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실종(1)
삑- 삑- 삑-
경한병원의 VIP병실.
경한그룹의 회장, 사대희의 아들인 사하준이 눈을 감은 채 누워있었다.
삑- 삑- 삑-
적막한 병실 안엔 기계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런 병실 안엔, 놀랍게도 경한타워 바깥으로 나오는 일이 없다는 사대희가 조용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정대수와 함께.
VIP 병실답게 병실 안의 온도는 쾌적한 편이었지만, 정대수의 이마에서는 땀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넌 내 지시대로 한 것밖에 없으니, 그렇게 앉아 있지 않아도 된다.”
“아닙니다. 이게 다 제대로 모시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자식놈 능력이 모자란 게 네 탓은 아니다. 이놈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던 건 나였으니까. 널 탓할 상황은 아니지.”
“송구합니다. 도련님을 공격했다는 범죄자는 현재 종적을 찾는 중입니다.”
“그래. 곱게 끝내서는 안 될 것이야.”
그러니까 범죄자들을 가져다 쓰는 건 조심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드렸건만….
회장님의 명령도 있었고, 사하준이 워낙 고집이 세기도 한 탓에 정대수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질 않았다.
결국 사고의 뒤처리를 정대수가 하고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하준이가 하려고 했던 일은 마무리 했으면 좋겠군.”
“…킬레이븐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준이가 하고 싶어 했던 일 아니냐? 아들놈이 하려고 했던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그만뒀으니, 애비가 조금 힘을 써 주는 수밖에.”
사대희는 조용히 앉아 하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자신보다 죽은 안사람을 더 많이 닮은 아이였다. 죽은 안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는 탓에 그렇게 키워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도 혈육이라고 후계자로 키울 요량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라고 했건만, 이렇게 크게 사고를 당하고 돌아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놈도, 놈 주변의 광대들도 모두 치워버려라. 되도록 문제없게.”
“네. 알겠습니다.”
언제나와 같이, 문제 없게.
정대수는 점점 불안해지는 듯한 자신의 입지를 되찾아야만 했다.
킬레이븐.
자신의 힘을 모두 사용하면, 날아가는 까마귀 한 마리쯤은 쉽게 떨어트릴 수 있을 터였다.
* * *
킬레이븐의 일이 끝난 뒤, 며칠이 지났다.
나는 정신을 차린 후에야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모두 들을 수 있었다.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벌였던 전투, 많은 빌런들 사이에서 쓰러져있던 나를 구출해준 래피드 스타, 다크 스코프 아저씨의 히어로 활동 은퇴까지.
누군가를 죽였기 때문에 히어로 활동을 그만두게 되었다며 내게 죄송하다 말하는 다크 스코프 아저씨를 보며, 나는 슬픈 감정과 더불어 묘한 감정을 느꼈다.
첫 만남 때, 나는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경한병원의 원장을 가차 없이 쏴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 다크 스코프 아저씨를 막아섰었다.
그랬던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이제는 내 방식을 완전히 긍정하고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 내가, 다크 스코프 아저씨로 하여금 제대로 된 히어로 활동을 하게 만들었던 거였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은퇴를 말하는 다크 스코프 아저씨를 막을 수 없었다.
아무리 악한 빌런이여도 절대 죽이지 않는 내가 존경스럽다는 다크 스코프 아저씨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다크 스코프 아저씨는 그날부로 히어로 활동에서 은퇴했다.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은퇴했으므로, 이제 더 이상 다크 스코프 아저씨와 함께 할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그냥 행복하기를 바랐다.
[“다크 스코프는 멀쩡히 살아 있는걸요? 살아계신다면 언젠가 만날 일이 올 거예요.”]
그래. 네 말이 맞아. 사람 인연이라는 게 그렇지.
절대 만날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슈팅 노바의 동생 설지나와 친구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던 것처럼, 언젠가 다크 스코프 아저씨와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마스터.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나도 보고 있어서 다 알아.
