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68화 (168/236)

168화

킬레이븐(6)

소년이 만들어둔, 능력의 약점을 깨닫는 순간 벨제뷔트는 피식 웃었다.

벨제뷔트는 지금까지, 소년이 지나치게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인이 이 세상의 운명을 이런 평범한 소년에게 건 이유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소년이 만들어둔 약점을 깨달은 바로 그 순간, 벨제뷔트는 소년이 평범하기만 한 소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만든 필살기도 약점을 만들어 두었다. 마치 자신의 능력을 누군가 사용하리라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때가 묻어도 지워지지 않는 순수한 면이 있는 소년이었다.

어찌 보면 나약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벨제뷔트는 그런 소년의 나약하고 바보같은 면이 좋았다.

아마 제인도 소년의 이런 순수한 면을 높게 평가하고 이 세상의 운명을 맡겼을 터였다.

악령이 벨제뷔트를 향해 들고 있던 창을 겨눴다. 또다시 던질 요량인 듯, 창을 들고 있는 팔이 뒤로 크게 젖혀진다.

악령이 벨제뷔트에게 겨누고 있는 저 무기는, 그 나약하고 바보 같은 소년의 아픔과도 같은 부분이었다.

압도적인 강함을 가진 히어로를 꿈꾸던 소년이, 무의식적으로 약점을 만들어둘 만큼.

소년의 정신 속에서 생활해본 벨제뷔트는 그 사실을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다.

다만, 소년이 만들어둔 다크 스피어의 약점을 찌르는 방법은, 꽤 수동적인 면이 있었다.

수동적인 상황에서만 작동하는 만큼, 파훼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한 번 들키고 나면 틈을 노리기 힘들어진다.

최선의 상황까지 아껴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SHEEEEEEEEK!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벨제뷔트를 향해 던져지는 다크 스피어.

슈우우욱-! 파아아앙!

날아오는 창을 몸을 던지다시피 하며 가까스로 피해내는 벨제뷔트.

벨제뷔트를 향해 던져졌던 창이 악령의 손에서 재차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손에서 던져진 다크 스피어는 원한다면 손에 다시 쥐어질 수도 있는 모양이다.

전투로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벨제뷔트는 그 부분에 대해 기억해두었다.

벨제뷔트가 던져진 다크 스피어를 피하는 동안, 신묘한 몸놀림으로 벨제뷔트의 앞까지 순식간에 다가오는 악령.

빠르다.

전생에 무인이었다더니,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벨제뷔트는 새롭게 얻은 몸을 비틀었다.

우득-

익숙하지 않은 신체구조인 탓인지 억지로 비틀려버린 관절에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SHEEEEEEEEEEEK!

벨제뷔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창.

억지로 비틀어 피한 탓에, 오히려 창을 피해낼 순 있었다.

비틀려있는 허리를 원래대로 되돌리며 다리를 휘두른다.

“아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그 모습을 보며 악령은 찔러 들어왔던 창대를 다시 회수하려 했지만.

퍼억-!

긴 창대를 결국 다 회수하지 못하고 얻어맞은 채 뒤로 물러나고야 말았다.

“손에 익은 검이었다면 더 편했을 것을… 아쉽구나.”

거리가 멀어지자, 벨제뷔트를 향해 다시 한번 창을 던질 자세를 취하는 악령.

창을 던지게 두어서는 안 된다. 아까 보았듯, 손아귀에서 던져진 창은 다시 손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근접전으로 유도해야만한다.

벨제뷔트는 악령이 창을 던지지 못하게 품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 정도 무기를 들고서도 도구 탓을 하는군.”

벨제뷔트의 도발에 악령이 발끈해 소리친다.

“물론, 너에게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아까운 신병이기도 하다.”

악령이 양손에 쥔 창을 벨제뷔트에게 찔러 들어온다.

단순하군.

오랫동안 사람을 만나지 못한 탓일까? 가벼운 도발만으로 놈이 빠르게 흥분하는 것이 느껴진다.

벨제뷔트가 노리던, 최선의 상황이 펼쳐졌다.

벨제뷔트의 손이, 앞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등 뒤로 향한다.

등 뒤로 뻗은 손으로 망토를 말아쥐고 몸 앞으로 끌어내린다.

흑염의 힘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다크카이저 특유의 에너지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지이이이잉-

벨제뷔트가 처음으로 만들어낸 다크 쉴드는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만들어진 다크 쉴드를 찔러 들어오는 창에 가져다 댄다.

퍼—엉!

작고 보잘 것 없는 다크 쉴드에 부딪힌 창이 순식간에 터져나간다.

“아닛?”

꿰뚫는 섬광 다크 스피어는.

절대 뚫리지 않는 방패 다크 쉴드를 뚫을 수 없다.

중학생 시절, 강림이 다크카이저의 최초의 무기이자 주력 기술로 설정해뒀었던 능력이었다.

그러니까, 다크 카이저의 시작과 함께한 최초의 능력인 셈이다.

그런 만큼 다크 스피어는 다크 카이저와 함께 강림의 상상 속에서 참 많은 인물들과 싸웠었다.

영화와 만화 속에 나오는 빌런들, 거대 로봇과 거대 괴물 같은 비현실적인 악당들부터-

현실에 존재하는 악당들- 예를 들면 사기꾼들, 연쇄살인마들, 부패 정치인들, 그리고… 강림의 부모님을 죽게 만든 트럭을 운전한 운전수까지.

그들은 강림의 상상 속에서 꽤 잔혹하게 죽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아픔을 채 다스리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아직 세상에 대한 원망만이 가득하던 시절.

이 세상은 불합리하다고, 불행해진 자신이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치기 어린 시절의 증거.

