

거기에 자신의 친구, 나 강림과 오글거리는 컨셉으로 밤거리를 누비는 다크 카이저의 괴리는 꽤 컸다.

강수아는 나강림의 그런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나강림을 생각하니, 또 오늘 있었던 일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도유진의 사소한 장난에, 과잉반응해 하마터면 도유진을 다치게 했던 것.

사정을 모르는 도유진은 많이 당황했을 터였다.

내일 가서 꼭 사과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수아는 칠이 다 벗겨진 집 대문을 열어젖혔다.

“할머니. 저 왔어요.”

소곤소곤.

분명 티비소리나 나야할 자신의 집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뭐지? 오늘 우리집에 올 만한 손님이 있었던가?

옆집 주씨 할머니실지도 모른다.

강수아는 손에 쥐고 있는 종이 봉투 안을 살폈다.

붕어빵… 세 개 사 와서 다행이네.

벌컥.

그런 생각을 하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강수아의 눈앞에, 자신의 집에 있어선 안 될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어어. 강수아 왔냐?”

“어… 수… 수아야… 안녕….”

툭.

강수아가 들고 있던 붕어빵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하얗게 변했던 강수아의 머릿속이 점점 분노로 가득차기 시작한다.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비밀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까발려진 기분이었다.

언젠가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었다.

“뭐야? 너희가 왜 여깄어?”

“어… 그게… 사과하고 싶어서….”

강수아의 입에서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장 나가.”

“어?”

“당장 우리집에서 나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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