내가 도착한 곳은, 얼마 전 퀘이사를 구출하기 위해 들어갔던 화재현장이었다.
참담했던 그날의 상황을 알려주는 듯, 아직도 현장에는 뿌옇게 먼지가 흩날리고 있었다.
사건도 다 끝났는데 여길 왜 왔냐고?
실종당한 퀘이사, 아니 강수아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 * *
내가 강수아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던 것은, 바로 그 다음날 학교에 나가서였다.
“강수아? 강수아? 수아 오늘도 안 나왔나?”
“네. 오늘도 안 나왔는데요.”
“도유진?”
“네.”
“수아가 아직도 아프다고 하니?”
“죄송합니다 선생님. 모르겠어요.”
“강림이도 얼마 전까지 병원에 입원해있다 왔으니 모르겠구나?”
“네… 저도 들은 거 없어요.”
“어제 많이 아프다더니 오늘도 아픈가 보다. 일단 알겠다. 1교시 준비 다들 제대로 하고.”
연락 없이 안나올 애가 아닌데….
잘 들리지 않는 혼잣말을 중얼거리시며 교실 바깥으로 나가는 담임선생님.
어쩐지, 오늘 아침에 수아가 안 보이더라니… 어디가 아픈 거였나?
1년 내내 결석은커녕, 지각도 한번 하지 않는 타입의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나도 조금 놀랐다.
엊그제 내 병실로 병문안을 왔을때까지만 해도 분명 멀쩡해보였는데….
혹시….
나는 그때 내 눈앞에서 벌어졌던 일을 떠올렸다.
도유진이 장난한답시고 눈을 가렸고, 강수아가 깜짝 놀라 도유진을 엎어 쳤지.
나는 슬쩍 내 등 뒤에 앉아 있는 도유진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평소와 똑같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엎드려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도유진과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던 나는 알 수 있었다.
강수아의 이름이 나온 시점에서 불안하고 우울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런 도유진의 엎드려 있는 뒤통수를 손가락으로 쿡 하고 찔렀다.
“야 도유진.”
돌아오지 않는 대답.
나는 다시 한번 도유진의 머리를 쿡쿡 찔렀다.
“야 도유진. 대답 안하냐?”
쿡쿡쿡쿡
내가 계쏙해서 찔러대는 것을 참지 못한 도유진이 결국 입을 열었다.
“아 뭐하는데?”
“너 강수아랑 싸웠냐?”
“몰라.”
“니가 모르면 대체 누가 아냐?”
쿡쿡쿡쿡
“아 그만 좀 하라고.”
결국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몸을 벌떡 일으키는 도유진.
“그래 X발. 싸웠다. 왜?”
“…뭐? 강수아랑 싸웠다고? 너 대체 무슨 짓을 한거냐? 강수아는 화나게 만들기도 힘든데.”
“아 X발 나도 몰라. 내가 잘못한 건 맞는데, 사과도 안 받아주더라. 연락도 안 받고. 매정한 계집애.”
어? 어라?
갑자기 벌떡 일어난 도유진의 양쪽 눈에 눈물이 살짝 고이는 것이 보인다.
“진짜… 너무해.”
“뭐야? 유진아 왜 울어?”
마침 우리 반으로 놀러 오고 있던 한소연이 도유진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달려 들어온다.
“안 울어. 이런 걸로 울면 내 눈물만 아깝지 뭐.”
벌떡 일어나서 교실을 빠져나가는 도유진.
“어? 어? 유진아 어디가?”
“똥 싸러 간다. 왜?”
잠깐 당황해서 나와 도유진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는 한소연.
나는 그런 소연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주었다.
“지금 따라가서 달래줘 봐야 애 자존심만 상해. 이따가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어? 응….”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도유진의 등 뒤를 살펴보는 소연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나 없는 동안, 무슨 일 있었는지 알려줄 수 있어?”