단지 상상이었을 뿐임에도 어린 나강림은 스스로의 상상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크 스피어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사이 벨제뷔트는 지금까지 모아놓고 있던 흑염을 최대한의 화력으로 놈을 향해 퍼부었다.

*    *    *

뜩- 뜩- 뜩-

고스트 카이저의 슈트를 입은 소년, 사하준은 모니터 화면을 보 손톱을 물어뜯었다.

하준의 뒤엔, 파란색 토끼 가면을 쓰고 있는 근육질의 남자가 팔짱을 낀 채 함께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금 네가 무슨 일을 계획하든, 아마 실패할거다.”

“괜히 헛소리하면서 초치지마. 당신 그러라고 데리고 나온 거 아니니까.”

사하준은 지금껏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라이트닝 썬더가 데빌 보이를 습격할 때부터, 그런 데빌 보이를 구출하러 온 다크 카이저, 그리고 다크 카이저 대신 나타난 헬 카이저와 라이트닝 썬더의 전투까지.

첫 번째 타겟으론 일부러 데빌 보이를 선택했다.

다크 카이저를 죽이기 위해선 헬 카이저와 다크 카이저가 무슨 사이인지를 알아야만 했으니까.

헬 카이저와 다크 카이저의 활동 시간은 겹치는 일이 드물다.

하준은 혹시 둘이 동일 인물일 가능성까지도 생각해두고 있었다.

그리고 하준의 생각이 맞았다는 듯, 습격당한 데빌 보이를 다크 카이저가 구출했고, 곧 이어 분노한 헬 카이저가 나타나 빌런들을 도발했다.

다크 카이저의 모습으로 분노하지 않은 것은 조금 아깝지만, 상관없었다.

두 히어로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충분히 악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각종 인터넷 플랫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하준에겐 쉬운 일이었다.

지켜보고 있는 전투 상황은 꽤 극적으로 달려나갔다.

헬 카이저는 눈에 띄게 분노하고 있었고, 라이트닝 썬더를 향해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손속도 꽤 잔혹했다.

지금까지 왜 참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

그런 압도적인 힘으로 헬 카이저는 순식간에 라이트닝 썬더를 제압한 채, 그 목에 손을 올렸다.

“그래! 죽여! 죽여버려! 어이 당신! 준비해! 이 다음이 당신의 차례니까.”

안 될 거라고 했어? 이거 봐. 되잖아!

그렇게 외치고 싶은 것을 참으며 하준은 킬킬 웃었다.

녹화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이대로 소스가 모인다면, 다크 카이저와 헬 카이저 모두를 최악의 상황까지 밀어넣을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분노했던 헬 카이저의 얼굴이 서서히 본래의 표정을 되찾는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바뀐 것처럼, 무슨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변화한 표정으로 손을 내린다.

“내가 말했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될 일 없다고.”

얄밉게 초치는 파란 토끼 가면을 무시한 채, 하준은 멍하니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뭐… 뭐지? 갑자기 왜? 아니야… 됐어. 이제 당신이 나가면 돼.”

하준은 자신의 뒤에 서 있던 파란 토끼 가면을 바라보았다.

과거 레드 래빗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적 있는 빌런이었다.

그리고 다크 카이저와 가장 악연으로 묵여있다고 할 수 있을만한 빌런이기도 했다.

그래. 라이트닝 썬더로는 부족했던거지. 레드래빗… 아니 블루래빗이 나간다면 분명 분노를 참을 수 없을거다.

“싫다.”

뭐?

블루 레빗에게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하준은 귀를 의심했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뭐래. 빨리 가. 안 그러면 폭탄 터트린다?”

하준도 바보는 아니다. 빌런들이 다른 사고를 치지 못하게 목에 폭탄 목걸이를 채운 채 바깥으로 내보냈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사고를 친다면 언제라도 처분해버릴 수 있게.

“싫다고 했다.”

“뭐? 왜 싫은데? 당신도 다크 카이저를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

“감옥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더군. 내가 싫어했던 건 다크 카이저가 아니었어. 나약했던 내가 싫었던 거지. 너의 말을 듣고 여기까지 따라왔던 건, 아직도 다크 카이저가 내가 겪었던 그대로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니 알겠어. 역시나 다크 카이저는 여전하군.”

“갑자기 이런 상황에서 뭐라고 하는 거야? 죽기 싫으면 내 말 들어. 폭탄 터트려버릴 테니까.”

곧 이어 하준을 향해 날아가는 얼음 광선.

자신에게 날아오는 광선을 본 하준이 깜짝 놀라 폭탄의 기폭버튼을 누르지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블루 래빗의 목에서 떨어져나가는 폭탄 목걸이.

하준은 속절없이 얼음광선을 얻어맞고 꽁꽁 얼어버리고 말았다.

“폭탄이 얼면 작동이 잘 안되기도 하더군. 다음에는 너도 알아두길 바란다.”

*    *    *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라이트닝 스파크의 목에서 손을 뗐다.

머릿속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죽일뻔했다는 사실만을 어렴풋이 깨달을 뿐이었다.

나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다크 스코프, 자신이 다크 카이저라는 것을 알아차린 한소연, 그리고 이젠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이모마저 자신이 히어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히어로 활동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만약, 자신의 적이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의 주변인들을 위협하고 고통스럽게 만든다면?

그렇다면 나강림 자신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 세계에서 만든,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무슨 선택을 해야만 하는가?

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그런 생각들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워져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라이트닝 스파크를 죽일뻔하고야 말았다.

천천히 라이트닝 스파크의 목에서 손을 떼고 몸을 일으킨다.

화르르르륵!

머릿속에서 울리는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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