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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74화 (174/236)

174화

정신지배(1)

소연은 머리끝까지 화가 난 채로 다프네를 나섰다.

뭐야? 말하는 게 너무하잖아.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친구로서 조금 더 따뜻하게, 힘들지 않게 표현해주었다면 소연도 이해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연이 화가 난 것은, 자신에게 말하는 강림의 태도 때문이었다.

히어로니 뭐니, 학생이니 뭐니. 자기도 나랑 똑같은 동갑이면서!

이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은 혼자서 짊어진 것 같은 그 표정과 몸짓, 그 말투.

자신 외에는 이 세상을 구할 수 없을 거라고 믿는 듯한 오만한 태도.

그런 표현들이 소연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강림은, 자신의 능력과 데다이트의 존재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림은 소연을 믿어주지 않았다.

함께 서로의 비밀을 나눌 때까지만 해도, 서로의 아픔과 고통을 모두 나눌 것처럼 느꼈었는데….

짝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소연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에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난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그렇게 화가 나 있는 소연의 눈치를 살피던 도유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어디 전화하게?”

“그래도 수아를 구할 방법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 얼마 전에 나 도와주신 적 있는 분들에게 도움을 좀 청해보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

“그 군인? 근데 수아 할머니가 경찰에 연락하지 말라고 하셨었는데….”

“여기 타투 가게 위치만 말씀 안 드리면 되는 거 아냐? 걱정하지 마. 그렇게는 안 할게…. 어. 네 여보세요. 네 중위님! 저 도유진인데요….”

“…어?”

그렇게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도유진의 머리 위에서, 소연은 이상한 노란 불빛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였다.

‘저게 뭐지? 별이 빛나는 건가?’

소연이 잠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작게 보이던 노란 불빛은 순식간에 소연과 도유진의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다.

찌릿.

순간, 소연은 날아가고 있는 불빛속에서 여자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아주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소연과 마주친 여자아이의 눈빛은 분명 슬픔을 담고 있었다.

“꺄아아악!”

깜짝 놀란 도유진이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들려오는 커다란 폭발 소리!

방금 날아간 무언가가 건물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다프네가 있는 방향이었다.

퍼엉!

순식간에 다프네가 있는 방향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지이잉-!

그 모습을 보자마자 소연은 허공에 데다이트의 통로를 열었다. 어쩐지, 눈이 마주친 여자아이의 눈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것 같은데… 실제로 해보는 것은 처음인데….’

데다이트가 있는 통로의 개수가 늘어나고 크기가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졌을 때쯤, 소연은 가벼운 의문이 생겼다.

자신이 이 공간 안으로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소연은 궁금함을 참지 않고 곧바로 통로를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와.”

어쩐지 옛날에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검은 구덩이.

그리고 검은 구덩이 안에 있는 데다이트.

소연은 그 이후로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많은 실험을 시도했다.

통로를 열었을 때, 검은 구덩이 안에서는 바깥이 어떻게 보이는지, 두 개를 열었을 땐 어떻게 되는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소연은 구덩이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직은 연습이 조금 더 필요하긴한데….’

긴급상황이니 어쩔 수 없지.

소연은 통로 안으로 뛰어들었다.

“어? 소연아? 어어?”

놀란 도유진의 목소리가 골목 안을 울렸다.

*    *    *

열린 검은 통로 안에서 삐죽 나온 얼굴을 보며 나는 잠깐 얼이 빠질뻔했다.

그 통로 안에서 사람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였어?

“어린 학생의 힘이 조금 필요하실까요?”

회심의 미소를 띠며 나를 보고 웃고 있는 한소연.

제대로 상황파악이 된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위협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밀키웨이!”

단지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도 무슨 소린지 알아들었다는 듯 곧바로 소연의 손을 잡고 통로 안으로 몸을 던지는 밀키웨이.

그리고, 밀키웨이가 뛰어드는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통로 안으로 뛰어드는 나, 다크 카이저.

화르르륵!

뒤를 돌아보진 않았지만, 뒤쪽에서 느껴지는 열기만으로도 내 바로 뒤까지 화염이 치닫고 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치이이이익!

먼저 안으로 들어온 밀키웨이가 펼쳐준 쉴드가 통로 안까지 따라 들어오려고 하는 퀘이사의 화염을 틀어막는다.

똑같이 퀘이사도 통로로 뒤따라 들어오려는 듯, 발밑에 화염을 뿜어내며 이곳으로 돌진해오기 시작했지만,

“데다이트! 통로 닫아!”

턱-!

나와 밀키웨이가 완전히 통로 안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한 소연은 순식간에 통로의 문을 닫아버렸다.

화르르륵!

닫힌 통로에서 빠져나온 화염 몇 조각만이 방금까지 통로가 있던 곳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불타오르다가 사라졌다.

“허억….”

살았다.

*    *    *

아슬아슬하게 통로를 통과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퀘이사를 보며, 메두사는 혀를 짧게 쯧 찼다.