* * *
그 이후로는 어렵지 않았다. 도유진이 사용했던 방법을 들은 나도, 이모를 통해 할머니에게서 강수아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어제 퀘이사가 히어로 활동을 아예 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호출기에 퀘이사의 출동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학교가 끝난 뒤 다크 카이저로서 방문한 다프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밀키웨이조차도 사라진 퀘이사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사실, 히어로 활동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퀘이사에게선 일어날 수 없는 일에 가까웠다.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정신지배의 씨앗이 심어졌던 곳이 어디였는지를 고민해보았다.
퀘이사를 구출하기 위해 들어갔던 화재현장.
그 화재현장 안에서 평소에는 겪지 못했던 여러 가지 현상들이 일어났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던 것이다.
다른 곳들은 밀키웨이와 다른 히어로들도 수소문해보고 있으니, 나는 일단 묘한 기분이 드는 이곳을 가장 먼저 조사하기 위해 찾아와본 것이다.
확신은 없었다.
【“조금쯤은 확신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네 의견에 동의해.”】
내가 깨어나던 날, 똑같이 잠에서 깨어난 벨제뷔트가 상황을 지켜보다 말고 입을 열었다.
무슨 근거로 확신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네가 정신지배로 고통을 받은 바로 그날, 똑같이 퀘이사가 사라졌다? 너무 공교롭지 않나?”】
공교롭다라….
타이밍이 묘하긴 해.
그렇다면, 그 시점에서 정신지배가 이루어졌었다고 생각해보면….
[“…이 악마가 말하는 게 너무 수상한데….”]
【“내가 뭘 어쨌다고?”】
[“네가 잠들어있다 깨어난 사이 마스터가 정신지배를 당했잖아. 그 사이에 네가 무슨 짓이라도 한 줄 어떻게 알아?”]
【“악마는 계약의 내용에 위반되는 짓을 절대 할 수 없다. 그건 너도 잘 알 텐데?”】
[“그럼 너 그동안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데?”]
【“…그냥 잤다. 피곤해서.”】
[“마스터! 쟤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요!”]
내가 잠시 생각에 빠지는 그 틈을 참지 못하고 싸우기 시작하는 내 머릿속의 악마 둘.
아오 정신 사나우니까 이런 상황에선 둘이 좀 싸우지 좀 말아봐. 생각 좀 해 보게!
[“…….”]
【“…….”】
나는 지금은 뼈대만 남은 채 거의 무너져버린 건물 근처를 훑으며 생각에 잠겼다.
언젠가 터졌어야 할 사건이 터진 것이다.
나는 내가 항상 맨 위로 올려두었던 가장 막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만화의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오른눈의, 미래를 보는 능력을 통해 단 한 번 본 적 있던 미래.
사실, 지금까지는 그 능력이 보여줬던 불행한 미래를 거의 모두 막아내는 데 성공하긴 했었다.
하지만 단 하나.
내가 정말 막아내고 싶었던 이 에피소드는, 아무리 방법을 쥐어짜 보아도 내 힘으로는 막을 방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지금까지 그 눈이 보여줬던 불행한 미래들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인 만큼.
그렇다면 분명, 이번 사건도 회피할 방법이 있을 터였다.
제인. 그날 사건 당시 녹화본 있지?
[“네 마스터. 지금 틀어드릴까요?”]
그래 한번 띄워봐.
여러 가지 사건이 많아 꽤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론 내가 퀘이사를 구출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녹화본을 살펴보다 보면 분명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나올지도 모른다.
나는 제인이 틀어주고 있는 영상을 천천히 돌려보았다.
퀘이사를 구하기 위해 불붙은 건물로 뛰어든 장면부터, 퀘이사 위로 떨어지는 건물 파편을 막아내기 위해 뛰어드는 장면, 그리고 좁은 건물 틈에서 퀘이사를 지키기 위해 건물의 파편들을 지탱하는 장면까지.
보다보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민망하긴 했지만, 어쨌든 퀘이사를 찾기 위해선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잠깐. 잠깐 멈춰봐.”
그렇게 영상을 쳐다보던 나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