“아쉽네. 어쩌면 길게 갈 필요도 없이 이번에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괜찮다. 새롭게 얻은 능력이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마지막에 알 수 없는 조력자가 나타난 것만 아니었어도 어쩌면 오랜 악연을 끝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끝날 인연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마법적 텔레포트는 아니군.

그렇다면 초능력을 사용하는 슈페리어의 개입이라는 의미겠지.

마법이 아니므로, 더 이상의 추적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결국 마음이 급한 곳은 저쪽일 터였다.

“돌아가자.”

메두사의 명령에도, 꿈쩍을 하지 않고 통로가 있던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퀘이사.

뭐야? 벌써 정신지배가 허물어졌나? 생각보다 정신력이 더 강한 모양이군. 돌아가서 보수해야겠다.

휘익-

메두사의 입에서 나온 휘파람 소리와 동시에 잠시 맑아졌던 퀘이사의 눈이, 다시 정신지배를 받고 있는 탁한 색깔로 돌아간다.

“돌아가자.”

메두사가 다시 명령을 내렸을 땐, 퀘이사는 명령을 듣고 다프네를 모두 불태워버렸던 꼭두각시로 돌아가 있었다.

*    *    *

허억. 허억.

“여… 여긴….”

통로를 넘어온 우리가 도착한 곳은, 다프네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골목길이었다.

“무시했던 어린 학생에게서 도움을 받은 소감이 어떠세요?”

“소연아… 자꾸 왜 그래….”

귀엽네 한소연.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나를 보며 으스대는 표정을 짓고 있는 소연을 보며, 나는 터지려던 웃음을 꾹 참았다.

“…어린 학생이라고 무시해서 미안하군. 그리고 고맙다. 우리를 도와줘서.”

그 말을 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사과를 하는 나를, 소연이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 천만에요.”

어차피 몇 분 전에 있었던 일에서 사과하고 싶었으니까. 차라리 잘됐다 싶은 생각도 있었다.

소연이에게 사과를 건넨 나는 아까 일어났던 전투 상황에 대해 되새겨 보았다.

황색의 화염을 사용하고 있긴 했지만, 다프네를 공격해온 것은 분명 퀘이사였다.

혹시나 했던 퀘이사의 정신 지배가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방금 전투상황에서 제압할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텐데.

밀키웨이와 나, 그리고 퀘이사.

분명히 2:1인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게 퀘이사를 제압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좁은 전투 공간에서 오는 불리함.

좁은 건물 안의 화재는 화염을 흡수해서 분사하는 퀘이사에게는 이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불리하기 짝이 없는 약점에 가깝다.

능력의 상성.

밀키웨이의 능력은 보호막 생성. 보조와 방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화력의 공격은, 벨제뷔트가 나에게 빌려주는 흑염의 능력.

흑염이 퀘이사에게 완전히 피해를 주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화염 내성이 있는 퀘이사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힐만한 능력은 아니었다.

지금의 상황에선 필패를 점칠 수 밖에 없었다.

힘이 부족하군.

원래 같았으면, 이런 큰일이 생기자마자 가장 믿을 수 있는 내 동료, 사이드킥들을 불렀을텐데….

나는 지금 현재, 나를 완전히 믿고 도와주던 사이드킥을 모두 잃은 상황이었다.

데빌보이도, 다크 스코프도.

모두 내 부족함 때문에 힘을 잃고 사실상 잠정은퇴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지금 당장 슈팅노바와 페이퍼백을 부르기에도 시간이 넉넉지 않다.

화르륵!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사이, 화염에 휩싸인 퀘이사가 허공을 날아 어디론가로 향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죠? 지금 놓치면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 모습을 지켜본 밀키웨이가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밀키웨이와 나만으로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소연의 모습에서, 나를 위해 싸워준 사람들이 은퇴하기 직전 내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다크 카이저 님. 저는 이제 은퇴하지만 단 한 가지만큼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다크 카이저 님의 사이드킥으로 활동했던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아요.”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했던 말.

“아. 아쉽다. 조금 더 멋진 사이드킥이 되고 싶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는데… 헬 카이저님. 그래도 저 잘한거 맞죠?”

헬 보이가 했던 말까지.

과연 내가, 사람을 돕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을 포기 하게 만들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친구를 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소연의 마음을, 말릴 자격이 내게 있는 걸까?

소연이는 원작 만화에서는 강력한 힘을 휘두르며 악행을 저지르던 빌런 어비스 위치였다.

준석이도, 다크 스코프 아저씨도 원작 만화에서 역할을 하고 있던 인물이었던 만큼, 충분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소연이도 분명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소연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방금까지 도움이 필요 없다고 해놓고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날 좀 도와줄 수 있겠나?”

그런 내 말을 듣고 소연은 환하게 웃었다. 마치 꽃이 피는 것처럼.

“그러면 앞으로도 제 도움을 받아들인다는 말씀이시겠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소연.

그거랑 이거랑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도움을 받은 입장에서 거절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 ‘앞으로도’ 보다는 ‘이번만큼은’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만 말이지.”

“참나. 너무 쪼잔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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